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43화 (343/442)

343화 유왕과 민방화의 혼례

장공주는 정전에서 두 시진이나 머물다 밖으로 나왔다.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곡 마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전하, 전에는 월왕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길 바라지 않으셨습니까? 한데 왜 유왕 전하를 보필하도록 권유하신 건가요?”

장공주가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전에는 어떻게든 군월을 황위에 올리려고 했지. 하나 지금 요아가 군월을 선택했고, 군월의 마음도 같으니 두 사람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한발 물러서는 게 맞는 듯하구나.”

곡 마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황위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요. 그동안 폐하께서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달려오셨으니 말입니다. 월왕 전하와 군주께서 이미 많은 역경을 겪으셨으니 남은 생이라도 자유롭게 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내 욕심이기도 하지. 요아가 고생을 겪지 않았으면 하여, 군월에게 황위를 포기하도록 하는 거니까. 물론 황위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줘야겠지.”

곡 마마는 그런 장공주가 못내 안쓰러웠다.

“장공주 전하, 이미 충분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도 마음 놓고 쉬셔야지요. 월왕 전하와 군주 두 분 다 알아서 잘하실 겁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구나. 연한과 요아에게 마음의 빚이 너무 많아, 아직 정신이 맑을 때 최대한 많이 해 줘야지. 나중에 힘이 빠지면 도와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테니.”

“장공주 전하…….”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이토록 유난을 떠는 것이냐. 어서 표정 관리하거라. 이따가 요아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면 걱정할 게야.”

* * *

유왕의 혼례 날, 목운요는 초씨 노부인의 초대를 받아 일찍이 민부로 향했다.

민부에 들어선 그녀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민 각로가 어둠이 드리운 듯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옆에서 타이르던 초씨 노부인은 목운요를 보자마자 얼른 다가와 인사 올렸다.

“군주를 뵙습니다.”

“노부인, 예를 거두십시오.”

그때, 민방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임에 따라 혼례복이 촤르르 퍼져 치맛자락에 수놓아진 난새와 봉황이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운요, 어서 와요.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봐줄래요?”

그사이 초씨 노부인이 다시금 민 각로를 타이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들어 보니 손녀가 시집가는 날이니 기분 좋게 보내 주자는 얘기였다. 아쉬운 마음이 표정에 다 드러난 듯했다.

목운요는 내심 흐뭇해 작게 미소 지었다. 온 가족이 화목하니, 민방화와 같이 성격이 온화하고 예의 바른 자제를 키워 낸 듯싶었다.

“방화 언니, 그럼 제가 한번 볼게요. 혹시 마땅치 않은 곳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물론이죠.”

목운요는 직접 민방화의 화장을 고쳐 주면서 입을 열었다.

“언니가 오늘의 주인공이기에 가장 눈이 부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례복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 얼굴 화장이 다소 묻히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네요.”

그녀는 민방화의 입술 색을 바꾸고 눈썹을 새로 그려 줬다. 몇 번의 수정으로 순식간에 느낌이 확 달라졌다. 수정 전에는 단정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고귀한 느낌이 더해져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한쪽에 있던 시녀들도 칭찬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정작 목운요는 만족스럽지 않은 듯 한참을 살피다가, 빨간색 연지를 민방화의 미간에 살짝 찍었다. 그제야 그녀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어요.”

초씨 노부인이 옆에서 보더니 연신 감탄했다.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네요. 역시 군주의 안목이 뛰어납니다.”

“과찬이십니다.”

목운요가 웃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때, 밖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노부인. 시간이 다 됐습니다. 신부 꽃가마가 와 있고 유왕 전하께서도 도착하셨습니다.”

유왕이 직접 맞이하러 왔다는 소식에 민방화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민방화는 면사포를 쓴 다음 큰오라버니의 등에 업혀 나갔다.

민방화가 가마에 오르는 것을 본 목운요는 민씨 가문의 감사 인사를 받고 궁으로 향했다.

혼례는 명광전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명광전에 도착해 자리를 잡자마자 월왕이 바로 옆에 와서 앉았다.

“요아, 힘들진 않느냐?”

“견딜 만해요. 그래도 나중에 유왕 전하한테서 금일봉을 받아 내야겠어요.”

“당연하지. 둘째 형님네 형편이면 얼마든지 줄 것이다.”

“그나저나, 왜 유왕 전하와 함께 신부를 맞이하러 가지 않으셨죠?”

“가려고 했는데 큰형님께서 말리셨다.”

두 사람은 혹시라도 대화 내용이 새어 나갈까 봐 서로의 간격을 더 좁혀 앉았다.

그 광경을 본 릉왕은 경멸의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다른 관원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집중했다. 월왕과 온한 군주의 관계에 대해 들은 적은 있지만,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다 보니 다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곧 만천하에 알려질 것 같았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추측이 난무하던 그때, 큰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와 장공주 전하께서 행차하십니다……!”

사람들은 우르르 인사를 올렸다.

머지않아 유왕 일행과 신부를 태운 가마가 명광전 앞에 도착했다.

