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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01화 (301/442)

301화 황제의 선택

“어떤 걸 알아내신 건가요?”

“소금 상인들이 든든한 동아줄을 물색하고 있던 때, 진왕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고, 어떻게든 진왕을 한배에 태우기 위해 소금세 중 일부를 진왕한테 보내 쓰도록 했지.”

목운요는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진왕이 한때 통 큰 소비를 했던 게 그것 때문이었군요.”

공짜로 굴러 들어온 돈이니, 아껴 쓸 이유가 없었다.

“진왕이 자신들을 받아들이자, 소금 상인들도 거리낌 없이 강남에서 활개를 쳤다. 한데 릉왕이 진실을 폭로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고, 우리가 양렴까지 건드렸으니- 소금 상인들이 당황한 나머지 생각해 낸 방법이 소금세 장부 위조, 세금 위조였다.”

목운요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정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이군요.”

“진왕이 배후에 있다 보니 더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거지. 원래 계획은 세금을 운송하던 배를 임강에서 침몰시켜 버리는 것이었지만, 사실을 알게 된 릉왕이 일을 크게 키우기 위해 임강 수해를 꾸몄다.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진왕이 백성들의 뭇매를 맞게 할 속셈이었겠지.”

목운요의 눈빛이 냉랭해졌다.

“백성들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군요.”

“나도 릉왕이 그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사람을 쓰는 데에 있어서는 릉왕이 진왕보다 한 수 아래였지. 신변에 둔 첩자가 그의 계획을 진왕한테 일러바친 것이다. 진왕은 계략을 역이용해 임강 수해 범위를 늘리고 나까지 죽인 뒤 릉왕이 강둑을 폭파한 사실을 폭로하려 했지.”

곰곰이 생각하던 목운요가 물었다.

“사야 말씀대로라면 수해가 난 지 스무날도 지난 지금 두 사람이 진작에 싸워야 하는데, 왜 아직까지 잠잠한 거죠?”

“두 사람 다 아직 그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했거든. 이번 일로 꽤 많은 인명 피해를 입어 미처 손을 쓸 새가 없었겠지.”

“이렇게 큰일을 저질렀는데, 정말 아무런 증거도 없을까요?”

월왕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있지. 내가 잘 숨겨 뒀다.”

목운요가 멈칫하더니 곧바로 눈을 크게 떴다.

“숨겨 뒀다고요?”

릉왕과 진왕의 피 튀기는 싸움에 정작 이득을 본 건 월왕이라니, 그야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인 셈이었다.

“그래. 네 덕분이지. 전에 육냥을 통해 보내온 서신 세 통 중 한 통은 임강 강둑을 조심하라는 당부였고, 나머지 두 통은 릉왕과 진왕의 필체를 모방한 것이라 사람들이 나를 믿게 했지. 세금 위조 사실을 알고 난 뒤, 가짜 은을 만드는 장인을 찾아다녔다. 수량이 워낙 많다 보니 도토와 철 가루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단서를 찾아 기수성으로 온 거였다.”

“가짜 세금이 기수성에서 만들어진 건가요?”

“그렇다. 바로 가짜 세금을 만들 때 쓰는 금형인데, 릉왕도 줄곧 이걸 찾고 있었다.”

목운요는 기쁜 한편, 걱정도 같이 밀려왔다.

“중요한 물증이긴 하나, 가짜 은을 만들던 기수성 장인들은 거의 다 죽었을 것이고, 진왕이 뒤를 봐주던 소금 상인들 또한 전부 살해당해 그나마 장진이란 사람 하나만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상황이에요. 진왕의 죄를 입증하기엔 역부족일 것 같아요.”

진왕한테 이용당한 소금 상인들도 불쌍했다. 소금세를 조작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을 텐데, 정작 진왕은 애초부터 그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진왕이 워낙 치밀하고 꼼꼼해 일개 소금 상인과 금형 하나로는 역부족이긴 하지. 그런데 듣기론 너도 암암리에 뭔가 계획 중이라던데,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냐?”

목운요가 눈을 깜빡이며 일부러 뜸을 들였다.

“뭔가 계획 중이긴 하나, 그건 저희가 무사히 서릉으로 돌아갔을 때 실시할 거예요.”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아, 우린 반드시 무사히 돌아갈 거다.”

* * *

목운요가 보낸 서신이 유왕에게 전달되자, 기수성에 역병이 번졌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퍼졌다.

아직 역병에 효험이 있는 약 처방이 없다 보니, 역병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조정에서도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곧장 민심이 흉흉해졌고 조정도 혼란에 빠져 관원들이 하나둘씩 진언했다.

