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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07화 (407/442)

407화 다시 꾸미는 함정

“정사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니 잠이 오질 않더구나.”

“태의에게 수면에 좋은 약을 처방받아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개를 저은 황제는 놀릴 거리가 없어지자 화두를 돌려 버렸다.

“그나저나 단오절이 코앞이구나. 국상 기간이라 크게 축제를 열진 못하더라도 민간 행사는 예전대로 진행해야 할 텐데, 북적이는 틈을 타 북강이 일을 벌일까 걱정이다. 근위병들에게 만반의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절대로 북강이 일을 벌일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예.”

월왕도 다시 진지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폐하께서 보시기에 이번 북강 사신들의 목적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북강은 현재 역병 때문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비록 우린 역병 처방전을 가지고 있지만, 워낙 구하기 힘든 약재들이 많다 보니 역병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월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인즉, 북강에서 일부러 대력조에 역병을 전파하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들이 애초에 혁련이락을 보낸 것도 역병 처방전을 얻기 위해서였다. 다만 혁련이락이 탐욕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모든 게 다 틀어졌던 것이지.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는 마당에, 역병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북강에 아마 큰 재난이 닥칠지도 모른다.”

월왕은 덩달아 걱정이 들었다.

“폐하, 역병이 북강을 휩쓸면 저희도 화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변경 지역이 워낙 멀다 보니 약재 운송부터 큰 난제일 것이고, 북강을 막기 위해 꽤 많은 병사가 파견 가 있어 역병이 군영에 퍼지는 순간 대력조도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겠지.”

추측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황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변경에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명령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제수씨도 태의원에 힘을 보태 역병 예방용 환약을 만들어 두는 게 좋을 듯하다.”

“알겠습니다.”

* * *

월왕은 무거운 마음으로 월왕부로 돌아왔다.

월왕부 장부 점검에 한창이던 목운요는 표정이 어두운 그를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사야, 무슨 일인가요?”

“요아, 폐하께서 북강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당부하시더구나.”

“북강…….”

목운요도 염려했던 것을 털어놓았다.

“북강과 대력조는 워낙 물과 불 같은 사이죠. 북강이 어려운 시기만 넘기면 다시 저희한테 복수할지도 몰라요.”

“북강인들은 은혜보다 원수를 더 잘 기억하기로 유명하지. 부황이 쉽게 역병 처방전을 넘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고.”

북강은 마치 길들이기 쉽지 않은 늑대와도 같았다. 배불리 먹여 주고 재워 준 후 오히려 물리는 상황만큼은 피해야만 했다.

“사야 생각은 어떤가요?”

“폐하께서 처방전을 주시긴 할 테지만, 그 전에 호되게 혼쭐 좀 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대력조, 북강과 운유(雲柔)는 대치 상황을 이루고 있었다.

대력조에서 끝까지 역병 처방전을 내주지 않는다면 북강의 원한을 살 뿐만 아니라 북강 세력이 약화되는 틈을 타 운유가 치고 올라올 수도 있다. 그건 대력조도 절대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목운요는 월왕의 뜻을 알아차렸다.

“사야께선 이전에 세웠던 계획대로 진행하고 싶으신 거군요?”

“그래.”

북강 곽씨 사건이 워낙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다 보니, 황제는 그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곽경주가 몰래 준비해 온 계획들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 그대로 두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 유리하게 쓰일 것 같았다.

목운요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못내 걱정이 앞섰다.

원래 곽경주가 가지고 있던 병기와 철광을 이용해 북강을 함정에 빠트릴 생각이었으나, 진왕이 반역을 꾀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잠시 중단되었었다.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과연 북강이 그걸 믿어 줄지가 문제였다.

“북강 내부도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들은 태생부터 야심이 큰 데다 복수심이 어마어마하다. 우리가 북강 공주를 가두고 있으니, 그들은 반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게 분명해. 그러니 충분히 그들을 걸려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인할 거면 그럴 만한 흥정거리가 있어야죠. 전에는 진왕의 반역을 빌미로 그들이 병기와 군마를 제공하도록 유인했지만, 이제 진왕과 릉왕 둘 다 없어졌으니…….”

조용히 중얼거리던 목운요는 순간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설마, 사야께서 직접 나서려는 건가요?”

릉왕과 진왕이 없지만, 아직 월왕이 남아 있었다.

북강인들에게 있어 월왕은 릉왕과 진왕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였다. 월왕이 마음만 먹으면 대력조를 쉽게 뒤집어 놓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왕은 바로 눈치챈 목운요의 총명함에 내심 감탄했다.

“아직 구상일 뿐, 자세한 건 폐하와 상의해 봐야 한다.”

