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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95화 (395/442)

395화 상황 역전

혁련이락은 깜짝 놀라 소리 지르며 곽경주의 뒤로 숨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죠?”

진왕도 다급히 소리쳤다.

“순율!”

순율은 얼른 정신을 차리며 주위에 명을 내렸다.

“여봐라……! 진왕 전하를 보호…….”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간이 따끔하더니 그가 피범벅이 된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포박에서 벗어난 월왕이 이마에 표창이 꽂힌 채 쓰러진 순율을 보며 말했다.

“반역자는 죽어 마땅하다.”

순간 두려움이 진왕의 온몸을 파고들었다.

월왕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뒤돌아 포박당한 목운요를 구했다.

“요아, 괜찮느냐?”

“전 괜찮아요.”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월왕은 그녀의 턱에 남은 시퍼런 멍 자국을 보며 매서운 눈빛을 했다.

“오늘 당한 서러움은 모두 대갚음해 주마!”

곽경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병사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다 죽여라! 뭣들 있는 것이냐, 당장 영군월 저자들을 죽여라!”

병사들이 하나둘씩 움직이자, 진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율이 데려온 병사 이만 명이 장원을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기에, 저들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아마 살아서 빠져나가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병사들의 무기가 하나같이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너희들…… 지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진왕은 순간 당황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순율의 명을 따르던 자들이 왜 갑자기 자신을 겨냥하고 있단 말인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진왕이 잔뜩 당황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저들이 대체 왜…….”

그때, 빠르게 다가온 월왕이 진왕의 가슴팍을 발로 힘껏 찼다. 그대로 바닥에 넘어진 진왕은 몇 바퀴 구른 뒤 멈췄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 뒤로 죽을 듯한 고통이 밀려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가슴 쪽에 또 한 번의 충격이 전해져 그가 피를 토해 냈다.

그 모습을 보던 곽경주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그들의 계획이 처음부터 유왕과 월왕에게 탄로 난 모양이었다. 지금까지의 상황도 어쩌면 일부러 만들어 놓은 덫일지도 몰랐다.

그제야 모든 게 어긋났음을 깨달은 곽경주가 허리춤에서 독침 하나를 꺼내 들고 바로 앞에 있는 월왕을 덮쳤다.

하지만 월왕은 잽싸게 몸을 피하더니, 발끝으로 돌덩이 하나를 들어 올려 곽경주의 이마에 명중시켰다.

곽경주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자 유왕이 발로 그의 목덜미를 힘껏 밟았다.

“곽경주……! 곽씨 가문이 참 대단하군!”

때마침 우항과 우의가 중년 남자 한 명을 검거해 왔다.

“왕야, 곽오를 잡았습니다.”

유왕이 너무 세게 밟은 나머지, 곽경주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를 본 월왕이 나서서 말렸다.

“형님, 이런 인간 때문에 손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그에 유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화를 억누른 뒤 명을 내렸다.

“이번 반역에 가담한 모든 자를 가두거라. 영군진, 혁련이락, 곽오와 곽경주는 따로 가둬 두거라!”

정신이 돌아온 진왕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쓰러진 황제를 바라보았다.

“부황, 영군유와 영군월이 조정을 휘어잡으려 하는데…… 보고만 계실 겁니까?”

그때- 느릿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주변 사람들이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안타까운 표정을 한 황제가 눈앞에 서 있었다.

“부황……? 그럼 저 사람은…….”

눈앞의 사람이 황제라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황제’가 인피면구를 벗어 냈다. 그러자 처음 보는 젊은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용포를 벗어 던진 뒤 월왕의 뒤에 가서 공손히 섰다.

“부황……. 설마…….”

사실 황제는 이미 진왕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천천히 진왕에게로 다가가 손으로 그의 입가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아 주었다.

“……군진, 너한테 남은 건 실망뿐이구나.”

영군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부황……. 소자는 단 한 번도…… 부황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단지 부황의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황제가 무릎을 짚고 천천히 일어서며 뒤로 돌아섰다.

“군유, 네가 알아서 처리하거라.”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유왕은 고개를 숙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부황이 마음이 약해져 쉽게 처벌을 내리지 못할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역에 가담한 자들이 하나둘씩 잡혀가고, 목운요는 황제의 상태를 확인하러 그의 뒤를 따랐다.

* * *

노쇠한 황제가 탁자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목운요는 안쓰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 올렸다.

“운요,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어서 오너라.”

“맥을 짚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건넨 뒤, 또다시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있었다.

