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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62화 (362/442)

362화 다가오는 혼인

“참, 외할머니. 부탁이 하나 있어요.”

“무슨 일인데 부탁까지 하는 것이냐?”

“실은 유왕 전하에게 힘을 보태고자 사야와 함께 이씨 가문에 대해 조사를 했어요. 그러던 중 이씨 가문이 북강 왕족과 왕래가 있다는 걸 알아냈죠.”

그 말을 들은 장공주가 목운요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매서운 눈빛으로 물었다.

“확실한 소식인 것이냐?”

“네.”

“이씨 가문을 더는 두고 볼 수 없겠구나. 요아,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저와 사야는 후궁의 일에 손을 쓸 수가 없다 보니, 이 귀비를 아무래도 외할머니께서 확실히 처리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승상의 자식들 중에 이 귀비를 제외하고는 전부 아이가 없는 게 아무래도 수상한데, 외할머니께서 이 귀비를 통해 단서를 알아내 주셨으면 해요.”

“그래. 내가 알아볼 테니 걱정 말거라.”

“부탁드립니다, 외할머니.”

“요아, 이 일은 당분간 소문내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그들을 뿌리째 뽑아 버릴 만한 확실한 증거를 얻기 전까진 말이다.”

“네, 외할머니. 조심할게요.”

* * *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봤지만, 이 귀비의 얼굴은 여전히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궁 비빈들은 병문안을 빌미로 수시로 이 귀비를 찾아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비빈들이 인사 올리고 돌아간 뒤, 이 귀비는 유리궁의 도자기를 깨트리기 일쑤였다.

이를 알게 된 제 귀비는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알렸다. 그 뒤로 유리궁의 물건들은 전부 깨지지 않는 나무 물건으로 바뀌었다.

일이 점차 우습게 번지자, 조정 대신들은 점점 릉왕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에 릉왕부로 돌아온 릉왕은 화를 못 참고 서재를 닥치는 대로 부숴 버렸다.

이를 본 이경주가 나서서 타일렀다.

“전하, 고정하십시오.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외할아버지. 부황께서 황태자 후보를 추천받는다고 하셨거늘, 조정 대신들조차 저를 외면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전부 제 불찰입니다. 장공주의 심기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전하, 너무 조급해 마십시오. 장공주의 세력이 드러날수록, 폐하의 염려도 커질 겁니다. 조정 대신들도 장공주의 세력이 두려워 잠시 저희를 멀리하는 것일 뿐, 장공주가 쓰러지면 제 발로 다시 저희한테 오게 되어 있습니다.”

릉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장공주를 쓰러트린단 말씀입니까?”

“시간이 긴박하긴 하지만, 황태자 후보를 추천받는 기간을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며칠만 더 기다려 보면 알게 될 것이니 인내심을 가지시지요, 전하.”

* * *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곧 많은 눈이 내렸다.

황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내려놓기로 결정한 월왕은 그동안 궁에서 지내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황제는 하루도 빠짐없이 월왕을 곁으로 불렀고, 간혹 월왕이 목운요를 만나러 갈 때면 심술을 내기까지 했다.

월왕은 금방 돌아오겠다며 황제를 달랜 뒤, 하운방을 찾았다.

목운요는 혼례복에 직접 용봉 무늬를 수놓기 위해 날마다 하운방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목운요가 온 정신을 집중해 봉황 눈을 수놓는 걸 보던 월왕이 물었다.

“요아, 예전에도 이렇게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수놓았던 것이냐?”

콩알만 한 눈을 수놓는 데에 이렇게 많은 정성이 들 거라고 생각조차 못 했다.

“봉황 무늬는 그나마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라서 시간이 덜 드는 편이에요. 전에 소씨 가문을 통해 궁으로 보냈던 병풍이야말로 엄청난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었죠. 기간 내에 완성하느라 손목과 목덜미가 움직이기만 해도 아팠고, 회복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어요.”

월왕도 그때를 회상하며 그녀와 자신이 운명이었음을 재차 실감했다.

“그때 그 병풍이 부황의 노여움을 사서 내가 사람을 시켜 출처를 조사했었지. 마침 하언촌이라는 걸 알았을 때 머릿속에 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단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맞았고, 너에게 화가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소씨 가문의 눈을 가리었지.”

마지막 한 수를 완성한 목운요는 한시름 놓으며 월왕의 곁에 가서 앉았다.

월왕이 찻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혼례복이 급한 건 아니니 쉬엄쉬엄하거라.”

차를 마신 목운요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바깥을 내다보았다.

“첫눈이 이렇게 빨리 내릴 줄은 몰랐네요.”

“겨울이 이르게 시작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닐 듯하구나.”

수확이 좋은 곳은 큰 탈 없이 겨울을 나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아마 꽤 많은 사람이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고생할 것이다.

“사야, 흑룡성에선 아무 소식이 없나요?”

“서릉에도 눈이 왔으니 흑룡성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폭설에 길이 막혀 소식을 전하는 데 한참 걸릴 것이다. 천수성 쪽도 알아본 결과, 이씨 가문이 암암리에 세력을 줄이는 중이라고 하더구나. 아무래도 뭔가 눈치를 챈 듯하다. 이씨 가문의 철기 운송을 도맡은 상인들을 상대로 수소문도 해 봤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진왕 쪽에서 무언가 얻어지기를 바라야 할 것 같다.”

