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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99화 (299/442)

299화 위기의 순간

극도의 배고픔 상태였던 늑대 떼들은 사람 그림자가 보이자, 울부짖으며 다가왔다.

월왕은 늑대 떼들이 한쪽으로 몰린 틈을 타, 고개를 돌리며 명했다.

“잘 따라와라. 더 이상 당신들을 구하러 돌아가지 않을 테니!”

이재민들은 몸을 일으켜 최대한 움츠린 자세로 월왕과 우항의 뒤를 따랐다.

며칠 동안 굶주린 늑대 떼들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들은 미끼로 던져진 남자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에 월왕이 늑대들을 향해 손에 든 장검을 휘둘렀다.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기세에 눌린 늑대 떼는 뒷걸음질 치면서도 월왕과 우항의 주변을 점점 에워쌌다.

늑대는 원한을 새기는 짐승이다. 월왕이 동족을 죽였으니 이미 그한테 앙심을 품어, 다른 이재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늑대 떼들이 두 사람만 노리고 있자, 이재민들은 서쪽 오솔길로 냅다 달렸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을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상황을 눈치챈 우항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월왕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구해 줬건만, 정작 위기 상황에 놓이자 배은망덕한 인간들에 불과했다!

“전하, 제가 늑대들의 시선을 끌 테니 먼저 가십시오!”

월왕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팔의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달려들어 그의 팔을 힘껏 물어뜯었다.

“전하!”

우항이 황급히 다가가 늑대를 베어 죽인 뒤 월왕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숨을 가쁘게 내쉬는 월왕의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눈빛에는 아득함이 스쳐 지나갔다. 월왕은 이재민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생사를 앞에 두고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살길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그가 가장 걱정되는 건 목운요였다. 자신이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녀가 얼마나 슬퍼할까?

* * *

그 시각, 숲속을 헤쳐 나가던 목운요 일행은 한 무리의 이재민들과 마주쳤다.

“저…… 먹을 것 좀 주십시오.”

그들은 목운요 일행을 보더니 구세주라도 본 듯 순식간에 그들을 에워쌌다.

“너무 오랫동안 굶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목운요가 다가가 물었다.

“혹시 기수성 이재민들인가요?”

“네, 맞습니다. 제발 먹을 것 좀 주십시오. 저희가 며칠 동안 동굴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에 그녀가 사금한테 음식을 나눠 주라고 시키려던 찰나, 아이를 안은 한 여인이 급히 다가와 알렸다.

“동쪽에 아직 늑대 떼들과 대치 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명이나 더 있나요?”

“두 분인데…… 저희를 구해 주신 은인과 시위입니다.”

시위.

이 두 글자를 듣는 순간, 목운요의 머릿속에는 월왕의 모습이 스쳐 지나면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혹시…… 월왕일까?

“육냥, 어서 사람을 데리고 가 봐!”

“네.”

한편 이재민들은 그녀가 식량을 나눠 줄 의향이 없어 보이자, 무턱대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연약해 보이는 목운요를 겨냥해 직접 그녀의 몸에 손을 대기까지 했다.

이를 본 사금은 곧장 단검을 던져 그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

“썩 물러나라!”

이에 모든 이재민이 그 자리에 놀란 채 굳어 버렸다.

반면 목운요는 그들을 신경 쓸 겨를 없이 바로 동쪽으로 향했다.

* * *

월왕은 마지막 힘을 다해 내력을 끌어 올렸지만, 점차 몸동작이 느려졌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우항도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 많은 늑대를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직감이 뛰어난 늑대 떼는 상대의 기진맥진함을 눈치채고 으르렁거리며 주위를 맴돌다가 다시 두 사람을 덮쳤다.

“전하!”

우항이 늑대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던 그때,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장검 하나가 날아와 월왕을 덮치려는 늑대의 머리를 관통했다.

이내 등장한 육냥 등은 빠르게 달려와 늑대들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바닥에 동족의 시체가 쌓여 가자, 늑대 무리가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월왕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흐릿해져 가는 눈을 애써 떠 보았다.

그 순간, 목운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운요가 비틀거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옷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비틀거리는 몸짓은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목운요에게 천천히 오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괜히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마음이 더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월왕의 곁에 넘어지듯 쓰러진 목운요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 쉰 소리로 울부짖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무사히 서릉으로 돌아온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제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당신 여기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요! 알아요? 지금 죽을 뻔했다고요! 그것도 쥐도 새도 모르게! 늑대들한테 뜯겨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시신도 못 찾았을 거고, 다시는 당신을 못 보게 됐을 거라고요……!”

