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계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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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며칠 동안 소씨 가문에선 하루가 멀다 하게 소문이 퍼져 나왔다.
금교는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듯 목운요한테 전했다.
“소청오가 장 부인께 한 번 다녀온 뒤로 육공주께서 난리를 치셨답니다. 사사건건 장 부인을 걸고넘어지는 데다가, 연못으로 밀쳐 버리기까지 하셨대요. 그래서 그다음 날, 장 부인이 그 연못을 없애 버렸다지 뭐예요.”
세안을 마친 목운요가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물었다.
“겨울에 연못에 빠지면 위험할 텐데, 별일은 없다고 하나요?”
“네, 이부인께서 마침 발견하셔서 바로 구하셨대요.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으나, 이번 일로 육공주께서 이부인의 살림 권한을 빼앗으려고 노린다 합니다.”
“흠, 소문원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텐데.”
살림 경험이 없는 육공주 손에 집안을 맡기면, 소문원은 하루도 속 편히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양렴이 정말 소금세 사건과 연관 있는 거라면 지금쯤 소부에선 무척 바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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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에 들어서자 날씨가 점점 따뜻해졌다. 목운요의 위로 덕에, 소청도 점점 기운을 찾았다.
마당에서 연을 그리고 있던 금란과 금교는 마음처럼 안 되자 목운요에게 도움을 청했다.
“소저, 저희 좀 도와주세요. 사금 언니한테 이걸로 놀림당하고 싶지 않아요.”
가벼운 옷차림을 한 목운요도 기분이 좋은지라 소매를 걷어붙이고 금란의 연 위에다 꽃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사금이 뾰로통해져서 불평했다.
“소저, 어찌 금란과 금교 편을 들어 주시는 겁니까. 지면 한 달 용돈을 내줘야 한단 말이에요.”
목운요가 한쪽에서 기세등등해하는 금란과 금교를 보며 말했다.
“이기면 나한테 반 줘야 하는 거 알죠?”
“물론이지요, 소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소청도 마음에 쌓여 있던 것들이 많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마당이 그리 크진 않지만, 연날리기에는 충분했다.
솔개 무늬 연이 높이 날아오르자, 목운요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어머니, 며칠 뒤 제 계례가 치러지는 날, 외할머니께서 저희를 정식으로 인정하실 거예요.”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아야,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겠니?”
“그럼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약속드릴 수 있어요.”
“너와 월왕 전하 사이를 곰곰이 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인연이란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잖니. 절대로 쉽게 포기하지 말거라.”
목운요는 잠깐 침묵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와 전하는 혈연이에요. 그걸 아시면서 왜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 세상은 여자들에게 공정하지 못하고, 진실 된 사랑을 얻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란다. 그러니 윤리, 도덕을 지키는 일보다, 네가 행복한 삶을 살고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부군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단다. 시집가서 애 낳는 일이 남자에게는 기쁜 일일지 몰라도, 여자에게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출산하다 목숨을 잃는 여자들이 비일비재하거든.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혼인이 아니라면, 이 길고 험한 길을 어찌 잘 헤쳐 나갈 수 있겠니?”
목운요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 아직 먼일이에요. 나중에 이야기해요.”
“내가 점점 잔소리꾼이 되어 가지?”
“아니에요, 절대!”
소청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으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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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운요의 계례 초대장은 이미 다 보내졌다. 장소는 장공주의 개인 정원인 심방원(沁芳园)에서 하기로 했다.
하운방은 설 이후부터 옷 장사를 접고, 계례 때 목운요와 소청이 입을 옷을 준비하는 데에 온 정성을 쏟았다.
계례는 목운요의 성인을 기념하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의덕 장공주가 그동안 찾아 헤맨 딸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명문가에서 그날을 중요하게 여겼다.
심방원도 새롭게 단장했다. 정원에다 온천수를 끌어온 덕분에 꽃샘추위가 도는 봄 날씨에도 정원에는 꽃들이 만발했고, 나비들이 꽃밭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당일이 되었다. 전날 심방원에서 지낸 목운요와 소청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목욕을 마치고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목운요의 머리를 빗겨 주던 소청이 애정 어린 눈으로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요아야, 지난번 계례는 망쳤지만 이번엔 꼭 잘 마치자꾸나. 계례가 끝나면 너도 이제 성인이다.”
목운요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어머니. 제가 아무리 나이가 든들 어머니 앞에선 늘 사랑이 필요한 아이인걸요.”
