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80화 (280/442)

280화 불선루 재정비

* * *

월왕부에서 성 공공은 하루 종일 한숨만 쉬고 있었다.

“에휴,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우리 왕야께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한편에 앉아 있던 우항이 입을 열었다.

“성 공공, 왕야와 목 소저가 혈연이라면 그 둘 사이가…….”

그에 성 공공이 머리를 홱 돌리더니 눈을 매섭게 흘겼다.

“헛소리하지 마라!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사촌 오누이도 혼인하는 마당에, 외당숙과 조카라고 못 할까? 따지고 보면 그 둘도 그리 가까운 친척이 아니지.”

“말이야 그렇지만, 왕야와 목 소저 두 분 다 보통 신분이 아닌 데다, 조정 어사들이 이를 빌미로 왕야의 명성을 어지럽히려고 달려들 텐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위가 들어와서 알렸다.

“성 공공, 목 소저께서 오셨습니다. 지금 마차에서 내리고 계십니다.”

성 공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빠른 걸음으로 서재로 향했다.

“왕야, 목 소저께서 오셨습니다. 옷을 갈아입으시겠습니까?”

붓을 잡고 있던 월왕의 손이 멈췄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차 좀 준비해 주게. 운요가 추위를 많이 타니 화로도 가져다주고.”

“네.”

목운요가 우항의 뒤를 따라 서재로 들어왔다. 빠른 걸음으로 오다 보니 숨이 차서 헐떡였다.

월왕이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운요, 무슨 일인 게냐?”

다른 이들이 모두 나가자, 목운요가 소매에서 서신을 꺼내 건넸다.

“전하께서도 불선루가 보낸 소식을 받으셨나요?”

월왕이 서신을 열어 읽어 보더니,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강남 소금세라……. 지난번 소금세 사건이 채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또 같은 수작이라니, 어찌 이렇게 서슴없는 거지?”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새는 먹이에 목숨을 거는 법이지요. 황상께서 등극한 이래, 강남 소금 상인들을 몇 해마다 한 번씩 크게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금세 횡령, 소금 밀매 등이 끊이지 않았으니. 다만 이렇게 빨리 풍파가 밀려올지는 몰랐네요.”

월왕이 서신을 화로에 넣어 불태워 버렸다.

“불선루를 통해 알아낸 소식인데, 왜 나한테는 전하지 않았지?”

목운요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불선루 내에도 워낙 소식이 잡다하니 늦어질 수도 있는 법이지만…….”

목운요가 말끝을 흐렸다. 단순히 늦어진 거라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 전해지지 않은 거라면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월왕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불선루를 재정비해야 할 때가 왔구나.”

목운요가 서신 잿더미만 남은 화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금세 문제는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아직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 우선은 사람을 시켜 자세히 조사해 볼 거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양주성에서 발생한 소금세 사건은 소금 상인들이 장부를 꾸며 소금세를 누락시킨 것이었다. 나중에 들통날 위험에 처하니 그제야 염선이 침몰된 척 가상으로 적자를 메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금세에 문제가 있다는 것만 알 뿐, 자세한 내용은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지난번과 똑같은 문제일지, 아니면 관리를 매수해서 세금을 낮추고 소금 가격을 올린 건지, 혹은 밀매 소금 수량에서 꼼수를 쓴 건지. 자세히 알아내야 제대로 손을 쓸 수가 있었다.

불선루에도 문제가 생긴 듯하니 월왕은 마음이 무거웠다.

“운요, 요즘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거라. 진왕이 계속 하운방과 불선루를 캐고 다니는 걸 보아하니 뭔가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양강 안찰사 양렴이 진왕과 만난 것 같아요.”

“음, 황자와 삼품 관원이 만나는 건 누가 봐도 수상하지.”

목운요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역시 진왕이 강남 소금세에 손을 댄 게 아닐까요?”

월왕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다. 소금세는 부황께서도 중요시하는 부분이고, 전에 릉왕도 그 문제로 크게 당했거든. 진왕이 굳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진 않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잖아요. 지금쯤 진왕은 허리띠 졸라매도 부족한 신세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돈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질 리는 없잖습니까?”

월왕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내가 빨리 알아보도록 하마. 진왕이 정말 강남 소금세 문제에 연관되어 있다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다.”

