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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51화 (251/442)

251화 변하지 않는 마음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공주의 지략에는 누구도 당해 낼 자가 없으니 자연스레 마음이 놓였다.

그때, 월왕이 앞으로 나섰다.

“고모님, 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어서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부황께서 걱정하실 겁니다.”

장공주는 소청과 목운요의 손을 꼭 잡았다. 삼십여 년 동안 찾던 딸과 만났더니 오늘 일이 아름다운 꿈만 같아서 모두 산산이 조각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어찌 쉽게 떠나겠는가.

소청이 장공주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어머니, 피곤해 보이십니다. 어젯밤에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셨지요? 오늘은 일찍 돌아가 쉬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러나 장공주는 여전히 가기 싫은 듯 미간에 힘을 주었다.

“하운방도 좋긴 하겠지만 일하는 사람이 많아 살기에 무척 시끄러울 거다. 내가 서릉에 집 몇 채를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군월을 통해 도면을 보내 줄 테니 둘이서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 보아라.”

목운요는 거절하려 했으나 장공주의 기대하는 눈을 보자 그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네, 외할머니. 꼼꼼히 따져 본 후에 경치가 가장 멋진 곳으로 고를게요.”

그제야 장공주의 얼굴에 미소가 폈다.

“좋다.”

어렵게 딸을 찾았으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소청과 목운요가 사양하여 넘치는 애정을 쏟아 낼 곳이 부족할까 염려될 뿐이었다.

한편 소청은 무척 감동했다. 소씨 가문에서 노부인의 농간만 겪다가, 딸을 몹시 아끼는 장공주를 보니 두 사람이 정말 천지 차이로 느껴졌다.

“어머니, 입궁하시면 다른 일은 염려치 마시고 일찍 쉬십시오. 나중에 저희를 보러 오시고 싶거든 언제든 편하실 때 오시면 됩니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이 여려졌는지 몰라도, 소청이 건넨 평범한 배려의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목운요는 곡 마마의 손에서 옷을 건네받고 장공주의 몸 위에 둘러 주었다. 그리고 이내 장공주를 부축하며 문 앞으로 걸어갔다.

“외할머니, 어머니는 제가 잘 모실 테니 안심하세요.”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즉시 군월에게 알려라. 군월이 해결할 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네, 걱정 마세요.”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장공주를 배웅한 뒤, 소청과 목운요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다. 소청은 장공주와 초면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어머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요아야, 우리에게 가족이 하나 더 생겼구나.”

목운요의 눈에 웃음기가 번졌다.

“맞아요. 하늘이 우리에게 그리 박하진 않네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중에 네 외할머니를 모시고 보화사에 가서 감사 예불을 드리자.”

“네, 어머니 말씀대로 해요.”

목운요는 소청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창밖을 보니 그네가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흐린 빛이 스쳐 지나갔다.

* * *

월왕은 장공주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장공주는 애써 표정을 숨기려 했지만, 자꾸 미소가 번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고 심장 박동 사이사이에 꿀 같은 단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군월, 곧장 월왕부로 가지 말고 옥화궁에 잠깐 들러 다오. 묻고 싶은 게 있다.”

“알겠습니다, 고모님.”

옥화궁에 도착한 장공주는 하인들을 물리고 곡 마마가 궁문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다소 진정된 얼굴로 월왕에게 물었다.

“군월, 언제부터 청이와 운요를 알게 된 것이냐?”

“작년에 암살자에게 급습을 당해 칼을 맞았습니다. 급히 하언촌 뒷산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서 약초를 캐던 운요와 만났죠. 그 후 경릉성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하운방을 개업한 상태였습니다. 그 후 저희는 협력하여 불선루를 열었고, 조금씩 발전시켜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월왕은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수완 좋은 장공주에게는 숨겨도 소용없었다.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운요를 앞으로 어떻게 대할지 생각해 보았느냐?”

월왕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고모님, 저는…….”

장공주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청이는 내 딸이자 네 사촌 누이다. 그러니 운요는 네 당질녀(堂姪女)가 되는 것이지. 난 반드시 청이와 운요를 황궁으로 데려올 것이다. 두 사람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 앞으로는 최고로 잘해 주고 싶단다. 군월, 너라고 해도 운요를 불편하게 하는 건 용납 못 한다.”

월왕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는 어두운 빛이 스쳤다.

한참 뒤, 그가 고개를 들어 완고하게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고모님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은덕이 큰 산과 같으니 구태여 속이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미 운요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장공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너희 둘은 혈육이고, 운요는 너를 당숙이라고 불러야 한다. 유독 여인에게 가혹한 이 세상에서 만약 너희 둘이 함께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운요가 불경하게 너를 꾀어냈다고 손가락질할 것이야!”

