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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10화 (310/442)

310화 반가운 인물

* * *

폭우가 계속 쏟아졌다. 강둑 재건 공사를 맡은 제운은 시위들을 거느리고 밤새 그 주변을 지켰다. 계속해서 모래포대를 가져다 강둑을 막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불안해 보였다.

한편 임강성 관아에 도착한 목운요 일행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릉왕, 진왕을 마주쳤다.

릉왕은 월왕을 보자마자 황후의 적자라는 생각이 떠올라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

“아우들, 참 빨리도 왔네. 우린 벌써 여기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지.”

유왕이 웃으면서 인사를 올렸다.

“형님을 뵙습니다. 형님과 셋째 아우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이럴 줄 알았다면 관성에 가서 역병 상황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서 기다릴 걸 그랬네요. 에취……! 밤새 비를 맞았더니 으슬으슬하군. 게다가 관성에서 역병 환자들을 만나고 온 터라 자칫 잘못하면…….”

인사를 받으려고 가까이에 온 릉왕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곧장 뒷걸음질 쳤다. 소매로 코와 입도 막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니라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가서 옷을 갈아입거라.”

유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금방 다녀올 테니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함께 강둑 재건 공사에 대해 논의합시다.”

목운요는 월왕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진왕과 눈이 마주쳤다.

진왕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운요, 참 대단하구나. 역병 치료에 쓰이는 처방전까지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일 뿐, 제가 생각해 낸 처방은 아닙니다.”

“그래? 참 운도 좋구나.”

시선을 거둔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쯤 독 낭자가 진왕에게 포섭당했겠지?

회귀 전, 독 낭자에게 왜 진왕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당시 독 낭자는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술이 뛰어났지만 진왕 앞에선 다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제 실력을 발휘했다면 회귀 전 진왕의 세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방으로 가자 이미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길을 달린 데다 먹은 것도 별로 없어, 간단히 목욕을 하고 일어서려던 순간, 다리 힘이 풀리면서 물속에 빠져 버렸다.

목운요가 허우적거리며 일어서려던 그때, 차가운 두 손이 그녀의 어깨 위에 올라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 어깨에 놓인 손을 쳐다보았다. 하얗고 긴 손가락 끝엔 회색빛이 돌았고, 새끼손가락엔 손톱이 빠져 있었다.

기괴한 모습이었지만 외려 목운요는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요즘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독 낭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만 손 치우지?”

하얀 손이 살짝 굳어지더니, 목운요의 어깨를 한 번 주무른 뒤 떨어져 나갔다.

목운요는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했다.

“수증기에 약을 타다니. 미처 생각 못 했군. 어서 해독제를 내놓지? 물이 차가워져서 감기 걸리기 전에.”

하지만 여전히 방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목운요는 한숨을 내쉬며 겨우 팔을 뻗어 옆에 놓인 옷 주머니에서 환약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잠시 뒤, 몸을 일으킨 그녀가 수건을 두르고 병풍 뒤로 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빈틈없이 꽁꽁 싸맨 어떤 여인이 탁자 앞에 앉아 환약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여인은 목운요를 위아래로 여러 번 훑어보며, 거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주 예쁘게 생겼네.”

목운요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내 생김새가 궁금해서 온 것이냐?”

독 낭자는 두 눈만 제외하고 얼굴이 전부 너울에 가려져 있었다. 최대한 살결을 숨겼지만 그래도 흉터가 보였다.

“원래 죽이러 오긴 했지만, 생김새가 예쁘니 살려 두기로 했다.”

“그렇군.”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었다.

회귀 전에도 독 낭자는 이랬다. 처음 만났을 땐 절대로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독 낭자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왔고 진왕의 다른 첩을 대신 혼내 주기까지 했었다. 그때 도와준 이유도 목운요가 예뻐서였다.

독 낭자가 손에 든 환약을 보며 물었다.

“이거 직접 만든 거니?”

“물론. 꽤 그럴싸하지?”

“그래서 역병이 빨리 통제된 거군. 의술은 어디에서 배웠어?”

“안 믿을 수도 있지만, 이전 생의 당신한테서 배웠지.”

독 낭자가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목운요의 얼굴을 세게 꼬집었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성격도 아주 맘에 드는구나.”