거짓 연기를 하기로 한 이상, 북강뿐만 아니라 조정 대신들조차 깜빡 속아 넘어가게끔 완벽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요. 어차피 마음먹은 일이라면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것이 좋겠어요. 이번 북강 사신 방문이 어쩌면 가장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몰라요.”

“그러마.”

* * *

하운방과 불선루가 조정에 넘어갔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자, 백성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아 했다.

두 곳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지는 잘 모르지만, 부두에서 찻잎을 운송하는 배들만 봐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할 것이란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월왕과 월왕비가 그 엄청난 사업들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정에 내놓고, 심지어 창출한 수익으로 백성들의 생활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이 어찌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게다가 두 사업 모두 월왕비의 의부인 조운년이 운영을 맡았다고 하니 더욱더 믿음이 갔다.

사실 조운년은 백성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경릉성에 있을 때 세운 치적들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 대인이라면 필시 하운방과 불선루의 돈을 적재적소에 쓸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안팎으로 월왕의 기세가 날로 늘어나자, 몇몇 관원들은 은근슬쩍 월왕에게 아부하며 환심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일부 관원들은 월왕을 대하는 황제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각별한지를 잘 알기에, 이내 그런 의심을 거두었다.

월왕이 없었더라면 황제가 순조롭게 왕위에 앉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황제가 자신을 지지해 온 월왕을 내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 * *

단오 당일, 서릉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끓었다.

하천 위에는 경기를 앞둔 용선들이 늘어서 있었고, 강 양쪽에는 구경하러 온 백성들로 빼곡했다.

목운요도 이 층 별실에 자리를 잡고 창밖을 지켜보았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금교가 구슬 비녀를 들고 올라왔다.

“비 마마, 분부대로 구슬 비녀를 사 왔어요. 어떤 용선에 걸 건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가지고 내려갈게요.”

용선 경주는 매년 서릉에서 치러지는 큰 행사 중 하나로, 내기에도 많이 이용되었다.

비녀 하나당 은자 열 개였는데, 이길 것 같은 용선에 걸어 두는 것이었다. 선택한 용선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모인 구슬 비녀는 다시 은자로 환산해 경주에 참가한 사공들에게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목운요는 빼곡히 몰려든 구경꾼들을 훑어보더니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승부는 크게 상관없으니 아무한테나 걸어요.”

금교가 곧바로 구슬 비녀를 가지고 내려가 원하는 상자에 넣어 두었다.

그때, 갑자기 백성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린 것이다. 용선들은 화살처럼 앞으로 쭉쭉 나가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목청 터지도록 응원했고, 귀빈들만 이용하는 이 층 별실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그 순간, 인파 속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려왔다.

환호성이 워낙 크다 보니 그 누구도 비명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뒤로 상상도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진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한 군데 엉켜 쓰러지는 바람에 서로 밀치고 밟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천 가까이에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물에 풍덩 빠져 버렸다.

그 모습에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환호성은 어느새 다급한 구조 요청으로 바뀌었고, 강가로 달려드는 사람과 살려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고 넘어져, 물에 빠지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중 대부분이 힘없는 어린아이들이었다.

금란과 금교도 눈앞의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근위병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진정시키는 한편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금란에게 말했다.

“선령에게 최대한 많은 의원을 데리고 오라 전해요.”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많은 의관을 책임지고 있는 선령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네.”

한바탕 소동이 지나자 길거리는 다시 한산해졌다.

목운요도 비로소 안심하고 자리를 떠났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월왕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성 공공을 통해 알아봤더니 월왕이 궁으로 소환됐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낮에만 해도 청명하던 하늘이 밤이 되자 천둥 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회랑 밑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목운요의 얼굴에 근심이 내려앉았다.

그때, 금교가 우산을 들고 빠르게 달려왔다.

“비 마마, 우의가 뵙기를 청합니다.”

“들여보내요.”

“예.”

우의는 온몸이 비에 젖은 채 침울한 표정으로 인사 올렸다.

“마마, 폐하께서 왕야에게 무릎 꿇는 벌을 내리셨는데, 아직 한 시진 남짓 남아 있습니다.”

목운요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알겠으니 가 보거라.”

“예.”

“마마…….”

금란이 다가와 목운요의 팔을 부축했다.

“아직 한 시진이나 남았다고 하니 방에 가서 기다리시지요. 혹시라도 찬 바람을 맞아 아프시기라도 하면 왕야께서 걱정하실 겁니다.”

목운요가 몸을 돌려 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생강차를 준비해 둬요. 그리고 성 공공에게 전해, 그 누구든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게 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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