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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61화 (261/442)

261화 삼각관계

그에 월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눈에 번진 장난기는 차마 숨기지 못했다.

그는 목운요를 보며 미소 짓더니 갑작스레 크게 소리쳤다.

“여봐라!”

목운요는 볼이 빨개져서 그를 말렸다.

“지금 뭐 하십니까!”

“내 입을 막으려면 은표를 좀 다오.”

목운요의 귀가 점점 더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향낭을 꺼내 월왕의 손에 던졌다.

“안에 금붙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다 잃으시면 전당포에 물건을 저당 잡히셔야 다시 그림패 놀이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당 잡힌 물건은 네가 꼭 다시 찾아 줘야 한다.”

월왕은 뒤돌아 방 쪽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일단 방으로 들어와라. 밖이 차서 감기 들겠다.”

월왕이 떠나자 허기가 살짝 미소 지었다.

“월왕 전하와 무척 친하신가 봅니다. 윗사람이신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으시네요.”

허기가 월왕을 윗사람이라고 정의하자 목운요는 손수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만 가시죠.”

“먼저 들어가요, 동생. 저는 눈을 좀 담아 놓았다가 나중에 눈 녹인 물로 차를 끓이려고요. 장공주 전하께서 눈 녹인 물로 끓인 차를 가장 좋아하시거든요.”

목운요는 허기의 뒷모습을 보며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허기의 적대감이 어디서 온 건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건 장공주가 자신을 외손녀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월왕 때문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향하는데 월왕이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준 향낭을 들고 금붙이가 얼마나 있나 세어 보는 듯했다. 잘생긴 얼굴로 무척 집중한 표정이었다.

“전하, 왜 들어가지 않으십니까?”

“은자를 다 잃으면 네가 날 전당포에 보낼까 봐 그러지.”

“황궁의 사황자이신 전하께 제가 어찌 그리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안 되지만 너라면 괜찮다.”

월왕이 손가락으로 목운요의 미간을 가볍게 두드렸다. 낮게 깐 느릿한 음성이 매력적이어서 목운요는 가슴이 저도 모르게 떨려 왔다. 귀가 빨개진 채로 그녀가 두 걸음 물러났다.

그에 월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방 안에 들어가 장공주와 계속 놀이를 했다. 결국 마지막 금붙이 하나를 아슬아슬하게 확보해서 전당포에 가지는 않아도 되었다.

시간은 금방 지나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허기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목운요가 문 쪽을 보자 곡 마마가 속삭였다.

“허 소저께선 눈 녹인 물을 담아 와서 옆방에서 정리하고 계십니다. 지금쯤 다 마무리되셨을 겁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곤 장공주의 어깨를 안마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랫동안 앉아 계셨으니 조금 움직이시는 게 좋겠습니다.”

주무르는 힘이 썩 알맞아 장공주는 작게 감탄했다.

“앞으로 어떤 복 많은 사내가 우리 운요 같은 색시를 데리고 갈까?”

“어찌 벌써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때,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월왕이 그림패를 두 갈래로 찢는 소리였다. 월왕의 표정은 차가웠다.

“고모님, 패의 품질이 너무 형편없으니 제가 다른 자에게 새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지자 소청이 헛기침을 했다.

“시간이 늦었구나. 요아야, 일찍 들어가서 쉬어라. 내일 눈이 멈추면 우리도 속히 내려가자꾸나.”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찍 돌아가 쉬렴. 군월, 잘 곳은 있느냐?”

“급하게 와서 찾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보화사 곁채에 침구가 있으니 하룻밤 묵어도 상관없습니다.”

월왕은 말을 마치곤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그녀는 차분해 보였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너도 돌아가서 쉬어라.”

“운요를 데려다준 후에 저도 쉬러 가겠습니다.”

목운요는 곧장 거절하려 했으나, 자신을 쳐다보는 장공주와 소청에 거절의 말이 목구멍에 걸려 버렸다.

결국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월왕을 따라 문을 나섰다.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나자, 소청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 요아와 월왕 전하는…….”

“청아, 네가 보기엔 두 사람이 어떤 것 같으냐?”

“이전에 전하의 진짜 신분을 알지 못했을 땐 인품과 용모, 덕행까지 요아와 아주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한데 이젠 요아에게 외당숙이 되시니…….”

소청은 진심으로 아쉽다고 생각했다. 극도로 사람을 경계하는 딸아이가 마음을 내준 사내였다. 그런데 하늘이 장난을 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장공주는 심오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옅게 웃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아이들의 일은 자기들끼리 해결하라고 하면 된다. 우린 그저 아이들이 내린 결정을 지지하면 돼.”

