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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66화 (366/442)

366화 꿈틀대는 야망

월왕의 장난 때문에 우려 둔 차는 벌써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목운요는 다시 우리는 대신 뜨거운 물을 부어 월왕한테 가져다줬다.

월왕은 그마저도 좋은지 해맑은 표정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 맛이 좋구나.”

그 모습에 목운요도 웃음이 터졌다.

“오늘은 조정에 안 나가도 되나요?”

“혼인으로 준비할 것들이 많아, 부황께 당분간은 안 나간다고 말씀드렸다.”

“폐하께서 어제도 외할머니께 하소연하시더군요. 사야께서 혼사를 앞두고 정사마저 돌보지 않는다고요.”

“정사는 어차피 둘째 형님이 하실 거니, 난 가끔 부황을 찾아가 말동무나 되어 드리면 된다.”

부황도 겉으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만, 실은 굉장히 흐뭇해한다는 걸 월왕은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북강의 사신은 어떻게 맞이하기로 했나요?”

“문관들이 지나칠 정도로 북강 사신에 우호적이긴 하나, 받아들여야 하는 점도 있거든. 북강이 어떤 목적으로 사신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진짜 속셈을 드러내기 전까진 환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부황께선 사신 영접에 관한 모든 일을 둘째 형님께 맡기셨다.”

“폐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군요. 유왕 전하께선 폐하의 어명이 있는 한 함부로 북강 사신을 건드리지 않을 테고, 한편으론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가장 발 빠르게 해결 가능하겠지요.”

“바로 그거지. 그런데 요아, 진왕과 북강 사신에 전할 서신은 어떻게 됐느냐?”

“어제 보냈어요. 진왕은 이미 받았을지도 몰라요.”

* * *

진왕부 내.

서신을 손에 쥔 영군진이 심복에게 물었다.

“뭘 좀 알아냈느냐?”

아침에 일어났더니 머리맡에 서신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신을 확인한 진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북강에서 온 서신에는 자신들이 무기와 군마를 제공할 테니, 반역을 계획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신 마지막에 북강 왕족의 인감이 찍혀 있지 않았더라면, 장난이라 치부하고 서신을 찢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심복이 위축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직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신을 전달한 걸 보면 내공이 심상치 않을 것이다.”

“전하, 당장 서신을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진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북강 사신이 도착하기 전까진 남겨 두는 것이 좋겠다. 추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예.”

영군진은 다시 한번 서신을 읽어 보다가 무기와 군마에 눈길이 쏠렸다.

“북강 기병들의 전투력이 뛰어난 건 다 군마 덕분이라지?”

“예. 훌륭한 군마 한 필을 키우는 것이 장교 한 명을 훈련시키는 노고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군진은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흥, 이런 속 보이는 계략으로 날 속이려 들다니. 그들이 정말 충분한 군마와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진작 대력조를 공격했겠지, 고작 나 같은 황자와 거래하려 했을까?”

엿새 뒤, 영군진의 인감이 찍힌 서신 한 통이 북강 사절 앞에 도착했다.

임시 주둔지 내, 북강 호족(胡族) 차림을 한 남자가 서신을 읽더니 두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셋째 황자라……. 눈이 멀고 불구까지 된 주제에 감히 우리의 무기와 군마를 요구하다니,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 여봐라. 하루빨리 대력조 서릉에 도착할 수 있게 서두르도록 하거라.”

“예.”

* * *

혼례복의 봉황 꼬리 자수를 완성한 목운요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채의와 사람들은 혼례복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소저, 이렇게 예쁜 옷은 처음 봅니다.”

“괜히 저도 시집가고 싶어지는걸요.”

그에 목운요는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소개시켜 줄 테니 잘 골라 봐요.”

하운방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그때, 금란이 얼굴이 붉어진 채로 들어와 알렸다.

“소저, 월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목운요는 바로 채의 등을 내보내고 월왕을 안으로 들였다.

방에서 나온 금교는 금란을 한쪽으로 데려갔다.

“언니는 사리 분별을 잘하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당연히 잘 알겠지?”

금란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금교, 그게 무슨 말이야?”

“솔직히 말해 봐. 방금 왜 얼굴이 빨개진 거야?”

금교는 금란이 잘못된 사랑을 택한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금교의 말을 들은 금란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

“그런 적 없어.”

“거짓말 마! 소저께서 우리한테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언니도 잘 알잖아. 난 한평생 소저를 모시기로 마음먹었는데, 언니도 본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순간 금란은 혼란스러워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금란이 여전히 시치미를 떼자, 금교가 정색하며 말했다.

“방금 월왕 전하를 보고 얼굴이 빨개진 거잖아!”

