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덜미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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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뚫어져라 감시하고 있는 성 공공 때문에 조리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성 공공, 이 요리 어떠십니까?”
성 공공이 찬찬히 보더니 말했다.
“괜찮네. 갖다 드리거라. 한데 그 옆에 너, 무슨 요리를 하고 있는 게냐?”
“이건…….”
때마침 주방에 들어온 우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 공공, 이건 좀 지나치지 않나요?”
“지나치긴 뭐가 지나쳐?”
성 공공이 우의를 노려보았다.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이야.
왕야께서 드디어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난 건데, 목 소저마저 놓치면 아마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걸 두고 볼 수 없으니 온갖 방법을 써서라도 둘 사이를 맺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성 공공의 기세에 눌린 우의가 침을 꼴깍 삼켰다. 진 총관보다 성 공공이 더 비위 맞추기 어려웠다. 우의는 내심 그와 늘 붙어 있는 우항이 걱정스러웠다.
* * *
식사 준비가 끝나자, 성 공공이 목운요 옆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소저, 조리사 솜씨가 출중하진 않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셔 주시길 바랍니다. 이 요리 이름은…… 달콤한 사랑이고…….”
목운요는 당황스러웠다. 나물무침이 언제 이런 이름으로 바뀌었지?
그 모습을 본 월왕은 낮게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반찬을 목운요의 그릇에 옮겨 줬다.
“맛보거라.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구나.”
달콤한 사랑이니,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성 공공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
“이번 요리는 비익쌍비(比翼双飞)로…….”
이번에는 닭고기 요리인데, 반지르르한 닭 날개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건…… 백년호합…… 이건 금옥만당…… 이건 다복다남…….”
설명을 들은 목운요는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지는 걸 느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우항과 우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월왕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면서 눈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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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부에서 음식을 배불리 먹고 공주부로 돌아오니 한껏 들떠 있는 유왕을 볼 수 있었다.
“둘째 외당숙을 뵙습니다.”
“운요, 예를 거두거라. 그리고 이 옥패를 선물로 줄 테니 받거라. 집에 진주도 꽤 있는데 내일 사람을 보내서 가져다주마.”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고모님께서 다음번에 또 민…… 아니, 초씨 부인을 공주부로 초대하거든 꼭 나한테 알려야 한다.”
“그럼요. 선물까지 받았으니 명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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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이 추민의 횡령 사건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왕이 방문을 알려 왔다.
“어찌 이곳에 다시 오신 겁니까?”
“여기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들렀지. 식사 한 끼 얻어먹고 가도 될까?”
“형님의 모습을 보아하니 단순히 밥 먹으려고 오신 건 아닌 듯합니다만.”
그에 유왕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목운요와의 사이는 정리된 건가?”
“형님을 속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우야. 세상엔 여자가 널렸고 목운요보다 너한테 더 어울리는 여자도 많을 거야. 그러니 이만 관계를 정리하거라.”
월왕이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형님, 이미 늦었습니다.”
놀란 유왕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눈빛에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늦었다니? 설마…….”
월왕이 재빨리 부인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 둘은 단 한 번도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유왕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게 아니면 뭐가 늦었다는 거지?”
“이미 가슴속에 운요가 자리 잡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월왕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제 감정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나 부황께서…….”
“형님, 염려 마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에 관원 치적 심사를 맡은 태위 추민이 암암리에 꽤 많은 뇌물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혹시 형님께서 나설 생각이 있으신지요?”
“추민?”
유왕이 눈을 거슴츠레 떴다.
“그자는 내 미래의 장인어른이신 민 각로와 숙적 사이지. 드디어 꼬리가 밟혔군. 믿을 만한 이야기인 건가?”
“그렇습니다.”
유왕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일은 나에게 맡기거라. 추민, 그 늙은 여우를 단단히 혼쭐내 주어야겠어. 관원 치적 심사는 부황께서도 중히 여기는 일인데, 감히 그걸로 장난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외지로 파견된 한 감찰어사가 적발한 내용입니다. 이자의 상주서가 서릉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가로챘고, 마침 제 수하가 다시 찾아와서 사실을 알게 됐지요. 모쪼록 화를 입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염려 말거라.”
신이 나 있던 유왕이 갑자기 표정을 바뀌었다.
“근데 너와 운요 사이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던 참인데, 왜 갑자기 추민 얘기로 샌 거냐?”
