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404화 (404/442)

404화 하운방과 불선루를 넘기다

* * *

목운요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회귀 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두려움이 수시로 꿈에 나타났다.

환심을 사기 위해 매일매일 쉬지 않고 여러 가지를 배우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던 나날들…….

과거의 모든 순간이 마치 빽빽하게 짜인 거미줄처럼 그녀를 겹겹이 둘러싸 어둠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영군월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때마침 방문 앞에 도착한 월왕은 안에서 들려오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곧장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요아……!”

방 안은 촛불 하나만 켜져 있어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목운요는 침상에 누워 두 눈을 꼭 감은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월왕이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아, 악몽을 꾸었느냐?”

하나 목운요는 여전히 꿈속을 헤맸고, 눈가에선 연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마의 땀을 닦아 주려던 월왕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 보더니 놀라서 크게 외쳤다.

“여봐라!”

금란이 소리를 듣고 곧장 달려왔다.

“왕야, 부르셨습니까?”

“태의를 부르…… 아니다, 선령을 데려오거라!”

“네.”

목운요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빨리 깨어나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선령은 목운요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요 며칠 혹시 운요가 이상한 물건과 접촉한 적이 있나요?”

월왕이 기억을 더듬어 보며 대답했다.

“며칠 동안 요아가 간 곳이라곤 월왕부와 장공주부뿐일 텐데…….”

선령은 목운요에게 침을 놓고 약을 먹인 다음, 안색이 점차 나아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 진단이 맞다면 환각제를 복용한 것 같아요.”

“환각제?”

“네.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환각제예요. 독성이 강하지 않아 중독되어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증거 찾기도 쉽지 않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운요가 걸려들었으니, 혹시라도 수상한 물건을 접촉한 게 아닌지 물어본 거예요.”

월왕은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나마 수상했던 물건은 옥패인데, 그건 누가 잃어버린 걸 혜의 부인께서 습득하고 요아는 단지 그걸 돌려줬을 뿐이다.”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직접 보지 못했으니 선령도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독성이 강하지 않고 요아 의지도 강해, 깨어나기만 하면 별일 없을 거예요.”

“그럼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월왕이 걱정스레 물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면 과거에 얽매여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할 수도 있어요.”

선령 또한 이런 방법으로 원수를 괴롭힌 적이 있다 보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월왕은 가슴속 한구석이 차갑게 식어 갔다.

“그렇군. 오늘 신세 졌네.”

“운요를 잘 돌봐 주세요.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어떻게 중독된 건지 알아내는 게 좋겠어요.”

“그래.”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령을 보낸 뒤, 그는 밤새 목운요의 곁을 지켰다.

“사야?”

겨우 정신이 든 목운요는 전날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월왕을 보고 의아해했다.

“밤새고 지금 돌아오신 거예요?”

“돌아온 지 꽤 됐다. 네 곁을 지키고 있었단다.”

걱정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월왕에 목운요는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어젯밤 밤새 악몽을 꿨는데, 아무리 깨어나려 애써도 눈이 떠지질 않더라고요.”

신분도 되찾고 복수를 했는데도 자꾸 과거가 생각나는 게 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선령이 와서 살펴보았는데, 환각제 때문이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계속 악몽을 꾼 건지도 몰라…….”

“그렇군요.”

목운요는 생각이 많아졌다.

“전혀 눈치 못 챌 정도의 환각제라니, 방심했네요.”

“요아, 혹시 의심 가는 게 있느냐?”

그녀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진 말고, 앞으로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자.”

“네. 그나저나 한재 때문에 입궁했다고 들었는데, 상황은 어떤가요?”

“……사람을 보내 조사를 시작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월왕은 잠깐 머뭇거리다 결국 영군진을 죽인 사실을 숨겼다.

목운요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야, 어서 조회하러 가세요. 전 괜찮으니 걱정 말고요.”

월왕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당부했다.

“알겠다. 뭘 좀 먹거라.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고.”

“그래요.”

이내 월왕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그의 신발을 본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한참 뒤, 점심을 먹고 차를 우리고 있는데 금교가 다급히 달려와 알렸다.

“왕비 마마, 방금 전해진 소식인데 영군진이 급사했다고 합니다.”

차를 따르던 목운요의 손이 멈칫했다.

“알겠어요.”

