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가르침을 주다
소우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덕비를 쳐다봤다.
“마마, 제게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그저 부친을 도와 소씨 가문이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마마께서 저를 가르쳐 주신다면 베푸신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내게 널 도우라는 것이냐?”
덕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아, 아닙니다. 가, 가르침 말입니다. 마마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에 덕비가 돌연 손을 들어 소우의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짝! 그 힘이 너무 세서 소우의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마마……?”
소우의가 눈물을 머금은 채 억울하다는 눈빛을 했다.
그러자 덕비의 미간이 더 깊게 파였다. 그녀는 다시 손을 올려 소우의의 뺨을 내리쳤다.
“마마…… 제가 혹 잘못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황궁의 금기가 무엇인 줄 아느냐?”
덕비는 손에 더러운 것이라도 묻었다는 듯이 비단 손수건을 가져와 손을 닦았다.
“금기라면…… 눈물입니까?”
그 말과 함께 소우의는 재빠르게 눈물을 거두고는 웃는 얼굴을 보이려 노력했다.
“맞다. 궁궐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인이 없지만,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지. 네가 울다 지쳐 죽는 날이 와도 너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환히 웃어야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덕비는 가볍게 웃더니,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소우의의 뺨을 내리쳤다.
소우의는 밝게 웃어 보이려 애썼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비의 눈에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
“소우의, 오늘 네가 한 행동은 황상의 시선을 이끌기 위함이었느냐?”
“아니옵니다…….”
“아니라고?”
덕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우의를 발로 걷어찼다.
“하! 이제야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것이냐? 말로는 소씨 가문의 안정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넌 그저 목운요가 못마땅해서 그 아이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었을 뿐이다. 원래 목표는 황자에게 시집가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소씨 가문이 목운요에게 짓밟혀 산산조각이 나자, 네 신분으로는 황자의 정실이 될 수 없게 되었지. 어디 정실뿐이더냐? 지금의 신분으로는 첩실의 자격도 가질 수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너는 더 빠른 복수를 위해 황상을 선택한 것 아니더냐?”
“마마,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소우의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덕비를 쳐다봤다. 방금 저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덕비는 소우의를 비웃었다.
“하! 인정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 이미 그 길을 가려고 마음먹었으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표를 위해 끝까지 기어올라라! 다만 가장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네가 황상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황상을 연모하고 우러러 모셔야 아주 작은 기회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굳게 먹지 않는다면 바로 널 궁에서 내쫓겠다!”
“마마, 쫓겨나고 싶지 않습니다! 마마의 분부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마마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
소우의는 재빠르게 꿇어앉아 덕비의 치맛자락을 꽉 잡으며 애원했다.
“좋다. 그럼 당분간은 궁에서 지내라. 황상께는 내가 궁에서 홀로 지내기 외로워 널 잠시 곁에 두겠다고 전하마.”
“네, 마마.”
“그리고 경고 하나 하겠다. 목운요는 이제 보통 신분이 아니다. 목운요를 조금의 실수도 없이 잡아 죽일 수 없다면, 목운요에게 공손히 대해라. 그러지 않으면 나도 널 지켜 줄 수 없어.”
소우의는 그 말이 달갑지 않았지만, 또다시 미간에 주름을 잡는 덕비를 보고는 냉큼 대답했다.
“네. 염려 놓으십시오. 마마의 말씀을 잘 이해했습니다.”
“그래. 가서 몸치장부터 해라. 곧 사람을 보내 네게 이것저것 알려 주마.”
소우의가 물러가자, 덕비는 손에 쥐고 있던 비단 손수건을 바닥에 내던지며 발로 짓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청녕 공주가 그 모습을 보더니 마음 아파하며 탄식했다.
“덕비 마마…….”
덕비는 눈을 번쩍 뜨며 자신에게 절하는 청녕 공주를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마마, 오늘 고생이 많았습니다. 무릎은 괜찮습니까?”
덕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을 잘 발라서 지금은 아프지 않습니다.”
“마마, 왜 그리 충동적입니까? 예전부터 이 어미가 절대로 목운요는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제 목운요에겐 장공주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그 애를 건드리면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
“장공주께서 목운요를 이렇게까지 생각하실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 오산이었어요. 하지만 살짝 건드리는 것도 나쁘진 않지요. 황상이 저를 오랫동안 좋아하신 데는 제 솔직한 성격 덕이 커요. 가식 없이 좋고 싫음이 분명한 덕비라면 목운요를 미워할 게 뻔하죠. 목운요가 입궁한 걸 봤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어요?”
