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작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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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사금이 들어와 대답했다.
“소저, 진왕 전하께서 물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다 팔에 상처를 입어 피를 많이 흘렸다고 합니다. 태의들이 바로 그쪽으로 갔습니다.”
목운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금, 선물을 준비해 줘. 내일 진왕 전하의 병문안에 다녀와야겠어.”
진왕의 잔꾀가 릉왕보다 한 수 위인 게 확실했다.
다음 날, 이틀 내내 내리던 비가 드디어 멈췄다.
오랜만에 드러난 맑은 하늘에 임강성 백성들은 기뻐서 환호했다. 제운도 이때다 싶어 곧바로 수위를 측정하고 수로 계획을 세워 강둑 정비를 진행했다.
목운요는 일찍이 선물을 들고 진왕을 찾아갔다.
그녀가 갔을 때 진왕은 탁자에 기대 책을 보고 있었다.
“셋째 외당숙을 뵙습니다.”
“운요 왔구나.”
진왕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목운요가 빠르게 책을 훑어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임강성 수리 기록을 보고 계셨네요?”
“그래. 어제 강둑 상황을 보고 왔는데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더구나. 하루빨리 강둑 보수를 끝내지 않으면 장마철까지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백성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 걱정이 태산이란다.”
목운요의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
“어젯밤 외당숙께서 다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 오늘 특별히 몸보신에 좋은 탕약을 달여 왔습니다. 아직 따뜻하니 어서 드시지요.”
목운요의 눈짓에 사금이 탕약 한 그릇을 진왕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진왕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걸 눈치챈 목운요는 속으로 크게 비웃었다. 진왕은 겉으로는 대범한 척하나 실제로는 굉장히 소심했다. 아마 다른 이의 확인을 거치지 않는 이상, 절대 탕약을 입에 대지도 않을 것이다.
“왜 안 드십니까? 제가 독이라도 탔을까 봐요?”
목운요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왕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단지 혹시라도 태의가 쓴 처방이랑 달라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겼을 뿐이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미리 태의들께 물어봤지요. 그리고 저도 의술에 일가견이 있어, 약성까지 잘 확인했습니다.”
목운요가 설명하면 할수록 진왕은 더욱이 약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운요가 의술에 능하다는 사실을 깜빡했구나.”
“그래도 못 믿으시는 건가요? 그럼 제가 먼저 마실까요?”
“아차,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구나. 네가 의술을 안다고 하길래 갑자기 어떤 사람이 떠올랐거든. 사실 얼마 전에 한 여인이 자신이 의술에 일가견이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두 사람이 얘기가 잘 통할 것 같구나. 여봐라, 독 낭자를 데려오너라.”
독 낭자라는 말에 목운요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보아하니 진왕은 독 낭자에 대해 아직 아는 것이 없어, 그녀의 재주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쉽게 독 낭자를 사람들 앞에 내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잠시 뒤, 온몸을 꽁꽁 싸맨 독 낭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목운요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목운요가 자신을 여우 신선이라 했던 말이 생각나, 그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진왕 전하와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목운요가 가까이 다가가 독 낭자를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당신이 셋째 외당숙께서 말한 의술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인가요?”
“일가견까진 아니지만 조금 압니다.”
독 낭자는 목운요의 눈빛에 혼이 쏙 빠질 것만 같았다.
목운요는 그런 독 낭자의 손을 잡으며 친근하게 말했다.
“의술을 아는 여인은 드물뿐더러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 어렵지요. 셋째 외당숙을 통해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앞으로 날 따르는 게 어때요? 셋째 외당숙, 혹시 아까우신가요?”
진왕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독 낭자도 자신의 생각이 있을 테니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꾸나.”
“그래요. 억지로 데려올 생각은 저도 없어요. 독 낭자라……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셋째 외당숙은 남자고, 또 평소 조정 대사에 신경 쓰느라 옆에 있어도 아마 굉장히 무료할 거예요. 나를 따르면 같은 여자끼리라 훨씬 편하겠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독 낭자가 목운요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군주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목운요는 한결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셋째 외당숙, 그럼 방해하지 않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살펴 가거라.”
진왕이 머무는 곳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온 목운요는 사금한테 분부를 내렸다.
“구릿대 세 전, 반하 두 전에 삼칠초를 섞어 가루로 만들어 갖다 줘. 어서.”
“네.”
평소에 흔히 사용하는 약재들이라 준비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한데 목운요의 손가락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소저, 손가락이 왜 이러십니까?”
“고수를 만났거든. 괜찮아. 상대는 아마 나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테니.”
한편, 독 낭자는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으나 간지러움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고, 손가락도 잘 익은 당근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로 해독하는 게 맞을 텐데, 왜 아직도 그대로지?”
시간이 흐를수록 손 저림과 가려움증은 점점 더 심해져 갔고, 나중엔 감각까지 무뎌졌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목운요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그에 사금 일행이 소매에서 검을 뽑아 들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사금.”
목운요가 다급히 그들을 멈춰 세웠다.
“괜찮으니 나가 봐.”
“소저…….”
