소설리스트

교여독비-412화 (412/442)

412화 처참한 죽음

“도오,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어요.”

“공주 전하, 영군진의 부인이 되지 않게 해 드린다는 약조를 지키려는 겁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혼례는 이미 끝났어요. 되돌릴 수 없다고요.”

“공주 전하께서 그 해결 방법을 갖고 계십니다.”

도오가 눈짓하자 호위들이 혁련이락을 침상으로 내던지고는 비수를 그녀의 배에 푹 찔러 넣었다.

“컥…….”

혁련이락은 배에서부터 전해지는 극심한 통증에 말도 잇지 못했다.

도오는 붉은 피로 물들어 가는 침상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래도 눈에는 일국 공주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공주 전하, 북강 백성들은 공주 전하를 충성으로 떠받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흘리시지요.”

“네, 네놈이…….”

혁련이락은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도오를 노려보았다.

“공주 전하의 희생으로 대력조 황제와 월왕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이 또한 큰 공이옵니다.”

도오가 목소리를 서늘하게 바꾸더니 호위들에게 명했다.

“시간이 없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숨을 끊어 내거라.”

“네.”

혁련이락이 발버둥 칠 새도 없이 목에 칼이 닿았다. 이내 그녀의 목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현장을 꾸민 뒤 대력조 관원들을 유인해 와. 월왕 쪽 일은 실수 없겠지?”

“월왕은 저희가 쓴 약 때문에 이미 정신을 잃었습니다.”

“잘되었다. 공주 전하께 감사라도 해야겠군. 먼저 미약을 써 주신 덕에 월왕의 경계를 느슨하게 할 수 있었어. 아니었다면 월왕 같은 자한테 약을 쓰기가 어디 그리 쉬웠겠나. 자, 이제 뒤처리를 하게.”

“알겠습니다.”

대력조 관원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 그때, 난데없이 비명이 들리더니 양손이 피범벅이 된 시녀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공주 전하께서…… 공주 전하께서 살해당하셨습니다!”

“뭐라?”

북강 사신들이 황급히 신방으로 내달렸다.

우항은 시녀를 다그쳐 물었다.

“월왕 전하께서는 무사하시냐?”

“월왕 전하께서 공주 전하를…….”

순간 우항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가 재빨리 시위 십여 명을 대동하여 신방으로 향했다.

대력조 관원들도 황망히 그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이 벌어졌든 간에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아야 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신방 앞으로 모여들었다.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방 안으로 쏠렸다.

안에선 월왕이 손에 비수를 든 채 머리를 매만지며 서 있었고, 방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북강 사신은 황급히 시뻘건 휘장을 걷어 올렸다. 이미 숨이 끊어진 혁련이락이 붉은 비단옷만 간신히 걸친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 곳곳은 칼에 찔린 흔적이 가득했다. 특히 두 다리에 상처가 집중돼 있었다.

처참한 광경에 북강 사신들이 소리를 질렀다.

“공주 전하께서 살해되시다니!”

“월왕, 당신은 살인자요!”

그에 우항이 시위들을 이끌고 월왕을 가운데에 둔 채 호위했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소. 없는 말을 지어내어 날조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없는 말을 지어낸다 하셨소?”

도오가 노기 가득한 얼굴로 나타나서는 말했다.

“방 안에는 월왕과 공주 전하 두 분뿐이었소. 방금 모두 목격하지 않았소? 공주 전하께서는…… 정말이지, 이 참담한 심정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보시오. 이 다 찢어진 혼례복을. 월왕이 공주 전하를 강제로 욕보이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공주 전하를 죽인 것이 분명하오. 당장 황궁으로 갑시다. 폐하를 알현해 공주 전하의 억울함을 풀어야 하오.”

하지만 우항이 이를 가만히 지켜볼 리 만무했다. 그가 곧장 시위들을 시켜 문을 막아섰다.

“지금 입궁한다면 월왕 전하를 고의로 모략하는 것으로 알겠소.”

“억지를 부려도 유분수지!”

대로한 도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새 월왕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는 속셈을 내 모를 줄 아는 게요? 뚫고 나가라.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폐하를 만날 것이다!”

“저놈들이…….”

우항의 미간이 좁아졌다. 장검을 휘둘러 위협을 하려는데, 북강 사신이 다짜고짜 그의 검을 덮쳐 왔다. 이내 검날이 심장을 관통했다.

주위는 삽시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북강 사신이 우항의 칼에 들이박고 죽자, 동료 사신들이 호위들에게 반격하라고 고함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허둥지둥하던 대력조 관원들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들의 칼에 찔려 쓰러졌다.

그때, 월왕이 약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니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지체 없이 명을 내렸다.

“북강 놈들이 대력조 관원들을 죽이며 반란을 일으킨다. 저들의 목을 당장 베어라!”

“네!”

우항과 시위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검들이 서로 맞부딪히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쉴 새 없이 비명이 들려왔다.

심병괴가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신방 근처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북강 사신들은 절반가량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고, 대력조 관원들 일부도 바닥에 널브러져 가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월왕 전하, 부하들을 멈추도록 해 주십시오.”

