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405화 (405/442)

405화 첫 부부 싸움

그렇게 금부인이 떠나고 얼마 후, 월왕이 나타났다.

“금 부인께선 돌아가셨어?”

“네.”

목운요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찾아오신 걸 보니, 조 대인과 금 부인께서도 마음을 많이 쓰고 계신 것 같구나.”

어명이 떨어지자마자 목운요를 찾아온 것이니 일부러 아첨하려 한다는 뒷말이 두려워 주춤할 법도 한데, 그분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의부님과 의모님 두 분 모두 경릉성에 있을 때 저에게 큰 도움을 주셨어요. 하운방과 불선루를 두 분께 맡기니 저도 안심이 되네요.”

* * *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정원으로 함께 산책을 나갔다.

목운요의 설계 도안 덕분에 월왕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젠 발이 닿는 곳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정자에 앉은 목운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밝고 고요한 달빛 아래에 있다 보니 마음도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았다.

월왕은 목운요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긴장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경치가 참 아름답구나. 칠현금이나 한 곡 연주해 주지 않겠느냐?”

목운요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려 월왕을 바라보았다.

“제가 칠현금 연주하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월왕은 순간 여러 생각이 오갔다.

과거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신경 쓰이는 건 목운요의 마음이었다. 그녀의 마음에 자신만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충동적으로 저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워낙 자수나 다른 것에 다 능통하니, 당연히 칠현금도 잘 켤 거라 생각했지…….”

순간 목운요의 미소가 점점 사라져 갔다.

잔뜩 긴장한 월왕은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냥 해 본 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혹시 영군진을 죽인 사람이 사야인가요?”

목운요의 날카로운 물음에 월왕은 말문이 막히며 심장이 요동쳤다.

“난…… 아니, 아침에 시위가 소식을 전하길, 급사했다고 하던데…….”

“사야께서는 거짓말할 때 엄청 티 나는 거 아시나요?”

귀 끝까지 붉어진 월왕을 보며 목운요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점차 굳어 가는 그녀의 표정에 월왕은 안절부절못했다.

“요아, 그게…….”

목운요가 일어나서 연못을 향해 몸을 돌렸다. 등 뒤로 드리운 비단 같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사야, 저한테만은 솔직하셨으면 좋겠어요.”

월왕은 벌떡 일어나 뒤에서 목운요를 와락 안았다.

“요아,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영군진은 내가 죽인 게 맞다. 어젯밤 황릉으로 찾아갔었다.”

“무슨 말을 하던가요?”

역시 예상이 맞았다. 어젯밤 월왕이 신발에 묻혀 온 흙이 이미 거짓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놈이 네가 자신의 첩실이었고, 자기한테 잘 보이려고 다도와 칠현금까지 배웠다며 헛소리를 하길래, 그 자리에서 목 졸라 죽였다.”

월왕은 이 순간 후회막심했다. 영군진을 죽여서, 혹은 목운요를 떠봐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후회됐다.

목운요는 바람에 흔들리는 연잎을 말없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사야, 무엇이 알고 싶으신 거예요?”

목운요 자신도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한들 영군월이 과연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다…….

한편 월왕은 이런 일로 그들의 사이를 시험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를 떠나, 모두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아,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맞느냐?”

월왕은 대답을 기다리며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럼요.”

목운요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됐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영군월인 건 사실이었다.

월왕은 기쁨을 주체 못 하고 그녀를 돌려세운 뒤 번쩍 안아 들었다.

자신을 속인 것에 화가 나 있던 목운요는 그토록 환하게 웃는 월왕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하지만 일부러 화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 내려 줘요!”

월왕은 당황해하며 조심스레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요아, 일부러 널 속이려던 것이 아니라, 혹여라도 내가 영군진을 죽였다는 걸 알면 네가 화낼까 봐 말 못 한 것이다.”

“제가 왜 화를 내요?”

목운요는 통 이해가 안 갔다.

“사야가 아니었다면 며칠 뒤 유구를 시켜 죽일 생각이었어요.”

월왕이 멈칫했다.

“영군진을 그토록 미워했던 이유가 그자가 네 마음을 저버려서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월왕의 말도 안 되는 추측에 목운요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해명하기도 귀찮아 뒤로 돌았다.

“사야, 누가 옆에 있으면 잠을 못 잘 것 같으니 당분간 사야께선 다른 곳에서 주무시죠.”

“요아……!”

월왕은 그제야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지른 걸 깨닫고 목운요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속여서 미안하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

“사야께서 마음이 정리되는 날이면 제 불면증도 나아질 거예요.”

* * *

그 후로 며칠 동안 성 공공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왕야와 왕비가 혼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별거 중이니, 어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을까.

우의도 한껏 예민해진 성 공공의 눈치를 살피느라 한쪽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가만히 있었다.

반면 우항은 고민에 빠진 성 공공을 보고 안쓰러움에 말을 건넸다.

