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90화 (390/442)

390화 친정 방문

“그럼 북강과 진왕이 손을 잡은 건가요?”

“그래.”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냥, 당분간 푹 쉬면서 그때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보고, 뭔가 생각나는 게 있거든 유구한테 전하거라. 난 유왕 전하께 가 봐야겠다.”

“예.”

목운요가 떠난 뒤, 유구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육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직 쓸 만하군.”

육냥이 고개를 들어 유구를 응시했다.

“당신, 무공이 뛰어난 편이지?”

“그때 직접 보았을 텐데?”

그날 유구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소식을 전했다. 그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증거였다.

육냥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팔다리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번 부상이 심각해, 회복되더라도 예전 같지 않을 거야. 주인님을 부탁한다.”

“부상은 걱정 마라. 그림자 호위 특훈을 마치면 한층 더 강해져서 주인님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다.”

“아니, 그림자 호위들이 있다면 주인님도 안전하시겠지.”

육냥의 목소리는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유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어떻게 하면 주인님께 도움이 될까 생각 중이다.”

“허튼짓할 생각 마. 넌 지금 육냥일 뿐만 아니라 북강의 왕자 신분이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북강에서 필히 꼬투리를 잡아 주인님을 귀찮게 할 거다.”

하지만 육냥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유구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몰래 사람을 시켜 육냥을 지켜보게 했다.

* * *

목운요는 대청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유왕과 월왕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왕 전하와 사야를 뵙습니다.”

“제수씨, 오늘 방화를 돌보느라 수고 많았네.”

유왕은 유왕부에 들러 민방화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목운요가 따뜻한 위로와 함께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고 갔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월왕도 목운요의 담담한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그가 유왕을 바라보았다.

“형님, 부황께서 군사 지휘권을 형님께 넘겼으니, 이제 이씨 가문을 뿌리째 뽑을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다음 계획이 있으신가요?”

사실 그는 이씨 가문이 북강과 결탁한 증거를 부황께 올려, 이를 빌미로 이씨 가문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군사권이 유왕의 손에 넘어갔으니, 마음만 먹으면 이씨 가문을 서릉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유왕의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했다.

“아우, 당분간은 이씨 가문을 그대로 놔둘 생각이야.”

“따로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씨 가문과 북강 사이에 연이 있기 때문에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 이씨 가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과도 같아 하루빨리 제거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보다도 싹까지 완전히 잘라 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럼 제가 도움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군사 지휘권이 내 손에 맡겨졌지만, 조정의 일과 병행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니 넷째 아우가 군사들을 맡아 서릉을 지켜 줬으면 한다.”

목운요는 순간 회귀 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월왕이 서릉을 지키는 일을 맡았었는데, 이번 생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월왕은 그 제안을 의연히 받아들였다.

“형님, 염려 마십시오. 서릉을 안전하게 지켜 내겠습니다.”

“그래. 진왕이 각지의 장수들을 포섭하기 시작했고 북강에서도 움직임이 시작됐으니,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전까진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 * *

황제의 상태까지 살펴보고 월왕부로 돌아온 목운요는 침상에 기대 낮에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그때, 월왕이 옆에 앉더니 그녀의 다리를 잡고 부드럽게 누르기 시작했다.

“요아, 요 며칠 많이 힘들었지?”

목운요는 얼굴이 빨개지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사야, 지금…….”

하지만 월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바삐 돌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껴 줘야 할 사람이 아내라 했던 성 공공의 조언이 문득 생각났다.

목운요와 혼례를 치렀고, 또 고모님 앞에서 평생 그녀에게 잘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앞으로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야께서도 힘드실 텐데, 여기 누워서 같이 쉬어요.”

월왕은 목운요의 다리를 한참 더 주무르다, 침상에 옆으로 누워 그녀를 품에 안았다.

마침 식사를 들고 오던 성 공공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란 나머지, 재빨리 음식을 내려놓았다.

“왕야, 왕비, 식기 전에 얼른 드십시오.”

목운요는 인기척을 듣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월왕이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방문이 닫히자 월왕은 그녀를 자신의 몸 위에 올려 두었다.

“요아, 어서 식사하자.”

목운요는 손바닥을 월왕의 가슴 위에 얹으며 점점 빨라지는 그의 심장 소리를 느꼈다.

