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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05화 (305/442)

305화 황제로서의 고민

두 관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황급히 말했다.

“소신,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군주는 하늘이고, 백성은 땅이며, 하늘과 땅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거늘! 어찌 땅에 문제가 생겼다고 바로 버리려는 것인가? 발아래 땅이 없다면 당신들이 설 곳이 어디며, 무엇으로 배를 채울 것인가? 당신들은 감사함이란 눈곱만치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들이다! 성문을 폐쇄해 백성들을 몰살하는 건 반역이다!”

그들은 유왕의 말을 지적할 겨를도 없이, 바닥에 엎드린 채 황제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소신, 절대 그런 뜻은 없습니다. 모두 유왕 전하의 모함입니다. 폐하의 고명한 판단을 믿습니다!”

그에 유왕이 쿵 소리가 날 만큼 계단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말했다.

“부황, 소자는 가슴의 미어질 듯 아픕니다. 강남 기수성의 참상을 직접 보셨다면 제 마음을 아실 겁니다. 성내가 온통 폐허가 되어 있었고, 사방에 시체가 널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부녀자들, 가족을 지키는 사내들, 살려고 애쓰는 노인들……. 그들 모두 그저 평범한 일반 백성들일 뿐인데, 왜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유왕을 내려다보는 황제의 눈빛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다 짐의 잘못이구나…….”

유왕은 눈물을 훔치며 의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부황, 대전에서 무례를 범한 소자를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기수성을 폐쇄하고 역병에 걸린 백성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한다면, 소자는 곧장 그자를 기수성으로 데려가 그곳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보여 줄 겁니다! 월왕과 온한 군주는 날마다 백성들과 함께 시체를 태우고 있고,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는 백 리 밖에서도 보일 정도지요. 그 시커먼 연기는 다름 아닌 억울한 백성들의 망령입니다. 그들은 조정 관원들이 백성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 나 있는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관원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유왕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군유, 예를 갖추거라.”

“소자,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며칠만 시간을 더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기수성에 있는 월왕과 온한 군주에게 약재를 보내 백성들을 치료해야 합니다. 소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유왕은 또다시 목놓아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듣는 이도 같이 눈물짓게 했다.

황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옥좌에서 내려와 유왕을 부축해 일으켰다.

“일어나거라. 기수성 백성들의 참상을 친히 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자네들 생각은 어떠한가?”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황제가 만족스럽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립, 유왕이 먼 길을 오느라 수고했으니 특별히 대전 위에 앉을 자리를 마련하거라.”

“네.”

서립이 재빨리 의자를 대령했다. 통곡하느라 힘이 빠진 유왕은 겨우 자리에 앉았다.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잘 다녀와서 다행이구나. 강남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 보거라.”

유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피해가 가장 심한 세 곳의 상황을 보고하고, 그중에서도 기수성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온한 군주가 고인들을 위해 명복을 빌고 있다 한들, 이 많은 조정 관원들이 남아 있는 그들의 가족까지 죽이려고 하는데, 망령들이 어찌 맘 편히 잠들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악귀가 되어 찾아올지도 모르지요…….”

그에 관원들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 악귀가 찾아오다니? 그들은 단지 우성 때 했던 대로 간언을 드린 것뿐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런 유왕을 말리긴커녕 설명을 들으며 연신 안타까워했다.

상황 파악을 마친 관원들은 더 이상 간언할 생각을 접은 채, 한쪽에서 조용히 있었다.

“백성들이 고난을 겪은 건 전부 짐의 불찰이니, 지금 당장 죄기조(罪己诏, 임금이 스스로를 꾸짖는 말)를 공포한 다음, 친히 백성들을 위한 제천 의식을 지내도록 하겠다.”

그에 관원들이 바닥에 꿇어앉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짐은 절대로 백성들이 고난을 겪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것이며, 한 사람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기수성 폐쇄 간언은 더 이상 꺼내지 말거라. 그리고 조정의 기둥으로서 그리 쉽게 무릎을 꿇는다면 짐은 할 수 없이 의지가 더 강한 사람들로 자네들을 대체할 수밖에 없다.”

“네, 폐하.”

관원들이 새하얗게 질린 채 모두 자리를 떠나자, 유왕은 곧바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좀 전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하고 경건해 보였다.

“부황, 소자의 무례를 벌하여 주십시오.”

황제는 그런 유왕을 한참 동안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거라. 네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유왕은 미동이 없었다. 방금처럼 울부짖거나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슬픔이 느껴졌다.

“소자, 부황께 간청드립니다. 백성들을 죽게 만든 진왕과 릉왕을 엄벌해 주십시오!”

