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64화 (264/442)

264화 궁중 연회

목운요는 장공주와 이야기꽃을 피우다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장공주는 제 뒤에 있는 시녀에게 손짓해, 손에 들고 있는 쟁반을 탁상 위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즉시 쟁반 위의 비단 천을 하나씩 펼쳐 놓았다.

“새로 지은 옷이니 어서 와서 입어 보렴.”

목운요는 놀란 눈으로 옷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정말 곱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옷은 하운방도 만들지 못할 거예요.”

기뻐하는 그녀를 보고 장공주는 더욱 만족감을 느꼈다.

“어느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보자꾸나. 그리고 그 옷을 입고 내일 궁중 연회에 오렴.”

목운요는 옷들을 보다가 수수한 봄꽃이 수놓아진 은색 비단 적삼과, 구름과 달이 수놓인 치마를 골랐다.

그녀가 고른 옷에 장공주는 다소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보기 좋긴 하다만, 내 생각에 너에겐 더 화려한 색이 어울릴 것 같구나.”

“이거면 됐습니다. 붉은 계열의 옷은 남겨 두었다가 내년 겨울에 입으면 되겠어요.”

결정을 내린 목운요는 금란과 금교에게 옷을 잘 치워 두라고 분부했다.

그에 장공주는 목운요가 목성을 기리는 것임을 알고 말을 아꼈다.

“마침 흰 진주로 복숭아꽃 머리 장식을 만들라고 했다. 네가 고른 옷과 함께 차면 되겠구나.”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드릴 선물이 있어요. 금란, 어서 내가 만든 치마를 가져와요.”

“네, 소저.”

금란은 곧장 옷을 가져왔다. 장공주는 옷을 보곤 감동이 일었다.

“운요야……. 이 옷을 만드느라 많은 시간을 쏟았겠구나.”

목운요가 준비한 것은 뒤가 길게 끌리는 궁중 치마였다. 짙은 자주색의 비단 치마에는 꼬리가 아홉 달린 금색 봉황이 수놓여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황금빛이 휘황찬란하게 빛나서 그 고귀함과 아름다움이 어디에도 비할 수 없었다.

“마음에 드시면 됐습니다.”

이 비단 치마에 수를 놓기 위해 목운요는 오랫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그 정도 고생은 가치 있는 것이었다.

장공주는 옷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내일 이 옷을 입고 궁중 연회에 나가마.”

* * *

다음 날.

마차 안에서 목운요는 긴장한 어머니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장공주의 요구로 이번 궁중 연회에는 소청도 함께 참여하게 된 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저 조용히 음식만 먹고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 돼요.”

“그래도 연회에 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새해를 맞이하는 연회가 아니겠어요? 목숨줄이 어지간히 길지 않고서는, 오늘 연회에서 소란 피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때마침 황궁에 도착했는지 마차가 멈춰 섰다. 목운요와 소청이 마차에서 내리자, 소 공공이 마중 나왔다.

“소 부인과 목 소저를 뵙습니다.”

“이만 예를 거두세요. 길 안내를 해 주시느라 매번 고생이 많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소 공공이 처음 목운요에게 길 안내를 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이제 막 소씨 가문에 들어온 소씨 가문의 외손녀였다. 궁중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목운요가 운이 좋아 소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녀는 모든 이들이 칭송하는 아가씨가 되었다. 더는 소씨 가문의 힘을 빌려 영광을 얻지 않아도 되었고, 외려 단번에 장공주의 눈에 들었다. 특히나 행동거지도 영특해서 아무리 칭송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목운요와 소청이 궁문에 들어서는데, 옆에서 쌀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운요?”

시선을 옮기자, 목운요는 증오에 찬 소우의의 두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옆에는 청녕 공주가 함께였다.

“청녕 공주를 뵙습니다.”

목운요가 예를 올리자 소청도 재빨리 따라서 예를 갖췄다.

청녕 공주는 소우의를 데리고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두 눈에 가득 담긴 혐오감은 전혀 숨겨지지 않은 채였다.

“내 딸과 손자, 손녀, 외손녀를 연거푸 괴롭히다니, 보통내기가 아닌가 보구나.”

“소인,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하!”

청녕 공주는 냉소하며 고개를 돌렸다.

“우의야, 이곳은 공기가 더러우니 아무래도 오래 머물면 안 될 것 같구나.”

목운요를 향한 소우의의 증오는 깊었다.

목운요 때문에 제 어머니는 가문에서 버림받고 서릉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또한 아버지는 관직이 강등되어서 둘째 집안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앉았다. 게다가 큰오라버니는 제멋대로 구는 육공주의 비위까지 맞춰야 했다.

소우의는 이 모든 빚 하나하나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기회가 오면 반드시 목운요를 능지처참당하게 만들 셈이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속의 한이 풀릴 것 같았다.

목운요는 멀어져 가는 청녕 공주와 소우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에 어두운 빛이 지나갔다.

“어머니, 가요.”

소 공공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목운요가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까 봐 두려웠다. 그는 한동안 목운요의 눈치를 보다가 그녀가 부드럽게 웃은 뒤에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한데 전각을 앞에 둔 그 순간, 찢어질 듯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누구냐? 덕비 마마를 뵙고도 무릎 꿇지 않는다니, 왜 이리 버릇이 없어?”

