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406화 (406/442)

406화 임을 위한 연주

* * *

막 서릉에 도착한 북강 사신들은 숨 돌릴 새도 없이 월왕을 따라 입궁했다.

지난번보다 인원수가 많진 않았지만, 유난히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그들은 입궁하자마자 가장 먼저 북강 공주 혁련이락을 만나기를 청했다.

“폐하, 저희 대왕께서 공주님이 곤경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걱정하십니다. 천진난만한 저희 공주님이 반역에 가담했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다른 사신들도 질세라 입을 열었다.

“이곳 서릉은 대력조 천자가 계신 곳으로 방위가 가장 잘된 곳일 텐데, 저희 공주 전하께서 무슨 능력으로 반역에 가담을 한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외족인 저희 북강이 서릉 내부 세력을 동원해 황권에 위협을 끼친 거라면 대력조의 안위가 심히 걱정되는군요.”

옥좌에 앉아 있던 황제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기세등등한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만약 혁련이락에게 죄를 씌운다면, 대력조가 부실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될지도 몰랐다.

그때, 월왕이 나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반역은 엄연히 중죄입니다. 마땅히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강 사신들은 덜컥 겁을 먹었다. 그들도 익히 월왕의 명성을 들어 왔다. 특히 병사를 이끌고 북강군을 몰살했던 사건은 그들의 마음속에 큰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북강 사신들의 기세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월왕 전하, 공주 전하와 같이 존귀하신 분을 어찌 쉽게 사형에 처하실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무슨 오해가 있는 게…….”

월왕이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럼 본 왕이 군대를 이끌고 당신들의 왕성에 쳐들어가 왕권을 뒤엎어도 오해겠군?”

“그건 엄연히 다른 얘기지요. 공주 전하께서는 타인의 꾀에 속아 넘어갔을 뿐, 정녕 반역할 마음은 없었을 겁니다…….”

“그럼 본 왕도 홧김에 그런 것일 뿐, 진심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월왕이 내뿜는 냉랭한 기세에 가장 가까이 서 있던 북강 사신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전하, 저희는 결코 왕야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성격이 단순하기로 소문 난 공주 전하께서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음을…….”

월왕의 더욱 매서워진 눈초리에 북강 사신은 말끝을 흐렸다.

월왕에게 겁먹은 북강 사신들을 보고 황제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아우, 북강 사신들이 상황을 잘 모르는 데다 공주의 안위가 걱정되어 그런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게. 저들이 자세한 상황을 알게 되면 알아서 수긍할 것이라 믿네.”

북강 사신들은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북강 왕의 당부를 떠올리며 어쩔 수 없이 일 보 후퇴했다.

“폐하 말씀대로 자세한 상황을 잘 모르오니 일단 공주 전하를 뵙게 해 주십시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 일단은 내려가서 쉬게.”

“……예.”

북강 사신들을 내보낸 뒤, 황제와 월왕 단둘이 남았다.

“아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요즘 월왕의 심상치 않은 기운 때문에 관원들이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이 얼굴이 어찌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일 수 있단 말이냐?”

황제가 뻐근한 팔을 돌리며 계단에 앉아 월왕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꾸나. 이 형님이 좋은 수를 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월왕이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실은 요아와 냉전 중입니다.”

황제는 두 눈을 반짝이며 흥미진진해했다.

“어떻게 된 일인데?”

그러다 스스로도 아차 싶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금세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월왕은 그런 형님이 낯설었다. 황위에 오른 뒤로 예전보다 더 철이 없어진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제가…… 거짓말을 했거든요…….”

황제가 크게 놀랐다.

“아우, 설마…… 아니지? 혹시 기생들이랑 놀아난 것이냐? 듣기론 최근에 새로 생긴 방화각이란 곳의 여인들이 그렇게 하나같이 예쁘다던데…….”

듣다 못한 월왕이 곧장 문 쪽으로 향했다. 혹시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우……! 미안하네. 장난 그만 칠 테니 계속 얘기해 봐…….”

그러나 월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를 올린 뒤 그대로 걸어 나갔다.

황제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립, 황후는 지금 뭐 하고 있느냐?”

“궁 밖에서 앵무새 두 마리를 보내왔는데, 황후 마마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셔서 한창 구경 중이십니다.”

“짐도 구경 가 봐야겠군.”

그러자 서립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폐하, 황후 마마께서 한동안은 정사에 집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만…….”

황제가 모든 정사를 황후가 있는 곳에서 보자 관원들이 불만을 표하기 시작해, 화가 난 황후는 단호히 황제의 출입을 거절한 상태였다.

그러나 황제는 외려 뻔뻔하게 나왔다.

“넷째 아우네가 사달이 생겨 황후를 찾아가 의논하려는 것뿐이다!”

