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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19화 (319/442)

319화 비밀

‘낙곤?’

목운요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 입 다물어!”

“월왕 그자는 황실의 치욕이다! 한 나라의 황후가 다른 남자와 간통해서 낳은 잡종이지. 하하하. 야망이 하늘보다 높은 목운요가 고른 사람이 겨우 영군월이라니, 참 가관이구나.”

“황상과 황후 마마는 부부 사이가 돈독하여, 황후 마마께서 절대로 배신할 이유가 없어.”

“모르는 소리. 황제가 권세를 장악하고 나서 한 첫 번째 일이 바로 육대세가를 멸하는 것이었지. 그게 다 황후와 낙곤의 간통 때문이 아니겠느냐. 돈독한 부부 사이는 무슨. 황제가 진정 황후를 소중히 생각했다면 위씨 가문은 살려 뒀겠지. 그런데 현실은? 다 죽였다!”

목운요의 차가운 표정에 손 씨는 더욱 즐거워졌다.

“하하, 약은 쥐가 밤눈 어둡다더니. 결국엔 헛수고가 된 격이구나! 네가 장공주의 외손녀인들 무엇하리? 네 아비가 우리 소씨 가문의 종이었으니 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하필이면 치욕 덩어리인 사생아와 눈이 맞았으니!”

손 씨는 목운요가 자신의 말을 듣고 혼이 반쯤 나갈 줄 알았다.

한데 외려 목운요는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제야 웃음을 멈춘 손 씨가 음산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노려보았다.

“이 사실을 알고도 웃음이 나오느냐?”

“웃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

목운요의 주변을 감쌌던 어두운 기운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동안 의문이었던 것들이 이제야 풀리는군. 당신 말대로 월왕이 황제의 친아들이 아니라 한들, 황상께서 그를 월왕으로 봉하신 이상 그는 황실의 혈통이나 다름없다. 전혀 문제 될 게 없지.”

“황제의 생각이 바뀌면 월왕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제 친자식이 아님을 알면서도 황자로 두었다는 건 엄연히 황후 마마를 소중히 생각해서겠지. 다른 사람의 아이인 줄 알면서도 그 아이를 아끼고 보호하려 했으니까.”

손 씨가 눈을 크게 뜨고 반박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세상에 간음한 부인을 용서할 수 있는 남자는 없다. 게다가 황제라면 더더욱 불가능하지!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이가 어찌 자신의 아내가 다른 사내와 간통한 것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이냐?”

목운요가 피식 웃으며 조롱 가득 찬 눈빛으로 손 씨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모를 법도 하지. 가족 친지를 막론하고 당신 눈에는 단지 이용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로만 나뉘니까. 당신이 그러하듯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겠지. 그게 바로 소씨 가문이 몰락한 근본적인 이유다.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야.”

“그만…… 그만해!”

목운요가 약상자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사람이 너무 탐욕스러우면 벌을 받는 법이지. 애초에 우리 어머니를 발견했을 때 바로 진실을 알렸더라면, 외할머니께서 필히 소씨 가문에 후한 보상을 내렸을 텐데, 그 기회를 전부 놓치고 말았지. 당신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건 인과응보인 셈이야. 소씨 가문을 망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라고!”

손 씨가 반박하려고 입을 열려던 그때, 목운요의 은침이 목구멍에 꽂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어…… 어어…….”

목운요는 은침을 바닥에 던지며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를 지은 자는 죽어 마땅하지.”

손 씨를 뒤로하고 천천히 영화원을 나오자, 이덕이 다가왔다.

“군주님.”

“이 공공, 오래 기다리셨지요. 제가 최근에 차를 새로 만들었는데 조만간 이 공공께 보내 드리지요.”

“영광입니다, 군주님.”

이덕은 몹시 기뻐했다. 온한 군주가 직접 만든 차를 맛볼 수 있다니, 조상들이 덕을 쌓은 것이 틀림없었다.

미소로 화답한 그녀는 금란, 금교와 함께 밖으로 걸어갔다. 제월각을 지나는데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사람을 시켜 여기 있는 계화 나무를 전부 파 버리라고 해요. 살아 있는 건 심방원으로 옮겨 심고, 죽은 건 땔감으로 쓰고요.”

“네, 소저.”

* * *

장공주부로 돌아온 목운요는 손 씨가 했던 말들이 떠올라 숨이 턱 막혀 왔다.

월왕이 황상의 친아들이 아니라니……. 손 씨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말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한창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독 낭자가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여기저기 구경해 봤지. 서릉이 꽤 맘에 드네.”

독 낭자가 비녀 하나를 꺼내 목운요한테 던져 주며 말했다.

“예쁘길래 너 주려고 사 왔어. 맘에 들어?”

비녀의 모양을 살피던 목운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습보헌에서 최근에 출시한 비녀네.”

독 낭자가 눈을 크게 떴다.

“모양만 보고 어디서 산 건지 안단 말이야?”

목운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업을 하려면 가장 유행하는 의상과 장신구에 대해 어느 정도 꿰고 있어야 하지. 너무 마음에 들어. 고마워.”

“독약 이름을 외우는 건 식은 죽 먹기지만, 옷과 장신구를 외우라고 하면 아마 바로 기절할-”

말을 이어 가던 독 낭자가 갑자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목운요의 어깨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웬 흰색 솜뭉치가 목운요의 어깨에 뛰어오른 것이었다.

목운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왜 그래?”

