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02화 (302/442)

302화 소란을 피우는 자

* * *

기수성 산 중턱에 주둔지 하나가 만들어졌다.

식량과 약재가 끊임없이 산 위로 보내졌고, 외부 소식도 계속해서 들려왔다.

월왕은 탁자에 기댄 채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나서야 찌푸려진 미간이 펴졌다.

“요아, 부황께서 태의원의 모든 태의를 기수성으로 파견하셨다는구나.”

목운요는 약그릇을 월왕 곁에 내려 두며 기뻐했다.

“황상께서 기수성을 지켜 낼 생각이신가 보네요.”

진왕을 뒷배로 둔 조정 관원들이 기수성 폐쇄를 주장하며 두 번째 우성을 만들려고 했을 텐데. 하지만 결국 진왕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인 셈이었다.

“네가 보낸 처방전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적혀 있구나. 역병이 사라지면 부황께서 아주 큰 상을 내리실 거다.”

목운요는 일부러 유왕을 통해 처방전을 보냈다.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우성 성문 폐쇄 명령으로 인해 백성들이 그 안에 갇힌 채 목숨을 잃었을 때, 한 나라의 군주로서 황제도 아마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다시 역병이 번지는 상황에 맞닥뜨렸으니, 이겨 낼 경우 조정의 위신이 크게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목운요는 약 처방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처방전은 의술이 뛰어난 어떤 분한테서 받은 거지, 제 것이 아니에요.”

사실 이 처방전은 독 낭자가 개발한 것이었다.

마침 독 낭자와 만나게 되는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 처방전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면 스스로 그녀를 찾아올지도 몰랐다.

“요아,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그리움에 젖은 듯한 목운요의 표정을 보고 월왕이 물었다.

“그분 생각이 나서요. 아마 곧 저를 찾으러 올 거예요. 그때 소개해 드릴게요.”

목운요는 숨김없이 바로 대답했다.

월왕 앞에서 그녀는 이미 보통 사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 줬다. 그러나 월왕은 단 한 번도 따져 묻거나 하지 않았고, 그 덕에 목운요도 그의 앞에서만큼은 경각심을 늦출 수 있었다.

“그래.”

막사가 지어진 뒤로 이재민들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목운요는 그들이 오는 족족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다. 다만 역병이 확인되면 따로 격리되어 천막에서 지내야 했다.

격리 대상자가 된 이재민들은 이에 거부 반응을 보였고, 어떤 이들은 도망가려고까지 했다.

결국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죽일 것이라고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떠나려는 사람은 없었다.

목운요가 탁자 위에 놓인 약을 보며 말했다.

“사야, 약이 거의 식었으니 어서 드세요.”

월왕은 약그릇을 들어 단숨에 꿀꺽꿀꺽 마셔 버렸다. 그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한껏 찌푸리자, 목운요가 웃으면서 정과 하나를 꺼내 그의 입에 넣어 줬다.

함께 지내는 동안, 그녀는 월왕의 작은 버릇들을 알게 되었다.

일단 탕약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매번 탕약을 먹기 전에 항상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그렇게 하면 약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한 가지는 차가운 성격과 달리 부끄러움이 아주 많다는 점이었다. 부끄러울 때 표정이 평소보다 더 냉랭해지지만, 귀 끝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루하루 함께 지낼수록 그에 대한 마음은 더 깊어져만 갔다. 이 순간이 너무나도 달콤하고 행복했다.

월왕은 정과를 입에 문 채로 웃음 가득한 목운요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귀 끝이 빨개지고, 두 눈에는 따스함이 어렸다.

그의 눈 속에 담긴 별빛에 매료된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그의 속눈썹에 닿으려던 찰나, 막사 밖에서 사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야, 소저, 밖에 누가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목운요가 깜짝 놀라며 손을 내렸다.

“사야, 쉬고 계세요. 제가 나가 볼게요.”

“같이 가자꾸나.”

며칠간 요양한 덕분에 월왕의 몸 상태도 거의 회복되었다.

목운요는 그가 힘든 기색 없이 빠르게 일어서는 걸 보고 나서야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자 막사 외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 보니 어떤 남자가 시위에게 제압당한 채 악을 쓰고 있었다.

“이거 놔, 여길 떠나야 해……! 놓으란 말이다……!”

월왕과 목운요의 등장에 시위들은 인사를 올렸다.

“월왕 전하와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두 사람의 신분에 대해선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다. 이재민들이 격리 조치에 반항하지 않고 순종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황자와 군주가 함께 있는 한 절대 죽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왕이 소란 피우는 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전하께 아룁니다. 오전에 여기로 들어온 자인데, 몰래 도망가려다 저희한테 잡혔습니다.”