목운요는 고개를 들었다.

붉은 바탕에 흰색 나비가 수놓아진 모란 치마를 입은 여인이 궁녀들에게 둘러싸여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미인은 요염한 모습이었다.

목운요는 소청에게 눈짓한 후, 예의 바르게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덕비 마마를 뵙습니다.”

덕비는 손을 휘저어 곁에 있는 궁녀에게 물러가라 명하곤, 목운요의 앞까지 걸어왔다. 치마 위의 모란이 살아 움직이듯 흔들렸다.

“넌 누구냐? 낯익은 얼굴이 아닌 걸 보니 예전에 본 적은 없나 보군.”

“덕비 마마께 아룁니다. 저는 민녀(民女) 목운요이며, 이쪽은 제 모친이신 소청입니다.”

“목운요, 소청이라……. 자신을 민녀라고 하는 것을 보니 어떤 봉작도 받지 못한 것 같거늘, 어찌 나를 보고도 무릎을 꿇고 인사하지 않는 것이냐?”

궁중 연회에는 참석하는 사람이 많아 보통은 간단하게 예를 올리는 편이었다. 덕비는 일부러 트집을 잡아 목운요를 괴롭히고 있었다.

목운요는 시원하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부디 소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소청은 무척 긴장하며 목운요를 따라 예를 갖췄다.

덕비 마마는 대부인 맹 씨의 언니였다. 지금 이러는 건 일부러 목운요와 소청을 괴롭히는 것이리라.

덕비는 제 발아래에 꿇어앉아 인사를 올리는 목운요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더니 천천히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뎌, 자수신으로 바닥에 엎드린 목운요의 손가락을 밟았다.

“네 자수 솜씨를 대적할 자가 없다고 들었다. 언제 내게도 치마 하나를 만들어 주겠느냐?”

밟힌 손가락이 너무 아파 목운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마, 실수로 제 손가락을 밟으셨습니다.”

그러나 덕비는 발을 옮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랬느냐? 오랫동안 자수바늘을 쥐고 있어서 손가락이 거칠어졌나 보다. 땅을 밟은 것과 아무 차이가 없어서 느끼지 못했다. 설마 장공주 전하께 일러바칠 것이냐?”

목운요는 고개를 들어 덕비를 바라봤다. 까만 두 눈에 차가운 빛이 맴돌았다.

“저는 장공주 전하께서 친히 외손녀로 삼은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농간을 부리시면, 장공주 전하께서 노하지 않으실까요?”

이곳엔 다른 사람이 없어서 이것저것 신경 쓰며 말할 필요가 없었다.

덕비는 그런 목운요를 비웃더니, 몸을 서서히 구부려 목운요의 손가락을 밟고 있는 발에 온몸의 무게를 실었다. 그러곤 흰 손가락을 뻗어 목운요의 턱을 잡아챘다.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장공주 전하 덕분에 네가 정말로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저잣거리에서 주워 온 외손녀 때문에 장공주가 황상의 총애를 받는 나를 벌하실까?”

목운요는 눈을 깜빡이다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자신을 총애받는다고 칭하다니, 정말 자신감이 넘치십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게 사람은 천 일간 좋을 수 없고, 꽃은 백날 붉게 피어 있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마마께 충고드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절 같습니다.”

그에 덕비는 목운요의 턱을 누른 손가락에 점점 더 힘을 줬다. 그러자 목운요의 뺨에 초승달 모양의 손톱자국이 짙게 남았다.

“이 야들야들한 얼굴 좀 봐. 내가 힘을 조금만 잘못 줘서 손톱으로 긁어 버리면 앞으로 다시는 이 얼굴을 못 보겠구나.”

목운요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치 덕비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마, 화가 풀리셨으면 그만 손을 놓으십시오. 저는 피부가 연약한 편이라 쉽게 상처가 남습니다. 예전에 맹언연이 제 뺨을 때려서 저와 맹씨 가문이 원수가 되었는데, 설마 그 일을 잊으셨습니까?”

이에 덕비가 손을 내리고 목운요를 한쪽으로 밀쳤다.

“못난 것이 뜻을 이루어 득세하면 미쳐 날뛴다던데, 그 말이 맞나 보다. 감히 내게 무례를 범해?”

덕비가 크게 분노하는 사이, 적지 않은 사람이 연이어 전각으로 향하다가 그 광경을 보고 너도나도 자리를 피했다.

“덕비 마마, 이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지체하면 연회의 시작에 지장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아니! 넌 이곳에 무릎 꿇고 있어라! 내 명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궁녀를 불러 네 양다리를 부러뜨리라고 할 것이다!”

목운요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덕비 마마도 이런 말 들어 보셨겠죠?”

“뭐?”

“세상사는 다 돌고 도는 것이라던가, 대충 그런 말이요.”

그녀는 말을 마친 후, 덕비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소청이 있는 방향으로 쓰러졌다.

덕비는 반신반의하며 놀란 눈으로 목운요를 쳐다봤다.

“너……! 지금 무슨 짓이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얼굴로 망발을 지껄이던 목운요가, 어찌 눈 깜짝할 사이에 혼절한단 말인가?

덕비가 그녀의 의중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뒤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비, 뭐 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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