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22화 (322/442)

322화 사건의 전말

“군월, 고모님을 뵙습니다. 무궁한 행복을 누리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어서 일어나거라. 군월이 먹을 복이 없구나.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네 누님과 운요의 음식 솜씨를 맛볼 수 있었을 텐데.”

“부황께서 이재민들이 구걸하는 사건을 조사하라고 시키시는 바람에 한발 늦었네요.”

“오후부터 바삐 돌았겠구나. 밥은 먹었느냐?”

“아직입니다.”

월왕이 대답하면서 억울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목운요는 민망한 마음에 몰래 그를 노려보았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계신 자리에서 대놓고 저런 눈빛을 보내다니,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월왕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고모님, 남은 밥이라도 주십시오.”

“그건 네가 가져온 선물을 보고 정하도록 하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 한 잔을 내줄 것이고, 마음에 드는 선물이면 운요에게 직접 만들어 주라고 하마.”

그에 월왕이 곧장 두꺼운 선물 명세서를 장공주의 손에 건넸다.

명세서를 본 장공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요아, 네 어머니와 나는 오늘 많이 걸어 피곤하니 먼저 들어가 쉬련다. 네가 직접 월왕을 대접하거라.”

목운요가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흐뭇해하는 눈빛 속에서 목운요는 월왕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대청을 나서자마자 월왕은 목운요의 손을 덥석 잡으며 웃음기 짙은 눈빛으로 말했다.

“요아, 네가 만든 국수가 먹고 싶구나.”

“방에서 기다리세요. 금방 만들어서 가져다드릴게요.”

“그래.”

국수를 들고 들어온 목운요는 월왕의 손에 쥐어진 향낭을 보자 발걸음이 멈칫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내려놓으세요.”

월왕이 목운요의 손에서 쟁반을 받으며 그녀의 손을 자세히 살폈다.

“향낭에 핏자국이 있더구나. 혹시 바늘에 찔린 것이냐?”

“다 사야 때문이에요. 강남에서 실종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나머지 실수했지 뭐예요.”

월왕이 목운요의 손을 잡아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어떻게 보상하면 될까? 말만 하거라. 뭐든 해 주마.”

“필요 없어요.”

목운요가 그의 귀를 살짝 비틀며 답했다.

“어서 식사나 하세요. 손가락이 살짝 찔렸을 뿐인데요, 뭘. 게다가 사야께서 이미 자기 자신을 보상으로 주셨잖아요.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그에 월왕이 목운요의 입가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다른 것도 보상해 줄 수 있거든.”

이번엔 일을 망치는 물고기 따위가 없어 다행이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기대하는 월왕을 향해 목운요는 천천히 다가갔다. 월왕은 눈을 감으며 그녀의 입맞춤을 기다렸다.

한데 그때, 입 안으로 국수가 들어왔다.

“어서 식사하시라고요.”

아쉬움이 가득 남은 월왕이 목운요의 입술을 한 번 쳐다보고는 꾸역꾸역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불만이 가득하나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고양이 같았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목운요는 월왕이 꺼내 든 향낭을 한쪽에 두고 바늘과 실을 꺼내 색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국수를 다 먹은 월왕은 턱을 괸 채 목운요가 수놓는 걸 바라보았다.

결국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데, 목운요가 그의 손을 제지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셔요.”

월왕이 이때다 싶어 목운요의 손에 입맞춤한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힘들 텐데 일부러 날 위해 만들어 줄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옷을 만들고 장신구를 만드는 건 저한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에요. 그리고 사야를 위해 쓰는 시간은 그리 아깝지 않아요.”

목운요의 대답에 흐뭇하게 웃은 그가 그녀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요아, 벌써 오월이구나.”

“오월이 왜요?”

“우리가 정한 일 년의 기한이 반도 안 남았지. 이제부터 예물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순간 멈칫한 목운요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엄청 많이 준비하셔야겠네요. 저도 명색이 장공주 전하의 외손녀인데, 예물이 적었다간 외할머니께서 허락하지 않으실지도 몰라요.”

“아니면 차라리 내가 데릴사위로 들어갈까?”

“좋죠. 그럼 꼬마 낭군님 섭섭지 않게 잘해 드릴게요.”

목운요의 웃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월왕은 목운요의 허리를 안으며 활짝 웃었다.

“부인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하하, 이 군주가 약조하노라.”

한참 동안 웃고 장난치던 것도 잠시, 월왕은 한쪽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목운요는 다시 수를 놓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 방 전체에 아늑함과 고요함이 가득 찼다.

* * *

황궁 내.

황제가 상자째로 놓여 있는 은을 보며 노기등등해했다.

“이게 거지들한테서 찾아낸 거란 말이냐?”

심병괴가 답했다.

“네, 폐하.”

“만 냥에 가까운 은을 가지고 있었다니…….”

