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48화 (348/442)

348화 속 좁은 목운요

* * *

서재 내. 황제는 상주서 처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서립, 그자들이 아직 밖에 있느냐?”

“폐하께 아룁니다. 여전히 무릎 꿇고 있습니다.”

“계속 꿇게 내버려 두거라. 그보다 옥화궁에 갈 테니, 혜의 부인에게 한 상 푸짐히 차리라고 전해라.”

허연한의 음식 솜씨를 맛보고 난 뒤로, 황제는 매일매일 그 음식들이 생각났다.

“예, 지금 바로 가서 알리겠습니다.”

서립이 나가려던 그때, 이 공공이 다급히 들어오며 아뢰었다.

“폐하, 온한 군주께서 오셨는데 바깥에서 관원들한테 가로막혔습니다.”

“그래? 마침 잘됐군. 짐이 직접 운요한테 전할 테니 서립은 안 가도 된다.”

목운요가 군월을 선택한 이상, 언젠가는 세상과 마주해야 했다. 차라리 하루빨리 관원들과 맞닥뜨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한편 서재 밖. 목운요를 본 관원들이 흥분하며 질문을 던졌다.

“온한 군주, 월왕과 은밀한 사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한껏 경멸의 표정을 짓고 있는 상대를 보며, 목운요의 표정도 극도로 차가워졌다.

“맞습니다.”

“온한 군주. 조카로서 외당숙이 되는 사람을 유혹하다니, 장공주 전하의 얼굴에 제대로 먹칠을 하는군요.”

“그러는 대인께서는 나랏일 걱정이 아닌 타인의 사사로운 정에 온갖 관심을 쏟다니, 그야말로 폐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 아닌가요?”

“어린 것이 이토록 안하무인일 수가! 버르장머리가 없군!”

목운요가 그자의 관복을 살피더니 옆에 있던 시위를 불렀다.

“당장 이자를 끌고 가서 곤장 열 대를 치거라.”

이를 들은 관원이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감히 조정이 임명한 관리에게 처벌을 내려?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목운요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온한 군주라는 봉호도 폐하께서 직접 하사하신 것이니, 따지고 보면 일품 품계에 해당하죠. 그런데 고작 사품 벼슬인 어사중승께서 저를 향해 입을 함부로 놀려 곤장형을 내린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말 한마디 때문에 간관(諫官,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는 관리)에게 벌을 내릴 순 없는 법입니다!”

관원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제가 처벌을 내리는 이유는 당신의 말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신분에 따른 예를 지키지 않아서죠. 설마 간관이기에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온한 군주…….”

관원이 더 변명하기도 전에 시위들이 곧장 그를 끌고 갔다.

곤장 열 대가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처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곤장을 맞은 관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사중승 대인, 여전히 저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처벌이 약했나 보군요.”

목운요가 무표정한 얼굴로 냉랭하게 말했다. 곧게 세운 몸에서 사람의 기를 죽이는 위엄이 풍겼다.

“소관……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목운요가 교만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거두시오. 다음번에 또 만났을 땐 부디 인사 올리는 걸 잊지 마세요. 그땐 이리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간관으로서 솔선수범하셔야죠. 안 그래요?”

“마땅한 지적입니다. 소관…… 명심하겠습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갑시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관원들은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그 누구도 나서진 못했다.

목운요가 정전에 들어섰을 때, 황제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운요,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 일어나거라.”

황제가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목운요를 살폈다. 그녀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이 직접 관원들한테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

“운요가 이토록 규율을 잘 지키는 아이인지 몰랐구나. 아주 좋아.”

목운요도 환하게 웃었다.

“칭찬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예의범절을 더욱 엄수하겠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황제는 웃는 얼굴로 진맥을 마쳤다.

“관원들은 아직도 바깥에서 무릎 꿇고 있느냐?”

“예, 폐하.”

“흥, 내버려 두거라. 그보다 운요, 짐이 오늘 옥화궁에서 누님과 함께 식사할까 하는데, 네 어머니께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라고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무척 좋아하시겠네요.”

목운요의 뒤를 따라 정전 밖으로 나온 황제는 꿇어앉은 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하나같이 쓰디쓴 약초라도 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를 보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한참을 걷다가 목운요가 입을 열었다.

“폐하. 저분들도 저렇게 온종일 꿇고 있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사람을 시켜 먹을거리라도 가져다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자들이 지금 너와 월왕 두 사람을 탄핵하기 위해 상주하고 있는 건데,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네. 혹시라도 그렇게 하면 감동해서 그만둘지도 모르잖아요?”

황제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목운요는 역시 아직 어렸다. 저들이 이토록 강경하게 나서는 건 사실 릉왕과 이씨 가문의 지시를 받아서였다. 그리고 그 목적은 월왕과 그녀의 명성을 더럽힘으로써 유왕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저들이 호의를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문이 나면 나쁠 건 없겠구나.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리하거라.”