“그래그래. 이따가 비녀를 꽂아야 하니 머리는 간단하게만 빗자꾸나.”
“네. 그보다 외할머니께서 친히 제 계례를 진행해 주신다는데, 너무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힘든 것보단 기쁨이 더 크실 테니 걱정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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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의덕 장공주가 딸을 찾았음을 알리는 목적도 있다 보니, 부녀자들뿐만 아니라 조정 내 삼품 이상 관원들도 모두 초대받았다.
손님들은 계례 장소에 소문원도 있는 것을 보고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소씨 가문의 딸이 장공주의 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작 믿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조정에서 오랫동안 관직으로 있었다는 건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윗사람의 재채기 하나로 수십 가지의 의미를 파악해 내는 사람들이니, 이런 억지스러운 과거 따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장공주가 소씨 가문을 지켜보고만 있다 보니 그들도 옆에서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황상께서는 소씨 가문을 다시 등용하려는 건지 소문원과 소청오에게 연이어 일을 맡기기도 했다. 그 일들을 잘 해낸다면 소씨 가문은 아마 짧은 시일 내에 재기가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이 속으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던 그때, 입구 쪽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 대인이 육공주와 장 부인을 데리고 왔군…….”
일부 관원들의 표정에는 부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한꺼번에 두 명의 여인을 품에 안다니, 그런 소청오가 부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여자가 많으면 말썽도 따르는 법이다. 게다가 둘 다 신분이 만만치 않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요새 소씨 가문은 서릉 관원들의 식후 이야깃거리였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심방원을 본 소청오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한편 육공주의 두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소우의로 인해 소청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목운요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소청오가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그런 육공주의 낌새를 눈치챈 장완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나 한편으로는 육공주가 경거망동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다 장공주의 손에 죽기라도 하면 복수가 재미없어지기 때문이다.
“릉왕 전하, 유왕 전하, 진왕 전하, 월왕 전하를 뵙습니다.”
몇 걸음 차이로 도착한 황자들의 뒤에는 선물을 잔뜩 든 시종들이 뒤따랐다.
얼마 뒤 장공주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모두 무릎 꿇고 인사를 올렸다.
의덕 장공주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표정은 전례 없이 부드러웠다.
“예를 거두십시오. 오늘 본궁의 손녀, 운요의 계례를 축하하러 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예법대로라면 목운요의 계례 진행을 장공주가 아닌 따로 인성이 뛰어난 이를 초대해서 진행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목운요의 특별한 신분 때문에 그 누구도 나서서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모아 장공주의 인자함과 선덕을 칭송하였다.
그때, 흰옷과 흰 신발을 신은 목운요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속세의 먼지가 묻지 않은 듯한 청초함이 느껴졌다.
월왕은 목운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두 눈에는 진한 기대와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장공주 앞에 선 목운요가 무릎 꿇어 인사를 올렸다. 흰 치맛자락이 빨간 융단 위에 곱게 드리워졌다.
“외손녀 목운요가 외할머니께 인사 올립니다.”
장공주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아가, 일어나거라.”
그에 목운요가 뒤돌아서 계례에 참석한 손님들에게도 안부 인사를 올렸다. 손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칭찬과 축복의 말을 건네주었다.
인사가 끝나자 예관(礼官, 예의를 담당하는 관리)이 큰 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의례 시작합니다. 조용히 하십시오. 천지가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이 나날이 발전하니, 가문과 나라와 선조들을 빛내리다……. 계례 시작, 풍악을 울려라!”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자, 허기가 탁자 위의 촛불과 향에 불을 올렸다.
엄숙하고 경건한 음악 소리에 계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장공주가 손을 깨끗이 닦은 뒤, 목운요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그러고는 비녀를 머리에다 꽂아 주었다.
“길일에 계례를 치르오니, 어린 마음을 버리고 어른의 덕을 길러 만수무강과 상서로움을 바라나이다.”
목운요가 엎드려 절을 올렸다. 웃음을 머금은 고운 얼굴은 마치 아침 이슬처럼 빛이 났다.
“감사합니다, 외할머니.”
장공주는 목운요를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서 옷을 갈아입거라.”
계례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갈아입을 의복만 해도 네 벌이나 됐다. 그러나 손님들은 지친 기색 없이 흥미진진 해했다. 장공주가 진행하는 의례인 데다, 목운요의 모든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