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83화 (283/442)

283화 어머니는 강인하다

* * *

연회는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황제와 장공주가 모두 있는 자리라, 그 누구라도 감히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연회가 본격화되자 관원들은 청도원(听涛苑)으로, 부인들은 탁영수각(濯缨水阁)으로, 각 가문의 아가씨들은 일벽만경각(一碧万顷阁)으로 모셔졌다.

아가씨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목운요가 나서서 대접했다. 그러나 말이 대접이지, 그 누구도 목운요한테 함부로 할 엄두를 못 냈다. 오히려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목운요는 그런 이들을 차근차근 파악하고 세심히 챙겨 줬다. 그 덕에 꽤 많은 아가씨들이 목운요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한편에서 그 모습을 보던 소우는 부러운 눈빛을 했다. 자신만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때, 목운요가 홀로 있는 소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왜 아무것도 안 먹어요? 입맛에 안 맞아요?”

소우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처음엔 목운요를 동생처럼 대했는데, 그녀는 늘 언니처럼 든든하게 자신을 챙겨 줬다. 게다가 갑자기 온한 군주로까지 봉해졌으니, 어쩐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머뭇거리던 찰나, 저도 모르게 이상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네가 한 음식이 훨씬 맛있어.”

말하고 난 뒤 소우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이상하게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운요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어려워요. 다음에는 제가 직접 요리할 때 초대할게요.”

당황해하고 있던 소우의 눈에서 순간 빛이 반짝였다.

“정말이죠?”

“그럼요. 제가 언제 속인 적 있나요?”

“전에 눈여우가 옷을 찢어 입을 옷이 없다고 했었잖아요. 결국엔 제가 옷을 지어 줬죠.”

소우는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목운요는 잠깐 회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이 있었네요. 그럼 옷을 보내 드릴까요? 제가 직접 지은 옷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직접?”

소우가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네, 혹시 제 솜씨가 못 미더운가요?”

목운요가 웃으면서 소우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 옷 짓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 그러죠. 저는 손수건 하나라도 좋아요.”

왠지 모르게 목운요만 보면 소우는 마음이 편안했다. 이건 자신의 어머니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목운요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때, 멀리서부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장완이 다가왔다.

“온한 군주를 뵙습니다.”

“장 부인, 예를 거두세요.”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에 목운요는 금교한테 소우를 잘 보살피라고 분부한 뒤 장완과 함께 랑교 쪽으로 향했다.

따스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장완은 주변의 풍경에 취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군주와 편한 사이였는데, 이렇게 예를 갖춰야 하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부인께선 원하던 바를 이루셨으니 기쁘시겠습니다.”

“그럼요. 기쁘고말고요. 오늘 군주를 뵙고자 한 건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요즘 영화원을 드나들며 노부인한테서 뭔가 들은 얘기가 있는데, 군주와 연관된 얘기더군요.”

영화원이라면 소씨 가문의 노부인 손 씨 말인가?

“어떤 얘기인가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는 목운요를 보자, 장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별일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노부인께서 손짓으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군주라 하시더군요.”

목운요는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노부인께선 최근 정신이 오락가락하셨지요. 깨어나긴 했으나 움직임이 성치 않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요. 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저를 방어적으로 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군주를 음해하려는 마음이었다면 지금 이 사실을 털어놓지도 않았겠죠. 군주께서 이부인께 저를 잘 보살펴 달라 부탁한 건, 저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나요?”

“같은 목적이요? 부인의 목적은 무엇이죠?”

장완이 웃음기를 거두고 결연한 눈빛으로 답했다.

“소씨 가문을 패가망신으로 이끄는 것이지요.”

목운요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한테 뭘 원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죠.”

“육공주에 맞서려고 하지만 저로선 역부족입니다. 하여 군주님의 지원을 얻고자 합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앞으로 소씨 가문의 일에서 손을 떼기로 외할머니와 약속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장 부인을 도와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완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이 웃었다.

“군주께서 더 이상 소씨 가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하셨다니, 그럼 장공주 전하께 저에 대해 좋은 말 좀 해 주시지요. 혹여라도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나서겠습니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 도구가 되려 하다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해야 해요.”

장완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씨 가문에서 하언촌으로 사람을 보내 예전에 황상께 올린 춘수방 선물에 대해 조사하려는 눈치예요. 군주께도 불똥이 튈 수 있으니 대비하세요.”

