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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31화 (331/442)

331화 월왕의 약속

혹여나 장공주가 놀랄까 봐, 목운요는 허연한에게 털어놓았던 것처럼 회귀 전의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이야기를 들은 장공주는 마음 아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꿈속에서 미리 일생을 보지 않았더라면, 네 어머니가 장 씨한테 팔려 가 목숨을 잃었을 거란 말이지?”

“외할머니, 너무 상심 마세요. 지금은 무사하시잖아요. 아무래도 하늘이 저를 불쌍히 여겨 꿈속에서 귀띔을 주어, 어머니와 함께 화를 피해 도망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목운요의 말에 장공주도 겨우 진정이 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이해 가지 않았던 일들이 그제야 답을 찾은 듯했다.

“어쩐지 네가 할 줄 아는 것이 많다 했더니, 꿈속에서 일생을 겪어서 그런 거였구나. 진왕한테 시집을 간 거였니?”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시집은 아니고 첩실이었어요.”

목운요의 대답을 들은 장공주는 미간을 힘껏 찌푸렸다.

가난한 자의 아내가 될지언정, 부잣집의 첩실은 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첩실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견뎌 내야 하는지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전 월왕부에서 숨을 거뒀어요. 하지만 죽기 전까지 진왕이 왜 저를 거기로 보냈는지 몰랐죠. 그러다 제 출신을 알게 되고, 또 사야께서 조사해 주셔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진왕은 제가 외할머니의 손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숨겼던 거예요. 그러다 월왕의 세력이 점차 커지자 저를 물건처럼 월왕부로 보내 버린 다음 저를 그곳에서 죽인 거죠. 제 신분과 사인을 외할머니께 알려 그걸 빌미로 월왕을 해하려던 것이에요…….”

장공주는 가슴이 떨려 왔다. 목운요의 냉담한 표정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요아, 고생이 많았구나.”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데, 그 속에서 직접 겪은 아이는 얼마나 쓰라릴까. 그제야 목운요가 가진 진왕에 대한 깊은 원한이 이해가 갔다. 자신이 그녀였더라면 아마 진작에 진왕의 사지를 갈라놓았을지도 몰랐다.

“외할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모두 꿈인걸요. 하룻밤의 악몽일 뿐이에요. 그 꿈 덕분에 저와 어머니도 이렇게 무사히 잘 살아 있고, 모든 게 그때와 달라졌어요. 게다가 외할머니도 찾고,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전 이걸로 충분히 만족해요.”

장공주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래. 나도 그만 슬퍼할 테니 너도 더 이상 아픈 일은 떠올리지 말거라. 진왕이 감금형을 피하려고 고육지책을 쓰고 또 하필 네가 치료를 맡게 됐으니, 아무래도 하늘이 준 복수의 기회가 아닌가 싶구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이 외할머니가 책임져 주마.”

목운요는 그 말에 웃으면서 장공주에게 기댔다.

“외할머니, 저는 절대로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지 않아요. 제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폐하께서 절대 그자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래.”

목운요가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한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면 그만이다. 어차피 지금까지 수도 없이 피를 묻혀 왔기에, 한 사람의 피를 더 묻힌다고 해서 바뀌는 건 결코 없을 것이다.

“요아, 어서 돌아가서 쉬어라.”

“네. 외할머니께서도 편히 주무세요.”

“그래.”

장공주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나니 목운요는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미소 지은 채 걸어 나오는데, 문밖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사야……!”

월왕은 복잡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운요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월왕 곁으로 다가갔다.

“……일단 제 방으로 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방으로 향한 목운요는 금란과 금교를 내보낸 뒤, 무표정한 얼굴의 월왕을 돌아보았다.

“외할머니와 한 얘기를 다 들으신 건가요?”

“요아, 전부 사실이냐?”

“네. 그 꿈 덕분에 저와 어머니의 인생이 바뀌었고, 그 밖의 모든 일에 변화가 생겼죠.”

월왕이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수, 다도, 의술까지. 보통 여인이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지.”

“이제 그 답을 아셨네요.”

목운요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월왕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월왕부에서 죽었다고 했지? 혹시 네가 나에게 지켜보라고 했던 유남과 연관이 있는 것이냐?”

“네, 저를 죽인 이들 중 하나죠. 배후에서 지시한 자는 진왕이고요…….”

순간 월왕의 마음속에서 짙은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유남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목운요가 그린 초상화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몰래 수소문했었다. 그러다 다른 일 때문에 잠깐 방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데 그들이 그녀를 해쳤다는 것을 알자, 당장이라도 찾아가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월왕은 깊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겨우 목구멍까지 올라온 살의를 억누를 수 있었다. 그가 고개 숙인 채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목운요의 손을 잡았다.

