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65화 (365/442)

365화 북강 사절단

목운요가 뚫어지게 그를 쳐다보자, 육냥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다. 네가 북강 왕족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 줄 몰랐을 뿐이다.”

모든 걸 다 꿰뚫을 것만 같은 맑고 투명한 목운요의 두 눈과 마주친 순간, 육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녀라면 분명 제 표정을 보고 자신의 정체를 파악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나면 자신을 내쫓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죽기보다 고통스러웠던 옛날을 떠올리자, 육냥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큰 욕심이 없었다. 그저 목운요의 곁에 남고 싶었고, 목운요가 눈길 한번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했다.

오직 그녀의 곁에 있을 때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에 버려진 것처럼 침잠한 눈빛을 한 육냥에 목운요의 마음이 약해졌다.

“전에도 말했듯이, 네가 직접 털어놓기 전까지 난 네 출신에 대해 묻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네가 떠나려거든 억지로 말리지도 않을 거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 그리 알거라.”

육냥의 두 눈에 점차 희색이 띠기 시작했다.

“소인은 평생 주인님 곁에 있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에 목운요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럼 내가 이득을 본 거지. 은자 여섯 냥으로 금광 하나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녀가 웃음을 보이자, 어쩔 바를 몰라 하던 육냥도 있는 힘껏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오랫동안 표정 없이 살다 보니 미소 짓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참을 애쓰다가 고개를 드니, 목운요는 이미 시선을 돌려 장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장부를 재차 확인하고 계획이 문제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육냥. 북강 사신이 도착하는 대로 계획을 진행할 거다. 최대한 조심하고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철수해야 한다.”

“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주인님.”

* * *

북강 사신이 곧 서릉에 도착한다는 소식은 조정 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나 무장들은 북강이라 하면 하나같이 이를 갈았다.

북강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백인의 기병 소대가 장도를 들고 돌격하면 주위가 온통 피바다가 되고 병사 천 명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또한 성격이 포악해 닥치는 대로 약탈할 뿐만 아니라,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은 전부 불태워 버리기 일쑤였다. 마을 전체를 학살하는 경우도 많았고, 그들의 포로가 된 이상,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폐하. 북강 사신도 손님이니 차별 없이 환대함으로써 우리 대력조의 인심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소신도 찬성합니다. 북강이 예전에 어떤 일을 벌였든 간에 우호의 뜻으로 먼저 사신을 보내왔으니, 저희도 마땅히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생각하옵니다.”

문신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북강과 우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무신들은 정색하며 반대에 나섰다.

“북강인들에게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북강과의 교전 중에 의해 희생된 백성들이 과연 그걸 원할까요?”

“폐하. 소신이 오랫동안 북강과 교전해 왔기에 그들의 성격을 잘 압니다. 그들은 태생부터 야심이 하늘을 찌르는 민족으로, 이번 파견도 분명 선의가 아닐 겁니다. 신중히 대비해야 합니다.”

뒤이어 문신과 무신들이 설전을 벌였다.

이에 황제가 기침 소리를 내자 서립이 크게 소리쳤다.

“정숙!”

관원들은 바로 엎드려 사죄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황제는 연신 기침을 하며 릉왕과 유왕에게 물었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 * *

목운요는 어머니와 함께 긴 대나무 연필로 어항 안의 비단잉어에게 장난을 쳤다.

옆에선 곡 마마가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장공주에게 보고하는 중이었다.

“폐하께서 릉왕 전하와 유왕 전하께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두 분께서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릉왕께서는 문신의 편에 서서 대력조의 품격을 보여 주자 하셨고, 유왕께서는 북강의 의도가 파악되기 전까진 경계해야 한다며 무신들의 편에 섰습니다.”

장공주는 어항에 미끼를 던져, 비단잉어들이 서로 빼앗아 먹는 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조정 내 싸움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내버려 두거라. 그보다 요아, 구정이 어느덧 코앞이구나. 혼례복은 어떻게 되어 가느냐?”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어요. 아마 구정 전에 완성될 겁니다.”

“다행이구나. 월왕부 수리 공사도 순조롭게 잘되어 간다고 하니, 이제 마음 놓고 혼인날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장공주가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내 품에 안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집보내야 한다니, 벌써 가슴이 시려 오는구나.”

목운요가 냉큼 하던 일을 멈추고 장공주의 곁으로 가서 두 손을 맞잡았다.