“귀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목운요는 여전히 침착했다. 애당초 금수산하도를 수 놓을 때부터 소씨 가문에서 조사할 거라 예상했다. 그때도 두려울 게 없었고 지금은 더욱이 그랬다.

그때, 금란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알렸다.

“소저, 장공주 전하께서 대청으로 오라 하십니다. 황실 친인척들만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자리인 듯합니다.”

목운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알겠어요.”

장완이 떠나기 전 인사를 올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 *

목운요가 대청에 도착했을 때 장공주와 황제는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운요 왔구나. 어서 이리 와서 앉거라.”

목운요는 단정하게 인사를 올리며 장공주의 말에 대답했다.

“외할머니, 제가 한참 아랫사람인데 어찌 옆에 나란히 앉을 수 있겠습니까.”

그에 황제가 손을 내저었다.

“아주 예의가 밝구나. 그러나 오늘 하루만은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고 옆에 와서 앉거라.”

“그럼 명을 받들겠습니다.”

목운요가 장공주 옆에 자리 잡았다. 고개를 들자 미소 짓고 있는 월왕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그 눈빛 속에는 별빛이 흐르는 듯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

이를 본 유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황상께 술을 따라 주며 주의를 끌었다.

“부황,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사색에서 빠져나온 목운요가 급히 시선을 돌렸다.

“곧 장가가는 사람이 왜 이렇게 차분하지 못한 게냐?”

“부황, 고모님께서 운요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보셨지요? 저도 저렇게 아껴 주십시오.”

그 말에 황제가 호탕하게 웃었다.

“운요는 여자아이니 아끼는 거야 당연하지. 넌 사내대장부로서 이 아비의 고충을 덜어 줄 생각을 해야지, 어찌 이런 투정을 부리는 게냐?”

“부러워서 그럽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부황의 사랑이 간절할걸요?”

유왕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 자리가 마무리되고, 날도 어느새 어두워졌다.

황제를 배웅한 장공주가 고개를 돌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오늘 힘들었지? 어서 들어가서 쉬어라. 난 네 어머니와 따로 할 얘기가 있단다.”

“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연한아, 나와 같이 산책이나 하자꾸나.”

“네, 어머니.”

허연한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소청이 장공주와 함께 궁등이 밝게 비춘 길을 따라 걸었다.

“연한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느냐?”

이제 정식으로 딸로 인정받았으니 하루빨리 새 이름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자신의 딸이 소씨 성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칠 정도로 불쾌했다.

“앞으로요?”

“네가 전에 그랬었지. 지금까지 운요한테 의지만 했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운요한테만 의지하면서 살 생각이냐?”

허연한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

“저도 요아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매번 혼자서만 고군분투하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그녀는 도움이 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연한아, 남들이 봤을 땐 운요가 내 손녀딸인 데다 군주로 봉해져 앞으로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할 테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가장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단다.”

“어머니, 요아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어떡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목운요는 제 목숨보다 소중한 하나뿐인 딸이었다. 딸아이한테 도움만 된다면 그녀는 뭐든 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강인해야 한다. 운요를 보호하고 싶으면 반드시 손에 무기를 쥐어야 해. 이제 일품 혜의 부인이라는 신분을 얻었으니, 앞으로 필요한 건 수단과 책략이다.”

장공주가 허연한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어미도 안다. 네가 그런 건 배워 본 적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배워 둬야 할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너희를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날 테고, 그럼 네가 운요를 지켜 줘야 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강인하다…….”

그 한마디를 곱씹던 허연한이 결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어머니,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뭐부터 하면 될까요?”

“전에 내가 운요한테 소씨 가문의 일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 오늘부로 너한테 그 일을 맡길 거다. 사람이 필요하거나, 알아보고 싶은 게 있거든 곡 마마에게 말하면 모든 걸 지원해 줄 것이다.”

허연한이 머뭇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니, 소씨 가문은…….”

“소씨 가문은 네 인생을 망친 자들이다. 운요가 너를 데리고 경릉성으로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그 애 인생도 망가졌겠지. 그런 원수인데도 설마 동정심이 남아 있는 게냐?”

문득 딸아이가 말한 회귀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이내 그녀의 눈빛에 짙은 증오가 스쳤다.

“어머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소씨 가문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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