유왕의 손을 잡고 가마에서 내리는 민방화를 보고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민방화의 혼례복은 기존의 양식과 꽤나 달랐다. 치맛자락이 더 길게 늘어져 금실로 장식되어 있었고, 살아 숨 쉬는 듯한 자수뿐만 아니라 테두리에 수놓아진 백자백복(百子百福) 꽃무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허리를 조이는 띠도 다른 혼례복보다 좀 더 넓어 허리 곡선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고, 두 층으로 된 넓은 소매까지 더해져 몸짓에 우아함을 한층 더했다.

유왕은 최대한 티를 안 내고 싶었지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렸다. 결국 다 내려놓고 시종일관 활짝 웃으며 기쁜 마음을 맘껏 티 냈다.

혼례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황제와 장공주에게 인사 올린 다음, 제 귀비에게 인사 올리고, 부부 맞절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다음은 내시가 하사품 목록을 읊는 순서였는데, 한 시진이 걸려서야 다 읊을 수 있었다.

민방화가 신방으로 가자, 유왕은 연회석에서 손님들에게 술을 권했다.

반면 어마어마한 하사품 목록을 들은 릉왕은 표정이 무척 어두워졌다. 게다가 유왕의 술을 받은 황제와 장공주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표정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목운요는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폭풍전야.

릉왕과 유왕의 싸움이 곧 막이 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목운요는 멍하니 있다가,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얼른 고개를 들었다.

소매가 술에 젖은 릉왕이 극도로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둘째 아우, 나한테 술을 권하기 싫다고 하여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에 유왕이 눈웃음을 지으며 손수건으로 직접 젖은 옷을 닦아 주었다.

“아우가 오늘 너무 기쁜 나머지 실수했네요. 형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아무리 기분 좋다고 해도 장유유서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맞습니다. 제가 사죄드리지요. 오늘 제가 장가가는 좋은 날이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럼 어디 성의를 보여 줘 보지.”

릉왕은 곧 내시한테 큰 사발을 가져오라 명했다. 내시가 머뭇거리자 릉왕이 크게 호통쳤다.

“쓸모없는 것들! 이 넓은 황궁에서 큰 사발 하나 못 찾아내는 게냐?”

그에 유왕이 내시를 뒤로 보내더니, 술 단지를 집어 들어 그대로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단지 하나를 다 비운 그가 릉왕을 향해 웃어 보였다.

“형님, 이걸로 제 성의가 느껴지셨나요?”

릉왕은 분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화가 났다. 뭐라고 대꾸하려던 그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

“군유. 군월한테도 술을 권하고 여러 대신도 두루 챙겨야지. 그래도 도를 지나치진 말게나. 술에 취해 첫날밤을 놓치면 안 되니까.”

릉왕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듯 어두워졌다. 부황이 도를 지나치지 말라고 한 건 분명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단지 술을 먹였을 뿐인데 이렇게 감싸고 돌다니.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부황은 무조건 유왕의 편을 들게 분명했다.

이번 대결에선 자신이 완패했다.

어찌 됐든 오늘은 유왕의 경삿날이고 문무백관이 함께 있는 자리기에,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티를 내는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결국 상황 판단이 어둡고 도량이 좁다는 악명만 남길 뿐이다.

황제가 나서 준 덕에 유왕은 월왕한테 술잔을 넘기며 말했다.

“자, 우리 아우. 모든 걸 술잔에 담아 한잔 올린다.”

월왕은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단숨에 잔을 비웠다.

표정이 한결 나아진 유왕도 잔을 비우고 나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형님, 적당히 마십시오.”

유왕이 감격스러운 듯 답했다.

“역시 넷째 아우밖에 없다.”

“그나저나 운요가 형수님을 위해 힘써 줬으니, 형님께서 당연히 금일봉을 주실 거지요? 적게 주면 운요가 서운해할지도 모릅니다.”

방금 전까지 감동에 젖어 있던 유왕은 순식간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는 눈앞에서 웃고 있는 월왕과 목운요를 번갈아 보며 닮아 가는 두 사람에 탄복했다.

“걱정 말거라. 잊지 않을 테니.”

연회는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유왕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고, 술도 빠짐없이 받아 마셨다.

연회가 무르익자 황제와 장공주는 자리를 떠났다.

목운요는 진동하는 술 냄새 때문에 잠시 밖으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월왕이 미소 띤 채 다가왔다.

유왕을 대신해 술을 몇 잔 받아 마신 월왕은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윽한 눈빛에 몽롱한 빛이 서려, 상대로 하여금 빨려 들어가게 했다.

그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두 손으로 목운요의 얼굴을 감쌌다. 독한 술보다도 사람을 취하게 하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귀 끝까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요아, 나 많이 아프다.”

목운요가 바로 맥을 짚으며 물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월왕이 목운요의 손을 가슴에 갖다 대었다.

“여기, 여기가 아파.”

그녀가 그의 가슴을 살짝 밀치며 대답했다.

“마음의 병은 약이 없어요. 아쉽지만 제가 도울 수가 없겠네요.”

“무엇 때문에 아픈지 물어봐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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