소청이 휙 고개를 들어 장공주를 쳐다봤다.

“어머니, 설마…….”

사실 소청은 아이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평판과 항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외당숙이 당질녀와 혼인하는 일은 구설수에 오를 만했지만, 전례 없는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만 행복하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장공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장공주는 그 누구보다 궁중의 법도를 중시해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장공주가 소청의 손을 토닥였다.

“너는 그냥 마음 놓고 결과를 기다려라. 두 사람의 선택이 무엇이든 우리는 운요가 상처받지 않게 지킬 수 있단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장공주가 저렇게 말한 이상, 딸아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아직 진짜 신분을 증명할 증거도 못 찾지 않았는가. 만약 목운요가 월왕과 함께하기로 완전히 마음먹는다면 증거를 찾지 않을 생각까지 있었다.

* * *

한편 월왕은 뽀득뽀득 눈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목운요에게 물었다.

“눈사람을 좋아하느냐?”

목운요는 살짝 시선을 돌렸다. 하늘이 이미 어두워져서 월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정말 제게 눈사람을 만들어 주시려고 이곳까지 올라오신 거예요?”

“맞아.”

월왕은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운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 보화사의 침구를 덮어 보니 딱딱하고 차더구나. 전혀 따뜻하지 않았어.”

옆에서 월왕이 가벼운 불평을 했다.

낮은 목소리에 그녀는 귓가가 간지러운 것 같아 손으로 귀를 문질렀다.

“겨우 하룻밤인걸요. 이곳보다 더 열악한 월서에서도 계셨으면서.”

“검소하게 살다 사치를 부리기는 쉬우나, 사치를 부리다 검소한 생활로 돌아가긴 힘든 법이지. 예전에는 대충 자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불평을 늘어놓을 사람이 곁에 있으니 대충 자는 것이 참 어렵구나.”

“……잠시만 기다리세요.”

목운요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월왕은 입꼬리를 올렸다.

금란과 금교가 재빨리 마중 나왔다.

“소저, 눈발이 점점 거세집니다. 오늘 밤에는 무척 추울 것 같아 이불을 더 챙겨 왔답니다.”

그러나 목운요는 침상 위에 놓인 비단 이불을 곱게 개어 품에 안고 문밖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금란과 금교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소저, 이불이 필요 없으시면 제게 주세요. 잘 정리해 두겠습니다.”

“아니에요. 금방 다녀올게요.”

이불은 굉장히 두꺼웠다. 막 품에 안았을 때는 괜찮았으나, 몇 걸음 내디디고 보니 대단히 무거웠다. 게다가 이불이 눈앞을 가려서 걷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어렵게 문어귀까지 도착한 목운요는 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벽에 부딪혔다. 그녀는 그대로 발이 미끄러져 이불 속에 파묻혀 버렸다.

“윽…….”

월왕은 그런 목운요를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다소 바보 같아 보였지만, 그에게는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월왕은 점점 욕심을 내는 자신을 발견했다.

과거 목운요의 마음은 온통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경계심을 풀기만을 바랐다. 목운요의 마음이 풀렸을 땐 사랑을 받아 주길 바랐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길 바랐다.

생각에 잠겨 있던 월왕은 일부러 문의 한가운데에 섰다. 목운요는 이불을 끌어안은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다가 월왕의 품에 부딪히고 말았다.

막 넘어지려는 목운요를 월왕이 받아 냈다.

이불에 파묻힌 그녀는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고의로 그러신 겁니까?”

투명하고 맑은 두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월왕은 그 모습을 눈에 새겼다. 고양이가 가슴을 살짝 누르고 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맞다. 고의로 그런 것이야.”

목운요는 화가 났는지 두 눈을 크게 뜬 채 월왕을 노려봤다.

맑고 촉촉한 두 눈을 마주하자 월왕의 심장은 쿵쾅쿵쾅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이불이 몹시 거슬렸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소저를 뵙습니다. 날이 어둡고 길이 미끄러우니 걸음을 조심하십시오.”

목운요는 매우 놀라 품 안의 비단 이불을 놓았다. 그리고 월왕이 이불을 받아 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월왕은 몹시 아쉬웠지만 이불을 끌어안고 곁채로 향했다.

한데 그 순간, 월왕이 떠나는 걸 본 허기가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갔다.

“월왕 전하, 이불을 준비하지 못하신 겁니까? 제가 머무는 곳에 새 이불이 있는데, 필요하시다면…….”

“됐다.”

월왕은 차갑게 한 마디만 남기곤 자리를 떴다.

허기는 제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다가, 애써 웃으려 노력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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