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15화 (315/442)

315화 의심병

목운요는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 갔다.

“조정에 아직 그때 안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이번 역병 치료제를 제공한 공으로 그 사건을 덮을 테니, 앞으로는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기만 하면 돼.”

독 낭자의 차가운 눈동자에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네가 어떻게 그 일을 아는 거지?”

목운요가 목을 겨누고 있는 독침을 바라보며 말했다.

“침착해. 이 독침에 찔리는 순간 죽을 텐데, 솔직히 죽고 싶지 않아.”

독 낭자가 독침을 살짝 뒤로 뺐다.

“내 신분으로 날 위협해 널 돕게 하려는 거였어?”

목운요가 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난 여우 신선이야. 굳이 널 위협할 이유가 있겠어? 그리고 이미 말했을 텐데. 난 은혜를 보답하려는 것뿐이라고.”

한동안의 대치 끝에 독 낭자가 결국 살기를 거두고 목운요의 두 볼을 힘껏 꼬집었다. 얼굴에 빨간 자국이 피어오르자 그제야 등골의 서늘함이 사라졌다.

“여우 신선이라면 꼬집힘 당하지 않았겠지.”

그에 목운요도 독 낭자의 볼을 잡고 양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감히 무례를 범하다니, 간을 빼먹을까 보다!”

독 낭자가 볼을 비비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손 틈새에 있던 독침은 어느샌가 자취를 감춘 뒤였다.

독 낭자는 복수를 위해 목운요를 침대에 눕히고 옆구리를 건드렸다. 목운요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렸다.

“하하하, 간지럼 태우는 건 반칙이지.”

하지만 독 낭자의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발버둥 치며 항복했다.

“그만해, 하하, 항복, 내가 항복할게. 됐지?”

“흥, 이미 늦었거든? 네가 너무 세게 꼬집어서 얼굴이 부었단 말이야.”

“하하, 그만해.”

목운요는 너무 웃은 탓에 눈가에 눈물까지 맺혔다.

“독 낭자 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언니라는 말에 잠깐 멈칫했던 독 낭자가 코웃음을 치며 목운요를 놓아주었다.

“앞으로 또 그러기만 해 봐.”

목운요는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근육을 풀어 줬다.

“생각해 주는 마음으로 그런 건데 받아 주질 않다니. 흥.”

독 낭자도 너무 세게 꼬집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그녀의 볼에다 약을 발라 주었다.

“어차피 조정에선 날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문서가 남아 있어도 나한텐 큰 의미가 없지.”

그에 목운요가 고개를 들고 천천히 독 낭자를 응시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당신은 늘 햇살을 가득 받으며 살았으면 좋겠어.”

목운요의 말에 독 낭자는 마음속에서 따스한 바람이 부는 것만 같았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는 거지?”

목운요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웃음 속에도 사람 마음을 녹이는 따뜻함이 서려 있었다.

“당연히 은혜를 갚기 위해서지.”

회귀 전 진왕부에 갇혀 있을 때, 독 낭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이미 여러 번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은혜를 목운요는 늘 가슴에 새겨 두고 있었다.

그 진심이 전해졌는지, 독 낭자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남자였다면 무조건 너를 아내로 삼아 평생 잘해 주고 절대 마음을 저버리는 일이 없었을 거다.”

“어쩌지, 난 당신보다 월왕 전하가 좋은걸.”

“쳇.”

독 낭자가 코웃음 치다가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허 소저라는 여자가 네 기분을 망친 것 같은데, 오늘 밤에 내가 몰래 죽여 줄까?”

“절대 안 돼. 허기는 우리 외할머니 양자의 딸이라 따지고 보면 나한테 언니거든. 그리고 그녀는 아무 잘못 없어. 나 혼자 질투하는 거야.”

목운요가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독 낭자는 뭐든 기분에 따라 하는 성격이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아마 오늘 밤에 바로 독살할지도 몰랐다.

독 낭자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을 많이 하면 일이 복잡해지는 법이야. 나 봐. 맘에 안 들면 신분이 뭐든 그냥 다 죽이면 그만이지.”

“그래서 말인데, 그 성격 좀 고쳐 보는 건 어때? 그리고 독약을 연구하는 대신 의술이나 좀 더 연구해 보지? 서릉으로 돌아가면 외할머니 몸조리를 당신한테 맡길까 하는데.”

“역시, 잘해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겸사겸사인 거지, 소심쟁이.”

한편, 문밖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월왕은 그제야 긴장을 풀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우항은 금방 돌아온 월왕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주인님, 목 소저를 뵈러 가신 거 아닙니까?”

“원성 한씨 가문 일가가 전멸한 사건에 대해 알아보거라.”

독 낭자가 지금은 위험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과거에 대해선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네.”

* * *

진왕은 목운요가 보내온 환약을 보며 한참 동안 머뭇거렸다.

심복이 따뜻한 물을 가져오며 말했다.