맥을 짚어 보던 목운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제의 건강 상태가 더 악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왕이 조정을 돌보는 동안, 꾸준한 요양을 한 덕분에 황제의 건강은 어느 정도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일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또다시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이었다.

“폐하, 외할머니께서 이번에 무사히 돌아오시면 직접 만든 안주로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셨어요.”

황제의 얼굴이 걱정으로 가득 찼다.

“누님은 무사하느냐?”

“염려 마십시오, 폐하. 외할머니께선 미리 궁을 빠져나가셨습니다. 진왕과 곽경주가 잡은 사람은 변장한 시위들입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황제가 시퍼렇게 멍이 든 목운요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운요는 눈매뿐만이 아니라 성격도 누님 젊었을 때와 똑같아. 아주 기특하구나.”

“외할머니를 닮을 수 있어서 저도 기쁩니다. 앞으로 배울 게 더 많은걸요.”

황제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요아, 그동안 너희 모녀가 참 많은 고생을 겪었겠지만, 누님도 그동안 너희 생각에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지내 왔었다…….”

목운요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폐하, 저도 이해합니다. 이런 슬픈 얘기 그만하시고 약 드시기 전에 뭐라도 좀 드시지요…….”

“필요 없다.”

황제가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그와 함께 눈빛도 점점 흐려져 갔다.

“요아, 넌 똑똑한 아이고 의술에 능통하니, 짐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 테지.”

“폐하…….”

목운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모습을 보자, 권력을 위해 자신의 친부마저 버린 진왕에 대한 증오가 더욱 거세졌다.

“생로병사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이지 않느냐. 슬퍼할 거 없다.”

황제의 표정은 어느새 평온해져 있었다.

“요아, 네 외할머니를 잘 돌봐야 한다. 그리고 군월도 잘 부탁한다. 짐이 진 빚을 어떻게든 갚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그래도 네가 곁에 있어서 한시름 놓이는구나.”

“제가 아무리 잘해 준다 한들, 폐하의 사랑을 대신할 순 없습니다. 앞으로 제대로 효도할 기회를 주셔야죠…….”

그때, 황제가 탁자에 푹 쓰러졌다. 목운요는 놀라서 크게 외쳤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당장 어의를 불러라!”

현장을 정리 중이던 유왕은 갑작스런 소식에 모든 걸 제쳐 놓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운요, 상황이 어떠하느냐.”

목운요가 눈물을 훔치면서도 은침 장비를 다루며 대답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약재가 부족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황제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듯 이마에는 식은땀이 계속해서 맺혔다.

유왕이 다가와 살피더니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넷째 아우가 먼저 서릉에 가서 남은 역적들을 청산하고 있을 테니, 지금 돌아가도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돌아갈 채비를 할 테니, 부디…… 부황께서 무사하실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게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서릉 거리는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썰렁했다. 백성들은 저마다 문을 꼭 닫은 채 전전긍긍하며 바깥 동태를 살폈다.

황궁에서 불빛이 보이더니 싸움이라도 난 듯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황제가 춘경 대전을 위해 궁을 비운 틈에 이런 사달이 나다니, 백성들은 불길한 마음을 안고 황제의 무사 귀환을 빌고 또 빌었다.

두 시진 뒤, 엄청난 수의 말발굽 소리가 서릉 전체에 울려 퍼지더니 무장한 병사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문틈으로 밖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혼비백산 상태가 되었다.

황궁에선 다시 교전 소리가 들려왔고, 약 반 시진 정도 지속되다가 점차 잦아들었다.

황궁 내, 땅굴 입구에 선 월왕이 미간을 힘껏 찌푸렸다.

그 앞에서 우항 일행이 아뢰었다.

“전하, 땅굴이 궁 밖까지 이어져 있고 그중 주요 통로는 이부와 연결돼 있습니다.”

“우항은 궁 안에 있을 법한 모든 땅굴을 찾아내거라. 우의는 반역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시체를 정리하거라.”

월왕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냉랭했다.

한 나라의 승상이란 자가 그동안 벌레처럼 대력조를 파먹고 있었다니,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때, 한 시위가 빠르게 달려와 입을 열었다.

“왕야, 폐하께서 위독하시어 지금 궁으로 돌아오시는 중이라고 합니다. 왕비께서 빨리 장공주 전하를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부황께서 위독하시다니…….”

월왕은 갑작스런 소식에 목이 메어 왔다. 빨리 장공주를 모셔 오라고 하는 건 그만큼 위급하다는 뜻이리라…….

“알겠다. 우항, 명을 어기고 함부로 움직이는 자는 신분을 막론하고 전부 죽여라!”

“예!”

월왕이 곧장 시위들을 데리고 보화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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