“저는 절대 운요가 그런 악명을 짊어지지 않도록 할 겁니다. 부디 믿어 주십시오. 그러잖아도 운요는 진상을 알려 주며 제게 관계를 끊자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건 제가 고집하는 일입니다. 제가 포기하지 못하는 겁니다!”

월왕이 무릎을 꿇고 꼿꼿이 앉았다. 마치 눈발을 맞고 선 소나무 같았다.

“고모님, 저는 어려서부터 많은 일을 겪어 왔습니다. 그래서 일평생 고독하게 살다 가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운요를 만난 겁니다. 마치 하늘이 제게 선물을 보내 준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운요가 없으면 제 삶의 일부가 사라진 것 같을 겁니다. 고모님도 느끼고 계시지 않습니까?”

장공주는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첫사랑은 언제나 강렬한 법이다.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뜨거웠던 사랑도 곧 소진되어 원망과 후회로 변한단다. 네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 어찌 장담하지?”

월왕은 완강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제가 뭐라고 말하든 믿지 못하실 텐데, 제 마음을 어떻게 보여 드리겠습니까?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미간을 찌푸린 장공주의 눈에 심오한 빛이 스쳤다.

“만약 고모님께서 불허하신다면 운요가 다른 남자와 혼인하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당숙과 당질녀의 신분으로 평생 사는 것도 좋지요.”

“너……. 군월아, 운요도 같은 생각인 게냐? 그 아이도 너를 위해 평생 혼인하지 않겠다고 하던? 나중에 운요가 널 원망하여 서로 원수가 되어도 괜찮느냐?”

월왕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지는 확신할 수도, 장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월왕은 진심이었다. 비열하고 형편없는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사내에게 시집가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운요가 원망한다고 해도 그렇게 할 겁니다.”

월왕은 차가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글자 하나하나가 너무 무거워 입 밖에 뱉기 힘들었다.

장공주는 아무 말도 않다가 돌연 손을 저었다.

“이만 돌아가 보아라. 갈 때 곡 마마에게 서릉에 있는 저택들의 도면을 받아서, 청이와 운요에게 전해 주고. 만약 청이와 운요가 마음에 들어 하는 집이 없으면 다른 곳이라도 샅샅이 뒤져서 꼭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여라.”

월왕은 고개를 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이후로 운요의 얼굴을 못 볼 수도 있겠다고까지 생각했는데, 도면을 보내라고 하실 줄이야.

“고모님?”

“너희는 아직 어리고 난 이제 늙었다. 내가 아무리 간섭하고 막으려고 해도 내가 하늘로 가면 넌 하고 싶은 대로 할 테지. 그럴 바엔 자연스럽게 지내도록 두는 게 나아. 그리고 만약 운요가 네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넌 똑똑한 운요를 당해 낼 수 없겠지. 그땐 젊은 너희끼리 알아서 고민하도록 놔두면 될 테고.”

월왕은 장공주가 엄청난 양보를 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월왕의 눈에 감격스러운 빛이 스쳤다.

“고모님, 감사합니다.”

월왕이 떠나자 곡 마마가 방 안으로 들어와 장공주의 세면을 도왔다.

“전하, 이제 월왕 전하께서도 장성하셨으니 그때 일을 알려 드려도 되지 않습니까? 사실 목 소저와 혼인하는 것은 아무 문제 없다고요.”

장공주의 얼굴에 근엄함은 사라지고 빙긋 웃음이 번졌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깊은 법이지. 군월을 어렸을 때부터 봐 왔으니 성격을 잘 알긴 하지만, 운요에 대한 감정이 영원할지는 알 수 없다. 순조롭게 연인으로 지내는 것보다는,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게 지켜 낸 인연이 더욱 소중할 거다.”

“공주 전하의 마음이 참으로 깊으십니다. 소인은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따가 황상을 뵈러 갈 것이니 짐을 좀 챙겨 주게. 이사할 일을 논의해야겠어. 그리고 다른 하인을 시켜 운요의 계례를 마저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해 주고. 내가 직접 주빈(主賓, 손님 가운데서 주가 되는 손님)의 자리에 앉겠네.”

“준비는 어렵지 않으나, 너무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두 분이 불편해하지 않을까요?”

“불편한 일이 생기면 내가 보호해 주면 되네. 그리고 일전에 곡 마마는 운요의 성격이 내 젊었을 적과 닮았다고 하지 않았나? 운요는 나 없이도 혼자서 소씨 가문을 헤집어 놓은 아이야. 만약 사내아이였다면 나랏일에 나설 수 있도록 했을 텐데…….”

곡 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목 소저의 재간은 당해 낼 사람이 없지요.”

장공주는 더욱 신이 나 말했다.

“그럼 가서 준비하게나. 계례가 끝나면 정식으로 운요를 내 외손녀로 발표하겠네. 청이의 신분은 아직 세상에 알릴 수 없지만,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 못하게 운요를 입적하는 날 황상께서 작위를 하사하시도록 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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