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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33화 (333/442)

333화 어긋난 의도

* * *

옥화궁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어머니, 외할머니와 함께 식사한 뒤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왕에 대해 반감이 있던 허연한은 그가 실명하고 두 다리까지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모르게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요아, 네가 봤을 때 진왕이 완치될 가능성이 있니?”

목운요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방법은 있을 거예요. 의서에서 본 바로는 구맥금침술(九脉金针術)이 어혈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라 실명을 치료했던 전례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의술이 아직 부족해 도움이 되진 못할 것 같아요.”

“전에 있었던 태의원 원정 김현(金賢)이 금침을 기막히게 잘 다뤘었는데. 하지만 진비와 이 귀비가 한창 암투 중일 때 진비에게 모함을 당해 두 손을 잃게 되었지.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 진왕을 치료할 수 있었을 게다.”

처음 듣는 얘기에 목운요는 놀란 눈을 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장공주가 곡 마마를 향해 말했다.

“이 소식을 이 귀비한테 전해 주거라.”

“네.”

이 귀비가 알게 되면 후궁 전체에 소식이 퍼지는 건 한순간의 일이리라. 진비와 진왕이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할지 벌써 상상이 되었다.

소식을 들은 이 귀비는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토록 기분 좋은 날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정말 인과응보로구나. 마차를 대기시켜라. 오랜만에 좋은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그때 당시 김현은 이 귀비가 임신할 수 있도록 몰래 도와주고 있었다. 한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진비가 김현에게 오진이라는 누명을 씌워 두 손을 잘라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 귀비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었다.

그랬는데,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이야?

소식은 순식간에 궁중에 널리 퍼졌다.

후회막심한 진비는 곧장 사람을 시켜 김현의 후손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김현이 서릉을 떠난 지가 벌써 십여 년이 지나, 종적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

* * *

릉왕은 비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진왕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진왕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반응을 보였지만, 속내는 답답함에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릉왕이 한바탕 비웃고 떠난 뒤, 그는 곧바로 베개 밑에 숨겨 뒀던 환약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일부러 사람을 부른 다음 꿀꺽 삼켜 버렸다.

부름을 듣고 온 궁녀들은 눈앞의 상황에 깜짝 놀랐다. 진왕이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고, 입가에서는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서 태의를……!”

서둘러 뛰어온 태의는 맥을 짚어 보더니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중독이다! 어서 온한 군주와 태의들을 불러오너라!”

* * *

한창 의서를 정독 중이던 목운요는 바깥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이마를 찌푸렸다.

“금란, 무슨 일이죠?”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금란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궁녀 한 명이 다급히 들어와 목운요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군주님, 저희 전하를 살려 주십시오!”

궁녀는 이마에 멍이 들 정도로 바닥에 힘껏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궁녀를 바라보던 목운요는 못내 짜증이 밀려왔다.

황실에선 오로지 싸움만 일삼는다더니, 지금 이 상황에서도 쉬지 않고 꿍꿍이를 벌이고 있나 보다.

“어떤 전하를 살려 달라는 것이냐?”

“진왕 전하입니다.”

“살려 달라면서 상황 설명 없이 머리만 조아리는구나. 정말 살려 주길 바라는 것이냐, 아니면 내가 제때 살리지 않았다고 모함하기 위해서냐?”

궁녀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려 버렸다.

“소인, 급한 마음에 미처 설명드리지 못했습니다. 진왕 전하께서 중독되어 태의들이 진료하고 있는 중입니다.”

“금란, 약상자 챙겨요.”

“네.”

목운요가 중화궁에 도착했을 땐 태의들이 우왕좌왕 바삐 돌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황제는 슬프게 울고 있는 진비를 다독이는 중이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목운요의 인사에 진비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왔다.

“군주의 의술이 뛰어나다 들었는데, 군진을 살려 낼 수 있는 것이냐?”

“일단 진왕 전하의 상황을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진왕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나 있었다. 체온이 낮으며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목운요가 옆에 있던 태의한테 물었다.

“최토(催吐, 구토가 나게 함.)는 했나요?”

“이미 해 봤는데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해 보시죠. 보통 독약이 아닌 듯합니다.”

“네.”

태의들이 다시 한번 최토를 한 다음 해독 탕약을 먹였지만, 여전히 큰 효과가 없었다.

당황한 진비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계획대로라면 구토만으로도 증상이 완화되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자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목운요는 진왕의 몸에 침을 놓고 나서 태의들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대화를 마친 목운요가 황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진왕 전하의 몸에 퍼진 게 여태껏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독이라,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해독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일전에 폐하께 말씀드렸던 독 낭자가 독술에 일가견이 있으니,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알겠다. 당장 사람을 시켜 데려오거라.”

진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두독(烏頭毒)은 흔히 볼 수 있는 독인데, 어찌 목운요와 태의들 모두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거지?

“온한 군주, 진왕이 무슨 독에 걸린 건지 모르겠다는 건가?”

