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심상치 않은 속셈
“이씨 가문이 철기를 밀매한다고 하니, 그들과 거래를 하는 거지요.”
“거래?”
“네. 진 총관님이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흑룡성에서도 광맥이 발견되었다지요? 저희가 그 광맥을 그들에게 파는 거죠.”
“이씨 가문은 가지고 있는 광맥이 충분한데, 과연 흑룡성까지 가서 사려고 할까?”
“누군가가 찾아가 큰 거래를 제안한다면요?”
“그 말인즉, 누군가를 장사꾼으로 위장시켜 이씨 가문과 거래하도록 시키겠다?”
“이경주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기에, 아무리 사람을 시켜 위장하더라도 금방 들킬 거예요. 가장 좋은 방법은 잘 알려진 사람을 통해 진행하는 거지요.”
월왕이 잠시 생각하더니 적절한 인물을 떠올려 냈다.
“혹 진왕 말이냐?”
“맞아요. 진왕은 지금 복수심에 불타올라 있을 거예요. 그런 그를 북강 사람과 연결시키는 거죠. 만약 북강이 이씨 가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테고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나, 지금 진왕의 상태라면…….”
목운요가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진왕의 다리와 눈이 치료가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제가 선령더러 믿을 만한 사람을 진왕에게 보내 치료하도록 부탁할게요. 완치될 가능성만 있다면 진왕은 분명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겠죠. 황위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복수의 칼날은 갈지 않을까요?”
월왕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하지만 요아, 이 일이 결코 말처럼 쉽진 않을 거다. 진왕이든, 이씨 가문이든, 릉왕이든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기에 약간의 차질만으로도 바로 들통나고 말 거야. 어느 때보다도 조심해야 한다.”
“걱정 마세요, 사야. 제가 잘 계획할게요.”
“그래. 너무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정 안 되면 내가 말한 방법을 써도 되니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거나 북강에서 움직인다면 기꺼이 맞서서 싸워야지.”
목운요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편안한 미소가 지어졌다.
“알겠어요.”
어느새 마차가 하운방 앞에 도착했다.
월왕은 목운요를 부축해 마차에서 내렸다. 육냥이 일찍이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님.”
“육냥, 들어가서 얘기하자.”
목운요가 빠른 걸음으로 하운방에 들어갔다.
“제명은 어떻게 되었느냐?”
“소식을 보낸 뒤로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목운요는 문득 걱정이 밀려왔다.
“그를 릉왕 곁으로 보낼 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그의 목숨을 최우선하기로 약속했었다. 이번에 중요한 소식을 얻었으니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지금 바로 제명한테 복귀하라는 신호를 보내도록 하거라.”
“이미 보냈는데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들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육냥이 낮은 소리로 말하자,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목운요가 입을 열었다.
“유구, 이씨 가문에 우리 사람이 있느냐?”
바람처럼 나타난 유구가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있긴 하나, 이씨 가문의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시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을 더 보내 잘 감시하도록 하거라. 육냥, 유구한테 제명의 초상화를 줘서 제명을 구해 오도록 하거라.”
“주인님. 제명은 혹시 들키더라도 절대 주인님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과감히 그를 버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육냥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에 목운요는 깜짝 놀랐다.
“육냥, 따져 보면 제명은 네 수하나 마찬가지지. 난 네 신분을 모르고 제명이 왜 너를 따르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동안 제명의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리 쉽게 그를 포기해서는 안 돼.”
육냥이 고개를 숙인 채 쓸쓸히 대답했다.
“소인과 제명 모두 주인님의 종입니다. 저희는 언제든지 주인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목운요는 육냥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든 제명을 구해 올 것이다. 육냥, 너도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하거라. 이씨 가문이 정말 제명을 잡고 있다면, 죽이지 않고 고문하면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려 할 것이다. 절대로 이씨 가문이 우리를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
“네, 주인님. 신중히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습보헌의 상황은 어떠하느냐?”
“습보헌은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점포가 더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습보헌 상황을 파악해서 알려 주거라. 제명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습보헌도 무사할 리가 없다.”
“습보헌에 대한 기록은 지금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육냥이 나가자 월왕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요아, 이렇게 충성스러운 수하를 고작 은자 여섯 냥에 들이다니, 놀랍구나.”
“이 정도로 고지식한 성격일 줄은 몰랐죠.”
“무공까지 뛰어나니 어딜 가든 사람들의 눈에 띄겠어.”
“그런데 왜 갑자기 육냥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거죠?”
전에도 만난 적 있지만 그는 한 번도 육냥에 대해 물은 적이 없었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그사이, 육냥이 책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습보헌 기록을 자세히 보던 목운요는 미간이 점점 더 찌푸려졌다.
