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77화 (277/442)

277화 진실을 알다

소청오를 지켜보던 진왕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게. 자네의 능력은 내가 익히 알지. 가족만 아니었으면 앞길이 창창했을 텐데 아쉽구려……. 열흘쯤 뒤면 회양과 혼인한다지. 회양은 착하고 단순한 아이야. 자네가 잘해 주면 모든 걸 다 바칠 테지. 소씨 가문이 재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네.”

“그래, 이만 돌아가거라.”

소청오가 떠난 후, 표정이 차갑게 바뀐 진왕이 냉소를 지었다.

“소씨 가문, 상상 그 이상이군.”

그때, 진왕의 심복이 다가왔다.

“왕야, 장공주 전하께서 떠나실 때 화가 잔뜩 나 계셨습니다. 저희한테까지 불똥이 튀진 않겠죠?”

“결국 고모님이 친딸을 찾은 셈인데, 불똥 튈 게 뭐가 있겠나? 그나저나 월왕은 어떻게 됐느냐?”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분이라 뒷조사가 까다롭습니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진왕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월왕이 보통이 아님은 분명하다. 월왕부에 사람을 더 심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그리고 릉왕은 어떻게 된 거냐? 언제부터 습보헌을 가까이한 거지?”

습보헌에 대해 묻자 상대의 표정도 무거워졌다.

“습보헌의 주인 제명이 쫓겨 다니는 신세였나 봅니다. 그러다 릉왕이 목숨을 구해 주자 보답하기 위해 릉왕의 손발이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명이 십만 냥이나 되는 은자를 가져와, 릉왕이 그 덕에 관원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습보헌…….”

진왕이 눈을 찌푸렸다.

“습보헌 따위가 어찌 하운방, 불선루와 비교가 되겠나. 이 두 곳만 손에 넣으면 아무 문제 될 게 없지. 조만간 고모님께서 소청과 목운요의 신분을 밝힐 테니, 미리 두둑한 선물을 준비해 두게.”

* * *

목운요는 장공주를 따라 공주부로 왔다. 안색이 안 좋은 소청을 보자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괜히 걱정을 끼쳤구나. 괜찮단다.”

그에 장공주가 차를 올리라고 손짓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곧 소식이 올 테니.”

“외할머니, 소력과 왕 씨를 벌써 심문하고 있는 건가요?”

“그래.”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청이의 양부모인 건 사실이니 목숨만은 살려 둘 생각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소청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소청의 모습에 장공주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청아, 혹시 이 어미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뇨. 요아를 위해서라면 제가 친히 고문할 수도 있어요.”

목운요가 소청의 곁으로 다가가 기댔다.

“어머니, 감사해요.”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고, 곡 마마가 빠르게 걸어왔다. 그녀에게선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장공주 전하, 진술을 받아 냈습니다.”

장공주는 진술을 보더니 갑자기 탁자를 힘껏 내려쳤다.

“소씨 가문, 이럴 수가!”

그에 목운요가 진술을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소력, 왕 씨와 소씨 가문의 관계가 적혀 있었다.

소력과 왕 씨는 소씨 가문의 나이 든 집사와 먼 친척이었다. 그들은 소씨 가문의 명에 따라 소청을 입양한 뒤 목씨 집안으로 시집보냈다.

그리고 목성……. 그 또한 이 씨의 친아들이 아닌, 소씨 가문에서 심어 둔 사람이었다…….

목운요는 순식간에 한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더니,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등골이 오싹하고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목운요 역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소씨 가문이 소청을 입양한 목적을 추측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소씨 가문이 이 정도로 악랄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소청의 양부모, 목운요의 아버지와 할머니까지도 다 계획된 것들이었다. 소청은 평생 소씨 가문의 계획 안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목운요가 소청을 데리고 과감히 하언촌을 떠나, 모든 흔적을 지우고 경릉성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이번 생도 계획 속에서 보냈을지도 모른다.

장공주는 치밀어 오르는 화 때문에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가슴이 아파 왔다.

곡 마마가 얼른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장공주 전하, 고정하십시오. 화낼 가치도 없는 인간들입니다.”

진정을 되찾은 목운요가 얼른 장공주의 맥을 짚었다.

장공주는 숨을 크게 몇 번 들이쉬더니 섬뜩한 눈을 빛냈다.

“원래는 소씨 가문을 패가망신시키고자 했으나, 이제는 삼대를 멸하더라도 이 한을 다 못 풀겠구나! 운요야, 소씨 가문의 일에서 손을 떼거라. 오늘부로 내가 그들을 상대하겠다.”

“외할머니, 일단 화를 가라앉히세요.”

회귀 전 처참하게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 목운요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장부에 팔려 간 것도, 그녀가 장부에서 탈출하다 죽은 것도, 이 모든 게 어쩌면 소씨 가문의 짓일지도 몰랐다.

그 순간, 곡 마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부인!”

목운요는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소청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머니!”

