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만족스러운 혼례복
목운요를 따라 장공주가 있는 곳에 도착한 선령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눈은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외할머니를 뵙습니다.”
장공주는 안으로 들어서는 선령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독 낭자가 이토록 미인이었는지 생각도 못 했구나.”
“장공주 전하, 절 알아보시겠어요?”
선령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장공주가 자애로운 눈빛으로 온화하게 웃으며 답했다.
“사람이 겉모습이 아무리 변해도 눈빛과 분위기는 그대로인 법이지. 한눈에 알아봤단다.”
“사실 장공주 전하의 곁에 남고 싶습니다. 제가 의술도 알고 독술도 알거든요. 전하 곁에서 보필하고 싶습니다.”
장공주가 잠깐 놀라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내 곁에 있으면 자유롭지 못해 차라리 요아 곁이 더 나을 거다. 요아가 순진해서 곁에서 지켜 줄 사람이 있어야 하거든. 내 청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선령이 목운요를 힐끔 보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당연하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운요를 잘 보살피겠습니다.”
목운요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선령이 이토록 아이같이 유치한 성격인 줄은 미처 몰랐다.
* * *
궁이 잠잠해지자 목운요는 다시 민방화의 혼례복 제작에 몰두했다.
장공주는 하운방과 궁을 바삐 오가는 목운요가 안쓰러워 장공주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황제에게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만에 혼례복이 드디어 만들어졌다. 완성된 혼례복을 보고 하운방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었다. 목운요도 결과물을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마침 하운방에 들어서던 월왕과 유왕, 그리고 민방화는 눈앞에 걸려 있는 혼례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민방화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린 채 소리를 질렀다.
“운요,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목운요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나중에 제가 혼사 치를 때 두 분께서 선물을 많이 보내 주시면 됩니다.”
예상대로만 된다면 유왕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고, 민방화는 미래의 국모가 될 것이다. 이 한 번의 도움으로 나중에 더 많은 보답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죠.”
민방화는 고마움을 가슴 깊이 새겼다. 혼례복에 수놓아진 봉황을 어루만지던 그녀는 당장이라도 입어 보고 싶었으나, 목운요가 다급히 말렸다.
“방화 언니, 혼례복은 평생 한 번만 입어야 하는 옷이라 혼례 당일에 입어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옷이 너무 예뻐서 그만 잊고 말았네요.”
민방화의 눈이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혼례를 더 빨리 정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한편 혼기가 다가올수록 민씨 가문은 더욱 엄해졌다. 오늘도 겨우 한 시진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그녀는 옷을 보고 몇 마디 나눈 뒤 바로 돌아가야만 했다.
두 사람을 보낸 후, 월왕이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며 목운요의 손을 잡아 이마를 맞댔다.
“요아. 곧 칠월이란다.”
목운요가 일부러 모른 체하며 딴소리했다.
“그러게요. 벌써 유월 중순이네요. 날이 너무 덥죠?”
월왕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쓸어내렸다.
“우리가 한 일 년 기약까지 삼 개월도 채 안 남았다는 얘기다. 지금부터 미리 혼례복을 준비해 두거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인이 혼례복까지 입으면 아마 온 세상이 기가 죽을 것이다.”
목운요가 머리로 월왕의 이마를 툭 쳤다.
“전하가 하는 거 봐서요.”
그러고는 곧장 도망갔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웃으며 장난을 쳤다.
월왕이 목운요를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월왕부의 연꽃이 활짝 폈다. 오늘 같이 가 보지 않겠느냐?”
“좋아요.”
목운요는 성 공공에게 줄 다과를 챙긴 다음, 월왕부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 * *
월왕부 내에선 성 공공이 뒷짐을 진 채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지 그가 인상을 썼다.
“당신들이 서릉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들이라 하지 않았나? 어쩜 화단을 이렇게 안 예쁘게 꾸밀 수가 있지?”
꽃장수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월왕부는 원래 황폐한 곳이었다. 그나마 하인들이 관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작에 폐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꽃장수들에게 일이 맡겨졌다. 처음에 그들은 승부욕을 불태우며 최대한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려고 했다. 그러나 꽃 하나를 심을 때마다 월왕과 성 공공이 트집을 잡으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화단이란 자고로 색상 조합, 일정한 높이, 품종 조화, 그리고 꽃말이 생명인데, 두서없는 지시가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점차 정원은 엉망이 되어 갔다.
그때, 우의가 달려와 알렸다.
“성 공공, 왕야와 온한 군주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가 보세요.”
성 공공은 눈을 반짝이며 빠른 걸음으로 대문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땐 마침 목운요가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목운요는 자수가 없는 하늘색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고급 비단이 물결처럼 반짝였고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렸다. 거기에 간단한 장신구까지 더해지니 산뜻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넘쳐흘렀다.
반면 옆에 있는 월왕은 검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훤칠한 몸매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사로웠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니 누가 봐도 선남선녀, 천생연분이었다.