“사야, 이거 한번 보시죠.”
“……습보헌이 흑룡성에 점포를 냈군.”
“그러니까요. 그동안 바빠서 전혀 신경 쓸 틈이 없었는데…….”
월왕의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습보헌은 애초에 하운방을 누르기 위해 세워졌다고 했었지?”
“네. 습보헌 점포는 모두 하운방 가까이에 있어요. 하운방의 명성을 빌려 하루빨리 성장하기 위해서죠.”
“흑룡성에 하운방 점포는 없지?”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운방은 늘 안정을 추구하다 보니, 점포 확장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흑룡성은 자수 기술이 보급되지 않아 점포 운영이 불가능했다.
한데 그런 곳에 습보헌을 세우다니, 누가 봐도 심상치 않았다.
월왕이 책자를 닫으며 말했다.
“요아. 이씨 가문이 아무래도 습보헌을 이용해 철기 밀매를 덮으려는 속셈인 듯싶구나.”
“고작 습보헌으로 그 큰 죄를 덮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명성이 높다 해도 결국엔 작은 점포에 불과했다.
“그 뒤에 하운방, 불선루, 그리고 우리, 심지어 고모님까지 계시지 않느냐.”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운요는 곧장 후회가 밀려왔다.
“다 제 잘못이에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조정에서 오랫동안 지내 온 이경주라면 습보헌과 하운방의 연관성을 알아낼 수도 있을 텐데, 이 일로 외할머니까지 연루된다면…….”
“요아.”
월왕이 목운요의 손을 잡으며 진정시켰다.
“모든 건 내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설사 맞다 해도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철기 밀매가 워낙 큰 죄일뿐더러, 고모님과 우리도 쉬운 상대는 아니니 그들도 우리의 폭로를 두려워할 것이다. 죄명을 덮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걸릴 테니, 누가 먼저 손을 쓰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목운요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자신을 다잡았다.
이젠 실수를 저지를 경우 돌이킬 기회조차 없다.
한참 후에야 겨우 진정이 된 목운요의 두 눈에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사야 말이 맞아요.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지금부터가 중요하겠죠.”
“요아, 일단 이 사실을 고모님께 알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하거라. 이씨 가문은 고모님의 반격이 두려워 궁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동안은 내가 움직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습보헌과는 당분간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씨 가문이 정말 습보헌을 장악했다면 과감히 포기할 각오도 해야 한다.”
“네, 알겠어요.”
* * *
옥화궁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문에 들어서자마자 선령에게 끌려 뒤편으로 향했다.
“소식 못 들었지? 이 귀비가 큰일 났어.”
“이 귀비가? 왜?”
“이 귀비가 그동안 제 귀비를 난처하게 했잖아. 그런데 오늘 무 귀인이란 사람이 이 귀비를 찾아가 궁녀들이 원단을 도둑질했다고 이른 거야. 제 귀비를 괴롭힐 핑계를 찾았다 생각한 이 귀비는 직접 나서서 궁녀들을 추궁하다가 결국 궁 안을 수색했는데, 글쎄 가임초 가루를 찾아낸 거야.”
“가임초? 그건 이 귀비가 썼던 수단이잖아?”
“그러니까. 어떤 원단 속에서 발견됐는데 무 귀인은 이 귀비한테서 선물받은 원단이라 그러고, 이 귀비는 아니라고 발뺌하다가 결국 폐하께서 알게 되어 후궁을 샅샅이 뒤졌더니 결국 이 귀비가 덜미를 잡힌 거지.”
선령이 엄청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그에 목운요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근데 네가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하하. 사실 전부 장공주 전하께서 계획하신 일이거든. 무 귀인한테서 발견된 가임초를 내가 구한 거라 칭찬까지 받았지 뭐야!”
목운요도 따라 웃었다.
“대단한 일을 하셨네.”
“그럼. 그나저나 혼례복 보러 다녀오는 길이야? 준비는 잘되어 가고?”
“여러 명이 도와줘서 잘되고 있어. 참,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
선령이 차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어디 들어나 보자.”
“진왕을 치료할 만한 사람을 소개시켜 줘.”
“거야 쉽지. 어디까지 죽여 주면 돼?”
선령의 흔쾌히 대답에 차를 마시던 목운요가 깜짝 놀라 말했다.
“죽이다니, 그게 아니라 진짜 치료해 달라는 거야. 그 사람을 이용할 일이 생겼거든.”
“그놈을 어디다 쓰려고?”
선령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인간성이 없는 진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만 쓰면 큰 도움이 될지도 몰라.”
“알겠어. 네 말대로 일단은 치료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죽이는 쪽으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