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56화 (256/442)

256화 거슬리면 부숴 버려라

“너무 지레짐작하셨네요.”

목운요는 고개를 돌려 문어귀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비볐다. 그 모습을 본 월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우항, 화로를 두 개 가져와라. 방이 너무 춥구나.”

“네, 왕야.”

우항이 화로를 가지러 나가려던 순간, 성 공공이 하인을 대동하고 찾아왔다.

“목 소저께선 몸이 약하시니 추운 곳에 익숙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서 소인이 숯불을 준비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그에 목운요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성 공공에 대해서는 진 총관에게서 들은 바 있었다. 월왕을 지키다 한쪽 눈을 잃고, 억지로 약을 먹다가 목소리도 반쯤 잃었다고 했다. 특이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녀는 찾아온 사람이 성 공공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성 공공은 고개를 들자마자 연꽃 같은 얼굴을 마주했다. 흐르는 물처럼 투명하고 빼어난 미모였다. 특히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철철 넘쳐서 두 손으로 받들어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성 공공, 예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목운요는 성 공공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 한쪽 눈이 멀어 있었다. 연로한 탓에 피부는 늘어지고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여 얼핏 보면 놀랄 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한쪽 눈은 맑고 투명해서 누구보다 정직해 보였다.

그녀는 원래 사람의 겉모습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얼굴은 선녀 같지만 마음씨는 독사 같은 사람도 보았기에 성 공공의 생김새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진 총관께 말씀 많이 들었는데, 계속 연이 닿지 않아 뵙지 못하다가 오늘 드디어 뵙게 되었군요. 제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목운요가 태연하게 인사하자 성 공공의 웃음도 짙어졌다.

“소저, 밖이 춥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몸도 약하시니 절대로 고뿔에 걸리시면 안 됩니다.”

목운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성 공공은 숯불 화로를 내려놓고 아랫사람에게 차를 준비하라고 명했다.

“왕야께서 평소 음식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서 다과가 형편없는 것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성 공공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이라뇨. 그럼 좀 들고 계십시오. 저는 가서 화로를 더 데우고 있겠습니다. 그보다 월왕부를 수리하기로 하였는데, 목 소저께서 보신 후 고치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은 얼마든지 편하게 지적해 주십시오.”

목운요는 월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하께서 월왕부를 수리하신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 같군요.”

“그래, 오늘 결정한 일이거든.”

월왕은 아주 자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목운요는 무표정한 월왕과 웃을수록 무서워 보이는 성 공공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따 전하를 따라 월왕부를 둘러보죠.”

성 공공이 더 짙게 웃자 얼굴의 주름도 깊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소인은 왕야와 목 소저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성 공공이 자리를 떠난 후, 목운요는 월왕이 예전에 유남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유남은 아직도 월왕부에 있습니까?”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자를 조심하라고 했지. 그래서 사람을 시켜 그자의 행동을 주시하게 했다. 그렇게 하니 정말로 무엇이 나오긴 하더구나.”

목운요는 손끝이 떨려 왔다.

“역시 첩자였습니까?”

“내가 잘못 짚은 것이 아니라면, 아마 진왕의 사람일 것이다.”

“진왕……. 역시 그랬군요.”

목운요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음속의 살의를 가라앉히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월왕부를 보여 준다고 하셨으니, 어서 소개해 주시죠.”

“그래.”

월왕은 목운요가 두툼한 외투를 걸친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함께 방에서 나섰다.

두 사람은 가장 먼저 연무장에 방문했다.

연무장 바닥에는 말발굽 자국이며 병장기의 흔적이 잔뜩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무기 거치대와 말뚝이 있었다. 곳곳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연무장의 시위들을 들여보낸 성 공공은 웃으며 목운요에게 다가왔다.

“목 소저, 조만간 이곳에 연못을 몇 개 파고 연꽃도 심을 생각입니다. 그럼 여름에 뱃놀이를 할 수도 있으니 분명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목운요는 월왕을 힐끗 쳐다봤다.

“월왕 전하께선 이곳을 연못으로 바꾸실 생각인가요?”

“네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꿀 생각이다. 연못을 거닐며 말을 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월왕은 무척 진지해 보였다. 목운요가 한마디만 하면 바로 공사를 시작할 기세였다.

목운요는 작게 웃다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방들은 어떤 용도입니까?”

“잡동사니를 쌓아 놓는 용도로 쓰고 있지. 왜 그러느냐?”

“저 건물은 풍수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헐어 버리는 게 좋겠어요.”

거긴 목운요가 회귀 전에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곳이었다. 지금 봐도 마음속에 한기가 돌았다.

