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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82화 (282/442)

282화 온한 군주가 되다

처음 등장할 때 입은 건 하얀색 치마저고리에 살구색 허리띠를 꽉 조인 의복이었다. 잘록한 허리 덕분에 몸매가 더욱 늘씬해 보였고, 분홍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백합 무늬가 수놓아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거기에 장공주가 목운요에게 꽂아 준 비녀는 보석으로 만든 수시옥난보요잠(修翅玉鸾步摇簪)이었다. 화려하고 우아한 데다, 움직일 때마다 봉황 장식이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날개를 움직여, 모든 부인과 소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뒤이어 목운요는 위아래를 맞춘 심의(深衣)를 입었다. 화려한 비단 치마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소매에는 빨간 꽃구름이 휘감겨져 있었다. 목운요도 난생처음 이리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어 보았다.

화려한 의상 때문에 기세가 눌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달리, 목운요의 아름다운 자태와 미소 띤 얼굴은 더욱더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실 서릉의 여인들은 모란꽃 무늬를 선호하지 않았다. 모란꽃 장식이 너무 흔하다 보니 오히려 촌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목운요의 의상을 보고 나니, 저도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옷을 입은 목운요는 그야말로 절세미인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런 목운요의 모습을 보고 있는 월왕의 가슴은 굉장히 빠르게 뛰었다. 오기 전에 수십 번이나 목운요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해 보긴 했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여인들이 잔뜩 기대한 가운데, 세 번째 계례 절차가 시작되었다.

장공주가 다시 손을 깨끗이 닦은 뒤 목운요의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뺐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허기가 비녀관을 가져왔다.

장공주는 비녀관을 꺼내 들어 목운요의 머리 위에 살며시 씌워 주었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비녀관은 반짝반짝 빛이 나 그녀의 까만 눈동자를 더욱더 빛나 보이게 했다.

장공주가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길일에 세 개의 관을 하사하고, 형제들이 모여 성인의 덕을 이루어 주며, 만수무강과 하늘이 준 기쁨을 누리리라.”

목운요는 양손을 겹치며 절을 올렸다. 미간에 드리운 빨간 보석이 좌우로 흔들렸다.

“감사합니다, 외할머니.”

눈을 뗄 수 없이 화려한 의상과 비녀를 지켜본 여인들은 계례가 끝난 후 하운방에 가서 목운요의 옷과 최대한 비슷하게 의복을 제작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목운요는 하얀 바탕에 자수를 가득 채운 긴 치마에 생명주를 겹쳐 입었다. 살랑이는 주름치마에 생명주까지 더해지니 단정하면서도 찰랑거렸다.

치맛자락에 촘촘하게 핀 꽃송이는 빨갛게 피어오른 노을과도 같았다. 당장이라도 향기가 나는 듯했고 거기에 화려한 비녀관까지 어울리니 보는 이로 하여금 말문이 막히게 하였다.

목운요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올린 뒤, 장공주와 소청의 앞에 꿇어앉았다.

목운요를 바라보는 소청의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요아야, 어머니는 배우지 못해 큰 도리는 모른단다. 단지 네가 앞으로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떳떳하게 살기를 바라는구나.”

“소녀, 명심하겠습니다!”

장공주가 목운요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오늘 너에게 자(字, 본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를 지어 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네가 내 곁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곁에 두었으면 하는 마음에 자는 나중에 지으려고 한단다. 네 생각은 어떠냐?”

“외할머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의식이 끝나자 사람들은 목운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침착하기로 소문난 목운요라도, 그런 칭찬을 들으니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장공주는 사람들의 칭찬을 한참 동안 듣고 있다가, 소청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아이가 바로 제가 잃어버린 딸입니다. 오늘부로 소청은 허연한(许烟寒)으로 살 것이며,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정식으로 두 모녀의 이름을 족보에 올릴 것입니다.”

소청이 장공주를 향해 공손히 인사 올렸다.

“불효자식 연한이 어머니께 인사 올립니다.”

그에 장공주는 목구멍이 막히면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래, 어서 일어나거라.”

그때, 곡 마마가 들뜬 표정으로 다가왔다.