청녕 공주는 덕비를 자리에 끌어 앉혔다. 그녀를 걱정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고생이 많아요.”
“고생이라뇨. 오랫동안 황상의 사랑을 받으며 아주 편하게 생활한걸요. 얼마나 많은 여인이 저를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앞으론 저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청녕 공주가 작게 탄식했다.
“알겠어요. 그나저나, 정말로 소우의를 키울 생각입니까?”
“그 미모를 가지고 제 발로 저를 찾아왔는데 안 쓰면 손해 아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다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설령 훗날 문제가 생기더라도 절대로 저와 맹씨 가문이 연루되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이세요. 항상 몸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친께서 은표와 서신을 보내셨어요. 은표는 잘 간직하고, 서신은 읽은 뒤에 바로 없애 버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돌아가세요. 궁문이 곧 닫힐 겁니다.”
“그래요. 그럼 푹 쉬어요.”
덕비는 청녕 공주를 문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그 뒤에는 서신을 열어 자세히 읽은 후 촛불에 태워 버렸다.
“진왕…….”
* * *
장공주의 제안으로 옥화궁에서 하룻밤을 보낸 목운요는 조금 늦게 일어났다. 금란과 금교가 치마 입는 걸 도와주며 작게 말했다.
“소저,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장공주 전하께서도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답니다.”
목운요는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다 갈아입은 후, 그녀가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문을 열자마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곡 마마가 목운요를 향해 인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소저를 뵙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장공주 전하께선 빗질을 받고 계십니다.”
목운요는 빙긋 웃으며 방 안에 들어와서 장공주를 향해 절을 올렸다.
“장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청춘이 영원하고 해마다 강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말에 장공주는 짙게 미소 지으며 목운요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입에 꿀을 바른 것이냐? 아무리 좋게 말해도 소용없단다. 세뱃돈 봉투는 진작에 준비해 놓았으니 은자를 더 얹어 줄 수 없어.”
“제 덕담은 진심입니다. 세뱃돈을 더 받으려고 한 게 아닌걸요.”
이에 장공주가 봉투를 거두며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세뱃돈을 안 줘도 되겠구나.”
“공주 전하!”
목운요는 재빨리 봉투를 받더니 눈웃음을 가득 지었다.
“세뱃돈을 받았으니 더 달콤한 말을 해 드려야겠네요.”
“곡 마마, 얘 좀 보게. 이게 무슨 손녀란 말인가? 그냥 돈 밝히는 아이지.”
목운요는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봉투를 열어 보았다. 이내 그녀가 장공주를 향해 재차 절을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살 걱정은 없겠어요.”
목운요는 봉투를 꼼꼼히 챙긴 후 몹시 귀중하다는 듯 톡톡 두드렸다.
그에 장공주는 폭소하더니 목운요를 끌어당겨서 이마를 살짝 두드렸다.
“아이고, 정말 못 말린다니까.”
옆에서 곡 마마도 미소 지었다. 오랫동안 공주 전하께서 저리 즐겁게 웃으신 적이 없었기에 더욱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장공주로서는 소청, 목운요 모녀에게 미안함이 많아 자신이 준 선물을 좋아해 주는 것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 목운요가 진심으로 즐거워한다는 사실이 장공주에게는 어떤 선물보다도 귀중하게 느껴졌다.
장공주와 목운요의 웃음이 그치자 옆에서 빗을 쥐고 서 있던 허기가 다시 장공주의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마침 건너온 소청은 허기와 목운요가 있는 것을 보고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장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어제 늦게 잠드는 바람에 오늘 조금 늦게 일어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하.”
이에 장공주가 다가가 소청을 일으켜 세우더니, 세뱃돈 봉투를 꺼냈다.
“내가 일부러 시녀에게 널 깨우지 말라고 했다.”
소청은 봉투를 받고 다시 절을 올렸다.
“장공주 전하, 감사합니다. 장수하시고,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시기를 빕니다.”
“그래그래. 바닥이 차니 어서 일어나라.”
그사이 목운요는 소청에게 가서 절을 하더니 곧장 세뱃돈을 달라고 졸랐다. 이에 소청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장공주 전하 앞에서 얌전하게 굴지 못하고 어찌 이리 방정맞아? 이따 벌을 줄 것이야.”
“어머니는 저를 벌하지 못하시잖아요.”
“요 고얀 것.”
장공주가 목운요의 코를 아프지 않게 비틀었다. 그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