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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30화 (330/442)

330화 결백을 주장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할 것 같구나. 마지막으로 묻는다. 네 죄를 인정하느냐?”

진왕은 덜컥 겁이 났다.

“부황, 그게 무슨…….”

“네가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릉왕과 함께 귀경하라는 짐의 어명을 어긴 죄를 처벌해 달라고.”

진왕의 가슴이 바닥으로 쿵 내려앉았다.

“부황. 소자가 임강성에 며칠 더 머무른 이유는 제 대인을 도와 공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입니다. 강남에 폭우가 내릴 경우 임강 강둑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 임강성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에…….”

“누굴 위해서인지는 알고 싶지 않다. 확실한 건 네가 짐의 어명을 어겼다는 사실이다. 설마 네 입으로 뱉은 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냐?”

진왕이 주먹을 꽉 쥔 채 황제를 응시했다. 황제의 차디찬 눈빛을 보자 한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소자…… 인정합니다.”

“그래도 부자지간이니 살길은 남겨 두마. 죽을죄는 면하더라도 고생살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명을 거역한 죄로 너의 진왕 봉호를 면제하고, 지금 거주 중인 진왕부 내에서만 머물되 모든 외출을 금한다. 짐의 명령 없이 아무 데도 나갈 수 없고, 그 누구도 면회 금지다.”

진왕이 저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부황, 소자를 감금하시는 겁니까?”

“어명 거역은 죽을죄다. 그나마 감금형을 내린 것도 자비를 베푼 것이다. 봉호를 면제하지만 하인은 그대로 둘 터이니, 앞으로 스스로 알아서 하거라.”

진왕이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

“부황, 대체 소자한테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부황께서 맡기신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큰형님의 괴롭힘에도 늘 참고 양보했지요. 그동안 소자가 한 모든 일이 부황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겁니까? 이번에 강남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큰형님은 가만히 두고, 최선을 다한 저에게만 벌을 내리시다니, 혹시 모비의 미천한 출신 때문입니까?”

그동안 마음속에 억눌렀던 말이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를 쳐다보는 황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군진. 짐도 내놓을 만한 출신이 아니다. 외려 그 고통을 잘 알기에 그동안 너와 네 모비를 유독 총애하였지. 정작 너에 대한 은정은 전혀 헤아리지 않는구나. 이만 나가거라. 다신 보고 싶지 않다.”

진왕은 주먹을 꽉 쥔 채 분에 못 이겨 씩씩거렸다.

“이대로는 못 갑니다. 감금형을 내린 건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들어야겠습니다.”

황제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상주서를 집어 들더니 진왕을 향해 내던졌다.

“네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진왕이 상주서를 들어 빠르게 훑어보더니,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 갔다.

“부황, 거지들의 은자 은닉 사건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세금을 서릉으로 옮기라고 사주한 적도 없습니다. 이건 분명 모함입니다. 부황께서 철저히 밝혀 주십시오.”

“그자들은 이미 네가 배후라고 자백했다. 짐이 조사한 결과, 네 외삼촌들도 그들과 확실히 왕래가 있었다.”

“그럴 리가요!”

진왕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소금세는 은표로 서릉에 옮겨진 것이었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음모였다! 혹시 아까 비꼬러 왔던 릉왕일까? 진왕이 갑자기 고개를 휙 들었다.

“부황, 제가 봤을 때 이 모든 것은 큰형님의 짓입니다. 제가 서릉에 없는 틈을 타, 이씨 가문의 힘을 이용해 증거를 조작하고 저를 모함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함?”

황제가 비소를 지었다. 그림자 호위들이 조사를 마쳤는데도 잡아떼는 진왕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좋다. 그럼 모함이라는 증거가 있느냐?”

진왕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부황. 소금세가 적은 금액이 아니니 그 많은 은자를 모으려면 기필코 빈틈이 있기 마련일 겁니다. 사람을 시켜 이씨 가문을 조사해 보면 단서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군진. 수색해 낸 금액이 족히 이백만 냥이나 된다. 이씨 가문이 널 모함하기 위해 그 짧은 시간 내에 이 금액을 모을 만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진왕은 입만 뻥긋할 뿐,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말을 결코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은표의 행방이 묘연한 탓이다. 말해 봤자 변명이라 생각할 게 뻔하고 도리어 릉왕과 이씨 가문에 당할지도 몰랐다.