목운요는 은침을 꺼내 자신의 가슴 쪽 혈 자리에 꽂은 다음, 환약을 빼앗아 삼켰다. 그러고는 독 낭자를 노려보았다.

“정말 맘에 들면 몰래 독을 타지 말았어야지.”

그에 독 낭자는 그녀를 신기하게 응시했다.

“참 흥미롭네. 날 따라다니는 거 어때?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데.”

목운요가 검게 변색한 은침을 뽑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지금도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거든. 그리고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셔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럴 수 없어.”

그러자 독 낭자가 어디선가 약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은 무슨. 이 세상 남자는 다 똑같아. 방심하다가 크게 당한다?”

“난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어. 그리고 감히 날 속이면 죽여서 뒷산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지.”

목운요는 독 낭자의 손에서 약병을 가로채 뚜껑을 열었다. 냄새를 맡은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한테 선물로 줄 수 있을까?”

“뭔지 알고 달라는 거니?”

독 낭자는 목운요의 행동이 도통 이해가 안 갔다.

사실 그녀는 목운요를 죽이라는 명을 받고 여기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목운요를 본 순간 신기하게도 살의가 사라졌다.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한 벗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몽혼산(梦魂散). 무색무취해 태우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앗아 갈 수 있지.”

“대가는? 이건 쉽게 얻을 수 있는 독약이 아니거든.”

목운요가 머리에 꽂혀 있던 옥비녀를 빼서 독 낭자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예쁜 옷이랑 장신구, 돈뿐이거든.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아.”

독 낭자가 비녀가 꽂힌 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지금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다른 이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대체 뭐야?”

목운요는 몽혼산을 챙기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오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산속에 사는 여우 신선이거든. 어렸을 때 산에서 다리를 다쳤을 때 내가 꿩 한 마리 준 적이 있잖아. 기억해?”

이에 급히 창가로 도망간 독 낭자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너…… 다음에 제대로 결판을 내자!”

“하하.”

목운요는 통쾌하게 웃었다.

독 낭자가 떠난 후 그녀는 손을 깨끗이 씻었다. 아까 독 낭자가 그녀의 얼굴을 꼬집을 때 몰래 독을 묻혀서, 그녀도 독이 묻은 비녀로 대갚음해 주었다.

온몸을 간지럽게 하는 약한 독으로, 반 시진 정도만 참으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여우 신선이라 했던 건 순전히 독 낭자를 겁주려고 지어낸 것이었다.

평소 무서울 게 없는 독 낭자는 특이하게도 세상에 여우 신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숲속에서 여우를 만나면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그때, 월왕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목운요는 여전히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사야, 아직 대청에 안 가셨네요? 릉왕과 진왕 전하가 기다리고 계실 텐데.”

“그들은 더 기다려도 무방하다.”

그러면서 그가 세심한 동작으로 목운요의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무슨 일로 그리 활짝 웃고 있었던 게냐?”

“그냥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서요. 사람들에게 늘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해 줘요. 제가 드린 해독약도 늘 가지고 다니시고요.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드셔야 해요. 독을 잘 쓰는 고수가 임강성에 와 있으니.”

월왕이 멈칫하더니 걱정스레 물었다.

“별일 없었지?”

“걱정 마세요. 전 괜찮아요. 추후 이 고수를 우리 사람으로 만들면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을 거예요.”

목운요가 웃으며 대답했다.

독 낭자가 혹시라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답설이라도 내세워 수락하게 만들면 되었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목운요를 보며 월왕은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독을 잘 쓰는 고수와 잘 아는 사이인 것이냐?”

“친구인 셈이죠.”

독 낭자를 떠올리자 목운요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녀가 회귀 전 의술을 전수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 모습에 월왕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는 목운요를 보자 기분이 굉장히 복잡 미묘해졌다.

“그 사람이 혹 남자냐?”

뜻밖의 질문에 목운요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월왕은 급히 변명했다.

“우리 편으로 만들면 아무래도 머물 곳을 준비해 줘야 하니까. 성별을 미리 알면 우항한테 말해 두려고 물은 것이다.”

목운요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독 낭자라고 하고요. 저랑 같은 방을 쓰면 돼요.”

독 낭자? 그럼 여인이겠군…….

월왕은 문득 스스로가 너무 속 좁게 느껴졌다. 상대가 여인이라면 요아가 아무리 환하게 웃어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구나.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얘기하거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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