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54화 (254/442)

254화 재산을 탕진한 월왕

* * *

요 며칠 조운년의 저택에는 방문을 청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대화 도중 목운요를 언급하며 은근하게 조운년과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

손님들을 내보낸 조운년은 금 부인의 손을 이끌고 감격하여 말했다.

“역시 부인이 보는 눈이 있구려. 운요를 수양딸로 삼은 것은 둘째 치고, 운요에게 아들의 이름까지 짓게 하다니. 목운요의 만사가 순조롭다면, 우리 아들도 그 이름만으로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오.”

금 부인도 똑같이 감개무량했다.

“처음 운요를 봤을 때부터 굉장히 영특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앞날이 창창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그래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하늘 높이 날아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엔 우리가 운요를 돌봐 주었는데, 이제는 운요를 존경해야 하겠어요.”

“맞소. 그나저나 소씨 가문은 참 안되었구려. 소 부인과 운요에게 못되게 군 것도 모자라서 여러 번 두 사람을 모함하려 하다니 말이오. 잘만 대해 줬으면 분명 우리보다 더 빛을 봤을 텐데, 지금 꼴을 보시오. 온 가문이 화를 피하지 못하잖소?”

조운년이 금 부인의 손을 토닥였다.

“역시 우리 부인이구려. 밖에서 동료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르오. 소문원의 부인인 맹 씨처럼 가문을 망치는 여인을 부인으로 맞지 않고 당신 같은 사람을 부인으로 두어 좋겠다며 참 부러워한다오.”

금 부인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말은 밖에서는 조심하세요. 그나저나 맹 씨는 소 대인에게 버림받았다더군요. 나이도 많은데, 참 가엾죠.”

“모두 본인이 자초한 것 아니겠소? 응당히 받아야 할 벌이오.”

* * *

장공주는 원래 최대한 빨리 목운요를 외손녀로 삼는 예식을 치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달만 있으면 새해였다.

목운요는 자수법을 전수해야 하기도 했고, 연말이 되면 하운방과 불선루의 모든 장부를 정리해야 하니 할 일이 넘쳐날 것이었다. 그래서 예식을 내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장공주는 유감스러운 마음이 컸지만, 이내 준비할 시간이 많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충분하면 더 꼼꼼히 준비할 수 있었다.

목운요는 자수법을 전수하는 일로 바빠지기 시작했고, 서릉의 백성들도 소씨 가문의 유언비어를 떠벌릴 시간이 없어졌다. 자수법을 배울 생각이 있는 여인들은 새로 세워진 학당으로 모여들었다.

목운요는 경릉성에서 온 직공들을 학당에 세심하게 배치했다. 자신이 다룰 줄 아는 자수법은 모두 그들에게 전수한 뒤였다. 서릉의 여인들이 얼마나 잘 익힐지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한편 열흘 동안의 근신이 끝나자, 월왕은 바로 환복하고 하운방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의심을 피하려고 일부러 행적을 숨겼지만, 장공주가 목운요를 외손녀로 삼자 월왕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하운방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운요, 부황께서 반년 치 녹봉을 감봉하는 벌을 내리셔서 나는 이제 입에 풀칠도 못 하게 되었다. 이제 네게 빌붙어서 밥을 먹는 수밖에 없어.”

목운요는 실소했다.

“이젠 장난도 잘 치시네요. 고작 반년 치 녹봉이 줄어든 것으로 입에 풀칠을 못 하다니, 대체 얼마나 가난하신 겁니까?”

월왕은 꼿꼿한 자세로 앉아, 사뭇 당당하게 말했다.

“예전에 네가 나를 도와 많은 돈을 벌어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도 과거에 돈을 많이 벌긴 했다만, 거둔 사람이 많아서 거의 다 써 버렸다.”

목운요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그 돈을 다 써 버리셨다는 겁니까?”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돈을 다 쓴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버는 건 어려운데 쓰기는 또 어찌나 쉽던지, 지금은 관저에서 나가는 돈만으로도 빠듯하다.”

목운요는 월왕을 한번 쳐다봤다. 월왕은 돈을 벌 때 그렇게 고생하지도 않았는데…….

“제게 돈을 벌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월왕 전하께서 관심이 있으실지 모르겠군요.”

“들어나 보자.”

월왕은 목운요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목운요는 탁상 뒤편에 자리 잡고 앉아 장부를 뒤지더니 한 손에 붓을 들고 글을 썼다.

햇살 한 줄기가 쏟아지면서 목운요의 위로 따뜻한 황금빛이 번졌다. 그 모습이 마치 햇볕을 쬐는 고양이 같아서 월왕은 손을 뻗어 두어 번 쓰다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하운방의 발전이 꽤 컸습니다. 자수법을 아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요. 모든 사람이 자수로 생계를 이어 가는 건 아니지만, 솜씨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월왕 전하는 자수품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자수 말이냐? 하운방의 옷은 한 벌에 천 냥 이상을 받고 팔 수 있지만, 다른 자수방에서는 그렇게 큰돈을 벌어들일 수 없을 것 같구나.”