“성 공공,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카락 그만 뜯으시죠. 왕야와 왕비 두 분 사이의 일은 저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닌걸요. 게다가 두 분 사이가 워낙 좋으셔서 하루 이틀 뒤면 금방 나아질지도 몰라요. 안 그런가요?”

“뭘 안다고 지껄여! 부부 싸움은 자고로 칼로 물 베기라지만, 그것도 종일 얼굴을 맞대야지, 같은 방을 쓰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심각하다는 거다! 오늘 아침 왕야 표정을 못 봤느냐? 한겨울의 얼음판같이 살벌하더군.”

“마침 오늘이 북강 사신들이 서릉에 도착하는 날이죠? 왕야께서 접대를 맡으셨는데, 그 표정을 보면 반쯤 겁에 질릴 것 같은데요? 잘된 일 아닙니까?”

듣다 못한 우의가 상황 파악 못 하는 우항을 세게 걷어찼다.

그 시각, 금란이 목운요의 머리에 꽂혀 있던 장신구를 걷어 내며 조심스레 물었다.

“왕비 마마, 오늘이 벌써 닷새째인데 언제까지 왕야를 혼자 두실 생각이신가요?”

목운요가 거울을 통해 금란을 힐끗 보았다.

“사야께서 뭐라고 했나 보죠?”

금란이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명령을 내리셨죠. 날마다 비 마마 앞에서 왕야 얘기를 꺼내면 언젠가는 마음이 약해져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사야께선 요즘 뭐 하면서 지내요?”

“요즘 아침 일찍 일어나 검술 연마를 마친 뒤, 비 마마 문 앞에 와서 한참을 서성이다 조회에 나가십니다. 돌아오셔선 가장 먼저 비 마마께서 식사하셨는지 확인하신 다음, 서재에 가서 일 보시다가 다시 마마의 점심 식사 안부를 물으시고…… 저녁에 다시 문 앞에 한참 계시다가 돌아가시곤 합니다…….”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루하루 알차게 잘 보내는군요.”

가만히 듣고 있던 금교도 한마디 보탰다.

“비 마마, 왕야께서 마마를 정말 금쪽같이 아끼고 계신걸요. 그러니 그만 용서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목운요가 웃으며 물었다.

“두 사람 말을 듣고 화를 풀면 사야께서 얼마 주시기로 했나요?”

그에 금교가 반달 웃음을 지은 채 다섯 손가락을 내밀며 대답했다.

“오십 냥이요!”

미처 말리지 못한 금란은 큰일 났다 싶어 손을 이마에 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에서 쫓겨나고 나서도 금교는 통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금란을 쳐다보았다.

“비 마마 표정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화가 풀리신 것 같았는데, 또 왜 이리 화를 내시는 걸까?”

금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래야 나중에 왕야께서 벌을 내리실 때 선처해 달라고 사정해 줄 사람이라도 있을 테니까.”

이에 금교가 다급히 입을 손으로 가리며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했다.

“오십 냥이란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었나 봐…….”

“그걸 이제야 안 거니?!”

* * *

아침 식사를 마친 목운요는 금란과 함께 창고로 향했다.

혼수들을 보관하기 위해 창고는 예전보다 두 배는 더 커졌고, 그 안에는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중에 내가 특별히 따로 두라고 한 상자가 두 개 있을 거예요.”

창고 정리를 도운 금란은 바로 기억을 떠올려 냈다.

“아! 그 상자들은 성 공공께서 저쪽에 따로 두셨습니다.”

상자 앞에 선 목운요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열어요.”

“네.”

커다란 상자에 비해, 안에는 물건이 많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칠현금이었다.

목운요는 칠현금을 품에 안고 그리움 가득한 표정으로 쓰다듬었다.

애초에 다도를 배우고 칠현금을 배운 이유가 영군진의 총애를 받기 위함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배움이 마냥 좋아지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만큼 더 깊이 갈고닦게 되었다.

그러나 회귀 후 그녀는 더 이상 칠현금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애초에 여유가 없었거니와 기예를 자랑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에 칠현금을 가르치던 선생이 그녀의 연주는 소리만 있을 뿐, 혼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 지적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목운요는 이참에 배움을 멈추고 칠현금을 멀리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월왕의 오해를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칠현금은 육냥이 얻어 온 것이었다.

양주성 소금세 사건 이후, 목운요는 소금 상인들의 사업을 꽤 많이 인수했다. 그중 진보루라는 곳이 있었는데, 경영할 사람이 없어 대부분의 물건은 팔아 버리고 귀중품인 이 칠현금만 따로 소장하게 되었다.

칠현금을 방으로 가져온 목운요는 금란 등을 전부 내보낸 뒤, 천천히 현을 캐기 시작했다. 봉황 울음소리처럼 맑고 은은한 소리는 듣는 사람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을 듯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줄 위에 올린 채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군진한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배우기까지 한 이상, 월왕이 듣고 싶다는데 못 들려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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