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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65화 (265/442)

265화 대가를 치러야지

덕비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덕비는 냉큼 고개를 돌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닥에 꿇어앉았다.

“신첩, 황상을 뵙습니다. 목 소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목 소저가 갑자기 혼절해 버렸습니다. 혹시 무슨 병이 도진 건 아니겠지요?”

“운요야……!”

장공주가 곡 마마의 부축을 받으며 빠르게 걸어왔다. 목운요의 창백한 얼굴과 턱에 남은 선명한 손자국을 발견한 장공주의 눈빛에 한기가 돌았다.

사실 장공주는 전각에서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속으론 줄곧 소청과 목운요가 걱정되어 궁녀를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급히 돌아온 궁녀는 덕비가 소청과 목운요의 길을 막았다고 보고했다.

목운요와 맹씨 가문의 원한을 떠올리자, 장공주는 더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냉큼 소청과 목운요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름대로 걸음을 재촉했으나,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장공주의 분노한 눈을 마주한 덕비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장공주 전하, 저는 그저 장난을 좀 친 겁니다. 이렇게 연약하리라곤…….”

소청은 가슴이 미어졌으나, 겉으로는 침착한 모양새를 유지하며 장공주에게 예를 갖춰 말했다.

“장공주 전하, 요아는 몸이 약하기도 하고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아 쓰러진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장난 좀 쳤다고 사람이 쓰러져?”

“덕비 마마를 뵙고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하지 않아 마마께서 화를 내시니 요아도 놀랐을 겁니다. 게다가 덕비 마마께서 실수로 요아의 손가락을 밟으셨는데, 워낙 연약한 아이인지라 혼절한 것 같습니다.”

장공주는 목운요의 손 쪽으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시퍼런 멍이 들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오른손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황제의 미간에도 깊은 주름이 파였다.

장공주는 목운요를 자신의 외손녀로 삼겠다는 소식을 이미 세상에 알렸다. 그런 상황에서 덕비는 목운요를 찾아가 괴롭혔다. 고의로 장공주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심산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소청은 몸을 돌려 덕비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덕비 마마, 용서해 주십시오. 요아가 한동안 몸조리를 해야 해서 마마의 명에 따라 궁중 치마를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에 장공주는 돌아서서 곡 마마에게 건조한 목소리로 분부했다.

“운요를 옥화궁으로 데려가고, 즉시 태의를 불러 치료하게. 황상, 궁중 연회가 곧 시작하니 황상께선 어서 연회에 참석하세요. 저는 태의가 운요를 치료하는 걸 보고 가죠.”

“누님…….”

황제는 장공주의 얼굴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누님도 함께 전각으로 가시죠.”

“됐습니다. 운요를 다른 이에게 맡기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또 어떤 후궁이 나타나서 운요를 괴롭힐지 누가 압니까?”

장공주는 눈살을 찌푸린 채 목운요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에 덕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땅에 꿇어앉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바닥이 차가워서 무릎이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덕비는 고개를 들어 연약한 모습으로 황제를 바라봤다. 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이 보였다.

“황상…….”

하지만 황제는 냉랭한 표정으로 덕비를 훑어볼 뿐이었다. 예전에 덕비를 보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고, 싫은 내색만 역력했다.

“덕비, 짐의 앞에서 어찌 경망하게 구는 거요?”

그제야 덕비는 벌벌 떨며 몸을 숙여 절을 했다.

“신첩이 잠시 실수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대는 오랫동안 궁에서 생활하며 짐을 도와 후궁들을 관리했소. 비빈이 솔선수범하지 못하면, 다른 궁인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소? 그래도 그대가 짐을 오랫동안 보필했으니 그대의 체면을 봐서 다른 벌을 내리진 않겠소. 다만 이곳에 꿇어앉아 있으시오. 누님이 목운요를 돌보고 나오면 누님과 함께 전각으로 오시오.”

덕비의 얼굴이 종이처럼 하얗게 변했다. 덕비는 맹씨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청녕 공주의 총애를 받다가 후에는 비로 간택되어 입궁했다.

꾀 없고 직설적인 덕비를 황제는 마음에 들어 했다. 가끔 잘못을 저질러도, 덕비가 잘 구슬리면 황제도 그녀를 크게 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목운요를 괴롭혀도 괜찮을 줄 알았다. 이 때문에 황상과 장공주가 화를 낼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황제가 떠난 후, 시녀들은 꿇어앉은 덕비의 곁에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덕비 마마, 괜찮으십니까?”

창백한 얼굴의 덕비는 곧장 냉정을 되찾곤 마마에게 빠르게 명을 내렸다.

“속히 사람을 보내 장공주 전하께서 어떤 태의를 불렀는지 알아보고, 그자에게 가능한 한 빨리 목운요를 깨우라고 전하게. 그리고 내 처소로 가서 선물을 두둑이 준비하여 바로 옥화궁으로 보내게나. 목운요에게 사죄의 뜻으로 보낸다고 전하고.”

덕비의 시중을 드는 마마는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마마, 너무 품위를 잃는 처사가 아닌지요?”