목운요는 쥐고 있던 붓을 내려놓았다.

“월서와 북강(北疆), 운노(云奴)가 서로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월왕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눈빛을 반짝였다.

“설마 자수품을 북강과 운노 일대에 팔라는 건 아니겠지?”

“안 될 건 또 뭡니까? 우리의 찻잎과 비단은 북강과 운노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제 국내에선 자수를 놓을 줄 아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당연히 자수품의 가격이 내려가겠지요. 이곳에서 얼마 안 되는 이윤으로 서로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보단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월왕은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목운요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괜찮은 생각이구나. 북강에선 군마를 기르고, 운노에선 소와 양을 기르지. 하운방과 불선루의 자수품과 찻잎을 그것들과 맞바꾸면 분명히 수지가 맞겠어.”

“그건 별것도 아닙니다. 임강성의 소금은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거든요. 지금은 소금에 대해 매우 엄격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기에 소금을 팔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소금을 북강과 운노에 내다 팔 기회가 생긴다면 그 이윤은 곱절도 넘겠지요.”

월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가운데를 천천히 걸었다.

“그래. 월서는 혹한의 땅이라 그곳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별로 없어. 예전에 볼 땐 모든 것이 나빠 보였는데, 이젠 월서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겠구나. 운요, 네가 이곳저곳에 자수법을 전수한 것도 오늘을 위한 것이었느냐?”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셨습니다. 자수법을 전수하는 것은 단지 제 입지와 명성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렇게 먼 수까지 내다보겠습니까?”

월왕은 목운요를 자세히 관찰했다. 다른 사람은 그때그때 생각하며 일을 진행하지만, 목운요는 마치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모두 심혈을 기울여 계획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겐 실패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넌 언제나 모든 것을 꼼꼼하게 생각하고 계획하지. 마치 모든 일을 네 손 안에 쥐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목운요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어리석은 자도 생각을 거듭하면 묘책을 마련하는 법이지요. 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 아니니 여러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 내디딜 모든 발걸음에 관해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수많은 계산을 했지요. 다른 사람들은 무언가를 잘못하면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잘못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수만 잘못 두어도 완전히 패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할 자격이 없는 거죠.”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기울여 계획하지 않았다면, 소씨 가문은 목운요와 소청을 손아귀에서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목운요는 이전 생에서처럼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생을 마감했을 것이었다.

목운요의 담담한 얼굴을 보자, 월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운요, 고모님이 네 든든한 후원자시니 이제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지내지 않아도 돼. 실수를 하더라도 고모님께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다. 게다가…… 네겐 내가 있지 않느냐?”

순간 목운요의 마음이 떨렸다. 마음속에 쓰라린 감정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외당숙,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가 날 그렇게 부르는 게 싫다.”

월왕은 목운요가 자신을 외당숙이라고 부르는 게 두 사람의 혈연관계를 다시금 일깨우기 위함임을 알았다.

하지만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번 마음이 동하면 불 속으로 뛰어들고 있음을 알아도, 사랑하는 그 순간의 따뜻함과 반짝임에 대한 갈망을 억누를 수 없는 법이다.

목운요는 주먹을 말아 쥔 채로 멈칫했다가, 다시 붓을 들고 장부를 확인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월왕 전하라고 부르겠습니다.”

* * *

자수법의 전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외려 목운요는 연말 선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올해는 유독 준비할 선물이 많았다. 장공주께 하나, 황상께 하나, 어머니께 하나, 의부님, 의모님과 의제(義弟)에게도……. 어쩌면 설날까지 바쁠 수도 있었다.

“요아야, 버섯국을 먹고 좀 쉬렴.”

국을 가지고 온 소청은 목운요가 손에 들고 있는 옷감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남색 천이 꽤 크구나. 의부께 옷을 지어 드리고도 남을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도 쓰시겠어요?”

“내가 쓸 데가 어디 있니? 그보다 며칠 전에 보니 월왕 전하의 소매가 긁혀 있더구나. 혈혈단신이라 집에 돌봐 드릴 사람도 없고, 시중드는 하인들도 죄다 남자들이니 아마 소홀한 부분이 많을 거야.”

목운요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눈을 살며시 떨구었다.

“월왕 전하께선 황자님이시니 옷 한 벌쯤이야 말 한마디면 뚝딱일 텐데, 저희가 염려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건 그렇고, 어머니도 요 이틀 동안 옷을 지으시던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목운요가 월왕 얘기를 내키지 않아 하는 듯하자 소청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월왕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소청은 그가 딸아이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건은 월왕이 운요에게 진심이냐는 것이었다. 사실 친척이라고는 해도 촌수가 멀어서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소청은 목운요가 버섯국을 다 먹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그사이 목운요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자, 그녀는 서랍장에서 하늘색 천을 꺼내서 재단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