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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82화 (382/442)

382화 어마어마한 혼수

관원은 백성들에게 둘러싸인 채 어쩔 바를 몰라 했다.

“그게 아니라…… 너무 낭비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리는 것이다.”

“저희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손들한테 군주께 혼수를 보태 드렸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백성들 모두 들끓기 시작했고, 군주 혼수 보태기로 서릉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경릉성 백성들도 자기들끼리 배를 얻어다가 축하 선물을 서릉 부두까지 보냈다.

선물이 빼곡히 담긴 배 네 척을 본 사공들은 혀를 찼다. 한겨울이라 강 위에 얼음이 떠다녀 항로가 순탄치 않을 텐데, 이 정도로 배를 가득 채워서 띄우다니. 어지간히 간이 크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릉 백성들은 물론이고 경릉성 백성들까지 일을 벌였다는 소식에 황제는 어지간히 당황했다. 선물 목록에는 별의별 것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아기 옷 선물까지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걸 운요한테 보내 주거라. 전부 백성들의 마음이니 운요가 직접 받음으로써 감사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길 바라는구나.”

목록을 전달받은 목운요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이내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한 일일 뿐인데 백성들이 이토록 감사히 여겨 주다니, 정말 부끄럽네요.”

목운요의 표정이 무거워진 것을 보고 장공주가 입을 열었다.

“백성들은 너의 착한 마음씨에 보답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 마음에 걸린다면 앞으로 그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면 되지. 그러면 작은 불씨들이 점차 자양분을 얻어 계속 타오를 수 있을 것이다.”

목운요가 큰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외할머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어요.”

“그래. 운요가 잘 해내리라 믿는다.”

그녀는 가장 먼저 하운방, 불선루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선물 중 오래 둘 수 없는 식자재들을 서릉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경릉성에는 은자 이십만 냥을 보내 도로 공사 등에 쓰도록 하고, 나머지로는 잔치를 열게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백성들은 기뻐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일이 얼추 마무리되자, 목운요는 다시금 단장을 시작했다. 혼례복을 입고 머리를 빗는 내내 마마들은 끊임없이 덕담을 이어 갔다.

“빗질 한 번에 부귀영화 끊이질 않고, 빗질 두 번에 지병 걱정이 사라지고, 빗질 세 번에 다복다손하고, 빗질 네 번에 부부가 서로 공경하고, 빗질 다섯 번에 원앙새 부럽지 않고, 빗질 여섯 번에 영원히 한마음이어라.”

허연한은 머리를 올린 목운요를 보며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핏덩이였던 어린 딸이 어느새 예쁜 처녀로 자라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벅차올랐다.

“요아…….”

장공주도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한 채 못내 한숨을 내쉬었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에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를 돌았다.

“외할머니, 어머니. 함께 기뻐해 주셔야죠.”

허연한이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그래, 요아 말대로 기쁜 일이지.”

장공주는 목운요의 머리에 꽂힌 봉황 비녀를 어루만지며 자상한 눈빛으로 말했다.

“요아, 어서 단장하거라. 우리도 너무 기쁜 나머지 이러는 거란다.”

사실 목운요도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장공주마저 눈시울을 붉히자 더 이상의 감성적인 말은 아껴 두기로 했다.

그때, 금란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뢰었다.

“장공주 전하, 부인, 군주. 혼수가 실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장공주가 흐뭇해하며 끄덕였다.

“서두르라고 하거라. 요아 혼수가 워낙 많아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되느니라.”

“네.”

* * *

도로 양쪽에 빼곡히 몰린 백성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혼수가 실려 나온다!”

시위들이 용봉 무늬가 그려진 상자를 들고나오자, 이를 본 백성들이 작은 소리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들었어? 혼수 상자마저 전부 장공주 전하께서 특별히 맞춤 제작한 거래.”

“당연히 들었지. 기존 상자가 너무 작아서 그랬다던데?”

“대체 혼수를 얼마나 많이 해 가는 거지?”

“이제부터 세어 봐야지.”

구경꾼들의 표정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온한 군주의 혼사는 근래 서릉의 가장 큰 행사가 되어 버렸다. 가까이에서 구경한 것만으로도 몇 년 동안 자랑할 만한 일이니 정신 똑바로 뜨고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러 세가의 아가씨와 공자들도 구경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혼수 행렬에 여인들은 샘이 잔뜩 났다.

시댁에서의 설 자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혼수였다. 혼수가 두둑할수록 신부도 허리를 더 꼿꼿이 펼 수 있는 법이었다. 한데 온한 군주의 혼수 규모로 봐서는 황후 마마도 못 따라갈 정도였다.

눈에 불을 켜고 상자 개수를 세던 백성들도 결국 포기했다. 장신구와 비단만 해도 삼십 상자가 넘었고, 가옥과 토지를 대표하는 기왓장만 해도 몇 상자나 됐다.

미리 소식을 들은 어떤 사람이 말했다.

“듣기론, 황제 폐하께서 황실 장원 중 한 군데를 온한 군주께 선물로 주셨대.”

“황실 장원이라면 적어도 몇천 경 규모는 될 텐데, 황제께서 온한 군주를 정말 많이 아끼시나 보네.”