“요아, 왜 그러고 있는 것이냐.”

월왕을 쳐다보는 목운요의 눈빛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약함이 서려 있었다.

“사야, 혹시 제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리시나요?”

“무슨 말?”

목운요가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진왕의 첩이었고, 또…….”

그때, 월왕이 힘껏 목운요를 품으로 당겨 안았다. 두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요아, 그럴 일 없다. 꿈속에서 겪은 일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해도, 널 향한 내 마음은 한결같을 거란다.”

그제야 그녀가 월왕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미소를 지었다.

“사야께서 이 일로 저를 멀리하신다면, 전 사야를 죽일 수도 있어요…….”

월왕이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미소 지었다.

“그래. 내 마음이 변하는 날, 바로 나를 죽여도 좋다.”

월왕은 이번 일로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그가 목운요의 손을 움켜쥔 채 손끝을 가볍게 문질렀다.

“요아, 진왕은 어떻게 할 생각인 것이냐?”

그녀가 왜 진왕을 그토록 증오하는지 알게 되자, 월왕도 덩달아 그에게 살의까지 생겨났다.

목운요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설마 제가 궁에서 진왕한테 무슨 짓을 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죠?”

“진왕이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이니 약간의 수단만으로도…….”

“사야, 폐하는 만나 보셨나요?”

“문안드리러 갔으나, 부황께서 만나 주지 않으셨다.”

“폐하께서도 후회하고 계실 거예요. 아무래도 진왕은 가장 아꼈던 황자니까요. 진왕이 생사를 오가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시겠죠. 그런 시점에서 진왕을 죽인다면, 아마 폐하께선 그자가 저지른 죄를 모두 잊고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실지도 모릅니다.”

“네 말이 맞구나.”

“그래서 전 때를 기다릴 생각이에요. 진왕이 비열한 수단으로 저를 해했던 것만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예요.”

목운요는 손쉽게 그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보다, 그의 생을 모조리 짓밟아 버리는 복수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월왕이 살며시 목운요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네가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시간이 늦었으니 난 이만 가 보마.”

목운요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 * *

궁을 나선 월왕은 곧장 월왕부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성 공공이 다급히 다가왔다.

“왕야, 상황이 어떠한가요?”

“진왕이 자해를 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지금 의식이 없어 태의들의 진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월왕은 대답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서재에 들어가 전에 목운요가 그렸던 초상화를 찾아냈다.

“유남은 요즘 어떤 상황인가.”

“몰래 진왕의 외삼촌들과 왕래하다가, 두 사람이 옥에 갇히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최근엔 그래도 다시 정신이 돌아온 듯합니다.”

“다른 이들의 행방은?”

“며칠 전에 동섭(董聂)이라고 하는 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초상화 중 하나와 생김새가 똑같았습니다. 나머지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유남과 동섭 두 사람을 가둬 두어라. 내가 직접 고문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지하 감옥에 들어간 월왕이 한 시진 정도 뒤에야 피비린내를 풍기며 방으로 돌아와, 옷을 한쪽에 벗어 던졌다.

“이 옷들을 다 태워 버리게.”

“네.”

옷을 집어 들자, 옷자락에 묻어 있던 피로 손이 뻘겋게 물들었다. 대체 두 사람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왕야께서 이토록 화를 내시는지 궁금했다.

그사이 목욕을 마친 월왕은 옷을 갈아입고 연무장 옆에 있는 연못으로 나왔다.

공들여 연구하고 굴착한 결과, 연못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밤바람이 불자 수면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고, 연잎이 살랑살랑 춤을 췄다. 고요하고 운치 있는 풍경이 딱딱한 월왕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성 공공이 초롱을 들고 월왕 곁으로 다가갔다.

“왕야, 연못이 다 만들어졌는데 언제쯤 목 소저를 초대하실 건가요?”

목운요가 연못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을 생각을 하니, 월왕 주변을 감돌던 냉기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머지않아 그의 눈빛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궁의 일이 처리되면 그때 운요를 데려와야지.”

성 공공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소인 생각에 월왕부에 꽃을 심어 사계절 꽃이 피어 있도록 가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월왕부에서 사계절 꽃 구경이 가능해지면 목 소저도 더 오래 머물다 갈 것이다. 왕야도 어느덧 가정을 이룰 나이가 되었으니, 언제까지 혼자 둘 순 없었다.

“정원을 가꾸는 장인들을 데려다가 월왕부를 가꿔 두게.”

월왕도 찬성의 뜻을 보이자 성 공공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내일 당장 장인들을 불러 월왕부를 선경으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 * *

목운요와 태의들이 사흘 동안 정성 들여 돌본 끝에, 진왕이 드디어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나흘째 밤, 침상에 누워 있던 진왕이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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