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거짓된 진실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던 두 사람은 장공주의 말에 더욱더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장공주 전하께 아룁니다. 저희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소청의 출신과 연관된 얘기입니다.”
“말해 보거라.”
“저희도 근래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소청이 소씨 가문의 딸이 아닌 장공주 전하의 따님일 수도 있습니다.”
“무례하구나!”
곡 마마가 크게 호통쳤다.
“장공주 전하 앞에서 헛소리를 내뱉다니! 여봐라, 이 두 사람을 끌어내라!”
노부부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소청은 소씨 가문의 잃어버린 딸이 아닌가? 왜 장공주와 엮인 거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소력은 연신 이마를 땅에 박으며 말했다.
“장공주 전하,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소청은 정말 전하의 딸입니다.”
의덕 장공주가 손을 들어 곡 마마를 제지했다. 그리고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청이 내 딸이란 증거가 있는가?”
그러자 소력이 가슴팍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속에 봉황 무늬 옥패 반쪽이 들어 있었다.
“이 옥패로 증명이 되시렵니까?”
봉황 무늬 옥패……. 다름 아닌 그녀가 딸에게 남겨 둔 증표였다……. 장공주는 곡 마마한테서 옥패를 받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옥패가 어떻게 자네 손에 있는 거지?”
“장공주 전하, 찬찬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두 부부는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하고 인신매매 상인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한두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 두 명을 데려와, 소청과 소설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습니다.”
“그게 이 옥패랑 무슨 상관이냐?”
장공주는 인내심이 바닥이 나 저도 모르게 재촉했다.
“장공주 전하, 제 이야기를 마저 들어 주십시오. 두 아이는 그림자처럼 둘도 없는 사이로 컸습니다. 그러다 일곱 살 되던 해, 소설이 강에 빠진 소청을 구하려다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소력이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상심이 컸던 소청은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던 이 패를 소설의 무덤에 묻고, 자신은 소설의 옥패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어려서 저희도 눈치채지 못했지요. 그러다 올해 마을에서 이장한다 해서 소설의 무덤을 정리하다가 이 옥패를 발견했고, 그제야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소청, 소설…….
소력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 있었다.
장공주는 손에 쥐고 있던 봉황 무늬 옥패를 목운요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운요야, 네가 한번 보거라.”
옥패를 건네받은 목운요는 한참을 살피다가, 무릎 꿇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들, 소씨 가문 사람들을 만났었나요?”
“예……. 제가 이 옥패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장공주 전하께서 따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니, 소청이 정말 장공주 전하의 친딸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왕 씨가 고개 들어 장공주와 소청을 번갈아 보더니, 아부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비록 청아가 우리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지중지 키운 정이 있다 보니 청아가 진정한 가족을 찾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목운요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비웃음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애쓰셨네요.”
장공주는 차를 한 모금을 마신 뒤, 한쪽에 서 있던 심병괴를 향해 말했다.
“심 대인. 이 사건은 황실과도 연관이 있으니 본궁이 직접 심문하고 싶은데, 괜찮겠나?”
“예, 장공주 전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심병괴가 재빨리 대답했다.
“곡 마마, 두 사람을 데려가서 잠시 머물 곳을 마련해 주게.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할 테니.”
소씨 가문이 감히 그녀를 상대로 이런 장난을 치다니?
소청을 숨긴 것도 모자라, 이제 와서 자매 이야기까지 지어내다니! 그 거짓부렁으로 자신들이 지은 죄를 모두 씻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이내 곡 마마가 소력과 왕 씨를 데리고 나가자, 장공주는 진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회는 계획대로 진행하렴.”
진왕이 바로 대답했다.
“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등불 잔치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아직 놀라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터라 꽃등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모두 하나같이 소력과 왕 씨가 한 말만 생각하고 있었다.
장공주가 목운요를 손주 삼은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그녀가 진짜 혈육이라면?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청이 소씨 가문의 딸이 된 걸까? 갑자기 밝혀진 사실의 배후에 또 어떤 말 못 할 비밀이 숨어져 있을까?
소씨 가문의 계략은 사람들을 점점 미궁 속으로 빠트렸다.
목운요가 옥패를 탁자 위에 내려두며 장공주를 향해 물었다.
“외할머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씨 가문,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대야.”
