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74화 (374/442)

374화 희대의 미인

월왕은 그걸 손에 들고 유심히 살피다가 이마에 적힌 ‘왕’ 자를 보고 우항을 흘겨보았다.

“딱 봐도 호랑이구만.”

우항의 눈이 더 커졌다.

“왕야, 이건 누가 봐도 비휴잖아요! 어딜 봐서 호랑이죠?”

“누가 봐도 호랑이지 않나.”

월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우항은 아무리 뜯어봐도 호랑이를 닮은 구석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월왕은 변형된 호랑이 떡을 손바닥 위에 올리곤 입꼬리를 한껏 치켜올렸다.

“우항, 지난 한 해 동안 고생이 많았다. 그동안 우의는 강남과 월서를 왕복하느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둘이 형제이니 서로 더 이해하고 도와야지. 구정이 지나면 네가 우의 대신…….”

“왕야, 목 소저의 솜씨가 정말 대단하시네요. 호랑이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합니다!”

보통 호랑이가 아닌 게 분명했다!

월왕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그럼요. 한눈에 바로 느껴졌습니다.”

우항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월왕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참 동안 호랑이를 살피다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정전으로 향했다.

* * *

그날 저녁, 황궁은 명절 분위기로 들끓었다.

구정 연회이고 또 북강 공주도 참석하다 보니, 황제는 특별히 신하의 가족들도 참석할 수 있게 허락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자제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목운요는 장공주를 따라 정전으로 향했다.

이미 도착한 이들은 한창 설날 인사를 나누느라 시끌벅적했고 장내 분위기도 열기가 넘쳤다.

사람들이 일어서서 인사 올리려던 그때, 황제가 곧장 뒤따라 도착했다.

“누님, 함께 가시지 왜 먼저 오셨습니까?”

“황상께서 한 해 동안 수고하신 만큼 오늘은 조금이나마 늦으실 줄 알았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지런하시군요.”

황제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아닙니다, 누님.”

모두가 자리에 앉은 뒤, 목운요는 황자석에 앉은 월왕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북강 사신석에선 혁련이락 공주의 자리가 아직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지각한 공주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그때, 큰 소리가 울렸다.

“북강 공주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정전 입구 쪽으로 향했다.

여인에게 있어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용모였다. 과연 황자 여러 명을 농락하려는 이 북강 공주가 얼마나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을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궁금해했다.

기대에 찬 눈빛들 속에서 아름다운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북강 공주의 치맛자락은 눈에 띄게 찰랑거렸다. 여섯 겹의 원단이 몸에 착 감기며 치맛자락이 나부껴 단아함을 한껏 풍겼다. 언뜻 바람을 타고 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눈은 밤하늘처럼 까맣고, 입술은 빨간 앵두 같았으며, 피부는 우유처럼 하얗고 부드러웠다. 걸음걸음마다 은은한 향기를 남겼고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소우의보다도 한 수 위인 북강 공주의 미모에 목운요마저 감탄했다. 그토록 자신감 넘쳐 하는 이유는 역시 미모 때문이었다.

황자들과 엮이기 바쁘다는 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세가자제들도 공주를 본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기만 했다. 이렇게 빼어난 미모의 공주라면, 집에 모셔 놓고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일 것이리라.

한편 월왕의 머릿속은 온통 혼례 생각뿐이었다. 전에는 짧게 느껴졌던 보름이란 시간이 지금은 반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당장 내일이라도 바로 목운요를 월왕부로 들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북강 공주 혁련이락이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한마디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귀가 녹아내리고 가슴이 간질거렸다. 공주의 목소리는 꾀꼬리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샘물처럼 맑고 청아했다.

그 목소리는 시끄러움 속에서도 단번에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북강 공주, 예를 거두고 착석하시지요.”

목운요의 시선이 북강 공주에게서 떠나지 않는 걸 보고 월왕은 이마를 찌푸렸다.

그런 월왕의 표정을 살피던 진왕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넷째 아우, 북강 공주는 어떤 것 같나.”

“셋째 형님께서 마음이 있으시다면 제가 대신 부황께 전하지요.”

“마음만 받으마. 미인이긴 하지만, 내 마음을 훔칠 만큼은 아니거든.”

뒤이어 진왕이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최근 조정에서 아우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더군. 정말 한가한 황자로 살아가기로 한 건가?”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하는 여인과 부귀영화를 누리고, 조정 대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말이죠. 저는 셋째 형님처럼 큰 뜻이 없어서 소소한 행복에 만족합니다.”

진왕은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않았지만, 눈빛이 점점 깊어져 갔다. 월왕이 말하는 사랑하는 여인은 목운요를 가리키는 게 틀림없었다.