“네. 독성이 특이해 일반 해독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진비가 말을 꺼내려다가 머뭇거렸다.

목운요는 그런 진비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반 시진 뒤, 얼굴을 가린 독 낭자가 시위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얼굴을 가린 독 낭자를 보고 황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를 본 목운요가 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폐하, 독 낭자는 한씨 가문에 의해 용모가 훼손되어, 어쩔 수 없이 매일 얼굴을 가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폐하에 대한 불경이 아닌 다른 이들을 배려하기 위함이니 양해 바랍니다.”

“그래, 알겠다. 예를 거두고 어서 진왕의 상황을 살피거라.”

“네.”

독 낭자가 진왕의 맥을 짚어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온한 군주께서 은침으로 도움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왕 전하의 증상으로 보아 백박산(百魄散)이라는 흔치 않은 독약으로 보입니다. 이는 독왕곡에서 만들어 낸 것으로, 중독될 시 점차 의식이 희미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독성이 강해져 혼수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진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몸을 휘청거렸다.

“아니…… 그럴 리가…… 아니야…….”

궁녀가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다.

“마마, 진정하십시오!”

하마터면 사실을 말할 뻔한 진비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번뜩 정신을 차렸다.

“운요, 부디 진왕을 살려 내거라.”

“진비 마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의들은 곧장 가지고 있는 은침을 모두 내놓았다. 독 낭자는 은침을 하나하나 살피며 정성스레 골랐다.

“군주, 이 독은 백박산이라는 이름대로 독성이 신체의 백 군데 혈 자리를 지나기에, 은침으로 모든 혈 자리를 막은 다음 해독약을 먹어야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군데 혈 자리라도 잘못 찌르면 독성이 그대로 남아 신체 불구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목운요가 독 낭자를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혈 자리를 정확히 짚어 준다면 절대 어긋나지 않을 겁니다.”

“네.”

독 낭자가 태의들을 향해 말했다.

“옷을 입은 상태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니 모든 의복을 벗기십시오.”

이에 태의들이 머뭇거리며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목숨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 시킨 대로 하거라.”

“네.”

이내 진왕이 속바지만 입은 채 누웠다.

독 낭자는 은침을 분배한 뒤 혈 자리를 짚으며 목운요에게 지시했다.

“백회, 인영, 단중…….”

지시에 맞춰 목운요가 빠르고 정확하게 침을 놓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태의들은 눈이 번쩍 떠졌다.

독 낭자의 침술을 보자 실로 놀라운 마음만 들었다. 게다가 온한 군주가 침술마저 능통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편 독 낭자의 지시대로 은침을 꽂던 목운요의 머릿속에는 옛날 일이 하나 떠올랐다.

진왕부에 있을 때, 첩실로 있던 왕 씨가 그녀에게 몰래 독약을 먹인 적이 있었다. 때마침 독 낭자에게서 금침술을 배우고 있던 때라, 왕 씨를 몰래 납치해 몸의 혈 자리에 온통 은침을 꽂은 적이 있었다.

“그만.”

독 낭자의 말과 함께 목운요는 동작을 멈추었다. 어느새 백 개의 침을 모두 놓은 뒤였다.

긴 시간을 집중하다가 긴장을 놓았더니 눈앞이 핑 돌았다.

독 낭자가 냉큼 다가와 목운요를 부축했다.

“군주, 괜찮으세요?”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군주 덕분에 진왕 전하께서 살아남은 겁니다.”

독 낭자는 목운요 앞으로 공을 돌리곤 약을 달이러 갔다.

잠시 뒤, 독 낭자가 탕약을 들고 돌아왔다.

한데 진왕이 입을 꼭 다물고 있어 도저히 약을 먹일 방법이 없자, 태의들은 허둥지둥했다.

이를 본 독 낭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태의들이 참 머리가 나쁘네. 스스로 마시지 못하면 강제로 입을 열어 부어 넣으면 될 것을.”

그에 옆에서 지켜보던 진비가 참다못해 한 소리 했다.

“무례하구나!”

독 낭자가 고개를 돌려 이상한 눈빛으로 진비를 쳐다봤다.

“그럼 이대로 죽게 둘까요?”

“너…….”

독 낭자의 거침 없는 태도에 진비는 어이없어 말문이 막혀 버렸다.

목운요가 나서서 말렸다.

“진비 마마, 고정하십시오. 독 낭자가 궁중 규율에 대해 잘 모르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십시오. 지금은 약을 먹여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일 듯합니다.”

황제가 진비를 슬쩍 보더니 태의한테 명했다.

“약을 먹이거라.”

“네.”

태의들은 진왕의 입을 강제로 열어 약을 먹였다. 언제나 한결같이 우아하던 진왕에 대한 인상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약을 모두 먹인 뒤, 독 낭자와 목운요는 은침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진왕이 눈을 번쩍 뜨더니 시커멓고 비린내 나는 토사물을 토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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