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그림자 호위의 새 주인
소우의의 안색이 점점 더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감히…… 독 있는 여우를 궁으로 데려오다니, 대체 무슨 심보야?”
“하하. 소우의, 너야말로 점점 더 우매해져 가는구나.”
“뭐라고?”
“소씨 가문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를 알기나 해?”
목운요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것은 네가 아무한테도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거지.”
“그 입 다물어!”
“물론 지금은 폐하의 아이를 가졌으니 어느 정도 쓸모는 있어졌지. 그래서 덕비 마마가 네가 무사히 출산하도록 온갖 수를 써서 돕는 거고. 그런데 그것만 알아 둬. 얼마 안 가서 넌 다시 쓸모없어질 거야. 내가 너라면 이렇게 경치 구경이나 할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지를 고민하겠어.”
“그런 헛소리를 내가 믿을 것 같아? 목운요, 네가 할머니께 앙심을 품고 있는 걸 알아. 하지만 그때 일은 할머니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왜 소씨 가문을 망친 것도 모자라 나까지 죽이려는 거지?”
목운요가 의아한 눈빛으로 소우의를 쳐다보았다.
“사람 말귀를 참 못 알아듣네. 난 지금 널 살리려고 귀띔해 주는 거야. 덕비 마마는 평생 아이가 없는 한을 네 아이로 풀려는 속셈이지.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넌 어떻게 될까?”
소우의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 우리 어머니와 덕비 마마가 친자매인데 날 해칠 이유가 있겠느냐?”
“친자매? 그럼 소씨 가문이 어려워졌을 때 덕비 마마가 손을 내밀기라고 했어? 아니! 맹씨 가문은 너를 떼어 내고 싶어 안달 났을 거야. 네가 마침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겠지. 그나마 내가 널 살리려고 조언이라도 해 주는 거란다.”
“날 살린다고? 네가?”
“그래. 죽으면 그만이지만, 살아 있으면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난 네가 쉽게 죽길 원하지 않거든.”
“독한 년!”
목운요가 웃으며 말했다.
“독한 내가 널 살리기라도 하잖니? 반면 네 가족들은 널 불구덩이로 밀려고 안달이 났지. 혹시라도 태기가 상한다면 덕비 마마는 기필코 아이만 살리는 약을 먹일 거다. 그럼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너를 없앨 수 있으니까.”
소우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약이 있단 말이야?”
“네가 모르는 게 세상에 널렸지.”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치마를 정리했다.
“태의를 데리러 간 궁녀는 아직도 소식이 없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목운요가 팔에 안겨 있는 눈여우를 쓰다듬으며 시녀들을 데리고 떠났다.
소우의는 온몸이 굳은 채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에 궁녀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월빈 마마, 어찌 쉽게 온한 군주를 보내시는 겁니까?”
소우의가 고개를 홱 돌렸다.
“보내지 않으면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건데? 돌아가자. 그리고 태의가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는지 알아보거라.”
“네.”
* * *
옥화궁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멈칫했다.
“외할머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대청에 무릎 꿇고 있었다.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겼다.
장공주가 손짓으로 목운요를 불렀다.
“요아, 소개시켜 주마. 이자는 그림자 호위의 우두머리 유일이다.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유일에게 시키면 된다.”
그림자 호위?
목운요가 놀라서 물었다.
“그림자 호위라면 폐하의 수하가 아닌가요?”
“그림자 호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그게…… 진왕한테서 들었습니다.”
회귀 전, 진왕을 통해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인원이 많진 않지만, 사람을 죽이는 병기와도 같아 조정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진왕이?”
장공주가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조정의 노신들을 제외하고 그림자 호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쉽게 봤군. 유일, 고개를 들어 새 주인을 뵙거라.”
유일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으로 목운요를 쳐다봤다.
하나 목운요는 그의 기세에 눌리기는커녕 당당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그러자 유일이 멈칫하더니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유일, 주인님을 뵙습니다.”
목운요가 장공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외할머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요아. 앞으로 네가 유일의 주인이다. 이만 가 보라고 명하거라.”
목운요가 유일을 향해 손짓하자, 그가 인사를 올리곤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장공주는 목운요를 옆에 앉히며 입을 열었다.
“말하자면 길구나. 그림자 호위의 초대 우두머리는 유일의 부친이다. 육대세가의 지시를 받고 나를 암살하려다, 내가 목숨을 살려 주어 결국 내 비밀 호위가 되었다. 초대 그림자 호위는 총 열 명이었고 전부 유일의 부친이 공들여 훈련시킨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스무 명 남짓밖에 안 되지만, 하나같이 손속이 잔인하여 육대세가를 청산한 뒤엔 더 이상 이들을 소환하지 않았다.”
