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66화 (266/442)

266화 새해 선물

머지않아 목운요가 선물을 받고 돌아왔다.

세 사람은 담소를 나누다 한 시진이 지난 뒤에야 전각으로 향했다.

과연 덕비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장공주와 목운요가 걸어오자 덕비가 허둥지둥 일어났다.

“소첩, 장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전각으로 가자.”

여전히 딱딱한 장공주의 표정에 덕비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작 목운요 같은 것 때문에……! 목운요가 대체 뭐길래 장공주 전하께서 저렇게까지 나서시는 거지?’

목운요는 덕비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돌려 빙긋 웃었다.

“덕비 마마의 선물을 받고 무척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비는 순간 얼굴을 경직시켰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장공주가 전각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절을 올렸다.

월왕은 목운요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그녀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살짝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맹씨 가문을 심중에 새겨 놓는 건 절대 잊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엔 목운요와 관련된 일들을 기록하는 장부 한 권이 있었다. 목운요에게 잘해 준 사람, 못되게 군 사람을 다 기억해 놓았다가 나중에 천천히 갚아 주기 위함이었다.

황제는 어색한 표정의 덕비를 모른 척하며 장공주에게 앉도록 청했다.

“누님께서 안 계신 사이, 이미 황자들이 선물을 다 보내 놓았습니다. 특히 진왕이 최근에 쟁기를 개조했다고 합니다. 다음 해 봄에 시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만약 성공적이라면 백성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겠지요.”

‘쟁기를 개조했다고?’

목운요는 시선을 들어 진왕을 보았다. 진왕이 상황을 호전시킬 방법을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께서 진왕에게 상을 내리셔야겠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리고 월왕도 근래에 잘해 주고 있습니다. 죽을 나누어 주는 자선 행사를 능수능란하게 진행했고, 이번에는 그 행사를 그린 그림을 보내왔습니다.”

목운요는 깜짝 놀랐다. 월왕이 황제에게 선물로 그림을 보내다니……? 정말 입에 풀칠도 못 할 정도로 가난해지신 건가?

황상이 몇몇 황자들을 언급하며 칭찬하자 문무백관들도 서둘러 맞장구를 쳤다. 전각 안이 떠들썩해지며 군신이 함께 술을 즐기니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황제는 장공주와 함께 술잔을 비우고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운요는 감기에 걸렸다고 하던데, 오늘은 좀 어떠하냐?”

목운요는 재빨리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거의 다 나았습니다, 황상.”

“다행이구나. 그보다 네가 전에 새해 선물을 많이 보내겠다고 약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짐이 잘 살펴보겠다. 만약 선물이 마땅치 않으면 나를 기만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야.”

옆에 있던 장공주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황상, 왜 아이에게 겁을 주십니까? 운요가 놀라 쓰러지기라도 하면 제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장공주의 말에 낮게 탄식을 뱉었다. 목운요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 형용할 수 없는 심각한 기운이 스쳤다. 정말 그녀의 신분이 달라진 것이었다.

소우의는 청녕 공주의 뒤에 앉아서 조용히 어금니를 악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좋은 일은 죄다 목운요한테만 일어나는 거지?’

한편 목운요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황상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황상, 제 선물이 단상에 올릴 만하지 못하더라도 웃으시면 아니 됩니다.”

“그렇게 말하니 대체 어떤 선물을 들고 왔는지 궁금해지는구나.”

장공주가 손짓하자 곧 궁녀가 목운요의 선물을 들고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궁녀가 들고 온 옷을 보더니 작게 감탄했다.

정말 약삭빠른 선택이었다. 다른 이였다면 감히 황상에게 옷을 선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운요는 장공주의 사랑을 받아 외손녀가 되었으니 따지고 보면 이제 황제는 목운요의 종조부인 셈이었다. 그러니 옷으로 효심을 표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처사였다.

궁녀들이 조심스레 옷을 펼치니 샛노란 옷 위에 힘이 넘치는 금빛 용이 수놓아져 있었다. 용의 발, 비늘, 수염 하나하나에 생생함이 넘쳤고, 특히 용의 눈을 바라보면 심장이 조이는 것만 같았다.

황제가 감동하여 말했다.

“도포가 아주 멋지구나. 아까워서 못 입을 정도다.”

“부디 편하게 입어 주십시오. 옷이 더 필요하시면 몇 벌 더 지어 드리겠습니다. 솜씨가 뛰어난 하운방 사람들이 도와줄 것이니 혹여라도 제가 바쁠까 봐 염려하지 마시고요.”

그에 황제가 손가락으로 목운요를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누님, 저 아이 좀 보십시오. 이게 어디 짐을 위한 선물입니까? 분명 하운방에 옷을 주문해 달라는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은데요!”

만약 황제가 하운방이 제작한 옷을 입는다면 금자 현판을 거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었다.

“제가 입은 이 옷도 운요의 손에서 나온 거랍니다. 운요가 황상의 옷을 두 달 동안 준비했다고 하니 이따가 상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효심이 뛰어나니 상을 내려야겠습니다.”