어이없어 웃음이 나오는 것과 달리 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황제는 자신의 체력이 전과 같지 않음을 현저히 느꼈다. 그럴수록 그는 모든 권력을 손에 꽉 잡으려 애썼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제왕 지위가 인정받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상황은 그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감히 거지들을 통해 세금을 숨겨 서릉으로 몰래 운송하다니, 이건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심병괴, 이 사건에서 손 떼거라. 짐이 따로 알아볼 것이다.”

“네.”

심병괴가 떠난 뒤, 황제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옥패를 풀며 낮은 소리로 불렀다.

“유일.”

검은 옷을 입은 사내 한 명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나타났다.

“네, 폐하.”

“용패를 챙기거라. 사건의 전말을 똑똑히 알아야겠구나.”

“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일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시종일관 고개를 낮게 숙이고 있던 서립은 유일이 떠나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의 용패가 그림자 호위를 움직일 수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러나 황제가 용패를 사용하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마주한 유일은 무척 음산하고 차가워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 * *

장공주부.

찻잔을 정리하던 곡 마마는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놀라며, 시녀들을 전부 내보냈다.

잠시 뒤, 검은 그림자 하나가 창문을 통해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장공주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유일, 그림자 호위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닌 황제다.”

“저는 폐하께 충성을 다하고, 장공주 전하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구나. 그래, 오랜만에 황상께서 너희를 소환하신 듯하니, 네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건 조사는 릉왕과 진왕에서 적당히 멈춰야 할 것이다. 그 밖의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도록 하거라.”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가 보거라.”

유일이 떠나자, 곡 마마가 창문을 닫고서 장공주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폐하께서 그림자 호위를 동원하시다니, 참으로 놀랍군요.”

“황상도 나이가 드신지라 마음만큼 따라 주지 못하니 도움이 필요하신 게지. 그나저나 궁내 정황은 어떠하더냐?”

“이 귀비의 세력에 눌린 진비가 덕비를 찾아가 진왕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데, 덕비는 아직 고민 중인 듯합니다. 그보다도 소우의가…….”

“소우의?”

“이 귀비가 몰래 사람을 시켜 소우의한테 가임초(假孕草, 가짜 임신을 꾸미는 풀)를 먹이고, 태의를 매수해 진단 결과를 조작했답니다.”

장공주가 비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정리한들 후궁은 깨끗한 날이 없구나. 덕비가 아이가 없는지라 진비의 아부에 마음이 흔들렸나 보군. 이 귀비가 몰래 일을 꾸며 덕비와 진비의 연합을 막으려는 거겠지.”

“전하, 후궁에 손을 쓸까요?”

“아니다. 내버려 두거라.”

“네.”

* * *

강남의 강둑 재건 공사가 거의 끝나 가자, 제운은 다시 서릉으로 상주서를 보냈다.

상주서를 받은 황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릉왕과 진왕을 서릉으로 소환했다.

릉왕은 크게 기뻐하며 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반면 진왕은 머뭇거리며 난처해했다.

“제 대인, 지금 한창 중요한 시기인데 이렇게 떠나 버리면 혼자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운은 그동안 진왕을 다시 보게 되었다. 진왕은 스스로 자세를 낮춰 하루 종일 현장에 나가 있을 뿐 아니라, 직접 나서서 흙모래와 벽돌을 나르기까지 했다.

“전하, 수로 정리도 거의 끝나 가니 맘 편히 돌아가셔도 됩니다.”

“하루 이틀 늦어져도 별 탈 없을 겁니다. 한창 중요한 시기이니, 수로가 새로 개통된 걸 확인한 뒤에 돌아갈까 합니다. 공사가 순조롭게 마무리된다면 제가 부황께 제 대인의 공로를 주청할 수도 있지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수로를 공사하는 방법은 온한 군주께서 생각해 내신 것이고, 공사가 잘 마무리되는 것도 인부들의 노고 덕분이지, 소관의 공로는 절대 아닙니다. 그나저나 릉왕 전하께선 이미 떠날 채비를 하시는 것 같던데, 함께 가셔야…….”

“괜찮습니다.”

한편 그 소식을 들은 릉왕은 비웃으며 떠날 준비를 마쳤다. 말에 오르는데, 마침 진왕이 배웅을 나왔다.

“셋째 아우, 자네는 여기 남아 명성이나 계속 쌓게나. 난 먼저 서릉에 가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네.”

“형님, 아무쪼록 살펴 가십시오.”

릉왕은 뒤돌아 말을 달리며 낮은 소리로 비웃었다.

“천한 것들은 천한 궁리뿐이지.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대세를 좌지우지할 줄 아나 보지? 꿈도 꾸지 마!”

* * *

새로 올라온 상주서를 보고 한참을 말이 없던 황제가 서립을 불렀다.

“누님을 모셔 오거라.”

“네, 폐하.”

정전으로 들어선 장공주는 황제의 안색을 보자 걱정부터 앞섰다.

“황상, 무슨 일이십니까?”

“누님, 이 상주서 좀 보십시오.”

장공주가 상주서를 받아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거지들이 진왕이 매수한 사람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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