밝게 미소 지은 목운요가 뒤따라오던 금교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무릎 꿇고 상주 중인 대인들께 선식을 가져다주면서, 온한 군주가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독술에도 능하다고 말해 줘요.”

금교가 멈칫하더니 바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소저, 그러면 관원들 그 누구도 음식에 입을 대지 않겠군요.”

“어차피 보여 주기 위한 거니까요. 어떻게든 날 골탕 먹이려는 자들한테 음식까지 갖다 바치는 건 말도 안 되죠. 나는 좋은 평판을 얻고, 저들은 쫄쫄 굶고, 이래야 분이 풀리죠.”

“예, 알겠습니다.”

옥화궁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황제는 서립을 통해 목운요가 한 일을 듣고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운요가 나보다 낫구나. 서립, 이따가 최상급 비단과 보석을 골라서 옥화궁으로 보내거라. 운요와 군월의 혼기가 다가오니, 미리 혼수를 채워 주자꾸나.”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서립은 온한 군주의 혼수이니 당연히 가장 좋은 걸로 골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일이란 게 참으로 놀라웠다. 전에 선임 총관의 핍박하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강남으로 어명을 전하러 갔을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당시의 목운요는 하운방을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소녀였다. 그 후로 겨우 두 해가 지났을 뿐인데, 그녀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위치에 올라 있었다.

* * *

궁의 일을 전해 들은 월왕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씨 가문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군.”

성 공공이 몰래 받은 서신을 태우며 말했다.

“이씨 가문이 처음부터 이토록 강하게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려움이 전혀 없는 듯합니다.”

월왕이 고개를 저었다.

“두려울 게 없는 게 아니라 참을성이 바닥난 거지. 부황께서 유왕을 력양궁에 머물게 했으니 안달이 날 수밖에.”

“왕야. 지금 서릉 내에 유언비어가 판을 치고 있고, 이씨 가문이 지극히 은밀하게 일을 저지르다 보니, 단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급할 거 없다.”

월왕이 말을 이었다.

“운요와 함께하기로 한 순간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지. 항렬이라는 벽이 가장 공격하기 좋은 약점이 될 테니까. 하지만 부황께서 우리 두 사람을 허락해 주셨으니, 그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나와 운요는 절대 유언비어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거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이씨 가문의 사업을 조사하는 건데, 혹시 강남에서 소식이 오지 않았느냐?”

“아직 없습니다. 우의가 강남으로 가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며칠은 걸릴 겁니다.”

“일단 기다려 볼 수밖에. 일부러 사람을 시켜 유언비어를 막을 필요는 없다. 그러다 이씨 가문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으니 일단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상책일 거다.”

“네.”

월왕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옷을 갈아입고 유왕을 찾아갔다.

월왕이 왔다는 소식에 유왕이 곧장 나와 반겼다.

“둘째 형님을 뵙습니다.”

“예를 거두거라. 운요와 약속이라도 한 것이냐? 두 사람이 한 발 차이로 도착하다니?”

그 말을 들은 월왕의 눈빛이 반짝였다.

“운요도 왔습니까?”

“그래. 안에서 네 둘째 형수랑 이야기 중이다. 혹시 밖에서 돌아다니는 소문 때문에 온 것이냐?”

“아뇨, 다른 일로 왔습니다.”

유왕의 서재에 들어선 월왕이 전례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째 형님. 오늘 제가 찾아온 이유는 형님이 황위에 오르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왕이 놀란 눈빛으로 월왕을 쳐다보았다.

“아우, 지금…….”

월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 놀랄 일인가요? 제가 도와줄 거란 생각 못 하셨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정말 예상 밖이지.”

사실 그가 황위 쟁탈 의사를 밝혔던 건 당시 릉왕과 진왕의 소행에 화가 나서 절대 두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하겠다는 충동적인 마음이 컸다. 그러다 점차 진정이 되고 나니 마음속의 걱정도 많아졌다.

혹여나 월왕과 황위를 쟁탈하게 된다면, 자신은 절대 비열한 수단을 쓰지 않고 온전히 부황의 뜻을 따르리라 생각까지 했었다.

한데 그런 자신의 생각을 월왕한테 말하기도 전에 월왕이 먼저 와서 뜻을 밝힌 것이었다.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왕을 보고 월왕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많이 놀라셨군요.”

“넷째 아우. 우리가 오랫동안 형제의 정을 쌓아 온 만큼, 나도 아우가 황위에 마음이 있다면 무조건 응원할 거야. 황위는 이름만큼이나 부담감이 큰 자리라, 능력이 있는 자가 올라야지 대력조를 더욱 잘 이끌 수 있을 테니까.”

월왕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

“형님, 솔직히 말하면 저도 한때 황위에 마음이 있었습니다. 기필코 황위에 올라 모후의 명예를 회복하겠다 다짐했었죠. 그러다 운요를 만나고 나서 그보다 더 소중한 걸 좇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둘째 형님께서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황위에 오르고 싶을지 몰라도, 저는 그게 아닌 온전히 개인의 욕망 때문이었지요. 형님에 비하면 저는 한참 모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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