순천부의 관리들로는 무공이 월등한 월왕의 시위들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인 터라 심병괴가 청을 올렸다.

그에 월왕이 이쯤 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우항을 불렀다.

“우항.”

우항이 즉시 월왕 앞으로 달려가 예를 표했다.

“아뢰옵니다. 북강인 열셋의 목을 베었고, 대력조 관원 스물여섯 명을 무사히 지켰습니다. 저희 가운데 중상자는 둘이고, 넷은 경미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알겠다.”

도오는 일이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을 미리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월왕의 막무가내식 행동을 보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월왕 전하, 궁에 가서 폐하를 뵈어 옳고 그름을 여쭈려던 것뿐이었는데, 월왕부의 시위들이 저희 북강인 절반을 죽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는 줄로 아옵니다.”

“우리는 북강의 사신이오. 그런데 대력조에서 우리를 개돼지처럼 살육하다니! 이 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월왕이 손으로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우항에게 지시했다.

“북강 사신들이 공주와 짜고 본 왕에게 약을 썼다. 태의를 불러 방을 샅샅이 조사하도록 해라. 본 왕이 직접 입궁해 제대로 따져 물을 것이다.”

그에 북강 사신들이 치를 떨었다.

알겠노라 대답한 우항은 현장에 있는 관원 가운데서 태의를 찾아 즉시 검사에 들어갔다.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태의가 한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초에 미약을 쓴 흔적이 있습니다.”

남은 미약의 양은 극소량이었다. 하나 지금 우물쭈물했다가는 북강 사신들이 기세등등하게 나올 것이다.

월왕이 도오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

“물건들을 챙겨라. 당장 입궁하겠다.”

도오도 이에 질세라 성난 목소리로 명했다.

“북강 사신들의 시신을 둘러업거라. 황궁으로 가서 기필코 따져 물을 것이다.”

* * *

해가 져 어스레한 시각.

목운요는 서책을 내려놓고는 금란에게 물었다.

“몇 시진이나 되었나요?”

“일각만 지나면 술시입니다.”

“사야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나요?”

바로 그때,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왕비 마마, 우의입니다.”

목운요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들어오거라.”

안으로 들어선 우의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왕비 마마, 월왕 전하와 북강 사신들 사이에서 격돌이 일어나 북강 사신 절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재는 궁에 들어 황제 폐하를 알현하고 있습니다.”

“알겠네.”

목운요가 침착한 어조로 대꾸한 뒤 금란을 바라보았다.

“금란, 마차를 대기시켜요. 외할머니를 뵈어야겠어요. 금교는 성 공공을 찾아가서, 내부 단속을 잘하라고 단단히 일러둬요.”

이내 그녀가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밖으로 나섰다.

한편, 궁은 극도로 소란스러웠다. 너도나도 목청을 높이는 통에 저잣거리를 방불케 할 지경이었다.

“폐하, 저희 북강은 양국의 우호를 위해 혼약을 지켰습니다. 한데 월왕은 이런 북강에 대해 일말의 존중도 없이 혼례 당일 북강 공주를 살해했을 뿐 아니라 북강의 사신 절반을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폐하, 이를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제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미간도 깊이 팬 것이 심히 골치가 아픈 모양새였다.

“서립, 태의를 불러 북강 사신들의 상처부터 치료토록 하라.”

“폐하, 소인은 당장에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다만 시비를 가리시어 월왕을 엄벌에 처해 주시옵소서.”

“양국의 우호를 위한 북강의 그 마음은 짐도 잘 알고 있소.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리다.”

그제야 북강 사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월왕을 향해 물었다.

“월왕, 영군진 대신 혼례당에 든 것이 아니었나? 어찌 이런 큰일이 벌어진 것이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북강 사신들이 소신을 해하려 약을 썼습니다. 그 계략이 들통나자 자리에 있던 대력조 관원들을 죽이려 들었습니다. 소신은 그저 현장에 있던 관원들을 지키려 했을 뿐입니다.”

황제는 탁자를 내리치고는 근엄하게 하명했다.

“금위군 총령은 지금 즉시 진왕부로 가 샅샅이 살펴보고 오너라.”

“예!”

그에 월왕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폐하, 제 말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월왕, 사안이 중대한 만큼 제대로 조사한 뒤 다시 얘기하세.”

조용히 고개를 숙인 도오는 이번 사건으로 어떤 이익을 손에 쥘 수 있는지를 두고 머리를 재빠르게 굴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금위군 총령이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황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아뢰옵니다. 소신이 진왕부로 가서 확인해 보니 북강 공주가 비수에 찔려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이 그 흉기입니다.”

비수를 살펴본 황제의 표정이 몹시 차가워졌다.

“비수에 내무사의 각인이 있군. 서립, 이 비수를 하사받은 이가 누군지 당장 알아보거라.”

월왕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이 더없이 살벌했다.

“폐하, 그 비수는 선황께서 제게 하사하신 것입니다.”

놀란 황제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월왕, 정녕 자네가 북강 공주를 죽인 겐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