월왕이 무거운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녀의 빨개진 눈가를 어루만졌다.

“운요, 울지 마라.”

목운요는 목구멍이 턱 막히면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당신……!”

그가 애써 웃음을 지으려는 순간, 온몸의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목운요의 품에 쓰러졌다.

“……사야?”

그녀는 곧장 월왕을 진맥했다. 그녀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약상자에서 환약 하나를 꺼내 월왕에게 먹인 다음 사금을 불렀다.

“사금, 가서 평지를 찾아 막사를 치고 뜨거운 물과 죽을 준비해 줘.”

“네, 소저.”

함께 따라온 의원은 우항을 진료했다. 내상은 심하지 않았으나, 기력이 없는 데다 외상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다행히 목운요가 만반의 준비를 한 덕분에, 환약을 먹이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몸조리하는 일이었다.

* * *

천천히 눈을 뜬 월왕은 무의식적으로 옆에 차고 있던 장검을 만지려 했다.

그 순간, 쨍그랑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화가 잔뜩 나 있는 목운요와 바닥에 깨져 있는 약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녀를 보자, 월왕은 저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운요…….”

목운요가 그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월왕 전하, 무엇을 해 드릴까요?”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목운요의 옷소매를 잡고 허약한 목소리를 냈다.

“상처가 너무 아프구나…….”

목운요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전하께 가장 좋은 약을 썼습니다. 아직 약효가 남아 있을 텐데 아픔을 느끼시는 건가요?”

“그래, 아프다.”

월왕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운요는 미소를 지으며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참으세요. 잠깐 아픈 게,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이에 그가 목운요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와락 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심장에 갖다 댔다.

“나 아직 살아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거라.”

월왕은 그녀의 분노 뒤에 숨겨진 두려움과 놀란 마음이 다 느껴졌다.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힘껏 아랫입술을 깨문 목운요는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말을 이번에야 제대로 느꼈다. 월왕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마치 누군가 심장을 떼어 간 것 같았고,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뒤덮인 것만 같았다.

한데 월왕의 힘 있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그제야 한껏 팽팽하게 당겨졌던 마음속의 근심 걱정이 내려앉았다.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었고, 월왕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월왕은 얼굴이 상기된 채 낫게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에 목운요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왜요? 어디 불편하세요?”

월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눈매에는 마치 봄날의 강물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지?”

“당연하죠. 전하 찾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제 손 좀 보세요. 말 고삐를 오랫동안 잡았더니 굳은살로 변했지 뭐예요.”

목운요가 월왕에게 손을 보여 주며 말했다.

“어떻게 보상하실 건가요?”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마.”

“이뿐만이 아니에요. 다리에도 찰과상을 입었고, 발에 생긴 피멍울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어요. 게다가 목숨까지 살려 줬으니 저한테 어마어마하게 많은 빚을 지신 거예요.”

월왕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목운요의 눈빛은 반짝이면서도 확고했다.

“저한테 진 빚을 갚으려면 전하께서 남은 일생 동안 제 시중을 들어 줘도 모자라지만, 그건 바라지 않으니…… 남은 생을 저한테 바쳐 제 부군 노릇을 하세요!”

이에 월왕은 그대로 굳어서 무의식중에 목운요의 손을 꽉 잡았다.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 아파요!”

그제야 정신이 든 월왕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운요, 지금 한 말…… 진심인 거지?”

“당연하죠. 이따 계약서부터 쓰시죠. 절대 무를 생각 마시고요.”

“물론. 절대 무르지 않을 것이다.”

월왕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미소였다.

목운요는 그런 월왕의 볼을 두 손으로 잡고 양쪽으로 당겼다.

“바보.”

피식 웃은 월왕은 두 팔을 뻗어 목운요를 힘껏 품에 안았다. 그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너도 절대 무를 생각 마라.”

얼굴이 빨개진 목운요는 그를 밀쳐 내려 했다.

“잠깐만요. 며칠 동안 목욕을 못 해서 냄새난단 말이에요.”

“그럴 리가. 너에게선 항상 꽃보다도 향기롭고, 꿀보다도 달콤한 향이 나거든.”

“상처도 조심해야 해요…….”

“괜찮다. 상처가 찢어지면 네가 다시 묶어 주면 되지.”

목운요가 뭐라 하든 월왕은 절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처럼 그녀를 품에 안고 있어야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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