덕비는 차가운 눈으로 마마를 훑었다.

“품위를 잃는 것이 자리를 잃는 것보다 낫지. 어서 가게. 옥화궁에 갈 때는 공손하게 굴어야 하네. 그리고 내가 황상께 벌을 받아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도 장공주 전하께 전해 주게.”

마마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으나, 덕비의 차가운 눈빛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옥화궁.

궁녀는 목운요를 침상에 눕힌 후 재빨리 물러갔다.

장공주가 침상 옆에 앉아 목운요의 코를 살짝 비틀었다.

“요 깜찍한 것. 아무도 없으니 어서 일어나라.”

목운요는 살며시 눈을 뜨며 웃음을 지었다.

“역시 장공주 전하를 속일 사람은 없습니다.”

“간단한 꾀지만, 덕비를 상대하는 데엔 뛰어난 효과가 있었나 보다.”

장공주는 아까 목운요의 눈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고 혼절하는 연기를 한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목운요는 재빨리 일어나 앉으며 장공주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어머니와 저는 힘이 없으니 이런 방법으로라도 잠시 화를 면해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더 힘들어지니까요. 보세요, 아직도 손이 아픕니다.”

목운요가 멍이 든 손가락을 매만지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덕비가 궁에서 총애를 받다 보니 점점 자기 분수를 잃는구나. 오늘 제대로 가르쳐 줘야겠다. 혹 내가 덕비를 바로 꾸짖지 않아서 마음이 상했느냐?”

목운요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어찌 외할머니를 탓하겠습니까? 덕비 마마께서는 황상의 총애를 받으시는 분이니 쉽게 화를 내실 수 없지요.”

“그게 첫째 이유지. 둘째 이유는 신분상 덕비가 위이고 네가 아래이니, 덕비가 네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라고 한 것이 지나친 요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덕비가 네 손가락을 밟았지만 상처가 심하진 않아서 벌을 무겁게 내릴 수 없었단다. 내가 너그럽지 못했다면 너에 대한 뒷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 그냥 황상께 이 일을 맡기는 것이 낫다. 황상께선 나를 위해서라도 분명 덕비를 따끔하게 혼내실 게야.”

장공주의 가르침에 목운요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곡 마마가 태의를 데리고 왔다. 그는 목운요를 진맥하고 약 처방을 내린 뒤 잘 쉬라고 당부하고 물러났다.

이내 곡 마마가 차를 들고 오며 조용히 말했다.

“황상께서 덕비 마마께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장공주 전하께서 소저를 다 보살피시고 나오면 함께 전각으로 오라 명하셨습니다. 덕비 마마께서는 후회가 되셨는지, 먼저 태의를 찾아서 소저를 잘 치료해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정말 미안하다며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장공주가 웃으며 목운요를 보았다.

“사죄의 선물을 보냈다고 하니 살펴보겠느냐?”

“덕비 마마께서 일부러 선물을 보내셨으니 직접 받으러 가겠습니다. 감사의 인사도 전하고요.”

웃음이 만연한 장공주의 눈에 찬탄의 빛이 스쳤다.

“운요야, 억울하진 않느냐?”

“아무리 무섭게 가르침을 주셨다고 해도 웃어른이시니 공경하며 받아들여야지요.”

“그래, 그럼 가 보아라.”

목운요가 밖으로 나가자 소청은 아리송한 얼굴로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요아가 저러는 데에 다른 뜻이 있는 겁니까?”

소청은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황상께서 왜 덕비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셨는지 아느냐?”

“요아의 화가 풀리라고 그러신 것 아닙니까?”

“운요가 쓰러졌는데 무릎을 꿇는 걸로 충분하겠느냐? 게다가 무릎을 꿇고 나서 구태여 왜 나와 같이 오라고 하셨겠느냐?”

소청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 요아의 체면을 세워 주시기 위한 겁니까?”

장공주가 빙긋 웃으며 끄덕였다.

“그래. 덕비가 운요에게 벌을 준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라 목격한 자가 적지 않았을 거야.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더라도 다들 마음속으로는 운요를 무시했겠지. 하지만 덕비를 벌하고 나를 따라 전각으로 오도록 한다면 위신을 잃는 것은 덕비와 맹씨 가문이 될 거다.”

이에 소청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군요. 그럼 덕비 마마께서 보내신 선물은요?”

“내가 화를 풀지 않아 전각에 가지 않으면 덕비가 감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반드시 운요에게 용서를 구해야지.”

“그럼 요아가 직접 선물을 받으러 간 것은요?”

“그건 더 간단하지. 아까 운요가 말하지 않았느냐. 어찌 됐든 덕비가 웃어른이니 선물을 받지 않으면 괜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거다. 반면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선물을 받으러 가면 예절 바른 아이가 되는 거지. 예의를 깍듯이 차릴수록 덕비의 횡포가 더욱 부각되는 거야.”

소청이 참지 못하고 탄식을 뱉었다.

“이리 많은 이치가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장공주도 소청을 따라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운요가 사내아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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