장공주가 옥패를 보며 말했다.
“소력, 그자가 하는 말을 들었지? 네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옥패는 소설의 것이고, 그 아이는 소청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다지. 내가 소씨 가문에 고맙다는 뜻으로 두둑한 선물이라도 보내길 바라는 건가?”
그에 목운요도 피식 웃어 버렸다.
“거짓 연기에 맛을 들인 거죠. 세상 사람이 모두 속아 넘어갈 줄 알았나 봐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 자신들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하다니. 그걸로 자신들의 과오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그야말로 소씨 집안다웠다.
“옹졸한 방법이긴 하나 쓸모없는 건 아니지. 소력과 왕 씨가 청이의 양부모라서 내가 쉽게 그들을 처치 못 한다는 것을 이용하려 들 거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고 말 거다. 무슨 수를 쓰든 소씨 가문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게야.”
목운요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소청의 출신이 밝혀지면 자신과 월왕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장공주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소청의 손을 잡았다.
“청아, 운요야. 그래도 소씨 가문에서 물증과 증인을 보내왔으니, 조만간 너희 둘의 신분을 정식으로 밝히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장공주가 소력과 왕 씨의 목숨을 살려 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소청은 입을 다문 채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절 아끼시는 걸 잘 압니다. 이렇게 서로를 찾은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해요. 더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청아…… 혹 이 어미를 원망하는 거니?”
소청의 거절에 장공주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런 게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저와 요아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셔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원망이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럼 왜 내 곁으로 오지 않으려는 거니? 난 그저 앞으로 정정당당한 명분으로 너희에게 사랑을 주고 싶을 뿐이다. 온 천하에 너희가 내 딸, 내 외손녀임을 밝혀 모든 걸 누리면서 살게 하고 싶단다.”
그에 소청이 애정 어린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제가 성격이 강인하지 못하다 보니 그동안 요아를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아이가 겉으론 담담해 보이지만, 남몰래 참 많은 고초를 겪었어요. 엄마로서 도움은 못 줄지언정,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목운요가 냉큼 소청 곁으로 다가갔다.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걸림돌이라니? 소청은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다. 소청이 없었더라면 아마 자신은 복수에 눈이 먼 어두운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소청이 목운요의 손을 잡고 다독였다. 두 눈에는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
“요아야, 이 어미가 못나서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식사를 챙겨 주는 것뿐이잖니. 그러니 엄마 말을 듣거라. 장공주 전하께서 우리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너와 월왕은 혈연이 아니고 둘이 당당하게 함께할 수 있을 거다.”
목운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청은 자신을 키우느라 온갖 고초를 겪은 데다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은혜에 보답하진 못할망정 어머니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다니. 그녀는 이 순간 자신의 무기력함이 원망스러웠다.
“어머니, 그럴 순 없어요. 제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어머니 신분을 영원히 묻혀 둘 수 없다고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어요. 어머니는 당당히 자신의 것을 누리세요. 월왕 전하와 평생을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저는 만족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공주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청아, 네 마음은 나도 안다. 하나 운요 말이 맞아. 네 신분을 되찾아야 해. 그게 너와 운요 모두한테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차차 알게 될 거야.”
시끌벅적했던 등불 잔치가 끝나고, 목운요는 마차에 올랐다.
한데 그때, 진왕이 궁등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운요, 이건 내가 직접 만든 거라 정교하진 않지만 마음을 담았단다. 받아 주겠느냐.”
목운요는 진왕의 손에 든 팔각 궁등을 살펴보았다.
궁등의 모든 면에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과 시구가 적혀 있었다. 얼핏 봐도 엄청난 정성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전하. 금란, 넣어 두어요.”
금란에게 궁등을 건넨 진왕은 뒷짐을 진 채 떠나가는 마차를 보며 미소 지었다.
월왕부 안으로 들어간 그가 한편에 서 있는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다들 갔으니 이제 나오지.”
이에 소청오가 걸어 나오며 진왕을 향해 인사 올렸다.
“감사합니다, 전하.”
오늘 진왕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소력과 왕 씨는 진왕부에 발도 못 디뎠을 것이다.
“청오, 자네를 돕기 위해 내가 오늘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했는지 알기나 해?”
장공주라면 분명 그가 이 사건에 동조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전하께서 주신 도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