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300화 (300/442)

300화 역병

목운요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숨을 못 쉬겠어요.”

“그럼 조금만 덜 세게 안으마.”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속이 타들어 갔다.

“방금 전이랑 똑같은데요?”

“난 말하면 꼭 지키는 사람이다. 못 느꼈다면 더 깊이 느껴 보거라.”

월왕은 이대로 짓궂은 장난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녀와 같이 있을 때면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변화를 즐기고 싶었다. 목운요를 곁에 둘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모습으로 바뀐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힘은 몰라도 심장이 엄청 빨리 뛰는 건 느껴지네요.”

목운요가 팔을 뻗어 월왕의 허리를 안으며 웅얼거렸다. 입가엔 달달한 미소가 번졌다.

귀까지 새빨개진 월왕의 눈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꿈이 아닙니다.”

“그럼 날 한 번만 불러 줄래?”

목운요는 그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

“사야…….”

그녀의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월왕의 귀는 한층 더 빨개지고 온몸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다르게 불러 줄 수 있나?”

“그럼…… 군월?”

“그거 말고, 다른 건?”

처음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목운요는 지금 상황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딱히 떠오르는 호칭이 없네요. 사야께서 말씀해 보시죠.”

“그게…… 아까 말했던 부군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

목운요가 화난 척 그를 밀어냈다.

“어서 놓으세요. 아까 약을 쏟아 버려서 다시 달여 와야 해요.”

월왕이 잠깐 멈칫하더니 목운요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웃어 버렸다.

“요아, 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심장이 뛸 때마다 뜨거운 희열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큰소리로 온 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목운요가 자신의 여자라고.

목운요는 어쩔 수 없이 그가 원하는 만큼 안겨 있기로 했다. 대신 이따가 약을 진하게 달여 제대로 쓴맛을 보여 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을 애타게 한 월왕에게 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 *

부상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던 탓에, 월왕은 기쁨을 잠시 만끽하다 피곤함을 못 이긴 채 잠이 들어 버렸다.

그가 잠든 뒤에야 목운요는 침대에서 일어나 막사를 빠져나왔다.

한데 사금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소저, 이재민들이 아직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월왕이 기절해 있는 동안, 목운요는 우항한테서 그동안의 일들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더욱이 배은망덕한 이재민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한테 전하의 안위를 귀띔해 준 여인은?”

“있습니다.”

“데려와 줘. 아까 보니 아이의 상태가 위급해 보였어. 어찌 됐든 귀띔해 준 은혜를 갚아야겠지.”

반면 월왕을 늑대 무리 속으로 떠민 자들의 생사는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봄이라 산속에서 나물을 캐 먹기만 해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목운요의 앞에 서게 된 여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품속의 아이를 꽉 껴안았다.

“걱정 마세요. 아이를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아이 상태가 위급해 지금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목운요의 말에 여인은 잠깐 주춤하더니 천천히 손의 힘을 풀었다.

아이를 진맥하고 난 뒤, 목운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사금한테 말했다.

“모든 이재민을 한곳에 모이게 하고, 의원들에게 한 명씩 진맥하라고 해. 그리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 주고. 아이를 목욕시키고 침술 치료를 할 거야.”

맥박이 불안정하며, 온몸이 뜨겁고, 눈의 흰자가 노란 걸 보니…… 분명 ‘역병’ 증상이었다.

“아씨, 우리 아이가…….”

“걱정 마세요.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습니다.”

목운요는 사기에게 아이를 건네받게 한 뒤 한편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도 곧바로 뒤따라가려 했지만, 막사 앞에서 픽 하고 쓰러졌다.

두 모자를 막사 안으로 옮기고, 한 시진 정도 치료한 끝에야 겨우 병세를 억제할 수 있었다.

“육냥, 서신을 써 줄 테니 당장 임강성에 계신 유왕께 가서 기수성 도로 공사를 잠시 멈추시라 하거라. 그리고 조정에 상주하여 강물 하류를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고도 전하거라. 혹시라도 기수성에 역병이 돌면 자칫 강물을 따라 하류 지방에까지 퍼질 수 있다.”

“알겠습니다.”

목운요는 무거운 마음으로 서신을 쓴 뒤, 역병에 쓰이는 처방전도 동봉하였다. 그리고 나서 진 총관과 정 총관에게 최대한 많은 약재를 확보하고, 백성들이 당분간 강물을 마시지 않도록 경고하라고 서신을 보냈다.

역병 앞에서, 소금세 사건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 후 그녀는 이재민들을 진맥한 의원을 찾아갔다. 근심 어린 의원의 표정을 보고 목운요의 가슴도 내려앉았다.

