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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28화 (328/442)

328화 독 낭자를 위한 부탁

* * *

서릉에 도착한 릉왕은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바로 궁으로 향했다.

“소자, 부황을 뵙습니다. 한데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걱정스러운 릉왕의 눈빛과 달리, 황제의 표정은 유난히 쌀쌀했다.

“왜 혼자 돌아왔느냐? 두 사람을 같이 부르지 않았더냐?”

“임강성 강둑과 백성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명을 거역할 수 없어 소자는 곧장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 셋째 아우는 하루 종일 강둑을 순찰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어쩔 수 없이 혼자 돌아온 바입니다.”

대답을 들은 황제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다. 일단은 푹 쉬거라.”

“네.”

부황이 관례대로 그에게 상을 내리지 않자, 릉왕은 내심 걱정이 앞섰다.

궁에서 나온 뒤 그가 곧장 릉왕부로 발길을 옮겼다.

릉왕부에선 이미 이원주가 보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인이 릉왕을 보자마자 친필 서신을 전달했다.

릉왕은 서신의 앞부분을 읽고 나서야 마음속의 걱정이 다소 사그라들었다. 서신에는 영군월과 목운요도 아직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적혀 있었다. 아마 강남의 일이 전부 해결된 다음에 상을 내릴 예정인 듯했다.

서신의 뒷부분까지 읽고 난 후에는 그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여봐라, 제명을 불러오너라.”

그동안 소금세의 행방을 쫓고 있었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진왕이 거지들을 통해 몰래 세금을 서릉으로 옮겼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제명이 습보헌에서 각별히 예의주시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왕의 계획대로 되었을지도 몰랐다.

부름을 받은 제명이 곧장 안으로 들어왔다.

“제명, 릉왕 전하를 뵙습니다.”

“예를 거두고 자리에 앉거라.”

“황송하옵니다.”

“자네가 진왕의 음모를 꿰뚫고 제때 보고한 덕분에 진왕이 큰 낭패를 보게 되었구나. 내 반드시 거하게 상을 내릴 것이다.”

그에 제명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전하께선 소인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 은혜를 충성으로 갚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좋다.”

릉왕은 제명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습보헌이 잘되고 있긴 하나, 판이 아직 작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자네한테 다른 일을 맡기도록 하지. 실망시키지 않도록 잘해야 할 것이다.”

제명이 무릎을 꿇으며 경건한 표정으로 인사 올렸다.

“걱정 마십시오, 전하. 소인,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 이만 가 보거라.”

제명이 나간 뒤, 릉왕이 심복을 불러 물었다.

“전에 제명에 대해 조사하라고 했을 때 강남에 가족이 있다 그랬나?”

“네.”

“사람을 시켜 그 가족들을 감시하도록 해라. 혹시라도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경우 한 명도 빠짐없이 처리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 * *

제명에게서 소식이 전해져 오자, 금란이 미소를 지으며 목운요에게 말했다.

“제명의 가족은 사실 육냥이 일부러 준비시킨 사람들인데, 무사히 잘 속아 넘어갔나 보네요.”

목운요가 해당화 비녀를 머리에 꽂으며 답했다.

“제명 쪽은 걱정할 일이 없죠. 그보다 불선루에 준비해 두라고 전해요. 외할머니랑 어머니를 모시고 화과차를 맛보러 가려 해요.”

“네.”

목운요가 옥화궁 정전에 도착했을 땐 황제와 장공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폐하와 외할머니를 뵙습니다.”

“일어나거라. 요 며칠 운요의 정성스러운 간병 덕분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구나. 무슨 상을 내려 주면 좋을까?”

“본래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으나, 폐하께서 운을 떼셨으니 무례를 무릅쓰고 부탁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황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어디 말해 보거라. 웬만한 건 짐이 다 들어주마.”

“사실 역병 처방전은 독 낭자라는 여인이 연구해 낸 것으로, 역병 상황이 긴급해 제가 임의로 가져다 썼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역병 문제에 대한 공로는 독 낭자의 것입니다.”

황제가 목운요의 표정을 살피며 손을 살짝 두드렸다.

“처방전이 독 낭자 그자의 것이라면 당연히 공을 인정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너의 표정을 보아하니, 독 낭자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 같구나.”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폐하의 혜안에 탄복합니다. 실은 몇 해 전에 있었던 원성 한씨 가문 전멸 사건의 주범이 바로 독 낭자입니다.”

“한씨 가문이라…… 얼핏 기억이 나는구나. 듣기론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방법이 굉장히 잔인했다지. 그럼 독 낭자의 성격이 잔혹할 텐데 왜 그자를 도우려는 것이냐?”

