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16화 (316/442)

316화 야밤의 달구경

허기는 목운요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주를 뵙습니다. 무슨 일로 직접 오셨나요?”

“예를 거두세요. 요즘 날씨도 화창하고 강둑 공사도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월왕 전하와 함께 이만 서릉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허기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두 분께서 서릉을 떠난 지도 꽤 오래됐죠. 장공주 전하와 혜의 부인께서도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계실 겁니다.”

“언니도 어서 짐을 싸시지요. 뜻밖의 상황이 생기지 않는 이상, 내일 아침 일찍 서릉으로 출발할 생각이에요.”

“그래요.”

목운요는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돌아갔다.

허기는 그녀를 배웅하고 나서 정신이 멍해진 채 의자에 앉았다.

옆에 있던 시녀가 그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소저, 이래서 제가 오지 말자고 말린 겁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도착했는데 정작 월왕 전하께서는 얼굴도 비치지 않다니, 정말 너무 냉정하네요.”

허기가 어두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월왕 전하께서 내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소저께선 저보다 총명하시니 말 안 해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소저를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한테 정성을 쏟을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서릉 내에 소저를 흠모하는 공자들이 수두룩한데, 소저를 보물처럼 아끼는 그런 사람을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넌 모른다.”

허기가 소매에서 향낭을 꺼내 들었다. 서툰 바느질 티가 나는 낡은 향낭은 딱 봐도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

“짐 싸거라. 내일 떠나야 하니.”

“……네, 소저.”

* * *

그날 밤, 목운요는 독 낭자가 사 온 물건을 구경했다.

탕화(糖画, 설탕을 녹여 만든 그림)를 한가득 사 온 독 낭자가 통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녹아 버린 그림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궁금했다.

겨우 독 낭자를 방에서 내보낸 뒤 외투를 벗으려던 그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운요는 창문을 열며 귀찮은 말투로 대답했다.

“안 먹는다고 했을 텐데 왜 자꾸…… 사야?”

창밖에는 검은색 장포를 입은 월왕이 서 있었다. 은은한 달빛에 비춰 풍채가 더욱 늠름해 보였다.

“다른 이인 줄 알았느냐?”

목운요는 떨려 오는 가슴을 누르며 답했다.

“……독 낭자인 줄 알았어요. 자주 이런 장난을 치거든요.”

외투를 반쯤 걸친 채 서 있는 목운요를 보고, 월왕은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옷을 정리해 주었다.

목운요는 그제야 자신의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음을 눈치채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월왕이 옷을 꽉 잡고 있는 탓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야, 내일 먼 길을 떠나야 하는데 일찍 주무셔야죠.”

월왕은 아무 대답 없이 서툰 손길로 목운요의 옷을 정리해 준 뒤, 옆에 있던 장옷으로 목운요를 감싸곤 번쩍 들어 올렸다.

목운요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월왕의 목을 감싸 안았다.

“사야?!”

월왕이 고개 숙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쉿, 사람들 깰라. 달구경을 시켜 주마.”

그가 곧장 창가에 뛰어올라 주저 없이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목운요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장옷이 요란하게 펄럭였다.

월왕은 그녀를 안고 나와 조심스레 말 등에 태웠다. 그다음 바로 뒤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등 뒤로 전해지는 월왕의 체온을 느끼며, 행복한 감정이 솟구쳤다.

성문에 다다르자 시위가 성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월왕 전하와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성문을 나선 말은 더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고요한 달빛 아래 말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더 가볍게 들려왔고, 빠르게 스쳐 가는 풍경에 목운요의 기분은 마치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한참을 달린 후에야 말이 멈춰 섰다. 월왕은 조심스레 그녀를 안고 내려왔다.

“요아. 너와 함께 말 타고 달리겠다 약속했는데, 오늘 드디어 약속을 지키는구나. 마음에 드느냐?”

목운요는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의 숲과 달빛을 보더니 장난스레 대답했다.

“여기에서 달구경을 하는 건가요?”

월왕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얼마 가지 않아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고요한 호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게 펼쳐진 호수가 밤하늘과 닿아 별들이 아래로 쏟아지는 듯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수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목운요는 넋을 놓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월왕은 말을 나무에 묶어 놓은 뒤, 그녀의 손을 잡아 호숫가에 놓여 있던 작은 배에 올라탔다. 노를 젓자 배가 호수 가운데로 천천히 움직였다.

목운요는 뱃전에 기대 손을 물에 담갔다. 잔잔한 물결이 일며 수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넓은 들판 위 하늘은 나무와 닿을 듯하고, 맑은 강물에 달이 더욱 가까이 있는 듯하구나…….”

“요아, 달빛이 마음에 드느냐?”

목운요가 월왕을 쳐다보며 물었다.