* * *

월왕이 올린 상주서는 조정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운방과 불선루는 조정 관원들도 눈독을 들이는 큰 사업이었다. 그들의 매달 지출 중 하운방과 불선루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왕과 월왕비가 스스로 두 돈줄을 조정에 내놓겠다고 하다니.

월왕의 상주서를 본 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큰 상을 내렸다. 월왕이 친왕만 아니었더라면 당장 작위를 높였을지도 모른다.

관원들은 벌써부터 서로를 떠보며 눈치 싸움을 시작했다.

하운방과 불선루 두 돈줄이 황제의 손안에 들어왔으니, 누구든 간에 이 두 곳을 맡기만 하면 횡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건, 황제는 이미 중임을 맡길 사람을 정해 둔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조운년이었다.

이에 대해 관원들은 할 말이 없어졌다.

조운년은 월왕비의 의부이고, 또 조정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 그의 승승장구는 뭇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황제의 성정을 보아서나, 월왕과의 사이를 생각해서나, 하운방과 불선루는 조운년이 맡는 게 적임이었다.

결국 그날 오후에 바로 어명이 내려졌고, 조부는 축제 분위기에 들끓었다.

금 부인은 그날 바로 목운요를 만나러 월왕부로 찾아갔다.

그동안 왕래가 적어지긴 했어도, 한 번도 연락이 끊긴 적은 없었다. 명절 때마다 선물이 오갔고, 평소에 좋은 먹거리가 생기면 꼭 서로 챙겨 주기 일쑤였다.

자주 만난다고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가끔 보더라도 진심으로 이어 온 관계라면 언제 봐도 어제 본 것처럼 친근한 법이었다.

“의모님, 예를 거두세요.”

목운요가 인사 올리는 금 부인을 만류했다.

“요아, 안 본 사이에 많이 야위었구나.”

금 부인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이리저리 살폈다.

“겉보기에만 야위어 보일 뿐이지, 예전에 비하면 엄청 튼튼해진걸요.”

“여인은 자고로 연약해야 사랑을 많이 받는 법인데, 네 아우처럼 너무 튼튼해도 곤란하단다.”

“질문 아우는 이제 막 개구쟁이 두 살 때라, 시간이 지나 철이 들면 오히려 지금이 그리워질지도 몰라요.”

“그러게. 아이들이 참 빨리 크기도 하지. 너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열세 살 꼬마 아가씨였는데. 그러고 보니 하늘이 참 불공평하구나.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뛰어난 재주까지 줬으니 말이다. 그런 너를 수양딸로 삼은 나도 참 운이 좋았지. 예나 지금이나 운요 덕을 참 많이 보는구나.”

“저희 덕이 아니라 의부님께서 능력이 있으신 겁니다. 폐하께서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으셨지만, 선황제를 많이 닮으셨어요. 특히 사람을 아주 잘 보시죠. 의부님 능력이 출중하시기 때문에 폐하의 신임을 얻으신 거예요.”

금 부인은 목운요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금세 걱정을 내비쳤다.

“요아, 네가 심혈을 기울여 일구어 낸 하운방과 불선루를 네 의부가 맡게 되었는데, 참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구나. 폐하의 신임을 받아 백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어서 참 기쁘지만, 혹여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너에게까지 피해를 줄까 두려운 마음이란다.”

“의부님께선 경릉성에 계실 때부터 백성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해내어 지금도 칭송받고 계신걸요.”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구나. 요아, 내 성격을 잘 알 테니 시간 끌지 않고 오늘 찾아온 이유를 말하마. 첫째는 너에게 약조하기 위해서다. 하운방과 불선루가 네 의부의 손에 맡겨진 이상, 절대로 두 가게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잘 운영할 것을 맹세한다. 둘째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 좋을지 네 조언을 구하고 싶구나.”

금 부인의 말이 목운요는 내심 반가웠다.

아무래도 자식과도 같이 애지중지 키워 왔던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곳 모두 탈 없이 잘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의모님, 저도 여인이다 보니 조정 대사에는 까막눈이에요. 애초에 하운방과 불선루를 운영하기 시작한 계기도 어머니와의 안식처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모든 일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튼튼한 기본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배짱이 생기지 않을까요?”

“기본이라…….”

금 부인은 속으로 두 글자를 곰곰이 곱씹었다.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목운요의 대답을 그대로 조운년에게 전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내 금 부인은 목운요와 속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쉬지 않고 떠드는 사이에 한 시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은홍이 조심스레 시간을 귀띔해 주자 금 부인도 그제야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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