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64화 (364/442)

364화 진왕의 노림수

아니나 다를까, 이 귀비는 곧바로 태의들을 불러 목운요한테서 들은 내용에 대해 물었다.

어리둥절해하는 태의가 있는 반면, 몇몇 태의는 미인 파상이라는 독을 듣자마자 신비로운 독이라고 열변을 토하며 심지어 꽃이 어떤 모양인지도 그럴듯하게 설명했다.

그제야 확신이 선 이 귀비는 곧바로 이부로 서신을 보내 독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에 이씨 가문은 어쩔 수 없이 북강에 몰래 연락을 취해 독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태의들도 잘 알지 못하는 중독 증상이 갑자기 이 귀비한테 생기자, 은연중에 북강에 대한 의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 * *

상로가 가로막히고 이 귀비가 병에 걸리자, 이씨 가문의 분위기는 연일 흉흉해졌다.

반면 진왕부의 분위기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중년의 의원이 영군진의 눈을 감싸고 있던 붕대를 조심스레 벗기며 말했다.

“전하. 독에 당한 눈이기에 시력을 되찾더라도 며칠간은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붕대를 벗은 진왕은 눈부신 빛이 들어오자 주먹을 꽉 쥐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주변을 살피는 눈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인다, 드디어 보이는구나!”

의원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요. 제가 반드시 전하의 눈을 고치겠다고 약속드렸잖습니까.”

진왕은 기쁜 마음에 횡설수설까지 했다.

“곡 명의, 내 눈을 치료해 준 이 은혜는 가슴 깊이 새겨 언젠가 꼭 보답하겠습니다.”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진왕 전하께서 강남에서 이루신 공적을 듣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고, 또 그런 전하께서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 이렇게 도움을 드렸을 뿐입니다. 시력은 회복되셨지만, 다리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리고 고통도 더할 수 있습니다.”

곡 명의에 대한 신뢰가 하늘만큼 높아진 영군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기꺼이 감수하지요.”

“그럼 소인은 필요한 약재를 준비하러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곡 명의가 자리를 뜨자, 진왕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한번 잃고 나니 평범하고 소소했던 것들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질 줄 몰랐다. 진왕은 조심스레 자신의 두 눈을 만지며 기쁨에 겨워했다.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심복은 진왕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입을 열었다.

“전하의 분부대로 날마다 조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진왕은 책자에 기록된 내용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관원들의 추천을 받아 황태자를 세우다니. 분명 큰형님의 제안이겠지?”

“맞습니다.”

“흥. 내가 없으면 본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지? 꿈도 꾸지 마! 그보다 유왕과 월왕 두 사람이 연합을 하고 부황의 지지까지 받다니,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겠군. 대신들과 연락이 닿았느냐?”

심복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하의 분부대로 조정 대신들과 연락을 시도해 보았지만, 십중팔구는 만남을 거부했고, 나머지는…….”

진왕이 무서운 표정으로 다그쳤다.

“나머지는 뭐?”

“나머지는 만나 주긴 했지만 비아냥대기만 할 뿐, 전하를 따르려는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한테 먼저 와서 들러붙을 때는 언제고, 고작 몇 달 주저앉았을 뿐인데 바로 배신을 하는구나. 내가 다시 재기하는 날에 반드시 이 치욕을 갚아 주마…….”

진왕의 두 눈에 아른거리는 섬뜩한 살기는 한참 후에야 서서히 사라졌다.

겨우 진정된 진왕이 분부를 내렸다.

“부황께 서신을 쓸 테니, 필묵을 준비하거라.”

시력이 회복됐으니 조만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황위 쟁탈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만큼, 절대로 방관자가 되어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심복이 필묵을 준비하는 동안, 책자를 살펴보던 진왕은 연회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씨 가문이 대놓고 월왕이 부황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폭로했단 말이냐?”

“예. 심지어 장공주까지 끌어들여 장공주가 일부러 월왕의 신분을 속이고 황실 혈통을 어지럽힌 거라고 모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폐하께선 월왕은 틀림없는 자신의 친아들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하하.”

진왕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릉왕이 역시 멍청하군!”

황제와 장공주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이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거늘. 눈 밖에 나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감히 장공주와의 정면충돌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책자를 보던 진왕의 눈빛이 한곳에 머물더니 음침한 기운이 주변을 맴돌았다.

“정월 열여드레…….”

“폐하께서 월왕과 온한 군주의 혼인을 정월 열여드레로 정하셨습니다.”

진왕은 한참 침묵하다 빠른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흘 뒤, 두꺼운 서신이 황제의 탁자 위에 놓였다.

진왕은 서신을 통해 자신의 죄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후회의 심정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부터 실명 후의 나날까지, 구구절절 적힌 글을 읽은 황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결국 그는 서립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진왕부로 찾아갔다.