금란은 놀란 눈을 한 채 헛웃음을 지었다.

“허튼소리 하지 마.”

“다 봤는데도 인정 안 할 거야? 금란 언니, 우린 소저 덕분에 지금처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 절대로 월왕 전하를 넘볼 생각 마.”

금교가 단숨에 말을 내뱉는 바람에, 금란은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금교는 금란이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자 눈물까지 보였다.

“금란 언니, 제발 정신 차려. 어쩔 수 없네……. 소저께 당분간 언니를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할게. 한동안 월왕 전하를 뵙지 않으면 마음이 정리될지도 모르니 그때 다시 소저 곁으로 돌아오도록 해.”

금교의 터무니없는 말을 듣다 못한 금란은 다급히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헛소리 좀 그만해. 방금 얼굴이 빨개진 건 월왕 전하 때문이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시위 때문이야. 오늘 그에게서 빙등을 선물받았거든.”

금교는 한동안 멍해 있다가 곧장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시위라면 우항? 아님 우의?”

“……우항.”

금교은 그제야 활짝 웃었다.

“정말 다행이네. 혹시라도 월왕 전하께 마음을 빼앗긴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소저와 월왕 전하 두 분 사이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는 걸 잘 알잖아.”

금교는 마음이 놓이는 한편, 갑자기 미안함이 솟구쳤다.

“언니, 오해해서 미안해. 그나저나 우항이 빙등을 선물하다니…….”

금교가 갑작스레 킥킥 웃자 금란의 표정이 점점 더 어색해졌다.

“됐어. 그보다 어서 다과 준비하러 가자.”

* * *

빨간 혼례복을 살피던 월왕의 두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흘러넘쳤다. 결국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운요의 허리를 안아 두 바퀴 돌기까지 했다.

“요아. 요즘 하루가 일 년 같구나. 당장 내일이 정월 열여드레였으면 좋겠다.”

“눈 깜빡할 새에 그날이 올 텐데, 뭐가 그리 조급하신 거예요?”

“당연히 하루라도 빨리 너를 품에 안고 싶어서지.”

월왕이 목운요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뜨거운 입김에 목운요는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

“그럼 지금 한 번 안게 해 드리죠.”

월왕은 웃으며 그녀를 안아 든 채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요아, 지금이 너무 행복하구나.”

행복한 감정이 가슴을 뚫고 나와 온 세상을 뒤덮을 것만 같았다.

* * *

드디어 북강 사신 일행이 서릉 성문 앞에 도착했다.

성문 안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돌아다니며 상인들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북강 사신들은 접대를 맡은 관리에게 곧바로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북강에서 양국 간의 우호를 도모하고자 사신을 보낸 건데, 어찌 이리 소홀히 대하는 겁니까?”

“오해십니다. 저희 폐하께선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이 지극하셔서, 함부로 백성들의 생활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소관도 어쩔 수 없이 법규대로 해야 하오니, 사신께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관원의 표정에선 전혀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시각, 유왕은 성루에 앉아 사절단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었다.

“북강 왕족도 아닌 주제에 대체 얼마나 성대하게 환대해 주길 바라는 거지? 어처구니가 없군. 관원더러 그들을 바로 역사로 안내하라 하거라. 난 이따 시간이 나면 갈 테니.”

“예.”

성루에서 내려온 유왕은 곧장 하운방을 찾아갔다.

“형님, 북강 사신을 맞이하러 가셨다더니, 하운방에는 어쩐 일이시죠?”

“자네와 운요가 큰일을 계획 중이라고 해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러 왔지.”

유왕의 말에 목운요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미끼는 던져졌으니, 상대가 물기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 유왕은 여전히 걱정되는 눈치였다.

“너희들의 계획이 면밀하긴 하나, 진왕과 북강에 동시에 미끼를 던지는 게 과연 안전할까?”

처음 월왕과 목운요의 계획을 들었을 때 유왕은 썩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은 가짜 서신을 보내 영군진과 북강의 야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서신이 보내지긴 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양쪽 모두에게서 반응이 없었다. 그에 유왕은 속으로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월왕은 자신감이 넘쳤다.

“조급해 마십시오, 형님. 곧 미끼를 물 겁니다.”

“물지 않는다면?”

“그럼 미끼를 더 뿌려야죠. 언젠가는 혹해서 물 겁니다.”

목운요가 온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왕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 * *

서릉에 도착한 북강 사신들은 곧바로 역사 관원들에게로 넘겨졌다.

그들은 예상과 전혀 다른 접대에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다, 유왕을 만나겠다며 소란까지 피웠다.

유왕은 그 소식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지금 간다고 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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