“전하, 태의들이 여러 차례 검증을 마쳐서 문제없을 거라고 합니다.”

“알았다. 나가 보거라.”

“네.”

환약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목운요의 원한 짙은 눈빛이 떠올랐다. 그는 약을 힘껏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미간을 지그시 누르며 밖을 향해 분부했다.

“태의를 불러 탕약을 다시 지어 오도록 하거라.”

목운요의 의술이 워낙 뛰어나 태의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는 법이다. 진왕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약을 먹고 싶진 않았다.

* * *

진왕이 태의를 시켜 탕약을 다시 지었다는 소식에 목운요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그녀가 사서를 불러 당부했다.

“시간 날 때 태의들이 머무는 곳에 가서 상황을 살펴봐. 혹시 부족한 약재라도 있으면 알려 주고.”

사서는 목운요의 의도가 이해 가지 않았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서가 나가자마자 독 낭자가 침대에 누운 채 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참 교활하구나. 진왕의 상처가 줄곧 낫지 않아 나도 몰래 알아봤는데, 누군가가 상처를 감싼 천에다 거머리 가루를 뿌려서더군. 태의들은 상처만 신경 쓰느라 천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

목운요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처음 듣는데?”

“하하.”

호탕하게 웃은 독 낭자가 비녀를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대체 진왕과는 무슨 원한이 있는 거야? 나한테 말해 주면 대신 복수해 줄 수도 있는데.”

“원한은 혼자 힘으로 해결할 때가 가장 속이 풀리는 법이야.”

“하긴, 한묵진이 내 발을 잡고 살려 달라며 빌 때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지.”

독 낭자는 옛일을 회상하며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량함도 느껴졌다.

목운요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여긴 우리 둘뿐이니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안 해도 돼. 딱 한 번 사람을 잘못 본 것뿐이잖아? 복수도 했으니 이제 원한을 버리고 다시 좋은 사람을 찾아. 이 세상에 한묵진보다 좋은 남자는 사방 천지에 널렸거든.”

“나중에 당해 봐야 너도 그 감정을 알 거다.”

“난 당하더라도 당신처럼 무너지진 않을 거야.”

“내가 무너진 것처럼 보여? 난 너무나 자유롭고 편안한데?”

독 낭자가 일어서며 너울을 썼다.

“꼬맹이라 봐준다. 나갔다 오마.”

“은자가 필요하면 사금한테서 받아 가. 함부로 독 쓰지 말고, 이상한 것들 사 오지도 마.”

“잔소리쟁이.”

잠시 뒤, 사금이 차를 들고 와 목운요의 앞에 두며 말했다.

“소저, 방금 독 낭자가 은자 천 냥을 가져갔습니다.”

“필요한 만큼 주도록 해.”

“네.”

독 낭자의 과거를 알고 난 후, 사금도 그녀에게 딱한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독 낭자가 목운요한테 나쁜 마음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마음속의 편견도 많이 사라졌다.

“소저, 따로 알아보라 하신 약재는 서릉으로 돌아가면 거의 다 준비될 겁니다. 그보다 어떤 일로 쓰려 하시는지요?”

목운요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부 재생에 쓰는 것들인데, 아무래도 쓸모가 없을 것 같아요.”

“혹시 독 낭자의 용모를 회복해 주려는 건가요?”

“그래 주고 싶은데, 독 낭자가 원하는지를 잘 모르겠네요. 사실 그녀의 의술이라면 팔 할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을 텐데, 여태까지 그대로 둔 걸 보면 마음의 병인가 싶기도 하고.”

* * *

이틀 뒤, 서릉으로부터 드디어 소식이 전해졌다.

월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목운요에게 서신을 건넸다.

“네가 전장부터 조사하라고 귀띔해 준 덕분에 실마리를 찾아냈다.”

서신을 본 목운요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진왕이 아무리 헤프게 쓰더라도 꽤 많은 은자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혹시 나머지는 아직 못 찾았나요?”

“걱정 말거라. 이미 찾았으니.”

월왕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모님께서 사람을 시켜 진비의 뒤를 캐고, 이씨 가문에서도 그 틈을 타 진비의 두 오라버니를 감옥으로 처넣었지. 내 부하들이 전장을 파헤치던 중 마침 이 두 형제가 나머지 은표를 전부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운요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서 외가 소식을 들은 진왕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거군요. 남은 은표는 총 얼마였나요?”

“이백칠십만 냥.”

월왕도 진왕이 이렇게나 큰 금액을 두 형제한테 맡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 했는지 모르지만, 결국엔 자기 꾀에 넘어간 셈이었다.

“찾아 헤맬 땐 그렇게 안 보이더니, 얼떨결에 한 번에 찾아낸 격이군요. 사야, 이제 서릉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아요.”

목운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둘째 형님께 말할 테니 넌 짐을 싸고 있거라.”

“네.”

월왕이 떠나자 목운요는 곧장 사금 일행을 불러 짐을 챙기라고 분부했다.

그러곤 허기의 방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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