그때, 한 궁녀가 쟁반을 들고 왔다.

목운요가 입을 열었다.

“이는 불선루의 최상급 찻잎입니다. 단 하나도 외부에 팔지 않고 모두 여기로 가져왔습니다.”

“잘 받으마.”

빙긋 웃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열댓 명의 환관들이 무척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들고 왔다.

“저 안에는 비취옥 장식과 진귀한 자기, 서화, 희귀본 서책 등의 선물을 넣었습니다.”

황제는 참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게 다……? 보낸 게 너무 많구나.”

“제가 각지에서 수집한 것들입니다. 아주 귀한 것은 아니어도 제 정성이 담겨 있으니 받아 주십시오.”

황궁에도 그런 물건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선물에 담긴 목운요의 마음이 몹시 귀했다. 여태껏 황자나 신하들이 보낸 선물들은 세심하게 고른 것이긴 해도 정성을 바친 것은 아니었다.

“목운요가 가져온 선물들을 조심히 들고 가거라. 네게 어떤 상을 내릴지 생각해 보마.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았으니 후하게 상을 내려야지. 누님께선 내가 큰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하시겠어.”

목운요가 환하게 웃으니 눈에 별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육공주 회양은 과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과일이 으스러져서 과즙이 뚝뚝 떨어졌다.

“목운요를 보니 소우의가 생각나네요. 부황, 듣기로 소우의의 춤이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이 아름답다고 하던데, 오늘 한번 볼 수 있을지요?”

조만간 소청오에게 시집을 가야 하니 소우의를 도우려는 것이었다.

소우의의 이름이 나오자 황제는 중추절에 봤던 아름다운 춤이 기억났다. 하지만 지금은 소씨 가문에 대한 좋은 감정이 없어서 그 가족을 불러내어 흥을 망치긴 싫었다.

황제는 곧장 고개를 돌려 육공주가 꺼낸 화제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청녕 공주의 뒤에 앉은 소우의의 얼굴이 빨개졌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무의식적으로 목운요를 바라보니 그녀는 냉담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길가의 돌멩이처럼,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듯이.

소우의는 다른 사람의 무시는 참을 수 있어도 목운요의 무시는 참을 수 없었다.

원래 자신은 어머니의 계획에 따라 조금씩 명성을 쌓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진왕의 총애를 얻은 다음, 높은 자리에 오르는 꿈을 실현했어야 했다.

하지만 악몽 같은 목운요가 온 뒤로, 자신의 아름다운 환상은 모두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황상, 소인이 요즘 호선무(胡旋舞)를 연습하고 있는데 이 기회를 빌려 황상의 흥을 돋우어 드리고 싶습니다.”

소우의가 그리 말하자 비빈들의 눈빛이 갑자기 돌변했다.

그러나 소우의는 목운요를 누르고 싶은 마음에 방금 제가 한 말의 불온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황제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자 소문원이 급히 소우의에게 눈짓했지만, 안타깝게도 소우의는 그조차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 육공주도 말을 거들었다.

“부황, 저도 호선무가 무엇인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여러 대인도 호선무를 궁금해할 터이니 소우의에게 춰 보라고 하시죠. 저희도 호선무를 구경해 보지요.”

목운요는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육공주는 대체 소우의를 도우려는 것일까, 아니면 해치려는 것일까?

육공주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소우의는 궁중 무희로 전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많은 사람의 심심풀이가 되는 것인데 소우의는 그 결과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일까?

반면 청녕 공주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소청과 목운요를 괴롭힌 덕비도 황상에게 벌을 받았다. 그래서 청녕 공주는 목운요에게 어떻게 그 빚을 갚아 줄지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그러던 와중에 소우의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욕보이려 하다니……!

궁중 연회에서 황상께 지명받아 기예를 선보이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지만, 스스로 무대에 올라 기예를 선보이는 것은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이미 명성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대체 얼마나 자신의 명성을 떨어뜨리려는 것인가?

장공주는 소우의를 보며 소매 위의 봉황과 꽃무늬를 어루만졌다.

“소우의로군요. 중추절 궁중 연회에서 춤추던 자태가 아름다웠던 걸 기억합니다. 호선무에도 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어렵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눈요기나 하시죠.”

일순간 소우의의 마음에 기쁨이 들어찼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황상과 장공주에게 인사했다.

“보잘것없는 재주지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장공주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고개를 돌려 목운요를 바라봤다.

“운요야, 앞으로 나와 차 좀 우려 주렴. 요 며칠 네가 우려 준 차를 마시는 게 습관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탄 차는 별로 맛이 없는 것 같구나.”

장공주에게 예를 갖춘 후 올라가는 목운요를 보고 많은 사람이 부러워했다. 목운요가 스스로 막다른 골목을 찾지 않는 이상, 이제 그녀의 앞길에는 꽃과 비단이 가득할 것이었다.

머지않아 소우의가 무용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인사를 올리며 호선무를 시작하려는 순간, 미소 지은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장공주의 옆에 앉은 목운요가 자신을 광대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웃음을 띤 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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