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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85화 (285/442)

285화 네 말이라면 다 믿는다

* * *

급히 월왕부로 달려온 목운요는 문에 들어서자마자 우의와 마주쳤다.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우의? 오랜만이네요. 진 총관님께선 잘 지내시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 총관님께서는 군주를 그리워하는 것 외에 무탈히 잘 지내고 계십니다.”

“다행이에요. 전하께서는 안에 계신가요?”

우의가 목운요를 안으로 안내했다.

“지금 서재에 유왕 전하와 함께 계십니다.”

그에 목운요가 다음 날에 다시 올까 고민하는데, 마침 유왕과 월왕이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유왕은 유쾌한 웃음으로 그녀를 반겼다.

“운요, 네가 여기 웬일이냐?”

“둘째 외당숙을 뵙습니다.”

목운요가 급히 인사를 올렸다.

월왕은 목운요의 머리카락 끝에 남아 있는 물기를 보고 그녀가 목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서재로 오너라. 성 공공, 화로를 준비해 주게.”

유왕이 토끼 눈을 뜨며 물었다.

“아니, 이 봄에 웬 화로냐?”

“제가 추위를 탑니다.”

월왕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보고, 유왕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물론 그 속내를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고모님의 외손녀이다 보니, 둘 사이의 혈연관계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유왕은 부황이 두 사람의 일로 화내기 전에 월왕을 잘 타일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내 목운요가 월왕을 따라 서재로 들어오자, 성 공공이 화로와 차를 가져왔다.

“소저, 차 한번 드셔 보시죠. 소저께서 알려 주신 대로 오랫동안 연습했답니다.”

연습한 차는 전부 우항와 시위들에게 먹였다. 그 결과, 우항과 시위들은 성 공공을 볼 때마다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내빼기 바빴다.

월왕이 유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형님께선 부황께 인사드리러 궁에 간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유왕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급할 것 없다. 저녁에 들러도 되지.”

그에 목운요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께서 둘째 외당숙 얘기를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장공주부에 오지 않으셨다고 하더군요.”

유왕은 자신을 내쫓으려는 두 사람의 수를 알아챘다.

“그럼 부황께 인사드린 다음 장공주부로 문안하러 가도록 하지.”

“아쉽네요. 외할머니께서 금일 초 부인을 뵙기로 했는데, 듣기론 민 소저께서도 동행한다고 합니다.”

유왕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민 각로의 손녀 민방화는 유왕과 정혼한 사이였다. 그러나 황태후의 국상을 지내다 보니 혼인이 미뤄지게 되었다. 게다가 혼기가 다가오자 민씨 가문에서 규칙을 가르친답시고 그녀의 외출을 금지시키다 보니, 안 그래도 마음속에 그리움이 가득 찬 상태였다.

월왕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어서 가 보시지요. 부황께는 나중에 인사드려도 됩니다.”

“마침 고모님도 뵙고 싶었던 참이니 가 보겠네.”

유왕이 급히 떠난 후, 월왕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운요, 표정이 좋지 않구나. 이리 급히 오다니, 무슨 일 있는 게냐?”

목운요는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문득 머릿속에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가 바로 월왕을 찾아온 것이었으나, 과연 그가 믿을지,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며 난처한 기색을 띤 목운요에, 월왕은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목운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전하, 실은…… 할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 못 믿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운요, 우리 사이에 그런 걱정 할 필요 없다. 난 네가 하는 말은 무조건 믿으니 염려 말거라.”

“사실, 꿈에서 임강성이 수해를 입어 세금을 운송하던 배가 침몰해 세금을 몽땅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월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임강성이 수해를?”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 이 일이 일어날 때 자신은 소부에서 살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소우의는 이재민들에게 은자와 죽을 나누어 주며 명성을 얻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뒤, 호국사에 갔다가 강도를 만나는 바람에 목운요도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때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임강성 강물이 범람하기 전에도 한동안 날씨가 지금처럼 유난히 더웠다. 사람들은 유난히 따뜻했던 날씨가 하늘의 계시였다며, 미리 대비하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월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재 안을 왔다 갔다 했다.

목운요는 고개를 살짝 떨군 채, 월왕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로서는 꿈 이야기로 이 사실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과연 월왕이 믿어 줄 거란 확신이 없었다.