사금은 걱정스런 마음에 머뭇거렸다.
하지만 목운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가라고 다시 한번 명했다.
방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목운요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직 해독을 못 했나 보군?”
독 낭자는 그런 목운요를 유심히 살폈다.
눈앞의 여인은 아름다운 얼굴에 한겨울의 추위도 녹일 만한 따스한 웃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성질은 자신보다도 악랄하고 독을 쓰는 수단도 훨씬 은밀했다.
독 낭자는 목운요의 곁으로 다가가, 빨갛게 부어오른 제 손을 내밀었다.
“대체 어떤 독을 쓴 거지?”
목운요가 웃음을 참으며, 옆에 놓여 있던 가루를 조심스레 손에 발라 주었다.
“특별한 건 아니고, 취오초(醉乌草)가 들어 있어 독주를 써야만 약성이 사라지지. 뜨거운 물에 담그면 아무 소용이 없어.”
“취오초?”
독 낭자의 시선이 목운요의 손으로 향했다. 하얗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가락에도 아직 빨갛게 부은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보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적을 다치게 하려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구나.”
이에 목운요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자, 독 낭자가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다.
“뭐 어때. 결국 내가 이겼는걸.”
약을 다 바르자, 독 낭자가 바로 손을 빼며 아픈 곳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얼굴은 예쁜데 성질이 아주 더럽군.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독을 탈걸.”
목운요가 독 낭자를 힐끗 보며 말했다.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어. 당신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항상 해독약을 가지고 다니거든. 그리고 독을 쓰는 데에는 내가 한 수 위일지도 몰라. 날 해치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한테 손을 쓸 수도 있어.”
독 낭자는 목운요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독을 쓰는 방법을 보면 나와 같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도대체 누구한테서 배운 거야?”
“당신한테서 배웠다고 말했을 텐데.”
“헛소리하지 마. 난 널 가르친 기억이 없어.”
목운요가 독 낭자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잊었어? 나 여우 신선이거든. 그러니 당연히 뛰어난 재주가 있는 거지.”
독 낭자가 깜짝 놀라며 몸을 뒤로 젖혔다. 목운요가 구미호로 변신해 자신을 해칠까 봐 겁을 먹은 듯했다.
“허, 헛소리 그만해. 이 세상에 여우 신선이 어딨어?”
“신계와 인간 세상은 엄연히 다르거든. 이전에 당신 덕을 본 게 있어서 진실을 말해 주는 거야. 그리고 내 신분을 알아 버렸으니 평생 나를 따라야 해. 당장 진왕한테 가서 날 따르겠다고 하는 게 좋을 거야.”
“정말…… 내 덕을 봤다고? 그렇다면 네가 날 따르고 순종해야 맞는 거 아닌가?”
독 낭자가 목운요를 한 번 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 한 번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한 번 더 꼬집었다. 부드러운 볼살 때문에 꼬집는 재미도 있고, 예뻐서 데리고 다니기 재미있을 것도 같았다.
“진왕, 그 사람이 아주 나쁜 사람이거든. 그자를 떠나라고 하는 게 어쩌면 은혜에 대한 보답인 거지. 그리고 난 신선이라, 인간 세상에 어느 정도 머물다 다시 돌아가야 해. 그때 당신도 같이 데려가 주지, 어때?”
마침 방에 들어오던 월왕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운요가 언제 여우 신선이 된 거지?
독 낭자는 인기척을 듣고 몸을 돌리며 날카로운 눈빛을 했다.
“누구냐!”
목운요가 급히 말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독을 쓰기만 해 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독 낭자가 월왕과 목운요를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월왕이면 너의 넷째 외당숙 아닌가? 그런데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목운요가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무슨 문제라도 있어?”
“둘이 삼촌, 조카 사이잖아!”
“그래서 뭐?”
그녀가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독 낭자를 쳐다보았다.
독 낭자의 일생도 정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다. 그녀는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사랑 때문에 한 모든 일이 헛된 것이 아닌 게 되기 때문이었다.
독 낭자는 잠깐 멍하니 있다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목운요의 볼을 다시 꼬집었다.
“그래. 지금 바로 진왕한테 가서 널 따르겠다 말하마. 그래야 네가 혹시라도 사랑에 속아 만신창이가 됐을 때 수습이라도 해 주지.”
그에 목운요가 무서운 눈으로 독 낭자를 노려보았다.
“지저분한 손으로 자꾸 만지지나 말지? 그리고 사야와 내 사이를 이간질할 생각 말고, 몰래 사야께 독을 써서도 안 돼. 알겠지? 안 그럼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독 낭자도 목운요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목운요한테 자꾸 마음이 가서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쳇, 나중에 울고 있을 때 비웃어 주마.”
목운요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네.”
독 낭자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 월왕을 훑어보았다. 차갑고 딱딱한 표정의 월왕을 보자니, 목운요가 마치 강제로 잡혀간 산적 부인 같았다.
독 낭자는 혹시라도 그가 목운요에 대한 마음을 저버린다면 직접 독을 쓴 다음 산에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을 저버린 남자들은 늑대 먹이가 되어도 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