“황실 장원을 왜 군주한테 준지 알아?”

“왜?”

“그건 황제께서 온한 군주한테 주는 지분(脂粉) 토지거든.”

지분 토지는, 토지의 작황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여인의 연지와 분을 산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적잖게 놀랐다.

“몇천 경이나 되는 토지의 작황이라면 한평생 쓰고도 남을 연지와 분일 텐데…….”

* * *

한편, 월왕부에서 성 공공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평소에 텅 비어 보이기만 했던 월왕부가 어느새 발 디딜 틈조차 없이 혼수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우항이 나서서 혼수 둘 자리를 살펴보다가, 창고 두 군데가 차고 넘치자 어쩔 수 없이 다른 비어 있는 방으로 보냈다. 하나 결국 빈방도 자리가 없어 다급히 성 공공을 찾아갔다.

“성 공공, 창고와 방들이 꽉 차서 더 이상 둘 곳이 없습니다…….”

“아직 얼마나 더 들어와야 하느냐?”

“사오십 상자가 남았다네요.”

“일단 연무장으로 보내거라. 그리고 시위들을 시켜 왕비 마마의 혼수들을 잘 지키라고 하거라. 동전 하나라도 빠지면 혼날 줄 알거라.”

“예.”

장공주는 외손녀를 위해 자신의 창고를 거의 비우다시피 했다. 뿐만 아니라 황제와 제 귀비를 시작으로 다른 비빈들도 너도나도 두둑한 선물을 보내왔다. 그 외에도 각 지역의 선물까지 더해지니 월왕부를 통째로 삼켜 버릴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성 공공이 혼수들을 배치하기 무섭게, 또 사람들이 들어와서 재촉했다.

“성 공공, 경릉성에서 보내온 선물들도 옮겨야 하니 빨리 자리를 비워 두십시오.”

혼수를 들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곧 길시라 신부를 맞이하러 가야 한다는 말에 성 공공은 우의를 잡아다가 당부했다.

“차질 없이 물건을 잘 받아 놓거라. 난 왕야와 함께 신부 맞이하러 다녀오마.”

그에 우의가 방금 갈아입은 옷을 매만지며 말했다.

“성 공공,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새 옷까지 갈아입은걸요. 이대로 묵혀 두긴 너무 아쉽잖아요.”

“난 팔 년 전부터 오늘을 위해 옷을 미리 만들어 놓았는데, 과연 누가 더 아쉬움이 클까?”

우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팔 년 전이라면 왕야가 몇 살 때인 거죠?”

“왕야께서 올해 스물셋이시니, 팔 년 전이면 몇 살이었을까?”

우의가 우물쭈물하자 성 공공이 경멸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머리로 왕비 마마를 맞으러 가겠다니, 얼마나 큰 웃음거리가 되려고 그러느냐?”

눈앞에 산처럼 쌓인 혼수 덕분에 성 공공 마음속에서 목운요의 지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재력 앞에 장사 없다는데, 이 많은 혼수와 왕야가 전에 그녀에게 진 빚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왕야는 평생을 부림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시각, 길복으로 환복한 월왕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이미 수차례 점검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찍이 도착해 있던 유왕은 그런 월왕의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아우, 너무 긴장하지 마라. 혼례는 그저 의례일 뿐이야.”

월왕은 괜히 주름 하나 없는 혼례복을 정리하며 웃음이 터진 유왕을 바라보았다.

“형님께서는 그날 신발을 거꾸로 신으셨습니다.”

“그럴 리가. 그건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 그만…….”

“두 다리는 부들부들 떨었고요.”

“그건 날이 너무 추워서 그런 거지…….”

“그때가 그해 가장 더웠던 칠월이었을 텐데…….”

“그게 아니라 혼례복이 워낙 무거워서 버틸 수가 있어야지…….”

“형님, 몸이 많이 허하신가 봅니다.”

“허하다니, 내가 얼마나 정력이 넘치는데……! 어험, 길시가 다 됐으니 어서 가 봐야겠구나.”

월왕은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만진 뒤, 말에 올라 황궁으로 향했다.

* * *

허연한이 마지막으로 목운요의 혼례복과 장신구들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요아, 길시가 됐구나. 시집가서 부군을 존경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하나 두 마디 만에 허연한은 목이 메어 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에 목운요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허연한의 품에 안겼다.

“어머니, 사흘 뒤에 뵈러 올 테니 약밥 만들어 주세요.”

목운요의 말에 허연한은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래. 엄청 많이 해 둘 테니 실컷 먹거라.”

시집보내긴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살고, 또 월왕이 절대로 딸아이를 고생시키지 않을 걸 알기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걸요.”

허연한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목운요는 이어서 장공주에게 인사를 올렸다.

“외할머니, 요아 오늘 시집갑니다.”

장공주가 손목에서 팔찌를 빼서 건넸다.

“이건 내가 혼례를 올릴 때 꼈던 팔찌다. 오늘부로 너에게 물려줄 테니, 군월과 둘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 아끼고 사랑하길 바란다.”

목운요가 기존의 팔찌를 빼고 장공주가 건넨 팔찌를 손목에 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외할머니.”

그때,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월왕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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