* * *

목운요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단장하는데, 금교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소저, 지금 밖에 소문이 잔뜩 퍼졌어요. 폐하께서 진왕부로 찾아가셨는데, 셋째 황자께서 마침 폐하의 낡은 옷가지를 안고 통곡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낡은 옷가지는 몇 해 전 셋째 황자께서 큰 병을 앓았을 때 폐하께서 밤새 간호하며 입었던 옷인데, 그 후로 셋째 황자께서 그 옷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금교는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그토록 오래된 옷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니, 셋째 황자의 속셈이 얼마나 깊은지 추측이 갔다.

목운요도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듣기론 셋째 황자께서 식음을 전폐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매일 반성하고 있다고 해요. 눈물범벅이 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초라해 보였는지, 폐하께서 곧바로 셋째 황자를 모시던 하인들을 처벌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조만간 셋째 황자의 신분을 다시 회복할 거라고 하셨답니다. 지금 관원들의 관심이 전부 셋째 황자에게 쏠려 있어요. 고집이 세고 무모한 릉왕이나 빈틈이 없는 유왕에 비해, 진왕을 따르는 게 낫다고 생각하나 봐요.”

목운요는 비녀를 머리에 꽂고 이리저리 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릉왕은 어떤 반응이던가요?”

“릉왕부는 아직까지 조용해요.”

목운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조용하다고요?”

당장이라도 진왕을 상대할 방법을 찾기 바쁠 텐데, 어찌 조용한 거지?

금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셋째 황자가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제멋대로 하게 두는 거 아닐까요?”

목운요가 피식 웃었다.

“릉왕이 그 정도로 배포가 큰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이미 모든 인심을 다 얻었겠죠.”

그때, 금란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소저. 방금 궁 밖에서 소식이 왔는데, 북강에서 보낸 사신이 보름 뒤면 서릉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깜짝 놀란 목운요가 재차 확인했다.

“북강에서 사신을 보냈다고요?”

“네.”

두 나라가 마지막으로 사신을 파견했던 게 어언 십여 년 전이었다. 그동안 대력조와 북강의 사이는 늘 팽팽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북강 기병들이 대력조 변경을 자주 침범하는 바람에, 많은 백성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북강도 인명 피해가 끊이질 않았다.

영락없는 원수 사이가 된 마당에 갑자기 사신을 보내다니, 이씨 가문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목운요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

“잠깐, 보름 뒤라면 마침 황태자를 추천하는 시기네요?”

“그렇네요.”

금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번 사신 파견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있는 거라면 아무래도 황태자 추천이 계획대로 안 될 가능성도 있겠군요.”

곰곰이 생각하던 목운요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에 금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저께선 유왕 전하께서 황태자가 되길 바라시는 거 아닌가요? 왜 기뻐하시는 건가요?”

목운요의 얼굴에 웃음이 더 짙어졌다.

“후후, 글쎄요.”

진왕과 북강을 연결시키느라 다른 계획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북강 사신이 제 발로 찾아온다니. 하늘이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목운요는 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 *

이씨 가문과 북강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는 꽤 많은 은자가 필요했다. 한참 고민하던 목운요는 곧장 하운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채의 등을 시켜 장부를 가져오게 한 뒤,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얼추 필요한 금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한시름이 놓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육냥을 바라보았다.

“제명은 아직 소식이 없느냐?”

“네. 그보다도 누군가가 습보헌 장부를 몰래 수정한 걸 알아냈습니다.”

“어차피 진짜 장부는 하운방에 있으니, 얼마든지 수정하게 내버려 두거라.”

목운요가 문득 물었다.

“육냥, 혹시 북강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

육냥이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다.

“왜 갑자기 북강에 대해 물으시는 겁니까?”

육냥의 반응에 목운요는 확신이 섰다.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육냥은 북강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알다시피 이씨 가문이 북강 왕족과 연관되어 있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을 뿐이다. 게다가 보름 뒤면 북강 사신이 이곳에 도착한다는구나.”

북강 사신? 순간 육냥의 눈에 공허함이 가득 찼다. 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북강에 대해 조금 알고 있긴 합니다. 현재 북강의 왕인 혁련엽(赫連曄)은 선대 국왕의 둘째 아들로, 잔악무도하고 야심이 크며 병력 인솔에 뛰어납니다. 동복형제인 혁련저(赫連儲), 혁련담(赫連覃)과 서로 우애가 두터워, 함께 선대 국왕의 다른 자식들을 전부 없앤 뒤 혁련엽이 국왕 자리에 올랐습니다. 지금의 북강 내부는 사실상 삼왕병립 상태이며, 세 형제가 합심해 대력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육냥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해 나갔지만, 목운요는 그 속에서 증오의 감정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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