“형님, 전 제가 결정한 일은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유왕은 더 타이르고 싶었지만, 월왕의 진중한 표정을 보자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네가 냉궁에서 지낼 때 내가 종종 담장을 넘어 널 보러 갔었지. 거의 반년의 노력 끝에야 네가 처음으로 나한테 말을 건 걸 보고 네 쇠고집을 알아차렸다. 그래,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으마. 다만 부황께는 빨리 알리는 게 좋을 것이다. 내가 입을 다문다 해도 릉왕과 진왕이 그럴 거란 보장은 없거든.”
“네,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혈연만 아니었다면 너와 운요는 정말 천생연분이지. 물론 나와 방화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형님도 제 앞에서나 이런 얘기 하시지, 정작 민 소저 앞에선 숨소리도 크게 못 내시지 않습니까.”
유왕이 발끈하며 대답했다.
“혹 말을 잘못할까 봐 그러는 거 아니냐. 나한테 시집오고 나면 이 상황도 끝이다. 황실에 발만 들이면 후회해도 이미 늦었을 테니…… 흐흐…….”
월왕은 그런 유왕이 내심 부러웠다. 언제쯤 자신도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목운요한테 잘해 줄 수 있을까?
* * *
이월 중순에 접어들자, 조정에서는 태위 추민의 뇌물 사건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평소라면 관원이 횡령에 연루되더라도 이렇게까지 큰 파문을 일으키진 않는다. 그러나 그가 관원 치적 심사 감찰관으로 있을 때라 더 심각해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여기에 연루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추민은 손쓸 새도 없이 감옥에 갇혔다. 유왕이 추민의 횡령을 증언할 관원을 찾아 모으고, 상주서를 가로막은 자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황상은 크게 노해, 철저히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다. 관청 사람들은 추민의 저택에서 진귀한 골동품, 주옥, 장식품 등을 찾아냈다.
그 와중에 릉왕 휘하의 사람이 양강 안찰사 양렴을 고발하자,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간 양렴의 치적 심사가 최고로 높았던 탓이다. 만약 이 심사 결과가 뇌물로 얻어진 거라면, 치적 심사 자체가 큰 웃음거리가 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어둑해진 밤, 소식을 들은 양렴은 진왕부에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생각했겠지만, 누군가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양렴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진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들여보내거라.”
양렴은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빌었다.
“전하, 도와주십시오.”
“아무 탈 없을 거라고, 완벽하게 뒤처리했다 하지 않았나? 왜 이제 와서 덜미가 잡힌 거지?”
양렴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실은 추민이 뇌물을 받고 입을 싹 닦을까 봐 증빙을 남겼습니다.”
“증빙을 남기더라도 잘 간수하면 되는 것이지 않나.”
“오랫동안 옆에 둔 심복이 절 배신할 줄은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양렴은 한껏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전하, 소인을 구할 수 있는 건 전하뿐입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곧 세금을 서릉으로 운송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진왕이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게냐?”
“아닙니다. 소금 상인들은 세금이 전하께 가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뇌물을 전부 써 버린 마당에 그들과 같은 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곧 밑 빠진 배가 움직일 텐데, 빨리 구멍을 메꾸지 않으면 저희 모두 빠져 죽을 것입니다.”
진왕이 눈을 찌푸렸다.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난폭한 기운이 풍겼다.
“돌아가거라. 방법을 구해 볼 테니.”
양렴은 마음이 안 놓이는 듯 덧붙였다.
“전하, 저를 꼭 살려 주셔야 합니다.”
“걱정 마라. 자네의 공로를 잊지 않고 있으니. 이대로 보고만 있진 않을 거다.”
양렴이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말했다.
“네. 그럼 이만 가서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양렴이 나가자 진왕이 심복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양렴을 남겨 둬선 안 된다.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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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월왕부의 침전에 촛불이 켜졌다.
월왕은 몸에 피비린내를 풍기는 우항을 바라보았다.
“진왕이 과연 손을 썼군.”
“네. 진왕이 사람을 시켜 양렴을 죽이려 했습니다. 왕야의 명대로 양렴은 살려 뒀습니다.”
“그래. 진왕이 어지간히 당황했나 보구나. 순천부 사람들이 왔더냐?”
“심병괴가 지금쯤 현장을 조사하고 자객의 신분을 알아보고 있을 겁니다.”
“잘됐군. 심병괴의 성격이라면 모든 게 쉬워지지. 계획대로 내일 아침 일찍 사람을 시켜 부황께 증거를 가져다드리거라. 그리고 진왕이 다른 꿍꿍이를 꾸미지 못하게 하운방과 불선루를 잘 지키도록 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