장공주가 이어서 말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은자 은닉 사건을 파헤치려고 황상께서 그림자 호위를 다시 소환하셨고, 결국 모든 정황이 진왕을 향했지. 그 사실을 알게 된 황상께서 화병을 얻어 지금까지 편찮으신 거란다.”
목운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림자 호위들이라면 분명 사건의 배후에 저와 사야가 있음을 알아냈을 텐데, 혹시 외할머니께서 막으신 건가요?”
“내가 그림자 호위를 움직일 수 있는 용패를 황상께 드리긴 했으나, 그들의 진정한 주인은 나인 셈이란다. 이제 내가 너한테 물려줬으니, 네가 그들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
“외할머니, 책임이 막중하여 감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목운요가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하니 장공주가 작게 미소 지었다.
“나에게 자식이라곤 네 어머니뿐이다. 그러니 요아 네가 당연히 내 뒤를 이어야지. 너의 타고난 총명함과 자질이라면 반드시 잘 해낼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림자 호위는 고작 스무 명 남짓이라, 네가 감당해야 할 부분은 소정의 지출뿐이다. 하운방과 불선루 장사가 그렇게나 잘되는데 설마 스무 명에 대한 지원이 부담스러운 건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 그림자 호위가 워낙 책임이 막중한 집단이라…….”
“내가 이들을 너에게 맡기는 건 오직 너의 안전을 지켜 주고 널 도와 일 처리를 하기 위해서다.”
장공주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사실 이기적인 사람이란다. 애초에 황상께서 황위에 오르도록 보필한 것도 어찌 보면 노후에 걱정 없는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황궁은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었기에, 그 당시의 모든 행동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였지.”
목운요는 그 말에 멍하니 있다가 눈을 깜빡였다.
“외할머니께서 폐하를 도우신 이유가 백성들을 위한 마음 때문인 줄 알았어요.”
“당시엔 그리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황상께선 어릴 적부터 믿음직스럽긴 했으나 황위에 올랐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는 그 누구도 몰랐지. 운요, 네가 하운방과 불선루를 세울 때도 온전히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겠지?”
“네. 단지 더 좋은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였죠.”
“그래. 나도 네게 부담 줄 생각은 없다. 오로지 너와 월왕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목운요와 군월의 성격을 장공주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아니라고 해도 목운요는 백성들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해 왔다. 이번 임강 범람 때도 하운방과 불선루가 제때 도움 주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쉽게 해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외할머니 분부대로 할게요.”
“잘 생각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유일을 불러 직접 물어보거라. 이 용패는 황상께서 나한테 주신 거라 일단은 내가 가지고 있으마. 그림자 호위는 증표가 아닌 사람을 따르는 이들이니, 네가 내린 명령이라면 절대로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네.”
* * *
방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어 그림자 호위를 불렀다.
“유일.”
그러자 곧장 유일이 방 안에 나타났다.
“유일, 주인님을 뵙습니다.”
목운요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기량이 뛰어나군.”
“과찬이십니다.”
목운요가 눈을 아래로 드리우며 말했다.
“유일, 이제 내가 네 주인이니 나한테 숨김없이 솔직해야겠지?”
“네.”
“그럼 묻겠다. 혹시 월왕의 출신에 대해 알고 있느냐?”
그림자 호위가 육대세가 청산에 도움을 줬으니, 뭔가 내막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알고 있습니다.”
유일의 주저 없는 대답에 놀란 목운요는 몸을 곧게 세우며 물었다.
“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냐?”
“월왕 전하께선 폐하의 친자가 아닌 낙씨 가문의 주인 낙곤의 아들입니다.”
목운요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노부인 손 씨의 말이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럼…… 황후 마마께서 낙곤과 간통했던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유일이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목운요가 미간을 찌푸렸다.
“말할 수 없느냐?”
“소인도 자세한 건 잘 몰라 주인님께 잘못된 정보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혹시 릉왕과 진왕의 행방은 알고 있느냐?”
“릉왕 전하께선 내일 아침 서릉에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진왕 전하께서는 강남에 남아 제운을 돕는 중이라 아마 열흘 후에 도착하실 것입니다.”
“알겠다. 그보다 혹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신변을 몰래 지켜 주고 있느냐?”
“장공주 전하와 혜의 부인의 곁에 그림자 호위를 각 두 명씩 두어 안전을 보호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질문에 유일은 자세한 대답을 해 주었다. 분명 스무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건만, 그들은 모든 상황을 꿰고 있어 목운요는 내심 탄복했다.
“일단 가 보거라.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찾으마.”
고민 끝에 목운요는 월왕의 출생에 대한 진실을 숨기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폐하와 장공주 모두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밝히지 않는 거라면 기필코 숨겨진 내막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비밀로 남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