“폐하, 사건의 진실은 소문과 다릅니다. 독 낭자가 그러한 일을 벌인 이유는 한씨 가문의 한묵진이 독 낭자를 속여서 얻은 의술로 한씨 가문을 발전시키고, 독 낭자의 가문인 약선골을 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독 낭자를 감금해 그녀의 얼굴과 목청을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 독약까지 강제로 먹였습니다. 독 낭자가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을 겁니다.”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듣고 보니 한씨 가문이 가증스럽긴 하나, 그렇다고 가문을 전멸하는 건 잔인한 짓이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기엔 너무 위험하구나.”

“폐하, 지금의 독 낭자는 개과천선했습니다. 임강성에서 많은 백성의 목숨을 구했고, 저한테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비록 무거운 죄를 지어 속죄는 힘들다지만, 폐하께서 그녀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황제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운요, 한씨 가문의 일은 넘어간다 쳐도 혹시나 흉악한 성격이 다시 나타난다면…….”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목운요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황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짐이 특별히 그자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단, 혹시라도 다시 살인을 저지른다면 그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목운요가 기뻐하며 인사를 올리자 황제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공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다니, 아쉽지 않느냐?”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니었는데 아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하, 고지식하기도 하지. 아무리 사람을 믿더라도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져야 속지 않는 법이다.”

황제는 날이 갈수록 목운요가 마음에 들었다. 역시 누님의 핏줄이 틀림없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장공주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깜빡 잊을 뻔했네요. 이번에 불선루에서 화과차를 만들어 냈다고 해요. 전에 외할머니께서 맛보고 싶다고 하셔서 남겨 두라고 했어요.”

후궁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황제도 물론 다 알고 있었다.

작게 웃은 장공주는 목운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연히 맛을 봐야지. 가져오라고 했느냐?”

“아니요. 요즘 날도 좋으니 외할머니를 모시고 불선루에 다녀올까 해요. 제가 운영하는 불선루에 아직 한 번도 안 가 보셨지요? 최근에 정원도 새로 단장했으니 외할머니께서 가서 자리를 빛내 주세요.”

“좋지. 간만에 바람이나 쐬고 오자꾸나.”

“외할머니만 초대하다니, 이 외외종조부가 서운하구나.”

목운요의 휘둥그레진 눈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외외종조부께서도 가실 건가요?”

“요즘 성치 않은 몸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는데, 이제 많이 호전됐으니 콧바람 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외외종조부까지 자리를 빛내 주신다면 화과차 판매가 더욱 잘되겠는데요?”

황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 너에게 계획이 다 있었구나. 우리가 네게 도움을 줬으니, 너도 뭔가 보답해야 하지 않겠니?”

목운요가 잠깐 고민하더니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화과차 수입을 외외종조부와 외할머니께 각각 이 할씩 나눠 드리고, 제가 육 할을 가지는 건 어떤가요? 외외종조부, 이 할이 절대로 적은 게 아닙니다. 화과차 재료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잘 아시지요? 재료 수집에 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화과차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빨리 그 이 할을 받아 보고 싶구나.”

난생처음 이런 방식으로 소득을 얻게 된 황제는 마냥 기쁘고 신기하기만 했다. 불선루의 장사에 대한 기대까지 생겨났다.

* * *

이튿날 점심, 마차 한 대가 불선루 앞에 멈춰 섰다.

서릉의 불선루 총관과 차 전문가 두 명이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목운요 일행이 마차에서 내리자 그들이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목운요가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

“외외종조부, 외할머니. 제가 미리 소문내지 말라고 해서 모두 나와 인사 올리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황제가 일부러 짓궂게 장난쳤다.

“우리 명성으로 손님을 끌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럼 여기저기 소문내는 게 더 유리할 텐데?”

“외외종조부께서는 어디엘 가든 가려지지 않는 후광이 비추어, 제가 소문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다 알아볼걸요?”

“하하하.”

황제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임을 알면서도, 목운요의 입에서 나오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황제와 장공주는 나란히 불선루 안으로 들어섰다. 발을 딛자마자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고, 확 트인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주위에선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정원의 반 이상이 물 위에 만들어져 있었고, 한창 피기 시작한 연꽃은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였다. 멀리 보이는 누각은 신비로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장공주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정말 잘 지었구나.”

목운요의 안내에 따라 연못을 가로질러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갔다. 그곳엔 정교하고 영롱한 정자 하나가 있었는데,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한껏 자태를 뽐내며 피어 있었다.

“저희가 화과차를 음미하러 왔으니 당연히 꽃 구경이 빠질 순 없지요.”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연꽃 향이 가득 퍼졌다. 주변의 황홀경 때문인지 황제의 마음도 서서히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손을 깨끗이 닦은 목운요는 차 우리기에 집중했다.

화과차는 색깔 자체가 다른 찻잎보다 화려했다. 특별한 손재주 없이도 충분히 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했다.

목운요가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얼른 드셔 보세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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