“장공주 전하, 황상께서 어명을 보내오셨습니다.”

장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서 맞이하러 가지.”

사람들은 장공주를 따라 앞마당으로 나왔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황상을 보자 다들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황상을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상께서 직접 걸음을 하시다니, 이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장공주가 인사 올리려고 하자, 황제가 냉큼 다가가 만류했다.

“누님, 예를 거두십시오.”

“황상께서 바쁘신 와중에 친히 오시다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누님께선 저에게 소식을 전해 주려다가 연한을 잃어버리고 긴 세월 동안 슬픔에 빠져 살아야 했습니다. 짐은 늘 이 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다시 품에 안으셨으니 짐도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소청과 목운요도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그래, 이만 일어나거라. 서립, 어명을 낭독하라.”

그에 장공주를 제외한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어명을 받들었다.

“봉천승운, 장공주의 딸 허연한의 성품과 덕을 높이 사오니…… 일품 혜의(惠漪) 부인으로 봉하고, 그 딸 목운요의 타고난 자질을 높이 사…… 온한(温娴) 군주로 봉하는 바이다…….”

뒤에 따른 하사품이 하도 많아 읽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어명이 끝나자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울려 퍼졌다.

목운요는 감사 인사를 올린 뒤 소청을 부축해 일어섰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기특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훑어보았다.

“이제 외외종조부라 불러야지. 어찌, 세뱃돈을 줘야 불러 줄 텐가?”

목운요는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외외종조부께서는 천하를 가진 분이기에 제가 효도해야 한다고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세뱃돈을 주신다면 제가 평생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겁니다.”

신분이 바뀌었으나 변함없이 의연한 목운요의 태도를 보자, 황제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누님이 왜 그토록 너를 아끼는지 이제 알겠구나. 서립, 짐이 따로 준비한 상을 가져오거라.”

목운요의 눈빛이 반짝였다. 놀라운 기색과 함께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설마 외외종조부께서 정말 세뱃돈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럼 받을 거냐, 말 거냐?”

“당연히 받아야지요. 제 외외종조부이기 전에 황상께 선물을 드리느라 하운방과 불선루가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어렵게 돌려받을 기회를 얻었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장공주가 웃으면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아주 돈에 환장하는 요물일세. 황상도 조심하십시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 퍼 줄 수도 있습니다.”

“하하, 그건 운요가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 * *

한편 그 훈훈한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완이 소청오에게 말했다.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더니,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모녀가 한순간에 황친 귀족이 되었네요. 정말 세상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부군, 제 말이 맞지요?”

그에 육공주가 장완을 향해 화가 난 말투로 쏘아붙였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요!”

“회양 언니께서도 앞으로는 온한 군주를 동생이라 불러야겠네요. 아무래도 선물이 빈약해 보이는데, 조금 더 준비하셔야 하지 않나요?”

육공주가 이를 꽉 깨물었다.

“사람 많은 곳이라 내가 벌을 못 내릴 것 같아요?”

장완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눈빛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어디 해 보시든가요.”

소청오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둘 다 그만하게.”

육공주는 소청오의 표정이 안 좋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청오…….”

이에 장완이 냉소를 지었다.

“평범한 출신이 마음에 걸려서 포기한 여자가 어느덧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올랐으니…… 세상일 참 모르지요.”

장완은 소청오에 대한 깊은 증오만 남아 있었다.

소씨 가문에 시집온 뒤로, 소청오가 딱 한 번 그녀에게 찾아온 적이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장완은 그에게 술을 잔뜩 먹였고,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목운요가 보내온 동백꽃을 구경하기 위해서인 것을 취중진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소청오는 목운요만 떠올리면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온종일 후회했으나, 그에게는 다시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다.

“청오, 몸이 편찮으면 돌아가서 쉬어요.”

장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따가 온한 군주께 축하 인사를 드리고 갈게요.”

육공주는 화가 잔뜩 나 씩씩거렸다.

“청오, 저 여자를 어서 돌려보내요.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아요.”

“그만하시오.”

소씨 가문은 이미 사방에 적이기에, 대학사마저 등 돌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장완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육공주는 분에 못 이겨 장완을 향해 무섭게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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