성 공공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며 인사를 올렸다.
“왕야와 목 소저를 뵙습니다.”
“성 공공, 예를 거두세요.”
웃는 얼굴로 반겨 주는 성 공공을 보자 목운요의 입가에도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새로 만든 다과를 가져왔는데, 그리 달지 않아 성 공공 입맛에 맞을 거예요. 이따가 드셔 보세요.”
성 공공은 크게 감동하여 말했다.
“고맙습니다, 목 소저.”
이내 월왕부에 들어선 목운요는 눈앞의 광경에 놀라서 물었다.
“사야, 정원을 단장 중인가요?”
“그래.”
주위에 새로 심은 꽃들이 보였고, 자갈로 만든 길까지 생겼다. 예전에 아무것도 없던 정원에 비해 뭔가 볼거리가 많아지긴 했지만…….
“요아, 마음에 드느냐?”
목운요는 눈을 깜빡이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했다.
“뒷마당도 하시나요?”
“성 공공이 화단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한창 꽃을 심고 있을 거다.”
“가 봐도 될까요?”
“그럼.”
뒷마당에 도착한 목운요는 눈앞의 화단과 아무 표정이 없는 월왕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사야, 이 화단이 예뻐 보이나요?”
월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여러 가지 색이 더해지니 화사하고 좋구나.”
성 공공이 옆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목 소저,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불선루 화단은 엄청 보기 좋았는데, 이 장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통 그 느낌이 안 나네요.”
그 말에 장인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불선루 정원은 사실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 덕에 몸값이 올라 유명세를 치렀던 것인데, 아무래도 월왕부 공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람들이 불러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장인들의 난처해하는 표정에 보다 못한 목운요가 나섰다.
“사야, 정원을 단장하기 전에 도면을 그리지 않았나요?”
“난 다른 사람이 내 집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한다.”
그에 목운요는 웃음을 머금은 채 물었다.
“그럼 제가 도면을 그려 줄 테니 그대로 정원을 가꾸는 건 어떨까요?”
“당연히 좋지.”
월왕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일단 멈추고, 제가 도면을 그린 다음 다시 시작하는 걸로 합시다. 그나저나 연못 쪽은 나름 잘 만들어졌네요. 혹시 사야께서 지시하신 건가요?”
월왕이 난처한 듯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건 내가 강남에 있을 때 만들어졌으니, 저들이 알아서 만든 건가 보지.”
“그럼 성 공공께서 지시하신 건가요?”
기습 질문에 성 공공도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당시엔 왕야의 안위가 걱정돼서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혹시 맘에 안 드시나요? 그렇다면 새로 고치라고 하지요.”
“아뇨, 아주 좋아요.”
목운요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월왕부 전체를 뜯어봤을 때 그나마 연못 주위가 가장 잘 만들어진 편이었다.
그 말에 성 공공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도망갈 방법을 찾아냈다.
“왕야께선 소저와 함께 연못 경치를 구경하시지요. 소인은 음식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연못은 크진 않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나 오솔길과 연결되어 있었고, 양쪽에 난초와 수양버들이 우거져 있어 산뜻하고 운치가 넘쳤다.
목운요와 월왕은 정자에 앉아 연못 안에 비단잉어가 헤엄쳐 다니는 풍경을 감상했다.
목운요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연못 경치를 바라보다가, 월왕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었다. 월왕은 어깨 힘을 빼며 목운요에게 편안함을 더해 주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기만 했을 뿐인데 두 사람 주변이 온통 달콤함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함께 의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진왕의 일과 혼례복 준비로 바삐 돌았던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이에 월왕은 조심스레 팔을 벌려 목운요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두 눈에 새겨 두기라도 하듯 그녀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멀리서 오던 성 공공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발걸음을 멈췄다.
반면 사태 파악을 못 한 우항이 물었다.
“성 공공, 왕야께 담요라도 가져다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성 공공이 우항을 째려보며 말했다.
“머리가 나쁜 게냐?”
“담요라도 덮어 주면 주인님이 세심하다고 느껴질 거 아닙니까?”
성 공공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항, 네가 왜 여태 혼자인지 아느냐?”
“네?”
“내가 한 수 가르쳐 주마. 남녀 사이는 말이지, 춥다고 해서 따뜻하게 해 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우항이 미심쩍은 얼굴을 했다.
“그런데 성 공공께서 어찌 이런 것을 알죠?”
그에 성 공공은 심오한 듯한 표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 버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우항은 우의한테 다시 물어보았다.
“대체 성 공공은 왜 담요를 가져다주지 못하게 하시는 걸까?”
“왕야 자체가 불같이 뜨거우신데 뭐가 더 필요하겠어?”
우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그럼 아니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네 자리로 이만 돌아가 줄래?”
우항이 어리둥절해하며 걸음을 옮겼다. 역시, 노련함은 따라갈 수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