“어디에 머무느냐?”

“일반 막사로 보내졌습니다.”

월왕이 고개를 돌려 목운요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몰래 도망가려 한다고 해서 역병 환자인 줄 알았는데, 일반 막사에 보내진 걸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그럼 대체 왜 살길을 포기하고 떠나려고 하는 걸까?

“고개를 들어라.”

강제로 고개가 들려진 남자의 시선은 그에게 말을 건 월왕이 아닌 목운요한테서 멈췄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에 목운요가 천천히 다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날 아느냐?”

남자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모, 모릅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목운요는 한편에 서 있던 시위한테 분부했다.

“이자를 월왕 전하의 막사로 데려가거라. 물어볼 게 있다.”

“네.”

월왕의 막사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금이 소식을 전해왔다.

쪽지를 본 목운요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가 잠긴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입을 열 건지, 아니면 고문당할 건지 고르거라.”

“살려 주십시오, 군주님. 저는 일개 백성에 불과합니다. 막사를 떠나려는 이유는 기수성에 가서 제 가족을 찾고 싶어서입니다. 부디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이름이 무엇이냐?”

“……장력이라고 합니다.”

“장력?”

문득 목운요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기수성이 아직 홍수에 잠겨 있어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일 테니, 가족의 행방을 알려 주면 내가 찾아 주마.”

“어, 어찌 군주께 폐를 끼칠 수가 있겠습니까. 저 혼자 가도 됩니다.”

목운요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가족 찾으러 간다는 얘기가 거짓말인 걸 모르는 줄 아느냐? 이곳에 있는 게 기수성 백성으로서는 가장 좋은 선택일 텐데 떠나려 한다는 건,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게 나 때문이거나, 혹은 소씨 가문 때문이거나.”

쪽지에는 이자가 목운요의 신분을 알고 나서 떠나려 했다고 적혀 있었다. 만난 적은 없으나 자신에 대해 뭔가 알고 있으며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만한 건 소씨 가문과 연관된 일밖에 없었다.

소씨 가문이란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

“다, 당신이 어떻게…….”

역시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 이자는 소씨 가문과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 전에 소씨 가문 노부인의 출산을 조작한 산파의 아들일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만난 사람일 수도 있었다.

“당신이 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인가?”

“아닙니다!”

장력이 다급히 부인했다.

“목성은 제 둘도 없는 벗이었습니다. 제가 왜 그를 죽이겠습니까.”

“소씨 가문에서 증거까지 찾았다고 했거늘, 그래도 부인할 것이냐?”

이자가 줄곧 기수성에 머물러 있었다면, 소씨 가문이 망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를 수 있었다.

“그자들이 군주를 속인 겁니다! 군주, 목성을 죽게 한 건 소씨 가문 사람들입니다!”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군주의 진짜 가족을 찾아 더 이상 소씨 가문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걸 아셨을 텐데, 어찌 아직도 그들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홍수가 터진 뒤 겨우 목숨만 건져 이곳으로 피난 왔다. 하지만 살길을 찾아 기뻐하던 것도 잠시, 목운요가 이곳에 있다는 걸 듣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모를 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곧장 시위들한테 붙잡혔고 당황한 탓에 수상한 행동을 보여 결국 목운요와 대면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가만히 있었을 것을, 후회가 밀려왔다.

“소씨 가문의 딸이 내 어머니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 소씨 가문은 나에게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왜 그들이 아닌 당신 말을 믿어야 하는 거지? 더 이상의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여봐라. 이자가 다시는 내 앞에서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거라.”

“살려 주십시오, 군주님……!”

시위들이 다가와 끌어가려 하자, 장력은 곧바로 큰 소리로 말했다.

“군주, 소씨 가문이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소씨 가문 노부인에게는 소근이라는 딸 하나밖에 없습니다!”

목운요가 손짓으로 시위들을 내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장력을 쏘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장력은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유일한 살길임을 감지하고 말을 이어 갔다.

“군주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어머니께선 소씨 노부인의 출산을 도운 산파였습니다. 소씨 가문의 두 나리 모두 어머니께서 받으셔서, 노부인의 신임을 얻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어마어마한 은자를 가지고 돌아오시더니 황급히 저를 다른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때가 일곱 살 남짓이라 영문도 모른 채 가 보니 먼 타향에 와 있었습니다. 겨우 고향에 다시 찾아갔지만, 예전의 집이 화재로 인해 폐허가 되어 있었고, 부모님과 여동생도 목숨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당신이 도망간 걸 소씨 가문이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냐?”

“어머니께서 저와 비슷한 남자아이 한 명을 데려온 덕분에, 소씨 가문은 우리 일가족 전체가 죽은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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