“좋다. 나도 저쪽의 풍수가 좋지 않다고 느꼈다. 성 공공, 사람을 보내 철거하게.”

월왕은 곧바로 명했다. 그녀가 왜 그 건물을 거슬려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면 얼마든 헐어 버릴 수 있었다.

“네, 전하. 원래도 텅 비어서 쓸모없던 곳이라 진작에 헐어야 했습니다. 저곳에 연못을 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바로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성 공공이 떠나자, 목운요는 고개를 숙이고 입꼬리를 올렸다.

“연못을 만들 거라고 했는데, 물은 어디서 끌어올 건가요?”

월왕부는 물을 끌어오기에 대단히 불편한 곳에 있었다. 지금까지 연못과 정자가 없는 것도 그래서였다.

월왕은 차마 그 생각은 하지 못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연못을 깊게 파라고 하마. 어쩌면 샘물이 나오는 곳을 찾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목운요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연못을 파는 게 아니라 우물을 파는 거 아닌가요?”

“네가 즐겁다면 어떻게 해도 좋다.”

월왕은 목운요의 입술에 걸린 웃음을 보고 자신도 그녀를 따라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쾅!

때마침 굉음이 울려 퍼지자 목운요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자신이 아까 가리켰던 곳에서 뭉게뭉게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장한 사내들이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벽을 향해 돌진하자, 벽에 또다시 구멍이 났다.

“이곳은 너무 시끄러우니 앞마당으로 가는 건 어떻겠느냐?”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곳을 부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래.”

천둥 같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벽과 기둥이 연달아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목운요의 마음속을 옭아매고 있던 울타리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음속 저 아래에서부터 전엔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편안함이 올라왔다.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평화로운 봄날이 찾아온 것 같았다.

“월왕 전하, 우물을 파고 싶으시다면 저곳을 헐어 낸 곳에 파는 건 어떻겠습니까?”

“알겠다.”

월왕은 목운요의 주변에 감돌던 냉기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운요는 그런 월왕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제가 왜 저곳을 거슬려 하는지 묻지 않으시나요?”

월왕이 고개를 저었다.

“알고 싶지만, 네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구나.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것보다 네가 난처해하는 게 더 싫다.”

그녀는 월왕의 배려심에 정신이 멍해졌다. 한참 후에야 목운요는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목운요는 건물이 완전히 허물어질 때까지 한 시진 동안 서서 지켜보았다.

월왕은 그런 그녀의 곁에 서서 찬 바람을 막아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온몸이 얼 것처럼 추워졌다. 특히 발바닥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쿡쿡 쑤셨다.

“성 공공이 생강차를 준비했다고 하니 어서 가자.”

“네.”

목운요는 잔해 더미로 변한 건물을 한 번 더 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전에 없이 마음이 홀가분했다.

목운요가 생강차를 마시고 떠난 뒤, 마차를 배웅한 성 공공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목 소저께선 왜 그 건물을 싫어하셨던 겁니까?”

월왕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허물었으니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네. 연못을 파기로 했으니 허문 자리를 깊이 파서 샘을 찾아보게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삼 척만 파도 샘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 * *

한편, 마차 안의 목운요는 방석에 기댄 채 유난히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했다.

장공주와의 관계를 몰랐을 때는, 진왕이 월왕에게 악명을 씌우기 위해 자신을 죽였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본래 신분을 알게 되자 생각이 더 많아졌다.

‘소씨 가문은 암암리에 진왕을 지지해 왔다. 그렇다면 진왕은 나와 장공주 전하의 관계를 알고서 나를 죽인 것이 아닐까?’

목운요는 손을 들어 미간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어 일이 간단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여전히 복잡하게 얽힌 부분이 많았다.

회귀 전 진왕부에 들어갔던 것조차 스스로 해낸 것인지, 진왕이 자신의 신분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인지 헷갈렸다. 만약 자신의 신분을 알았다면 장공주에게 월왕이 외손녀를 죽였다고 알렸을 게 분명했다.

‘장공주 전하께선 월왕 전하를 끔찍이 아끼시지만, 내가 참혹히 죽은 것을 들으셨다면 이성을 잃으셨겠지. 어쩌면 월왕 전하께 복수를 하셨을지도 몰라.’

진상이 뚜렷이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때, 금란의 목소리가 목운요를 깨웠다.

“소저, 집에 도착했습니다.”

목운요는 눈을 떴다. 흔들리던 눈이 아주 또렷해졌다.

‘어찌 되었든 이번 생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절대로 소씨 가문과 진왕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