한 시진 후, 소청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깨고 나선 혼이 나간 사람처럼 눈물만 계속 흘렸다. 진술 내용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과거가 다 거짓이라니? 목성도 가짜라니?

옆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목운요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

“요아야, 네 아빠의 사인에 대해 알아보거라.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거짓일 리가 없잖니. 진실을 알아야겠다. 그동안 나에게 뭘 숨겨 왔던 건지! 요아야, 도와주렴. 진실을 알아야 해!”

“알겠어요, 어머니. 지금 바로 알아볼 테니 고정하세요.”

목운요의 손을 꽉 잡은 소청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만 혼자 있고 싶구나.”

“어디 편찮은 데 있으시면 바로 알려 주셔야 해요.”

“그래.”

가끔은 혼자 견딜 수밖에 없는 아픔이 있다. 그럴 땐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방에서 나온 목운요는 장공주에게로 향했다.

“운요야, 청이는 좀 어떠니?”

소청이 쓰러지는 걸 보고 장공주의 병도 재발하는 바람에 태의가 다녀간 참이었다. 목운요의 처방 덕에 병이 많이 좋아져서 그나마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걱정 마세요, 외할머니. 어머니는 그저 슬픔에 잠겨 있을 뿐이에요. 곧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래야지.”

장공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녀가 곡 마마를 불렀다.

“대학사부가 시끌벅적한 것이, 모두 장완 때문인 게지?”

“네. 생모를 죽인 사람이 조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장 소저가 암암리에 조 부인에게 약을 먹이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장씨 가문이 곧 초상 치를 듯싶습니다.”

“내일 어사 상소문에 대학사 장 소저의 은혜를 입은 육공주가 오히려 그의 부군을 뺏으려 한다고 아뢰고, 장완을 소씨 가문에 시집보내라고 전하거라.”

목운요가 고개를 들었다.

“외할머니, 육공주께서 소청오를 많이 흠모하시는데…….”

“회양이 알아서 물러나면 다행인 거고, 끝까지 고집한다면 운명인 거다. 공주 하나 따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운요야, 이 할미가 말했지. 앞으로 소씨 가문의 일은 내가 처리할 거다. 네 손이 더럽혀지지 않게 손을 떼거라.”

“……네.”

* * *

이튿날.

진왕부에서 있었던 일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황상께서 친히 소씨 가문의 적녀 소우의를 찾아가 밤을 함께 보낸 뒤 그녀를 월빈(月嫔)으로 봉했다는 것이었다.

금교는 목운요가 일어나자마자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 때문에 지금 밖에 난리가 났습니다.”

목운요는 오히려 담담하게 웃었다.

“복인지, 화인지는 지켜봐야 알겠죠. 육냥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냥이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육냥, 시킨 일은 어떻게 됐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진왕 명의로 된 재산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지난 팔월, 진왕이 강남의 소금 상인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강남의 소금 상인?”

“네. 그리고 소식에 의하면 소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 소근과 부군 양렴(杨廉)이 서릉으로 복귀하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아마 닷새 뒤면 도착할 듯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소청오의 혼례에 참석하기 위해서지만, 사실 세금 문제가 생겨서라고 합니다.”

“양렴……. 내 기억에 양렴은 양강 안찰사(按察使)에 봉강대리(封疆大吏, 지방 장관)인데, 황상의 명령 없이 어떻게 속지를 떠날 수 있지?”

“양렴의 업적이 뛰어나, 황상께서 그를 서릉으로 전임시키고자 특별히 귀경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목운요가 피곤한 듯 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어머니의 신분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바람에 너무 많은 일이 뒤처져 버렸네. 이제 와서 바로잡으려니 막막하구나.”

“조급해 마십시오. 천천히 하시면 됩니다.”

목운요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양렴이 세금 문제로 얽힐 일은 소금세밖에 없거든. 근데 지난번 소금세 사건이 잠잠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설마 소금 상인들이 또 수작을 부릴까?”

“돈이 목적이라면 못 할 일이 없겠죠.”

거대한 이익을 앞에 두고 무슨 일인들 못 할까.

“제명에게 잘 살펴보라고 해. 적당히 릉왕 이름도 팔고. 세력을 잘 이용해야지. 이목년이 경릉성 염운사로 임명됐으니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네, 주인님.”

그녀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소력과 왕 씨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 소씨 노부인의 출산을 꾸민 산파가 아들을 하나 뒀는데 여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니 찾아보도록 해. 찾게 되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고 내 앞에 데려오고.”

“네, 맡겨 주십시오.”

“그래.”

육냥이 나가고 얼마 안 지나 금란이 와서 알렸다.

“소저, 월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에 목운요는 머리에 꽂고 있던 토끼 비녀를 상자에 도로 넣고, 월왕이 쓴 친필 증서를 화로에 그대로 던져 버렸다.

금란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소저, 왜…….”

타들어 가는 종이를 바라보던 목운요의 눈에 불빛이 어렸다.

“월왕 전하를 만나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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