“전 시집가서도 날마다 외할머니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낼 거예요. 단지 지내는 곳이 바뀌었을 뿐, 지금이랑 다를 바가 없는걸요. 혹시라도 사야가 저를 괴롭힌다면 바로 외할머니한테 찾아갈 테니, 저 대신 혼내 주셔야 해요.”

“그럼. 군월이 감히 운요를 화나게 한다면 이 외할미가 아주 혼쭐을 내 주마.”

장공주의 대답에 목운요는 깔깔 웃었다.

그때, 갑자기 월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어찌 감히 요아를 화나게 하겠습니까?”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월왕을 본 목운요는 얼굴이 빨개졌다.

장공주는 멋스러운 월왕과 꽃처럼 예쁜 목운요를 흐뭇하게 번갈아 보았다. 선남선녀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사그라지긴 했지만, 그 자리를 짓궂은 마음이 채웠다.

“거야 모르지. 군월이 워낙 성격이 차가운지라 요아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월왕이 재빨리 변명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잘 맞는 겁니다…….”

목운요는 여전히 볼이 빨간 채로 월왕을 향해 눈치를 줬다. 장난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다니, 참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장공주는 웃음을 터트렸다.

“사랑이 넘칠 땐 물도 꿀같이 달콤하지만, 사랑이 식으면 꿀조차 쓰게 느껴지는 법이다. 지금 이 감정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지.”

“고모님께서 저를 제일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요아의 마음을 저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장공주가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월왕은 온 힘을 다해 맹세했다. 목운요에게 미래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도 심어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 직전인 월왕을 보고 허연한이 나섰다.

“어머니. 요아 혼수 중에 결정이 덜된 것들이 있는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장공주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목운요와 월왕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난 혼수를 확인해야 하니 두 사람은 그만 나가 보거라.”

월왕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목운요는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월왕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그 광경을 본 장공주가 새삼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전에는 군월이 성격 때문에라도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딴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허연한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사실 월왕이 마음에 쏙 들었다. 경릉성에 있을 때나 서릉에 있을 때나, 운요에 대한 마음이 늘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일편단심이란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요아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의 목운요는 늘 경각심을 품고 있었고,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았었다. 엄마로서 그런 딸아이를 볼 때마다 늘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월왕을 만난 이후로 목운요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법을 배웠고, 웃음도 훨씬 많아졌다. 이제 두 사람의 혼례가 순조롭게 치러져 평생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만 남았다.

월왕에게 끌려 나온 목운요는 재빨리 그의 손을 뿌리쳤다.

“외할머니께서 보고 계셨는데 너무해요.”

그에 월왕은 웃는 얼굴로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마치 보물을 보듯 찬찬히 살폈다.

목운요는 부끄러워 손을 빼려 했지만, 워낙 세게 잡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예요?”

월왕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요아의 손가락은 하얗고 길고, 살결도 보드라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굳은살투성이인 자신의 손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뾰로통해하는 목운요를 보고 월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요아, 저쪽 정자에 가서 좀 쉬자꾸나.”

정자는 사면이 뚫린 데다 하얀 눈까지 깔려 있었다. 거기에 월왕은 외투를 걸치지 않은 채였다.

단번에 월왕의 꼼수를 알아챈 목운요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바람이 차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편전으로 가시지요.”

목운요가 곧장 편전으로 향하자, 월왕도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뒤따랐다.

편전에 들어서니 따스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월왕은 폭신한 방석을 만지작거리다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요아, 요즘 어쩐지 요통이 심하구나.”

목운요는 차를 우리다 말고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많이 아프세요?”

월왕은 제법 그럴듯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재 의자가 딱딱한데 하루 종일 앉아 있어서 그런가 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맥을 짚어 주려던 목운요는 그제야 꾀병인 걸 알아차리고 눈을 부라렸다.

하나 월왕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목운요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그래서 말인데, 방석 몇 개를 가져가도 될까?”

월왕은 목운요가 썼던 물건을 사용하는 걸 좋아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불도 여름 내내 계속 곁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그녀와 더욱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월왕의 뻔뻔함에 목운요는 당장이라도 방석으로 한 대 치고 싶었다.

“방석이 탐났던 거면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굳이 아프다고 거짓말할 필요까진 없잖아요!”

월왕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네가 날 걱정해 주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그럴 때마다 네 마음속에 나뿐이라는 걸 느끼거든.”

뜻밖의 대답에 목운요는 잠깐 멈칫하다가 손끝으로 살며시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날카로운 눈매와 그윽한 두 눈은 마치 깊은 밤하늘과 같아, 한번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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