“사야,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있어요.”

그가 그녀의 작고 고운 손을 잡고 장난스레 입으로 무는 시늉을 했다.

“요아, 풍습대로라면 내일 친정에 인사드리러 가는 날인데, 정작 우린 아직 첫날밤도 못 치렀구나.”

순간 얼굴이 빨개진 목운요가 잽싸게 그의 품에서 벗어나 식탁 옆으로 도망갔다.

“사야, 음식이 식기 전에 얼른 식사합시다.”

월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달아오르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 * *

불선루에서 오는 소식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며칠 동안 낮 기온이 오르긴 했지만 밤에는 여전히 한기가 돌았다.

월왕은 목운요의 손을 잡아 입김을 불며 따뜻하게 데워 줬다. 많지 않은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불선루도 예전만큼 소식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듯하구나. 아무래도 그림자 호위에 기대를 걸어야 할 듯싶다.”

목운요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희가 혼인함으로써 관원들도 불선루에 가는 걸 꺼리겠죠.”

“그러게나 말이다. 그보다 흑룡성에서 철광산 몇 군데가 다시 착공을 시작했다는구나. 몰래 사람들을 대비시켜 뒀으니, 이제 이씨 가문을 일망타진하기만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목운요는 문득 육냥한테서 들은 게 생각나, 유왕비 납치 사건에 진왕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건넸다.

“네 추측이 맞다. 오늘 진왕이 북강 공주와 혼인하겠다며 상서를 올렸단다.”

“폐하께서 허락하셨나요?”

“그래.”

목운요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폐하께서도 분명 진왕과 북강이 연합했음을 아실 텐데, 왜 허락하신 거죠?”

“부황의 옥체가 예전 같지 않다 보니, 둘째 형님을 도와 조정 형세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신 듯하구나.”

“그 말인즉, 폐하께서 진왕도 포기하실 거란 말인가요?”

목운요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네 명밖에 없는 성인 황자들 중 두 명의 손을 놓아야 하다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월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북강이 공공연히 야심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진왕이 북강 공주와의 혼인을 자처하니, 부황께서 크게 실망하신 거지. 부황에게 있어 자식들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대력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으셨을 거다. 다만 앞으로는 조정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무거운 얘기가 오가자 몸이 더욱 피곤한 느낌이었다.

결국 목운요는 온기 가득한 월왕의 품에 기댄 채 잠이 들어 버렸다.

월왕은 달빛에 비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그를 가슴 뛰게 했다.

그는 타오르는 초조함을 긴 한숨으로 억누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잠이 들었다.

* * *

이튿날, 목운요는 관례대로 첫 친정 나들이에 나섰다.

허연한은 안색이 좋아 보이는 목운요를 보고 나서야 한시름이 놓였다.

“요아, 군월이 잘해 주니?”

“그럼요, 어머니. 얼마나 잘해 주는지 몰라요.”

“그럼 됐다.”

그녀는 여전히 해맑기만 한 목운요를 보며,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요아, 군월과는 아직 첫날밤을 치르지 않은 것이지?”

목운요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

“저희 둘 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래, 말 안 해도 알 것 같구나. 그나저나 유왕비와 육냥은 좀 어떠하느냐?”

“형님께서는 유왕 전하의 보살핌 덕에 잘 회복하고 계십니다. 다만 육냥은 부상이 심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해요.”

“요아, 이 어미가 보기에 육냥이 너한테 딴마음이 있는 것 같더구나. 혹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느냐?”

목운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 마음 앞에서 우유부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지만, 육냥이 지금 부상 중이다 보니 차마 단호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시간이 지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 시간을 좀 더 가져 보려무나.”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허연한이 직접 만든 약밥을 가져왔다.

골치 아픈 일들은 뒷전으로 하고 기분 좋게 수저를 드는데, 때마침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월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월왕이 안으로 들어서며 허연한을 향해 인사 올렸다.

“장모님을 뵙습니다.”

“군월, 굳이 호칭을 고칠 필요는 없다. 어머니 말씀대로 각자 편한 호칭으로 부르면 된다.”

그에 월왕은 작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닙니다. 장모님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요아도 기뻐할 겁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월왕이 사촌 누이라 부른다면 그게 더 불편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사금, 식기를 더 내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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