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55화 (255/442)

255화 사내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

* * *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났다. 자수법의 전수도 서서히 끝나 갔고, 서릉의 백성들은 신년을 맞이하느라 바빠졌다.

목운요는 마지막 수를 놓고 시큰거리는 손목을 가볍게 주무르며 완성된 자수품을 바라봤다.

그때, 문어귀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리자 소청이 장공주를 부축하며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외할머니께 인사 올립니다.”

“네 어미한테 전해 들었다. 벌써 며칠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며? 수를 놓을 땐 눈이 상하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젊어서 모르겠지만, 훗날 나이가 들면 눈이 안 좋은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게 될 거야.”

걱정을 내비치던 장공주는 목운요의 옆에 놓인 자수품을 보더니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몹시 놀란 기색이었다.

“이건…….”

흰 천에는 관음보살이 웅장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물병을 들고 연꽃 모양 받침대에 앉은 관음상의 모양새는 보는 사람을 고요함에 잠기게 했다.

장공주가 특히 놀란 것은 관음상이 자신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꽃 모양 받침대 옆에 차분히 앉아 있는 동자 두 명은 소청과 목운요를 빼닮아 있었다.

장공주가 자수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목운요는 작게 웃으며 천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불경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예전에 목운요가 장공주의 부탁으로 베껴 썼던 지장보살의 본원경이었다.

“참으로 세심하기도 하지. 마음에 쏙 드는구나. 병풍으로 만들라고 하여 방에 둬야겠다.”

목운요는 눈을 살짝 깜빡였다.

“하오나 이 자수품은 황상께 드리려던 것이온데…….”

“황상께선 매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물을 받으신다. 이것도 그중의 하나니 그냥 내게 주려무나.”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세상에서 보지 못한 물건이 없으니 당연히 자수품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따 공주부로 돌아가실 때 함께 보내겠습니다.”

“고맙구나. 그보다 얼마 전에 창고를 정리하다 머리 장식들을 발견했는데, 딱 네 나이 대에 어울릴 것 같더구나. 바깥에 가져다 놨으니 이따 가서 맘에 드는지 살펴보렴.”

“머리 장식이라면 이미 많이 주셨잖아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머지않아 외할머니의 창고를 제가 다 비워 버리겠어요.”

그에 장공주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 물건이 네 물건이지.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창고에 들러서 가지고 가렴. 그동안 좋은 물건들을 많이 모아 놨으니, 몇 년을 가지고 놀기에도 충분할 거다.”

“그럼 가장 귀중한 것들로만 골라 와야겠어요.”

장공주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손을 뻗어 목운요를 품에 끌어안고는 사랑스럽다는 손길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우리 운요가 이렇게 구두쇠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좋아! 이따 곡 마마를 따라가서 잘 골라 봐라.”

그녀는 한참을 웃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요즘 네가 죽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새해 전에 자선 행사를 하려는 거니?”

“네, 맞아요. 백성들에게 돌려줘야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내가 도울 건 없고?

“준비가 거의 끝나 가니 염려 마세요. 다만 올해는 행사 규모가 작년보다 못할 것 같습니다. 요즘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거든요.”

소금 장수들에게서 벌어들인 돈을 공개적인 자리에 쓸 순 없었다. 그래서 올해 죽을 나눠 주는 행사의 규모는 크지 않을 예정이었다.

“예전에 보화사에서 만약 내 딸을 찾는다면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고 부처님께 약속드렸다. 보아하니 이런 행사가 내 몫인 것 같구나. 내가 이십만 냥을 기부하마. 그때의 소원이 이뤄졌으니 나도 천천히 약속을 지켜야지.”

“이십만 냥은 너무 많아요. 그리고 외할머니께서 큰돈을 기부하시면, 다른 관원들도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를 따라 기부하려고 할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여유를 좀 주셔야지요.”

“그럼 얼마를 쓸지 곡 마마와 상의해 봐야겠구나. 내가 가진 것들은 훗날 모두 너희에게 물려줄 것이니, 어떻게 쓰든 상관은 없다.”

소청과 목운요를 되찾은 후, 장공주는 두 사람을 제 품에서 애지중지하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목운요의 일에는 경솔하게 끼어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목운요는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모든 언행에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서, 경솔하게 끼어들었다간 오히려 그 아이의 계획을 망칠지도 몰랐다.

그리고 장공주 자신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니 언젠가 두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을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기저기 부딪히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목운요는 곰곰이 생각하다 장공주에게 제안을 하나 건넸다.

“혹시 월왕 전하께 입궁하라고 명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장공주는 곧장 목운요의 뜻을 알아챘다.

“이번 행사를 월왕에게 맡길 생각이로구나. 그 공적은 황상께 넘길 거니?”

“외할머니는 어찌 생각하세요?”

“좋지.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생각하다니, 넌 정말이지 젊은 시절의 나보다 낫구나.”