“왜 갑자기 달구경 시켜 줄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때, 월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물속에 있는 목운요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살며시 입술을 포갰다.

산들바람 같은 입맞춤에 목운요는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월왕도 긴장한 탓에 온몸이 굳어 버렸다. 목운요의 입술이 닿는 순간 온몸이 뜨거워졌다. 마치 마음속에 꿀단지가 엎어진 듯 달콤하면서도, 점점 더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산들바람에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한창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던 그때, 목운요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물속에 잠겨 있던 목운요의 손등을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 것이다. 차갑고 끈적이는 촉감으로 보아 물고기인 것 같았다. 덕분에 달콤한 분위기는 와장창 깨져 버렸다.

월왕은 화가 치밀어 올라, 노를 들어 물속을 향해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물보라가 쳐 뜨겁게 달아오른 두 사람의 얼굴에 튀었다.

목운요는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월왕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쉬움에 화가 잔뜩 나 있던 월왕은 목운요의 웃음이 썩 달갑지 않았다.

“요아, 시장하진 않느냐? 내가 생선구이를 대접하마.”

“지금 괜한 물고기한테 화풀이하시는 거예요?”

“죽어 마땅한 것들이다.”

목운요는 박장대소하며 손가락으로 월왕의 볼을 꾹꾹 눌렀다.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했다.

“좋아요. 생선구이 해 먹어요.”

월왕은 단숨에 생선 열 마리를 잡아 손질을 마친 뒤, 나뭇가지를 꽂아 열심히 굽기 시작했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자, 그가 짐 보따리에서 소금을 꺼내 생선 위에 뿌렸다.

턱을 괴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목운요의 눈빛에는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사야, 혹시 물고기가 말썽 피울 걸 예상하고 미리 소금을 준비해 오신 건 아니죠?”

월왕은 입맞춤을 방해한 물고기가 다시 떠올라 그대로 생선을 불 속에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어떤지 맛보거라.”

목운요가 후후 불며 생선을 한입 베어 물었다. 간이 밴 생선 살은 짭짤하면서도 고소했고, 불 조절도 딱 맞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너무 맛있는데요.”

목운요의 진심 어린 칭찬에 화가 조금 수그러든 월왕은 다시 정성스레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한 마리를 거의 다 먹어 치운 목운요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월왕의 어깨에 기대어 호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거세진 바람에 의해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 호수에 비친 달빛과 별빛이 한데 엉켜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월왕은 장옷을 벗어 바닥에 깔아 목운요를 그 위에 눕게 했다.

“눈 좀 붙이거라. 날이 밝으면 출발하자.”

목운요는 장옷 위에 누워 그의 다리를 벤 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월왕은 잠든 그녀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목운요를 챙기는 일이 그에게 있어 버릇같이 되어 버렸다. 그녀가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엄청난 성취감이 생겨났다.

순간, 그는 계획대로 살고 싶지 않아졌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황위에 올라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그녀에게 오늘과 같은 무한한 애정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감정을 권세 속으로 끌어들여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 * *

다음 날, 미리 준비해 둔 마차에 허기가 올라탔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월왕과 목운요는 보이지 않았다.

“월왕 전하와 온한 군주께선 아직인가?”

“두 분께선 미리 출발하셨습니다.”

허기는 잠깐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태의들과 함께 서릉으로 출발했다.

한편, 먼저 임강성을 나선 목운요와 월왕은 하운방과 불선루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배를 타고 서릉으로 향했다.

목운요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부두에 나와 있는 곡 마마를 보며 활짝 웃었다.

“곡 마마.”

“월왕 전하와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예를 거두세요, 곡 마마.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무사하시죠?”

“네, 모두 무사하십니다. 다만 군주님이 그리워 하루에 몇 번씩 우시곤 했습니다.”

목운요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사야, 저 먼저 갈게요.”

“그래. 난 궁으로 가 부황을 뵙고 난 뒤 장공주부로 가마.”

목운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연한은 대청에서 왔다 갔다 하며 수시로 문 쪽을 바라봤다.

“왜 아직도 안 오지?”

장공주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이리 와 앉거라. 부두에서 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 곧 올 것이다.”

“어머니. 요아가 강남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운요가 월왕을 찾으러 강남에 가겠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이 애처로워 동의했다만, 보내고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후회가 밀려오더구나. 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면 절대로 안 보낼 것이다.”

허연한도 동의를 표했다.

“네, 다음번엔 절대 안 보낼 거예요.”

금란과 금교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몰래 웃었다. 장공주와 부인 모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목운요가 사정하면 가장 먼저 마음 약해지는 두 사람이었다.

“장공주, 부인. 군주께서 오셨습니다.”

시녀가 기쁨 가득한 소리로 외치자, 허연한이 곧장 장공주를 부축하여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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