“제가 보낸 사람도 무사히 진왕부에 진입했어요. 폐하께서 외부인 방문을 전부 금지시키셨지만, 그래도 하인들은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해 저희 쪽 사람도 쉽게 진입했어요.”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왕이 의심하진 않겠지?”

“이미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이라,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생명 줄처럼 여기며 꽉 잡으려 할 거예요.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둘째 형님도 위국후와 얘기를 끝냈다고 하더구나. 위국후가 직접 나서서 유왕을 황태자 자리에 앉히는 데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위국후께선 강직한 품성으로 대신들의 추앙을 받고 계시니 결코 릉왕한테 밀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목운요는 창밖의 설경을 한참 바라보다 미간을 살며시 문질렀다.

월왕이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요아, 어디 아픈 것이냐?”

“별일 아니에요. 그냥 여러 가지 일로 그간 신경을 많이 썼더니 조금 피곤할 뿐이에요.”

“옆에 있을 테니 눈 좀 붙이거라.”

월왕이 자신의 어깨를 내주며 말했다.

그의 품에 기댄 목운요는 온몸이 나른해져 왔다. 한편 혼례복 진도가 걱정되어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잠깐만 눈을 붙일 테니, 이따가 잊지 말고 깨워 줘요.”

“그러마.”

월왕이 나지막이 답하며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지친 그녀는 어느새 고이 잠들어 있었다. 달게 자고 있는 그 모습에, 월왕은 못내 가슴이 아파 왔다. 그동안 자신의 일로 그녀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밀려왔다.

목운요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귓가에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 보니 그녀는 월왕의 품에 안긴 채로 달리는 마차 안에 있었다.

“사야, 궁으로 돌아가는 길인가요?”

월왕이 조심스레 그녀를 일으켜 앉힌 다음, 담요로 무릎을 덮어 주었다.

“네가 잠든 지 한 시진이 훨씬 넘었다. 밤이 깊어 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사야께서 저를 안아서 마차에 태우신 건가요?”

월왕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장난스레 말했다.

“그래. 혹 싫으냐?”

목운요는 바로 대답하려다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싫다고 답하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어떻게든 보상하라고 조를 수도 있었다. 반대로 좋다고 답하면 앞으로 마음 놓고 욕심부릴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요즘 월왕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루 종일 곁에 붙어 있으려 하고, 다른 이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고민 끝에 목운요가 되물었다.

“사야께서는 제가 좋다고 하길 바라시나요, 아니면 싫다고 하길 바라시나요?”

월왕은 그런 목운요를 품에 안으며 턱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비볐다.

“당연히 네가 좋다고 하길 바라고, 또 진심으로 좋아하길 바라지.”

목운요는 그의 간지럽힘에 깔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우항은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마차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대지를 덮은 하얀 설경을 보며 입김을 내쉬었다.

왕야의 곁을 지키면서 요즘 부쩍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월왕의 기분이 한창 좋은 이때에 장가를 가서 선물이라도 두둑이 챙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붓감으로는 금란이 좋을 것 같았다. 착하고 어진 데다, 예쁘고 몸매 좋고 말투도 조곤조곤했다. 물론 그런 금란이 거칠고 무식한 자신을 좋아할지는 미지수지만.

문득 왕야가 목 소저한테 했던 것처럼 금란에게 꽃이나 선물을 주면서 구애 작전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마침 빙등을 주고받는 겨울이 와 있었다.

* * *

목운요가 옥화궁에 도착하자, 선령이 곧바로 찾아왔다.

“운요, 진왕의 눈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어. 다리보다 눈을 먼저 치료할 생각이야. 그리고 치료 과정에 일부러 고생 좀 시키게 하라고 말해 뒀어. 그래야 복수심도 더 타오를 테니까.”

“잘했네.”

목운요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보이기 시작하면 진왕은 무조건 황태자 추천에 손을 쓰려고 할 것이다.

그때, 선령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목운요의 볼을 꼬집으며 캐묻기 시작했다.

“하운방에 혼례복 만들러 다녀오는 길이지?”

“근데 왜?”

“얼굴에 자국이 생긴 걸 보니 깊이 잠들었던 것 같고, 월왕도 함께였던 거라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솔직히 말해.”

선령의 말투에서 싸늘함이 풍겼다. 혹시라도 목운요를 건드린 거라면, 그게 월왕이더라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선령의 말뜻을 이해한 목운요는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변명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여?”

“거야 모르지.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남녀의 정에 있어서는 영락없는 바보가 되어 버리거든. 나 역시도 눈이 멀어 그 자식을 좋아하게 됐으니.”

선령은 가능만 하다면 과거로 돌아가 바보 같았던 자신의 뺨을 몇 대 치고 싶은 듯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냥 돌아오는 길에 잠깐 졸았을 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때, 금란이 빠른 걸음으로 와서 알렸다.

“소저, 이 귀비께서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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