“폐하, 우성을 교훈 삼아 당장 기수성을 폐쇄하고 역병 전파를 막아야 합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우성은 인적이 드문 서북쪽에 위치해 있어 성문 폐쇄로 인적 유동을 막을 수 있었지만, 기수성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강남에 위치해 있는 데다 수로도 발달되어 있어, 성문을 폐쇄하더라도 역병을 막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성 폐쇄는 의미 없는 짓입니다.”

“폐하, 제 생각에는 수로를 막진 못하더라도 기수성 이재민들을 가둬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민이 여기저기 나다닌다면 역병이 순식간에 널리 퍼질 것입니다.”

“폐하, 우선은 역병 치료에 전념하여 역병에 걸린 환자나 짐승을 화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황이 더 심각하게 번지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

그러나 황제는 옥좌에 앉아 손에 든 상주서만 열심히 보았다.

관원들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조용해지자, 그제야 고개를 들어 화장으로 역병을 잠재워야 한다고 건의한 관원을 쳐다보았다.

“무병, 짐의 기억이 맞다면 자네 아들이 작년에 무장원(武状元)에 급제한 흔치 않은 인재였지.”

지명당한 관원이 황급히 나와 바닥에 꿇어앉으며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작년에 무장원 급제한 자가 제 아들이 맞습니다.”

“그렇군. 인재라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쳐야 마땅하지. 기수성 환자와 짐승을 화장하는 일을 자네 아들에게 맡길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을 들은 관원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슬하에 하나밖에 없는 자식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자비를 베풀다니? 이런 중요한 일을 맡긴다는 건 짐이 그를 높이 산다는 게 아니겠느냐? 자네는 자식이 짐을 위해 목숨 바치기를 원하지 않는 게냐?”

“저희 부자 모두 폐하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만, 기수성에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자네 아들이 죽는 건 싫고, 짐의 아들이 죽는 건 대수롭지 않다는 게냐?”

황제가 매서운 눈빛으로 바닥에 꿇어앉은 관원을 노려보았다.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겁에 질린 관원이 벌벌 떨며 대답했다.

“폐하! 소신, 목숨이 만 개라도 감히 황자 전하를 음해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조정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다른 관원들도 하나같이 늦가을의 매미처럼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줄곧 고개를 떨구고 있던 진왕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생각이 옳았다. 부황은 월왕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관원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황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 서립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태의원의 모든 태의를 궁으로 불러들이거라. 그리고 마차, 선박을 준비하여 태의들을 바로 기수성으로 보내라.”

상황 파악이 덜 된 일부 관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태의들이 서릉에서 기수성까지 가는 동안 역병이 손쓸 새 없이 크게 번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기수성 백성뿐만 아니라 더 많은 백성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백성들을 위해 재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결정했으니 더 들을 필요 없다.”

이내 태의들이 궁으로 소환되고, 관원들은 정전에서 쫓겨났다.

관원 몇이 정전 밖에서 무릎 꿇은 채 떠나지 않았지만, 황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태의원 원정(院正) 한평에게 처방에 대해 물었다.

“이 처방이 역병에 쓸 만한지 확인해 보거라.”

태의원 원정은 처방전을 한참을 보더니 뒤에 있는 태의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들끼리 낮은 소리로 상의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태의원 원정이 흥분한 기색으로 황제에게 아뢰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해당 처방전이 검증을 거친 건 아니지만, 역병 치료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어떤 효과일지는 아직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황제의 눈동자에 기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효과가 있을 거라니 다행이구나. 지금 바로 처방전에 적혀 있는 약재를 구하라고 명할 터이니, 바로 기수성으로 가 역병에 걸린 이재민들을 치료하거라.”

기수성으로 파견한다는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이도 있었지만, 어명이라 어길 수가 없었다.

이윽고 태의들을 태운 마차와 배가 기수성을 향해 출발했다.

조정에는 관원들의 상주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황제는 거들떠볼 생각도 않은 채, 서립에게 전부 태워 버리라고 명령했다.

이를 지켜보던 장공주가 사람을 시켜 황제 앞으로 식사를 대령했다.

“황상, 뭐라도 드시고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방금 전 관원들을 상대할 때의 냉랭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황제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만이 역력했다.

“누님, 군월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겠지요?”

장공주는 두 눈에 가득 찬 근심을 억누르며 위로를 건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군월과 운요 모두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한편 서릉에서 온 서신을 받은 유왕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런 유왕을 보자 옆에 있던 심복도 살짝 마음이 놓였다.

“왕야, 그럼 기수성은…….”

“부황께서 태의들을 파견하셨다고 하니 아마 며칠 뒤면 기수성 역병이 어느 정도 완화될 거다.”

그러면서 유왕은 목운요가 보내온 금패를 만지작거렸다. 장공주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목운요한테 건네준 이 금패 덕분에, 유왕도 일사천리로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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