한참을 오가던 월왕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운요. 이 일은 아무래도 큰일이다 보니 침착하게 상의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임강은 수역이 넓어 매년 이월에 쌓여 있던 얼음이 녹아 종종 범람하긴 했지만, 몇 해 동안은 범람하는 경우가 없었거든. 올해도 비슷할 텐데, 이 시점에 강물이 범람해서 세금을 쓸어 버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지.”

목운요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제 말을 믿어 주시는 건가요?”

“당연히 믿지.”

월왕이 목운요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눈빛에는 굳은 믿음이 어려 있었다.

“내가 말했지 않나. 운요, 네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는다고. 게다가 이런 중요한 일을 가지고 장난칠 너도 아닐 테고.”

목운요는 마음속에 따듯한 무언가가 퍼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불선루 재정비도 마쳤고, 오랜 시간 동안 물심양면으로 준비했으니 이제 제대로 솜씨를 발휘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아무래도 사건의 발단이 강남 소금세인 것 같으니 거기서부터 파헤쳐 보자.”

“강남 소금세 문제가 생각보다 크다 보니 저희 힘만으로는 강남 소금 상인들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이의 손을 빌려 끄집어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양강 안찰사 양렴 말이냐?”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딱 들어맞지 않나요? 강남 소금세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양강 안찰사 양렴이 서릉에 돌아왔고, 진왕의 씀씀이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 그때 마침 양렴과 진왕이 만남을 가졌죠. 모든 일에는 인과 관계가 있는 법입니다. 전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흠, 부황께선 요즘 소씨 가문을 등용하려는 눈치시더군. 양렴에게 소문원이 맡았던 이부 상서 관직을 주려고 계획 중이시다.”

“이부 상서요?”

목운요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소문원을 이부 상서 관직에서 해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근의 부군 양렴을 그 자리에 올리려 하다니. 이건 오른팔을 왼팔로 바꾸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목운요를 바라보는 월왕의 표정도 무거워졌다.

“릉왕과의 싸움에서 늘 열세인 진왕이 야심 차게 쟁기 개조에 관한 건의를 내세웠으나, 반응이 생각보다 미지근했지.”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일 보 후퇴 작전이라…… 진왕도 참 기회를 잘 노리는군요. 황상께선 조정 세력이 균형을 잃지 않길 바라시죠. 열세인 진왕의 기를 살려 주고자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르는 관원을 등용하는 거군요.”

월왕이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그래. 다만 릉왕에 속해 있는 관원들 중 꽤 많은 이가 진왕한테 매수당해 암암리에 그를 돕고 있지.”

시선을 아래로 떨군 목운요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죠…….”

“운요?”

월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혹 무슨 일이 있느냐?”

정신이 든 목운요가 급히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양렴을 상대로 어떻게 증거를 찾을지는 생각해 보셨나요?”

“양렴은 올해 관원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

“관원 치적 심사 말인가요?”

“그래. 태위 추민이 이번 심사를 맡았는데, 알아봤더니 몰래 뒷돈을 받아 평가 결과를 조작했더군.”

월왕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살짝 두드렸다.

“추민을 파헤쳐 우선 양렴의 치적 심사 결과를 무효 시키고, 감옥에 처넣는 거지.”

“감옥요?”

목운요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어 갔다.

“전하, 형부 상서가 릉왕 사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릉왕의 손을 빌릴 예정이신가요?”

“내 처지가 비록 전보다는 나아졌으나, 그래도 총애하는 황자는 아니잖나. 이 일을 릉왕과 연관시켜야 진왕을 제대로 누를 수가 있을 것이다.”

목운요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어찌 됐든 피를 나눈 형제 사이인데, 마음은 먹으신 건가요?”

“운요, 혹시 내가 냉혈한 사람으로 보이느냐?”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지요. 저도 소씨 가문의 대부인과 소우의한테 일말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습니다. 전하도 이런 제가 냉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월왕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참 많았다. 그래서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선택과 행동을 충분히 이해했고, 거기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상의가 끝날 무렵, 목운요는 시장함을 느꼈다. 그제야 서재에 들어온 지 한 시진하고도 반이나 지났음을 알아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성 공공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먹고 가지 않겠느냐?”

목운요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그럼 외당숙께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에 월왕이 큰 소리로 웃어 버렸다.

“얼마든지. 게다가 내가 아직 빚진 것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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