결국 서립도 더는 황제를 만류하지 못했다.

* * *

성 공공이 왕부로 돌아온 월왕을 맞이했다.

“왕야, 경릉성에서 소식이 왔는데 진 총관이 불선루 인계를 마치고 곧 서릉으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항에게 집 한 채를 정리해 두라고 하게. 한동안은 쉬어야 할 테니까.”

“예, 왕야. 그보다 진 총관이 왕비께 드리라며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전할까요, 아니면 직접 전하시겠어요?”

월왕이 발걸음을 멈췄다.

“왕비는…… 오늘 별일 없었나?”

“왕비 마마께서 오늘 창고에 다녀온 이후로 줄곧 방 안에만 계십니다. 점심 식사도 거르셨다더군요.”

월왕은 걱정이 앞섰다.

“식사를 거르면 안 될 텐데……. 선물은 내가 전하지.”

“예.”

월왕은 곧장 목운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문 앞을 지키던 금란과 금교가 인사 올렸다.

“소인, 왕야를 뵙습니다.”

“왕비는?”

“방 안에 계십니다…….”

그에 월왕은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칠현금을 켜고 있던 목운요는 손가락을 멈추고 월왕을 쳐다보았다.

“사야, 무슨 일이길래 이리 황급히 들어오시는 거예요?”

월왕은 눈앞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녀는 흰색 비단옷 차림으로 칠현금 앞에 앉아 있었는데, 단아한 모습이 칠현금과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는 목운요와 칠현금을 번갈아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요아…….”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다시 칠현금을 꺼낸 것일까?

그사이 목운요가 칠현금 위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사야, 제 칠현금 연주를 들어 보고 싶나요?”

월왕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요아, 널 떠봤던 건 미안하다. 난 그냥…… 질투가 나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은 없었다. 난…….”

여러 가지 감정이 홍수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그 속에 휩쓸려 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럼 안 듣고 싶어요?”

목운요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월왕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젠 듣고 싶지 않다. 요아, 손 다치니 앞으로는 칠현금을 켜지 말거라.”

그때, 백옥처럼 하얗고 긴 손가락이 칠현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월왕은 넋을 놓고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연주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두 눈에는 따뜻한 빛이 맴돌았고, 한 음 한 음마다 짙은 감정이 느껴졌다.

이렇게 감미로운 칠현금 소리는 처음이었다. 마치 귀를 간지럽히는 속삭임처럼 흘러 들어와 마음에 촉촉한 보슬비가 되어 내린 뒤 순식간에 다채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연주를 마친 목운요가 천천히 일어섰다.

“사야, 이제 더는 유감이 없으시겠죠?”

월왕이 말없이 다가가 목운요를 품에 꽉 안았다.

“요아, 더는 허튼 생각 하지 않으마. 내가 다 잘못했다…….”

목운요가 작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왜 사람들이 제 연주에 혼이 없다고 했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네요. 앞으로 칠현금 연주에 몰두해야 할 것 같으니, 사야께선 며칠만 더 다른 방에서 지내세요.”

그 시각,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성 공공은 월왕이 쫓겨 나오지 않는 걸 보고서야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역시, 내 수가 통한 거야.”

월왕부를 잘 이끌기 위한 성 공공의 노력은 그야말로 가상했다. 이내 그가 일을 하러 가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 공공, 여기서 뭐 하나?”

성 공공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왕야, 설마 또 쫓겨나신 겁니까?”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월왕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왕비가 요 며칠 불면증이 심해져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하네.”

“태의라도 불러올까요?”

성 공공은 애간장이 탔다. 불면증이 심하다는 건 너무 무료해서 그런 건데, 남자답게 덮치든가 해서…… 어험…… 그러면 여간 좋지 않을까?

사람이란 자고로 피곤함이 극에 달하면 서서도 자는 법이다. 왜 왕야는 그걸 모르시는 걸까? 이렇게 해서 언제 작은 도련님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성 공공의 일그러진 표정에 월왕도 머쓱해졌다.

“걱정 말게. 며칠 동안 왕비 곁을 지켜 주면 금방 나아질 테니.”

“예, 왕야. 모든 일은 저한테 맡기시고 왕야께선 왕비 마마와 시간 보내시는 데에만 집중하십시오.”

“그래.”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 * *

이튿날, 다시 만난 월왕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심지어 북강 사신들이 혁련이락을 만나겠다고 난동을 부리는데도 인상 한 번 쓰지 않을 정도였다.

그에 심통이 난 황제는 관원들이 모두 나간 뒤 월왕에게 투덜거렸다.

“아우, 제수씨랑 화해한 거야?”

“예.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근데 폐하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아 보이는군요. 어젯밤 잠을 설치기라도 하신 겁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를 놀리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전세가 역전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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