매번 소금세 문제가 터질 때마다 조정은 크게 흔들렸다. 한데 황자까지 연루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풍파가 일 것이다.

월왕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자, 목운요는 마음이 아파 왔다.

“전하께서도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차근차근 해 나가요.”

목운요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월왕이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그래.”

그때, 성 공공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다과를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최근 조리사가 바뀌었는데 목 소저께서도 한번 맛보시죠. 입맛에 맞으면 돌아가실 때 만드는 법을 적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성 공공,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뒷마당의 연못 공사도 거의 끝나 갑니다. 날씨가 좀 더 풀리면 연꽃도 심을 텐데 여름 되면 아주 볼만할 겁니다.”

“그럼 어디 한번 구경해 볼까요?”

“제가 모시죠. 그리고 왕야께서 얼마 전부터 연못 주변에 난간이랑 정자를 세우려고 고민 중이신데, 소저께서 좋아하는 양식이 있으시면 왕야께 말씀해 주세요.”

목 소저와 왕야가 혈연 사이임을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니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데,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가 없다.

목운요가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월왕을 쳐다봤다.

“전하께서는 돈이 없지 않나요? 어떻게 정자까지 지을 생각을 하셨나요?”

월왕이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누구한테서 빌렸거든.”

목운요는 생각할수록 웃겼다. 자신이 빌려준 돈으로 저택 보수를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월왕이 일어서며 말했다.

“따라오너라. 구경시켜 주마.”

연못 구경을 마치고 목운요가 떠나자, 월왕은 바로 사람을 불렀다. 불선루는 그가 강남을 통제하기 위한 토대였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재정비를 해서 문젯거리를 없애야 했다.

* * *

그 시각 소부.

아무리 장완이 황제의 명으로 육공주와 동등한 위치가 되었을지라도, 신분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장완의 부친이 소청오와의 혼인을 달가워하지 않는 바람에, 혼수도 급하게 때워서 가져왔다.

신혼 방에 앉아 있던 장완은 얼굴에 씌워진 비단 천을 들어, 탁상 위에서 활활 타고 있는 용봉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깊은 비웃음이 스쳐 갔다.

그에 옆에 있던 희 마마가 바로 제지했다.

“소저, 비단 천은 신랑이 열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소청오는 오늘 밤 여기 오지 않을 거예요.”

바로 그때, 밖에서 절을 올리는 주례 소리가 들려왔다.

장완은 탁자 위에 놓인 음식들을 가리켰다.

“이걸 치우고 국수나 한 그릇 가져다줘요. 하루 종일 굶었더니 진이 빠지네요.”

“소저…….”

“왜 가만히 있어요? 내 말 안 들려요?”

장완이 짜증 난 말투로 말하는 순간,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저, 이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이부인 척 씨가?

장완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어서 안으로 모셔요.”

이부인 척 씨는 동백꽃을 든 마마들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꽃을 바닥에 놓거라.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장완이 다가가 인사 올렸다.

“작은숙모님께 인사 올립니다.”

“완아, 어서 일어나거라. 새신부가 참 이쁘구나. 청오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

척 씨가 시원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칭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장완이 손으로 얼굴의 흉터를 만지작거렸다.

“작은숙모께서 놀라시지 않았다니 다행이에요.”

“놀라다니. 너의 아름다운 기품은 얼굴의 흉터 따위에 가려지지 않는 거란다. 이 동백꽃은 운요가 사람을 시켜 보냈더구나. 꼭 나더러 친히 네 방에 가져다주라고 신신당부까지 해 가면서. 이 꽃을 좀 보렴. 하나같이 예쁘게도 잘 폈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장완이 바닥에 놓인 동백꽃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작은숙모께서 저 대신 목 소저께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세요. 그러고 보니 소우는 좀 어때요?”

장완의 태도가 한결 유해진 걸 느낀 척 씨는 흐뭇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소우는 많이 괜찮아졌단다. 그리고 부족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알리거라. 내가 큰 도움은 못 주더라도 절대 모른 체하진 않을 거다.”

장완이 멈칫하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국수 한 그릇 끓여 주라고 당부하마. 내일 어르신들께 인사 올려야 하니 오늘은 푹 쉬어라.”

“네.”

장완의 방에서 나온 척 씨가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흥미진진한 일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