“의원님, 어떤가요?”

“군주께 아룁니다. 몇몇 사람이 역병 증상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초기라 억제 가능합니다. 다만…….”

의원이 머뭇거리며 산 아래 기수성을 바라보았다.

이재민들의 말에 의하면, 갑작스런 홍수와 강의 범람으로 인해 지세가 낮은 기수성은 순식간에 침몰되어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 없다고 했다. 지금의 기수성은 아마 시체가 여기저기 떠다니는 죽음의 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목운요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기수성으로 갈 수 없습니다. 완치가 되기 전까진 저 사람들도 절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늑대들은 썩은 고기를 먹지 않지만, 워낙 굶주리다 보니 물이 빠지고 나면 먹이를 찾으러 기수성으로 갈 수도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 안 되면 늑대 떼를 전부 죽여 역병이 퍼지는 걸 막을 수도 있고요.”

“네.”

막사로 다시 돌아갔을 땐 월왕이 깨어 있었다.

“사야, 일어나셨어요?”

그가 목운요의 손을 당겨 자신의 옆에 앉혔다.

“바깥이 소란스럽던데,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근심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병입니다. 사야와 함께 있던 이재민들에게서 증상이 발견됐어요. 다행히 아직 초기라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월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또다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육 년 전, 우성에서 일어난 일을 들어 본 적 있느냐?”

“당시 수해를 입은 우성에도 역병이 크게 돌았었죠. 인근 다른 성 백성들의 부추김에 못 이겨 조정은 우성 성문을 폐쇄했고, 결국 우성 백성 전체가 사망했다지요.”

마치 눈앞에 불길이 타오르는 듯 월왕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네가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 당시 우성에서 누군가가 비밀리에 군마를 길들이고 병기를 만들어 밀매한 사실이 드러나자, 그자가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강둑을 폭파해 성을 침몰시키고, 역병 상황을 허위 보고해 결국 우성을 몰락으로 몰아넣었지.”

목운요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고요? 황상께선 전혀 사실을 모르셨던 건가요?”

“워낙 치밀하게 행해진 일이라 부황께서도 나중에야 알게 되셨다. 진실을 알고 나서 크게 노하시며 이와 연관 있는 조정 관원들을 모조리 주살하셨지.”

“우성의 비극을 똑같이 재현하려는 속셈일까 봐 염려하시는 거군요.”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소금세 위조 증거를 찾아 기수성에 도착한 바로 이튿날에 강둑이 폭파되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구나.”

목운요도 덜컥 겁이 났다.

“사야의 추측이 맞다면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요.”

월왕이 목운요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말했다.

“요아, 이런 일에 너까지 끌어들이면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너를 곁에 두고 싶은 이기적인 생각이 드는구나. 만약의 경우 이대로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을 텐데, 후회하지 않느냐?”

목운요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얼굴을 갸우뚱 기울였다.

“후회한다면 저를 보내 주실 건가요?”

“아니.”

“그럼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 목숨을 빼앗아 갈 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는지는 두고 봐야죠.”

월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목운요의 이런 당당한 모습을 볼 때마다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이번에 구휼을 맡은 사람이 누구지?”

“유왕 전하입니다.”

“둘째 형님이군……. 그분이라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겠구나.”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든 생각에 옷소매에서 향낭을 꺼냈다.

“사야, 임강성 땅굴에서 이걸 발견했어요.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월왕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았다.

“부황의 명을 받고 소금세 사건 조사를 위해 임강성에 가 보니, 장부는 무척이나 깨끗했다. 다만 세금 창고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긴장하고 있었지. 이상하단 생각에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 창고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세금이 전부 진흙 표면에 은을 칠한 가짜더군.”

“제가 임강원 연못에서 발견한 것이 사야가 창고에서 빼돌린 거였군요.”

“그걸 찾았구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임강원 안에 숨겨 두고 표시를 남겼지.”

목운요가 눈썹을 치켜떴다.

“임강원은 소금 상인 주회가 관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지은 곳이라, 사람 마음을 매혹시키는 방법을 배운 여인들이 많다던데. 가짜 은을 임강원에 숨긴 걸 보니, 주회가 사야를 임강원으로 초대했나 보네요?”

월왕이 멈칫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요아, 걱정 마라. 내 몸과 마음은 언제나 너만을 향해 있으니. 꽤 많은 정보를 알아낸 내가 여인에게 넘어가지 않자, 주회는 내 술에 몰래 약을 타서 기절시킨 다음 땅굴 속에 가둬 두었다.”

목운요가 입술을 다문 채 웃어 보였다. 물론 속으로는 혹시라도 그가 딴마음을 품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별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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