독 낭자가 뒤로 물러서더니 곧장 문밖으로 피신했다.

“너…… 어깨 위에…… 여, 여우가…….”

한껏 긴장한 그녀를 보자 순간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목운요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 위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어깨 위에 뭐?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그 말에 독 낭자는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정말 안 보여? 네 어깨 위에 흰색 여우 한 마리가…….”

“여우라니?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놀리는 거지?”

불어오는 바람에 독 낭자는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 정말 있다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린 독 낭자를 보고 목운요는 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그녀가 팔을 뻗어 답설을 품에 안아 들었다.

“하하, 겁에 질린 모습이 너무 웃기네.”

독 낭자는 멍해 있다가 그제야 진실을 알아차렸다.

“일부러 날 놀린 거야?”

“후후, 답설은 성격이 온순해서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답설아, 인사하자.”

목운요가 답설의 발을 잡고 독 낭자를 향해 흔들었다.

눈여우는 새까만 눈동자로 독 낭자를 쳐다보다가 위협적으로 울부짖었다.

깜짝 놀란 독 낭자는 하마터면 독침을 쏠 뻔했다.

“나, 난 볼일이 좀 있어서 그만 가 볼게. 날 찾을 일이 있으면 상덕 의관으로 서신을 보내면 돼.”

목운요가 대답하기도 전에 독 낭자가 황급히 도망갔다.

목운요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눈여우의 말랑말랑한 발바닥을 만졌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지?”

눈여우는 눈을 깜빡이며 연분홍빛 혀를 내밀어 목운요의 손가락을 핥았다. 목운요가 연신 반달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한참 놀아 주고 난 뒤 눈여우를 침대 위에 앉혔다.

때마침 금교가 다과를 올려 주었다.

“소저, 방금 만든 다과예요. 부인께서 소저께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어요.”

“고마워요.”

“오늘이 소청오가 유배 떠나는 날이잖아요. 듣자 하니 육공주께서 목매달고 자결하려다가 발견되어 구해졌고, 태의께서 진찰한 결과 임신 중이라 하더군요.”

목운요가 멈칫하다가 되물었다.

“육공주가 임신을 했다고요?”

“네. 이미 이혼한 마당에 임신 사실이 드러났으니 참 난감한 상황이지요.”

목운요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장완의 결말보단 나으니…….”

금교도 안타까운 얼굴로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않았다.

장완이 죽었을 때 목운요는 상심이 무척이나 컸다. 월왕의 일 때문에 정신이 팔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큰 슬픔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목운요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창밖을 보며 물었다.

“온실 안에 동백꽃이 아직 피어 있나요?”

“네, 소저. 지금 꽃들이 만개했습니다.”

목운요는 곧장 온실로 향했다. 활짝 핀 꽃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앞다투어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그중 화학령 앞에 멈춰선 그녀가 가장 예쁘게 핀 꽃을 꺾어 꽃바구니에 담았다.

“강남으로 급히 가느라 장례식에도 참석을 못 했네요. 생전에 좋아했던 동백꽃이라도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금란, 사람을 시켜 이걸 장완의 무덤에 갖다 놔줘요.”

장완은 소청오의 아내이고, 소씨 가문과 자신의 사이가 좋지 않은 터라, 직접 무덤에 찾아갈 순 없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잘 전해지리라 믿었다.

“네, 소저.”

온실에서 반나절 동안 꽃을 보살폈더니, 어지러웠던 생각들도 하나둘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월왕의 출신에 관해선 당분간 숨길 생각이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 * *

한편, 강남에서는 임강과 기하의 수로 보수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제운이 보내온 소식에 황제는 크게 기뻐했다. 마침 장공주의 생신도 다가오는 만큼 축하연을 펼치면 좋을 듯했다.

장공주를 따라 옥화궁으로 온 목운요는 황제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폐하를 뵙습니다.”

“예를 거두거라.”

황제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누님. 전에는 생신 때마다 함께하지 못해 선물로만 마음을 전했지요. 그러니 이번엔 제대로 축하연을 펼칠까 합니다.”

장공주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별로 중요치 않은 날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운요와도 벌써 상의가 끝났습니다. 연회 없이 평범하게 보내기로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황제는 장공주의 생각을 듣자마자 반대했다.

“누님의 생신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아니요, 저는 그게 더 좋습니다.”

장공주가 온화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생일이란 게 나이가 들수록 한 살 더 늙었다는 증거밖에 더 되겠습니까. 마음 같으면 생일도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황제가 웃으며 대답했다.

“생일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야 짐도 그러고 싶군요.”

목운요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정말 만세, 만만세가 되겠군요.”

“참 약삭빠르기도 하지.”

황제의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장공주는 목운요의 손을 잡으며 단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황상. 강남의 수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연회를 크게 벌인다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겁니다. 운요의 제안대로 생일 때 보통 사람들처럼 시내에 나가 옷도 한 벌 사 입고, 장수 국수까지 한 그릇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어요?”

장공주의 염려에 황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시각각 짐을 위해 주는 누님의 마음을 가슴 깊이 간직하지요. 그럼 누님 생신 때 짐도 함께 궁 밖에서 보내는 건 어떠한가요?”

“좋고말고요. 폐하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만민의 축하보다도 더 의미가 있지요.”

그에 황제의 마음이 더욱 따뜻해졌다. 함께 식사를 한 뒤 그는 아쉬운 마음으로 장공주와 목운요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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