어떡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진왕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황제가 손짓했다.

“그만 가 보거라. 짐도 그만 쉬어야겠다.”

진왕은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눈빛에는 짙은 피곤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 표정이 오히려 진왕을 더 당황스럽게 했다.

화를 낸다는 건 그만큼 기대를 했다는 뜻이다. 화가 사그라들면 적어도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완전히 포기한 듯한 모습은 절대 안 되었다.

“부황, 왜 소자를 믿어 주시지 않는 겁니까? 소자 정말 억울합니다!”

“사람을 시켜 끌어내야 나갈 테냐?”

진왕은 눈물범벅으로 몸을 숙이며 황제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부황. 소자의 능력이 부족해 오히려 근심과 걱정을 끼쳐 드려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소자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온 천하에 제 결백을 밝히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황제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군진, 그게 무슨……!”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왕이 옆에 있는 기둥을 향해 돌진했다.

퍽!

기둥에 부딪히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새빨간 핏자국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진왕이 힘없이 바닥에 늘어졌다.

황제는 휘청이며 다급히 일어섰다.

서립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당장 태의를 부르거라!”

* * *

옥화궁에서 목운요와 장공주가 한창 바둑 대결을 하는데, 곡 마마가 들어오더니 낮은 소리로 아뢰었다.

“전하, 정전에 큰일이 난 모양입니다. 폐하께서 진왕에게 감금형을 내리자, 진왕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머리를 기둥에 박았다고 합니다. 폐하께선 태의원의 모든 태의를 불러 모으셨다 합니다.”

목운요가 멈칫하더니 흰 바둑알을 손에 꼭 쥐었다.

장공주는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죽음으로 결백 주장이라…….”

잠시 뒤, 이 공공이 들어와 인사 올렸다.

“소인, 장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진왕 전하께서 생사가 위급해 태의들이 통 손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폐하께서 온한 군주께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장공주가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요아…….”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공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외할머니, 걱정 마세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오너라.”

목운요는 곧장 이 공공을 따라 진왕이 있는 중화궁에 들어섰다.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앉아 있던 황제는 목운요를 보자마자 표정이 밝아졌다.

“왔구나. 어서 진왕의 상태를 살펴보거라.”

“네.”

목운요가 다가오자 태의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워 줬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진왕의 이마는 피범벅이었다. 태의가 간단히 상처를 치료했지만 얼굴에 묻은 핏자국은 그대로 있어 무척 초라해 보였다.

맥을 짚어 보자 진왕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거의 죽을 각오로 머리를 부딪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폐하, 진왕 전하의 머리 상처는 그리 심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센 충격으로 인해 생긴 뇌의 어혈로 아직 깨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태의들과 상의하에 어혈을 푸는 처방전을 내렸으니, 하루빨리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의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황제는 진왕에 대한 실망의 마음이 컸지만, 그래도 자식인지라 생사를 오가는 마당에 저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십니다. 맥을 한번 짚어 드릴까요?”

“그럴 필요 없다.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

황제가 떠난 후, 목운요는 진왕에게 탕약을 먹이고 나서야 옥화궁으로 다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던 장공주는 목운요를 보자마자 가까이로 불렀다.

“상황은 어떠하느냐?”

“깨어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깨어나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어, 지금은 약 처방으로 몸조리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애썼다.”

목운요가 잠시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외할머니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죠? 제 마음속에 진왕에 대한 증오가 있는 것을…….”

장공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일은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이 외할머니는 단지 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단다. 게다가 네 성격이라면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 텐데, 진왕이 이토록 미움을 샀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네가 말하고 싶으면 외할머니는 들어줄 것이고, 말하기 싫다면 묻지도 않을 거다.”

목운요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내 결심을 마친 그녀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 씨가 억지로 어머니를 하언촌 장 씨한테 시집보내려 했어요. 이에 이 씨와 말다툼하다 바위에 머리를 크게 부딪쳤죠. 그때 꿈속에서 제 일생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회귀는 목운요에게 있어 가장 큰 비밀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진왕을 제대로 상대하려면 외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기에 결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장공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아, 지금…….”

“제 말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 정말로 꿈에서 일생을 미리 겪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장공주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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