그가 목운요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비와 꽃무늬 자수가 수놓아진 옷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그녀를 보며 진왕은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북강 공주의 용모가 목운요보다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온통 목운요에게 가 있었다.

월왕과 마주 보고 있는 그녀의 두 눈에는 따스한 빛이 흘러넘쳤고, 마치 봄날에 핀 꽃봉오리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보호 욕구를 자극했다.

진왕은 미친 사람처럼 월왕의 존재를 애써 지우며, 그녀의 눈빛과 미소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상상했다. 그러자 가슴속이 용암처럼 들끓었다.

그때, 북강 공주가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폐하. 저는 이번에 중요한 사명을 안고 대력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은 통혼이고, 두 번째는 북강의 보물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북강과 대력조가 앞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더 이상의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공주의 말에 관원들의 얼굴에 희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북강과의 충돌은 끊임이 없었다. 불안정한 변경 때문에 매년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니 앞으로 양국이 우호 관계를 맺고 더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인 것이다.

“북강에 보물이 있다는 얘긴 처음 듣는군.”

황제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혁련이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에 혁련이락이 손바닥을 치자, 북강 사신이 옥합 하나를 가지고 올라왔다.

옥합을 열자 안에서 은은한 빛이 반짝였다.

“이 해명주(海明珠)는 밤에 빛을 낼 수 있는데, 야명주보다 천배는 더 귀한 보물입니다. 이걸 담근 물을 꾸준히 마실 경우 무병장수할 수 있습니다.”

“무병장수라?”

황제는 한결같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선물은 잘 받도록 하지. 그리고 북강이 더 이상 대력조의 변경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짐도 통혼 요청을 받아들이지.”

통혼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대력조에 있어서도 이득인 건 사실이었다.

황제의 무덤던한 반응에 혁련이락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 혹시 이 해명주의 효과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지금 바로 증명해 드리지요.”

“그걸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가 그제야 약간의 흥미를 보였다.

“예.”

혁련이락은 머리에 꽂은 비녀 하나를 뽑아 자신의 손에 대고 그었다. 그러자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북강 사신들은 곧바로 물에 해명주를 잠깐 담갔다가 그 물을 혁련이락의 손에 부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크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가 철철 나던 혁련이락의 손에서 피가 멈추더니 상처가 조금씩 낫기 시작한 것이다.

황제도 눈앞의 광경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혁련이락이 웃으며 답했다.

“폐하. 전 어려서부터 해명주를 담근 물을 마시면서 자랐습니다. 그 덕에 유난히 건강했고, 몸에 난 상처도 아주 빨리 회복되는 능력을 얻게 되었지요. 이 해명주는 저희의 소중한 보물로, 두 나라 간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기꺼이 드리는 것입니다.”

황제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이런 선물을 주지 않더라도 나라 간의 평화 유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을 것이오.”

이토록 귀한 보물을 쉽게 내줄 리 없었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

혁련이락이 인사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폐하.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대력조에서 역병 처방전을 손에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북강에도 그 처방전을 가르쳐 주길 바라는 바입니다.”

북강은 초원과 유목민이 많아, 역병이 퍼지는 이상 막대한 손해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북강에서 정말 처방전이 절실히 필요하다면 평화 유지 계약서를 쓴 후에 상의해 보겠소.”

혁련이락은 기뻐하며 해명주를 내시한테 건넸다.

그때, 혁련이락이 다급히 소매 안으로 손을 숨기는 모습과 궁녀가 바닥에 흘린 핏자국을 빠르게 지우는 모습이 목운요의 눈에 들어왔다.

장공주는 그런 목운요를 흘깃 보곤 웃으며 말했다.

“황상, 황자들이 선물을 준비했을 텐데 살펴보시지요.”

옥합에 든 해명주를 보려던 황제는 그 말에 시선을 황자들에게로 돌렸다.

“그래. 준비한 선물을 어디 한번 보자꾸나.”

릉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황. 소자가 준비한 선물은 워낙 특별해서 나중에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유왕이 이어서 일어섰다.

“부황. 소자는 새로 개발한 갑옷을 준비했습니다. 새로운 기술로 제작한 이 갑옷은 공정이 훨씬 수월하고 재료도 적게 드는 반면, 방어력은 그대로인 장점이 있습니다.”

황제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제대로 검증을 마친 것이냐?”

정말 유왕의 말대로라면, 대력조의 국력은 한층 강대해질 것이다.

“소자가 이미 여러 차례 검증을 거친 터라 자신 있습니다.”

사실 완성된 지 한참 됐지만, 일부러 북강 사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한 것이었다. 그들이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