목운요를 보는 장공주의 눈빛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황상의 성격이 월왕과 닮은 구석이 많아. 황상께 잘 대하면 아마 너를 모른 척하진 않으실 거다. 이제 황상도 나이가 드셔서 요 몇 년간 성격도 점점 부드러워지셨고, 아랫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좋아하신단다. 시간이 날 때 종종 입궁하렴. 너무 높은 곳에 있으면 추운 법이잖니? 요즘 황상께서도 꽤 힘드시단다.”

“네, 알겠습니다.”

* * *

성 공공은 몇 번이고 월왕부의 안팎을 들락거렸다.

차를 내왔다가 간식을 내오고, 간식을 내온 후에는 월왕의 옆에 서서 먹을 갈았다. 그러면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월왕을 바라보며 우물쭈물했다.

“성 공공, 할 말이 있으면 그냥 말하게.”

“사실 왕야께 할 말이 있으나,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말해선 안 될 일이면 그냥 말하지 말게.”

“하인 된 사람으로서 어찌 주인을 기만하겠습니까? 그냥 말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목 소저를 언제 월왕부로 초대하시렵니까?”

월왕은 잠시 멈칫했다. 그의 두 눈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건 나중에 다시 말하지.”

“목 소저와 말다툼이라도 하셨습니까? 기러기를 통해 서신을 보낼까요?”

문어귀에 걸린 새장 속의 앵무새가 자기 이름을 듣더니 날개를 펄럭이며 시를 읊기 시작했다.

“꾸욱꾸욱 물수리, 강의 섬에 사네. 참하고 고운 아가씨, 군자의 좋은 배필이네…….”

이에 월왕은 더욱 어두워진 눈빛을 했다.

그는 요 며칠 목운요가 하운방에서 여러 선물을 준비하는 것을 봤다. 심지어 조운년의 아들인 조질문도 목운요에게 새 옷을 받았다. 오직 자신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성 공공은 월왕의 안색을 보고 재빨리 그를 위로했다.

“화분을 하나 키우려면 물을 주고, 흙을 갈고, 가지치기도 해야 합니다. 게다가 정성을 들여 비료도 줘야 하고, 종종 화분을 들고 나가 햇빛도 보게 해 줘야 하죠. 꽃 몇 송이에도 이렇게 정성이 들어가는데 하물며 사람은 더하지 않겠습니까? 꽃을 한동안 돌보지 않으면 말라비틀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한동안 만나지 않으면 관계가 소원해지기 마련입니다…….”

월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에 문간에서 보고가 들려왔다.

“왕야, 목 소저가 와 있습니다.”

월왕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쥐고 있던 붓이 뚝 하고 부러졌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어귀로 걸어갔다. 온통 어둡던 두 눈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월왕을 본 성 공공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넋을 놓았다. 월왕이 이렇게 완전히 어린아이처럼 변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리고 머리도 다시 정리하시는 건 어떨까요?”

그에 월왕은 자신이 걸친 검은색 의복을 내려다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럼 한 벌 골라 주게.”

* * *

우항을 따라 들어온 목운요는 처음으로 월왕부를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월왕부는 굉장히 넓고, 사람이 적어 휑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원래 현 황제의 형이었던 진왕(秦王)의 저택이었다.

죽은 진왕은 아주 악랄한 수법으로 현 황제의 황위를 위협했기에, 황제는 진왕을 몹시 미워했다. 그런 진왕이 쓰던 저택을 월왕에게 하사했으니, 월왕이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한다는 소문은 더욱 확고해졌다.

우항은 목운요를 대청으로 안내하고 하인에게 차를 내오라고 명한 뒤 냉큼 문가로 물러났다.

목운요는 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자신이 보낸 하명향로 차였다.

약 일각이 지난 후, 월왕이 재빠르게 걸어왔다.

그는 백옥 상투관을 쓰고 연청색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깔끔한 푸른색이 맑고 차가운 눈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누가 봐도 조금은 마음이 떨릴 법한 모습이었다.

“운요, 오래 기다렸구나.”

“월왕 전하, 오늘은 평소와 좀 다르신 것 같습니다.”

월왕은 속으로 기뻐했다. 그의 눈빛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보기 좋으냐?”

목운요는 귀 끝을 살짝 붉히며 태연하게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월왕 전하께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무슨 일이지?”

“자선 행사를 계획하던 중 장공주 전하께서 도움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한데 제 생각에 장공주 전하께서 행사에 개입하시면 많은 관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행사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하운방이 주최하기에는 격이 맞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월왕 전하께서 입궁하시어 황상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만한 일은 황자께서 진행하시는 것이 가장 어울릴 겁니다.”

“내게 공을 세우게 해 주려는 것이냐?”

목운요를 보고 있자니 월왕은 마음속까지 따뜻해졌다. 어딜 봐도 너무 고와서 누구와도 나누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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