“당장 일어나라!”

“싫습니다. 부황께서 백성들의 죽음을 가엽게 여기신다면 진왕과 릉왕 두 사람을 엄벌해 주십시오!”

황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탁자 위에는 유왕이 올린 이번 사건과 관련된 문건과 증언이 놓여 있었다.

“군유. 네가 뭘 원하는진 알겠으나, 짐은 절대로 황실이 만백성의 손가락질을 받게 둘 수 없다.”

“그럼 목숨을 잃은 백성들은요?”

유왕이 분통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도 아닌 수만 명의 목숨입니다! 소자가 가장 마음이 아픈 건 부황께서 평생을 애써 지키려 하신 이 강산이 두 아들 때문에 무너지고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때, 황제가 가쁜 숨을 내쉬며 옥좌 팔걸이에 기대어 몸을 한껏 움츠렸다.

흠칫 놀란 유왕은 급히 달려가 황제를 부축했다.

“부황, 소자가 잘못했습니다. 고정하십시오.”

황제의 눈이 잔뜩 상처가 난 유왕의 손에 머물렀다.

“짐이 좋은 황제도, 좋은 아버지도 아닌 걸 잘 안다…….”

“부황, 그렇지 않습니다. 큰형님과 셋째 아우의 잘못이지, 부황의 탓이 아닙니다.”

황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만 가 보거라. 혼자 있고 싶구나.”

“……네, 부황. 부디 옥체를 보중하십시오. 만백성이 부황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 *

유왕이 떠난 뒤, 황제는 대전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쨍쨍한 햇빛이 금으로 장식한 계단을 내리쬐어 눈부신 빛을 발했다.

그는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서립이 여러 차례 다가가 낮은 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황제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서립이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그때, 장공주가 대전에 들어섰다.

“장공…….”

“물러가거라.”

장공주는 한 손에는 술 주전자를, 다른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와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러곤 옥좌 아래 계단에 앉아 황제를 쳐다보며 물었다.

“제가 새로 담근 계화주를 맛보시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그제야 눈길을 돌리며 몸을 조금씩 움직이더니 장공주의 곁에 가서 앉았다. 그가 곧장 고개를 젖혀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장공주는 그런 황제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이렇게도 술을 아끼지 않다니. 운요가 직접 담근 술이라 다 마시면 더는 없습니다.”

“운요가 돌아오면 더 담그라고 하면 되지요. 짐의 입맛에도 딱 맞네요.”

“그건 월왕의 허락을 받아야지요. 월왕이 좋아하는 사람을 아주 끔찍이 아끼더라고요.”

“군월……. 누님, 강남의 일을 모두 알고 계시는 겁니까?”

“네.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장공주는 솔직히 대답했다.

“군릉과 군진이 이번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군요.”

황제는 다시 술잔을 비웠다.

“예전의 짐이라면 소식을 듣자마자 두 사람을 가뒀을 테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결단력이 점점 사라져 가네요……. 군유가 건넨 그 문건들을 본 순간, 저는 두 사람의 짓이 아니란 걸 증명할 만한 핑계를 찾기 바빴어요…….”

“부모는 자식 앞에서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지요.”

“누님,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

장공주가 황제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마음속에 답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누님, 짐은 백성들에게 실망을 안겨 줘서도 안 되고, 그 두 사람을 쉽게 용서해서도 안 됩니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께선 결정을 내리신 대로 하면 됩니다.”

황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릉왕과 진왕에 대한 실망감이 점점 더 커져 갔다.

“누님, 살면서 이런 두려움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유왕의 눈물과 분노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의 설명만으로도 기수성의 참상이 상상이 갔다.

목운요의 처방전이 아니었다면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황제로서 자신이 어찌 떳떳하게 백성들 앞에 선단 말인가?

“폐하께서 이런 생각을 하시는 것 자체가 백성들에게는 복입니다.”

황제의 불안해하는 눈빛을 보며, 장공주는 마음이 놓였다. 오랫동안 천하를 다스려 왔지만 아직 그의 마음속에 백성에 대한 경외심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누님, 애써 위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가 연이어 술잔을 비웠다. 술 주전자가 동이 난 뒤에야 술잔은 멈췄다.

장공주는 술 주전자와 술잔을 챙기며 일어섰다.

“한 잔 술은 기분이 좋고, 여러 잔 술은 몸에 해롭습니다. 술도 마셨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을 하러 가시지요. 이렇게 게으름 피울 시간 없습니다.”

눈앞의 이 사람은 황제다. 가끔 약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애써 위로를 건넬 필요는 없었다. 그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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